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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69)화 (69/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남은 여죄는(4)

부산하게 움직이던 남궁구가 눈빛이 퀭한 채 나타난 건, 이틀이 지난 후였다.

어찌나 피곤해 보이는지, 진화조차 걱정스럽게 보았다.

“몰골이 왜 그래?”

“파다 보니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깊게 빠져들었어…….”

“빠져들어?”

진화가 이상한 것을 보듯 남궁구를 살폈다.

남궁구가 썩은 생선보다 조금 나은 눈을 하고, 뭐가 좋은지 실실 웃어 댔기 때문이다.

“흐흐흐! 그 집안 꼬라지가 천일야사, 봉래선생 같은 소설보다 훨씬 막장이야! 그런데 또 파다 보니까, 여자들이 왜 그런 걸 읽는지 알겠더라고.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거야! 그러다 보니 이틀 동안 한숨도 안 잤더라고. 흐흐흐!”

남궁구가 웃음을 흘리는데, 어쩐지 침도 같이 흘릴 것 같은 상태라.

진화가 질색하는 얼굴로 조금 떨어졌다.

“들어 봐. 세 남매와 제갈용성이 배가 다른데, 제갈용성만 서자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 그런데 잘 보면, 제갈후현, 지현, 소현 남매랑 제갈용성은 아예 돌림자가 달라. 아니, 제갈용성에게는 여자에게도 준 돌림자를 안 줬다는 게 맞는 말이야. 제갈용성의 친모가 그냥 평민이나 다른 집안 여자도 아니고, 제갈후현 삼 남매의 친모이자 제갈세가 가모 서상아의 몸종에게서 난 자식이거든.”

“…….”

“제갈가주는 처음부터 장문 서씨의 아가씨보다 그녀의 몸종, 제갈용성의 친모와 사랑에 빠졌는데, 넘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와…… 응?”

예상과 달리 너무 조용한 반응에 남궁구가 진화를 보았다.

그리고 세상 무심한 눈으로 저를 보고 있는 진화와 눈이 마주쳤다.

“남의 집 지저분한 가정사, 관심 없어?”

“없어.”

진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갈용성의 돌림자도 관심이 없었고, 장문 서씨에도 관심이 없었다.

진화가 관심이 있는 건, 제갈용성이 가진 적의와 분노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건, 남궁구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친모가 가모 서상아의 손에 맞아 죽었어.”

“뭐?”

진화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몸종 출신이라지만 가주의 후처였다.

독살이나 암살 정도는 생각했지만, 남궁구의 대답은 정말 예상외였다.

“어머니가 칠 주야를 꼬박 채찍질을 당해 죽었는데, 도련님, 넌 누굴 원망할 것 같아?”

* * *

짜-악.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고개가 돌아간 제갈용성은 그제야 볼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허, 여전히 손이 매우십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짜-악!

괜히 입을 벌리고 있던 터라, 입술 안쪽이 살짝 찢어진 듯 피가 났다.

제갈용성이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바로 했다.

동시에 그를 향해 칼 같은 독설이 내려와 꽂혔다.

“내, 네 그 벌레 같은 낯짝 보이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

큰 키에 마른 몸, 냉막한 인상의 미부인은 그녀의 독설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제갈용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높이가 아니라 그녀의 시선이, 제갈용성보다 한참이나 높았다.

“그간 제법 주제를 알고 사는 것 같아 살려 두고 있건만…… 후현이에게 필요하지 않았다면 너 따윌 살려 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은, 제갈소현의 처소와도 통하는 길이었다.

어째, 자신이 때와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인가.

하지만 제갈용성은 아직도 후끈한 뺨과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혈향 때문인지, 오늘은 왠지 참고 싶지 않아졌다.

“예, 제가 후현 형님에게 제법 쓸 만한 졸이지요. 주제 파악을 잘한 덕에, 어머니보다 나은 몸종은 된 듯합니다. 시키는 것은 전부 하거든요, 그게 뭐든지.”

“……!”

제갈용성이 눈을 똑바로 맞추고 말했다.

입가엔 비릿한 웃음까지 달았다.

방금, 죽은 딸아이의 처소를 찾고 돌아온 가모를 향해 ‘난 시키는 것은 뭐든 했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원망을 이렇게 푸시면 곤란합니다. 저도 이젠 제갈세가의 직계거든요. 게다가 머리가 시킨 일을 두고 손발을 원망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원망은, 금수보다 냉정한 그분께 하시죠.”

“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려도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있고 독설을 날려도 답 한마디 없던 제갈용성이, 이렇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든 것은.

제갈 가모가 당황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곧 끓어오르는 수치심과 분노에 다시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그때.

“이거 참…… 형수님을 뵙습니다.”

제갈용성과 약속이 있었던 연학원장 제갈무진이 때마침 나타났다.

오촌이기는 하지만 가장 가까운 남자 혈족이라.

그의 눈앞에서 직계를 향해 손찌검할 수 없었던 제갈가모가 급히 손을 내렸다.

“흠, 연학원장은 오랜만이군요.”

“허허, 연구가 바빠서 휴일이 아니면 통 나올 시간이 없더군요.”

“그래요. 그럼…… 볼일 보세요.”

민망한 꼴을 보였다 싶었는지, 다음에 차나 하자는 인사치레도 없이 제갈 가모가 자리를 떴다.

연학원장이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혀를 찼다.

“쯧쯧, 여전히 여유가 없으시구나…… 넌, 괜찮으냐?”

“예. 숙부님께서 때마침 와 주셨습니다.”

연학원장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제갈용성의 안부를 물어봐 주었다.

하지만 제갈용성의 목소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단단했다.

연학원장이 의아한 듯 제갈용성을 보았다.

“그래, 처소로 오지 않고, 따로 보자고 한 연유는 무엇이냐?”

제갈소현의 처소와 이어진 길.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지만, 어쨌든 요즘에는 일부러 가솔들 모두 피해 가는 곳이라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조심스레 여쭙고자 한 것이 있습니다.”

“조심스레……?”

“예. 그, ‘약’에 대한 것입니다.”

제갈용성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뜬 연학원장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무엇이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냐? 내공 증진에 특효를 보이지만, 결코 함부로 써선 안 될 것이라 누누이 일렀지 않느냐.”

연학원장은 정말로 곤란하다는 얼굴로 제갈용성을 나무랐다.

“되었다. 네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그 녀석은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내 너희들에게 그걸 보여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연학원장이 제갈후현과 자신을 탓했다.

‘형님이 그걸 주변에 팔아먹은 걸 알면 어찌 반응하실까? 단천문도의 시신이 의선문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은? 고작 남은 시체 조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의선문에 비영문, 귀천성 같은 곳과 엮인 것을 알면 까무러치시겠군.’

제갈용성이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생각하며 고소를 삼켰다.

연학원장은 이 집안에서 그나마 저를 염려해 주는 사람이라, 괜한 말을 발설해서 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형님과 제가 우연히 본 것이 아닙니까. 형님께서 그걸 욕심내서, 숙부님도 하는 수 없이 내준 것이지요. 그런데, 그 약…… 혹 부작용 같은 것은 없습니까?”

“부작용? 그건 왜? 뭔가 이상이라도 생긴 것이냐?”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요 근래 형님이 정의무학제 준비로 약을 자주 드시는 듯하여…….”

연학원장의 물음에 제갈용성이 변명하듯 둘러댔다.

그런 제갈용성을 보며, 연학원장은 고심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없었다. 생존 반응도 확실했고.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동물과 인간은 다르니까. 게다가 그건…… 그 사악한 비록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겠느냐.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혹여 후현이가 남용을 한다거나 몸에 이상을 보인다면, 곧바로 가주께 알리고 의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연학원장이 심각한 얼굴로 제갈용성에 경고했다.

제갈용성이 그와 눈이 마주칠세라 고개를 숙였다.

“아,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형님께서 무학제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가주님께 알리기로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약은 꼭 정해진 양만 먹도록 하고.”

“예.”

연학원장이 제갈용성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벌써 정해진 복용량의 두 배를 초과한 지 오래였다.

이리저리 빼돌리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한꺼번에 먹는 때도 많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한꺼번에 남은 약을 죄다 털어 넣었으니.

‘그래. 숙부님도 모르는군. 동물과 인간은 다르니까…… 만약, 그게 정말로 그 약의 부작용이라면? ……그걸 알아볼 만한 녀석이 있지.’

제갈용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단승호! 그 녀석에게 먼저 실험해 봐야겠어.’

약이라면, 제갈후현 몰래 저를 위해 빼돌린 것이 있었다.

만약, 정말로 부작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하하하하하하!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던져 주리라!

그간 숨죽였던 세월을 보란 듯, 제갈세가의 가장 귀한 것을 죽여서 비웃어 주리라!

제갈용성의 눈빛이 희열로 차올랐고, 얼굴은 전에 없던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등 뒤로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연학원장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제갈용성이 이제야 미끼를 물었구나.”

“그가 제갈후현을 죽일 수 있을까요?”

어느새 다가온 하인이 연학원장의 뒤에 섰다.

하인의 말에 연학원장이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허허, 죽여도 좋고, 아니면 말라지.”

벌써 자식의 손에 다른 자식이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주나 가모나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을 보라지.

“그래도 이왕이면 성공했으면 해. 뻔뻔한 낯짝들이 일그러지는 건, 나도 보고 싶은 거니까.”

연학원장의 말에 뒤에 있던 하인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폭주하지 않도록 잘 감시해라. 중요한 건, 시간이다. 우리가 역천비록을 충분히 연구하고 난 뒤에, 중원이 혼란에 빠져야 한다.”

“존명.”

풀숲이 나무에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하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 *

누구를 원망할 거냐고?

남궁구의 물음에 진화가 대답했다.

“전부.”

저는 그러했으니까.

가족을 잃고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였다.

제갈용성에게도 제갈후현을 죽일 동기가 충분했다.

‘이전 생에 제갈후현은 약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그게 만약 제갈용성의 짓이라면?’

하지만 제갈용성에게는 약을 연구할 능력이 없었다.

그 약이 역천비록을 매개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더.

‘만약 그들 모두를 노린 또 다른 자, 예를 들어 배후에 귀천성이 있는 거라면?’

비영문과 연계시킨다면 오히려 이쪽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갈세가에서 역천비록을 연구하다 우연히 약을 발견했든, 거기에 귀천성이 끼어 있든.

귀천성이 끼었다면 지금보다 행동을 더 조심하면 될 일이다.

어찌 되었든 지난 생에서 제갈후현은 죽었었고, 진화는 이번에도 그걸 막을 생각이 없었다.

중요한 건, 역천비록이었으니까.

‘단, 이전처럼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만들진 못할 거다. 이번 기회에 제갈세가의 역천비록을 빼앗아 온다!’

진화의 눈빛이 반짝였다.

“구, 단승호를 주의 깊게 살펴봐. 특히, 제갈용성과의 접촉 이후 달라진 점이나, 따로 제갈용성을 만나지는 않는지.”

“알겠어.”

간단하게 대답한 남궁구가 사라졌다.

진화는 어딘지 모르게 신나 보이는 남궁구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매번 남의 뒤꽁무니를 쫓게 만든다며 불평하지만, 저 모습을 보면 은근히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 * *

그날 오후.

진화는 남궁교명과 함께 백소하를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실험체.”

진화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백소하와 남궁교명 둘 다 놀란 눈을 뜨고 서로와 진화를 번갈아 보았다.

“교명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 약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설명하시면 될 것을 왜 사람을 놀라게 합니까!”

백소하가 진화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얼떨결에 같이 온 남궁교명은 가까워 보이는 이들의 관계가 신기하기만 했다.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거래 관계.”

“의원과 환자 관계입니다!”

진화와 백소하의 말이 서로 달랐다.

진화가 백소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데서 고지식하시네요.”

“어찌 되었든 저는 의원으로서 남궁 공자의 몸 상태를 살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할 겁니다.”

백소하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진화는 그러면 그럴수록 백소하가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그냥 시원하게 인정하면 좋을 텐데.

“제 맥을 잡을 때는 그렇게 과감하시더니, 이제 와서 소심하게 구시네요.”

“윽!”

찔리는 것이 많은 백소하가 진화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교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둘의 관계가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듯했다.

아마도 자신과 진화의 관계 같은 것이리라.

남궁진화에게 약점 잡힌 관계.

“남궁교명입니다.”

“아, 저, 전 백소하입니다.”

“단천문 시신 조각이 상해서 입증이 어렵다면, 남궁교명도 그 약을 복용한 적이 있으니, 분명 몸에 다른 징후가 남았을 겁니다.”

“아……!”

멀쩡해 보이는 귀공자가 어쩌자고 그런 몹쓸 약을 먹었을까.

남궁교명을 보는 백소하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 약을 제 손으로 먹었던 남궁교명이 백소하의 시선을 피했다.

그 사이로 진화가 끼어들었다.

“남궁교명의 몸과 제 몸을 비교해 보면, 그 약과 귀천성…… 정확히는 역천비록의 연관성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여, 역천비록 말입니까?”

“이왕 하시는 김에, 의원으로서 교명의 몸을 치료해 주셔도 좋고요.”

귀천성이라는 말에, 남궁교명이 놀란 눈을 뜨고 진화를 보았다.

‘남궁도!’

그가 귀천성까지 손을 대었던 것이란 말인가!

대체 얼마나 큰 실수를 할 뻔한 것인지, 남궁교명은 새삼 남궁도에게 이가 갈렸다.

“역천비록이라니…….”

이름만으로도 긴장되는 듯 백소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은 호기심과 의욕으로 가득했다.

“하루라도 빨리 연관성을 알아내야 합니다. 의선님과 본가에 협조를 구해야겠습니다.”

제갈후현이 죽는다면 제갈세가도 흔들릴 것이다.

어쩌면 아들의 흉수를 찾기 위해서 협조할지도.

이번이야말로 역천비록을 가져올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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