소설리스트

남궁마제 (68)화 (68/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남은 여죄는(3)

별세계.

자월루는 양청현 저자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로, 신선들의 술과 음악 그리고 월야선녀 같은 미녀들이 있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양청현에서도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만 찾는 곳이었다.

황보정과 단승호도 황보세가와 단천문의 자제로 이곳에 와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손님들만 모신다는 사 층은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통째로 빌리다니.

“이래서 사람들이 대세가, 대세가 하는구나.”

계단을 오르는 그들을 흘깃흘깃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단승호가 으쓱한 표정으로 감탄했다.

반면 황보정은 뭔가 좀 불편한 모습이었다.

똑같이 ‘대세가란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거기서 받는 느낌이 서로 다르다고 할까.

‘쳇, 이 정도는 우리 황보세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누군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나.’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세가들이 명성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게 체면이었다.

황보세가는 그 망할 명문의 반열에 들기 위해, 막대한 부를 두고도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런데 버젓이 자월루 사 층을 통째로 빌려 저를 부른 제갈후현의 위세와 우러러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겪고 나니, 어쩐지 배알이 꼴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단승호가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손을 들었다.

“둘째 공자님!”

“승호, 어서 오게. 오, 자네가 황보 가문의 소가주인가? 반갑네, 제갈용성일세.”

“아, 안녕하십니까. 황보정이라 합니다.”

갑작스러운 대면에 당황하던 황보정이, 곧 담담한 태도로 포권했다.

왜소한 체격에 단정한 이목구비 그리고 눈빛을 감추는 가는 눈매.

전형적인 제갈의 모습이나, 황보정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형에 비해 유순한 성격이라더니…….’

웃고 있는 지금이야 소문대로 순해 보였지만……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찰나였지만 제가 본 어떤 사람보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만나서 반갑네. 황보세가의 후계가 헌헌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네.”

“아닙니다. 제가 먼저 뵈었어야 했는데요.”

제갈용성과 황보정이 서로의 속을 숨기고 겉치레 섞인 대화를 나눴다.

“차차 교분을 나누기로 하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시게.”

“……혼자 말입니까?”

“소가주님께서 독대를 원하시네.”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황보정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황보정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사전에 아무런 언질이나 교감도 없이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불쾌감이 드러나려는 것을 겨우 참은 느낌이었다.

‘잘 안 되겠네, 안 되겠어.’

제갈용성의 입가로 은근한 미소가 맺혔다 사라졌다.

* * *

방으로 들어가 대면한 제갈후현은, 제갈용성과 형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닮지 않았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도포 안으로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하고, 이목구비도 굵직굵직한 호남형이라.

오히려 팽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어서 오게. 황보세가 소가주라고?”

황보정은 눈앞의 사내야말로 제갈세가 소가주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머리부터 발끝 그리고 제 속까지 들여다보려는 듯 집요한 눈빛에, 걸음을 딛는 내내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황……보정이라 합니다.”

제갈후현의 앞으로 온 황보정이 목소리가 떨려 오는 것을 겨우 누르고 포권했다.

육 년의 차이라 이다지 큰 것일까.

바로 앞에 서니, 처음보다 더 강한 기운이 저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듯한 느낌.

하지만 느낌은 느낌이고.

‘사람을 보자마자! 나도, 황보세가의 후계란 말이다!’

황보정이 맞서서 기운을 일으켰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제갈후현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재밌는 친구군.”

갑작스러운 웃음에 황보정이 놀란 듯 제갈후현을 보았다.

그때 제갈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보정을 팔을 잡아 옆으로 끌었다.

“잠깐 장난 한번 쳐 본 것인데, 제법 만만치 않은 친구가 왔군. 마음에 들어! 하하하하! 이리로 앉게.”

친구…….

제갈후현이 황보정에게 매우 친근하게 대했다.

“혹 집안에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에서 여러 사업을 함께 추진하며 교분을 다지고 있네. 그런 차에, 황보세가의 후계가 후배로 들어와 있다기에 찾은 것이네.”

“아, 예…….”

정확히는 제갈세가에서 혼약을 빌미로 황보세가의 잘나가는 사업에 함께하자고 붙은 것이라.

물론 황보가주 또한 제갈소현을 며느리로 얻어 집안이 도약할 기회라며 들떠 있었다.

그 덕에 황보정은 두 세가의 교분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제갈소현이 자살하여, 곧 두 세가의 교분이 흐지부지해질 것까지 알 정도로.

“표정을 보니, 잘 아는 모양이군.”

제갈후현이 피식 웃으며 술을 따랐다.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매제가 될 뻔했던 사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사내가 마음에 들었으니, 두 세가의 교분을 이어 갈 다른 방법도 찾아보면 좋겠고.”

제갈후현이 술을 권하며 웃어 보였다.

황보정이 단숨에 술을 삼키고, 잔을 제갈후현에게 넘겼다.

“알다시피 제갈세가도 양청현에서는 굴러온 돌이지. 원래 가지고 있던 이들은 단 한 치도 비켜 줄 생각이 없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 이 말이야.”

제갈후현의 말에, 황보정이 제 손으로 독한 술을 따라 삼켰다.

황보세가가 애초에 제갈세가의 손을 잡으려고 했던 이유였다.

그나마 처지가 비슷한 대세가라, 황보세가를 필요로 하니까.

하지만 황보정은 제갈후현이 하는 말에 하나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제갈세가는 함께하는 문파들과 확실한 연대를 꾸리고 서로 상생을 추구하네. 하지만 이런 말은 그다지 와닿지 않겠지. 대신, 기득권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처지는 비슷하니, 나아갈 길도 비슷하지 않겠는가. 길을 가는 김에 힘을 합하자고.”

제갈후현이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작은 상자 하나를 함께 내놓았다.

“말로만 하는 상생은 아니야. 무학제를 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보약일세.”

술잔과 함께 놓인 작은 상자.

그것들을 보는 황보정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제갈세가 소가주가 내놓는 보약이라면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

받게 된다면 확실하게 그에게 도움이 되는 동시에 제갈후현의 손을 잡게 되리라.

잠시 고민하던 황보정이 술잔에 손을 뻗었다.

탁.

단숨에 술을 들이켠 황보정이 잔을 내려놓으며 제갈후현과 눈을 마주쳤다.

“이전에는 단지 제갈세가와 연을 맺으면 그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갈세가와 연을 맺는 동시에 남궁세가를 적대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점은 그대로인데, 위험성만 커졌다…… 아무래도 이 약으로는 부족할 성싶습니다.”

황보정이 작은 상자를 도로 제갈후현에게 내밀었다.

남궁진화가 거슬리고 짜증 나지만, 자신은 황보세가의 후계자였다.

자랑스러운 황보세가의 후계로서, 가문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움직일 줄은 알았다.

그 잔을 마지막으로 황보정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제갈후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퍼-억!

황보정이 내려놓은 술잔이 터져 나갔다.

“감히! 이런 쥐 새끼들까지 간을 보겠다? 허! 쥐 새끼는 덩치를 키워 봤자 쥐 새끼지. 황보세가와 거래를 하기 전에, 주제 파악부터 시켜 줘야겠군.”

산산조각 난 술잔을 노려보며, 제갈후현이 눈에 살기가 스쳤다.

* * *

한편.

황보정이 방으로 들어가고, 단승호와 제갈용성은 다른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오자, 단승호가 제갈용성의 팔을 붙잡았다.

“약속대로 황보정을 데려왔으니, 그것을 주십시오!”

제갈용성은 단승호의 태도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왜 이렇게 급하지?”

“약속이잖아요!”

“누가 안 준대?”

평소와 극명하게 다른 태도.

그러고 보니 묘하게 얼굴이 붉고, 옷깃 위로 드러난 목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제 팔을 잡은 손도.

‘……떨리고 있어?’

제갈용성의 눈이 단승호를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 단승호는 기다릴 수 없는 듯 제갈용성을 재촉했다.

“형님, 그거요!”

“아, 여, 여기 있어. 약속한 열 알일세.”

단승호의 재촉에 당황한 듯, 제갈용성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급하게 하나를 입에 넣고 씹는 단승호를 집요하게 살폈다.

“이봐, 승호, 왜 그렇게 급한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뇨. 급한 건…… 그냥 답답해서 그랬죠. 아무래도 성취도 느려지고 하니까…….”

단승호가 답을 했지만, 그조차도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제갈용성은 단승호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변명 대신 그가 불안한 듯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슬쩍 드러난 손목을 보았다.

‘상처? ……그러고 보니 뒷목에도 있었지?’

제갈용성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그때, 제갈용성의 시선을 피하던 단승호가 황보정을 발견했다.

“어? 저, 저기! 정이가 나오네요!”

“응? 아, 그러네.”

단승호가 황보정의 곁으로 달려가고, 제갈용성은 아쉬운 듯 그 뒷모습을 보았다.

“이야기가 일찍 끝난 듯합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황보정은 방을 들어갔을 때보다 어쩐지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였다.

제갈용성은 황보정과 단승호를 배웅하며 듯 뒷모습을 오래 두고 보았다.

‘황보정은 정말 거절한 건가? 아니, 그보다…… 승호 녀석, 저도 모르게 몸을 긁고 있었어. 곳곳에 불거진 혈관이나 상기된 얼굴, 불안한 시선 처리…… 녀석은 아직 눈치를 못 챈 건가? 아니면 다른 증상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정말 부작용?’

제갈용성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약의 부작용이라면……!’

천천히, 제갈용성의 시선이 제갈후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듯, 제갈용성의 눈빛이 타올랐다.

* * *

돌아가는 길.

“뭐? 거절했다고?”

단승호가 놀라서 황보정에게 물었다.

“아니, 거절한 건 아니고, 더 좋은 조건을 내걸라고 한 거지. 아쉬운 건 제갈이잖아?”

“우와, 대단한데!”

“에이, 뭘, 그런 걸로. 우리 황보세가가 필요한 건 그쪽이니, 우리는 썩 아쉬울 게 없다 이거지! 흐흐흐!”

단승호의 감탄에 황보정의 허세가 더해졌다.

“흠? 흠? 넌 나 들어간 사이에 뭘 한 거냐? 향냄새가 나는데? 혹시…… 응?”

“응? 아니야! 그럴 틈도 없었다고!”

“거짓말 마라. 내 코가 개코다!”

“아니라니까! 용성 형님이랑 이야기 좀 나누는데 네가 나온 거라고!”

“그래? 흠, 믿는 척해 주지. 하하하!”

두 친구가 숙청관으로 복귀하는 길.

지붕을 타고 두 그림자 또한 사이좋게 복귀했다.

* * *

다음 날, 진화는 아침 식당에서 나오는 황보정과 단승호를 발견했다.

어제와 다름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그 이기적인 등신의 제안을 거절해 놓고 희희낙락이라니…….”

“제갈 소가주가 화풀이를 하려 들까?”

“응.”

진화의 대답이 단호했다.

제갈후현에 비하자면 제갈소현은 어린아이라.

절 위해서 제 동생까지 죽인 놈이었다.

게다가 남의 위에 밟고 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힘과 위세를 가지고 성장했다면 오죽할까.

“훌륭한 미끼가 있으니, 덫은 완벽하겠군.”

진화가 어제부터 약간 기세등등한 황보정을 보며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옆의 단승호를 보았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활짝 웃고 말았다.

“덕분에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어.”

“그 단천문 제자들처럼…… 단승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거 말이야?”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슬쩍 남궁교명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단천문 제자들이 그렇게 되고, 단승호의 상태가 이상하다면…… 그들과 같은 약을 먹었던 남궁교명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혹시 몸에 남았을 후유증을 걱정해야 할지.

‘젠장! 내가 저놈이랑 미운 정이 든 모양이군. 도련님이 준 해약이 진짜 해약이 아닌데, 지금 저 녀석 몸이 어떤지 걱정되는 것을 보면…….’

진화도 남궁구의 시선을 눈치챘다.

그래서 모르는 척 남궁교명을 힐끗 보면서 남궁구의 말에 대답했다.

“중요한 건, 단승호가 아니라 단승호를 보던 제갈용성이지.”

“제갈용성?”

“구, 제갈용성에 대해서 알아다 줘. 정확히는 제갈용성의 성장 과정이나 제갈후현을 포함한 그들 남매와의 관계 중심으로.”

단승호의 상태를 보고 나서 눈빛이 변했다.

지켜보는 눈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드러내 보인 제갈용성의 눈빛은 명백한 적의와 살기 그리고 증오를 품고 있었다.

드디어 이전부터 거슬리던 제갈용성의 일면에 대해 한 꺼풀 벗겨 낸 느낌이라.

진화는 제갈용성을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듣고 있는 남궁교명을 힐끗거렸다.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 했다.

다르다.

제가 알던 소가주 남궁교명과 다른 인물이다.

“교명.”

진화가 낮은 목소리로 남궁교명을 불렀다.

“이렇게 되었다고 네가 한 짓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네 몸, 완전히 고쳐 보겠어?”

“……!”

진화의 물음에, 남궁교명은 물론 옆에 있던 남궁구도 놀란 눈을 뜨고 진화를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