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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70)화 (70/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남은 여죄는(5)

귀천성 역천대법의 정수가 담긴 비서.

역천비록.

역천마제와 팔현성이 무림의 절반을 포기하고서라도 대성하고자 했던 역천대법이 담긴 것치곤, 이름 이외에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다.

항간에는 역천대법을 통해 귀천성이 노린 것이 불로불사였다고 말할 정도로, 무림에는 하나의 전설이나 민간설화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화야말로 역천비록의 존재를 증명하는 산증인 아니겠는가.

남궁진화를 죽일 뻔한 비약의 문제와 진화를 제물의 운명에서 풀어 줄 역천비록이 연결되어 있는 이상, 진화는 그것을 꼭 가져야만 했다.

* * *

진화가 남궁세가 지부 책임자인 남궁조와 남궁진휘, 진혜 남매를 한자리에 모았다.

역천비록과 관련한 계획에 대한 허락과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역천비록?”

“흐음…….”

“설마, 그게 진짜 있었다고?”

“그게 뭔데?”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놀란 듯 되물었다.

남궁진혜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천비록은 존재조차도 극비에 묻힌 비서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만 널리 알려졌을 뿐, 실제 존재조차 의문이었던 것이었다.

“역천비록은 실재합니다. 제가 어찌 구해진 건지 잊으셨습니까?”

“아!”

남궁진휘는 금세 진화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알려지기로는 귀천성 소굴에 잡혀 있다 구해진 것이라 알려졌지만, 소가주인 남궁진휘는 진화가 역천대법의 제물로 쓰이기 직전 구출된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끔찍한 것이 진화를 죽일 뻔했다는 것 외에 역천비록과 연계해서 생각하지 못했을 뿐.

“귀천성에서 역천대법을 치르던, 하늘을 거스르는 비법을 적은 그들의 신서(信書). 할아버지께서 저를 구해 오시면서 역천비록은 다른 문파에서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후우. 대체…… 그때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는 것이냐?”

남궁진휘가 안쓰러운 듯 진화의 볼을 쓰다듬었다.

남궁조와 남궁진혜는 의문스러운 듯 그들을 보았지만, 끼어들진 않았다.

진화의 얼굴이 무척 결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약에 대해 알게 된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치료하면서 친해진 백 의원 덕분에 단천문 사람들의 남은 시신을 보았고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약은 수상하게 생각하긴 했으니까.

다만 미래를 알고 백 의원을 협박했다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남궁조와 남궁진휘, 진혜 남매를 잘 속여야 한다는 생각에 진화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다.

그것이 진화를 비장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같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사람의 혈과 맥을 없애고도 온전히 살아 있는 사람…… 저는 이제껏 그러한 사람을 한 명밖에 알지 못합니다. 바로 저, 역천대법의 유일한 생존자요. 의선문의 연구에는 그 역천비록이 필요할 것입니다.”

진화의 말에, 남궁조가 놀란 얼굴을 하고 진화를 보았다.

그리고 남궁진휘와 진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했던 진화의 그때 모습은, 남궁진휘와 진혜 남매에게도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돼!”

남궁진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남궁진휘의 의견도 같았다.

“만약 그게 진짜 있다 한들, 지금은 그게 어디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정의맹은 알고 있을 겁니다. 역천비록을 가진 자라면, 귀천성이 아니라도 약과 관련되었을 수 있습니다. 혹, 그것을 악용한 자가 없는지 살펴봐야 할뿐더러, 그게 아니라도 정의맹에서 그것을 회수하여 의선문의 연구에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 또한 역천비록과 약의 연관성이 증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시신의 일부만으로는 그것을 증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정의맹에서 받아들일 리도 없다.”

진화의 말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남궁진휘는 반대 이유를 찾았다.

“네 일이 알려질 것이다. 좋지 않은 시선들이 네게 쏠릴 것이고,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이들이 너를 노릴 것이다. 본가 어른들도 그것을 염려하여 너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았더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구나.”

남궁진휘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인 동시에, 진화도 동의하는 부문이었다.

실제로 이전 생에 진화가 역천대법의 제물이었음이 알려졌을 때, 귀천성도 귀천성이었지만, 귀천성에 원한을 가진 이들 중에도 진화를 노린 사람들이 있었다.

귀천성에 복수하기 위해 그들의 제물을 죽인다는 명목이었다.

진화 역시 피해자였지만, 그들은 거리낌 없이 진화에게 악의를 품었었다.

“이대로 남궁세가와 의선문이 비밀리에 연구하는 것이 낫다. 시일은 좀 걸리더라도, 의선께서 약의 독성을 알아내고 나서 공론화시켜도 된다.”

남궁진휘가 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고개를 저었다.

‘늦다! 제갈용성의 손이든 누구든, 제갈후현이 죽고 나면 이전처럼 흐지부지될 수도 있어. 그 전에 역천비록을 빼앗아야 한다!’

진화의 눈빛이 결연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원망 따윈, 더 이상 진화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의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가 살기 위해서도 역천비록이 필요했다.

“벌써 형님께서 그 약과 관련되어 두 번이나 죽을 뻔하셨습니다. 이대로 남궁세가와 의선문의 비밀로만 남겨 둔다면, 숨은 흉수가 계속 형님을 노릴 것입니다. 계속 그리 둘 수는 없습니다!”

“아……!”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가 탄성을 터뜨렸다.

남궁진휘가 눈망울이 일렁이며 평소보다 뜨겁게 진화를 보았다.

‘뭐, 뭐지?’

진화가 당황했다.

설득을 위해 꺼낸 말에, 남궁진휘는 물론 남궁조와 남궁진혜의 표정마저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 네가 이 형을 그토록…….”

“아, 하여튼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윽!”

남궁진혜가 격하게 껴안는 바람에, 진화의 당황한 얼굴이 숨겨졌다.

“순한 녀석이 어쩐 일로 대차게 나선다 했더니, 형을 위한 것이었더냐? 허허, 녀석!”

남궁조까지 진화에게 감동한 듯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객관적인 태도를 잊지 않았다.

“음, 소가주의 말도 일리가 있고, 진화의 말도 일리가 있네. 역천비록이 실존하고 누가 그것을 악용한 것이라면, 귀천성의 소행이든 아니든 큰 문제야. 정의맹 차원에서 나서야 할 일이지.”

“숙부님!”

“안 돼요! 오빠가 좀 위험하다고, 우리 진화를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순 없어요!”

“……고맙다, 동생아. 하지만 이번엔 진혜의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안 될 일입니다. 진화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남궁진휘의 말에 남궁조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치가 빠른 남궁조라면 진화가 역천대법과 관련되었음을 알아차렸을 법했다.

그러니 진화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도 알아차린 것이라.

결국 남궁조가 중재안을 꺼내 들었다.

“이 일은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가에 전서를 보내야겠구나.”

남궁진휘와 진화의 얼굴이 동시에 밝아졌다.

“약과 역천비록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시신의 일부로는 증명도 어렵고 자칫 진화만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남궁진휘는 본가 어른들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진화가 위험해질 것을 염려하여 경지마저 숨겼는데, 귀천성과 관련된 일에 진화를 내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진화 또한 웃는 모습이 어쩐지…….

“연관성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다!”

……불길하다 하였다.

“그 약이 처음 어디서 발견했는지 잊으셨습니까? 그 약을 먹고 멀쩡히 살아 있는 이가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아!”

남궁진휘는 그게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때, 약속이나 한 듯 남궁교명이 문을 열었다.

콰-앙!

……닫혔다.

“저건 곧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난 반대야.”

남궁진혜가 문을 닫고 씨익 웃었다.

진화는 물론 남궁조와 남궁진휘마저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남궁교명이 아니었을까.

결론적으로, 남궁진혜가 남궁교명의 목숨을 위협하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남궁조는 본가로 진화의 계획을 알렸다.

답신은 곧장 날아들었다.

선(先) 연관성 증명, 후(後) 공론화 압박.

반은 남궁진휘의 생각을, 반은 진화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론이었다.

‘압박이라니. 역시 어른들은 역천비록의 행방을 알고 계신 건가?’

남궁진휘는 잠시 시간을 번 것에 안도했지만, 진화는 곧 어렵지 않게 자신의 계획대로 되리라 확신했다.

이전 생에 의선은 약만 가지고도 그 연관성을 밝혀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생에도 의선은 역천대법에 대해 다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그걸 몸소 겪었으니까. 역천비록을 얻게 된다면…… 혼돈지체가 필요한 이유를 알아내, 그것부터 없앤다!’

귀천성이 아직 역천비록을 얻지 못했을 때.

광마제가 저를 쫓은 이유를 근원부터 없애 버릴 기회였다.

그 후엔!

진화의 눈동자에 새파란 번개가 내리쳤다.

* * *

제갈용성이 단승호를 만났다.

“형님.”

“그래. 일단 차나 마실까?”

제갈용성이 자리에 앉는 단승호를 살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빛에서 손끝 떨림까지 하나하나 알아보려는 듯 집요했다.

“다음이 편백림 평가라지?”

“예, 그렇습니다.”

“어려울 거다. 서로 빤히 아는 사이에 기습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제약이 많거든.”

제갈용성은 차를 따르며, 자상한 선배처럼 단승호의 근황을 묻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러면서 시선은 단승호에게 박혀 있었다.

단승호는 제갈용성과의 대화를 건성으로 이어 가며, 어딘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것보다 형님, 그것은 가져오셨습니까?”

단승호의 물음에 제갈용성이 놀란 듯 주변을 살폈다.

그러면서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려 애썼다.

“어련히 줄까, 어디서 말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그런데 어찌 이리 급한 것이냐?”

“아, 그런 것이 아니라…… 평가가 곧이라 저도 모르게 긴장했나 봅니다.”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단승호가 변명했지만,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충분히 그를 살핀 제갈용성은 입꼬리를 올리며 슬쩍, 빼돌려 놓은 약이 담긴 주머니를 내주었다.

“오!”

단승호가 화색을 띠며 얼른 약을 챙겨 품에 넣었다.

“곧 중요한 평가니, 간수 잘하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저희 단천문의 위상이 상하고 아버님께서 난처해지신 터라, 저라도 이번에 좋은 성적을 보일 필요가 있어서요.”

약을 챙기고서야 여유를 찾은 단승호가, 그제야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린 동생이 형에게 하소연하듯 문파의 일을 털어놓으니.

단승호는 온전히 제갈용성을 신뢰하는 듯했다.

제갈용성이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단승호를 위로했다.

“이런. 단천문주님께서 노고가 많으시구나. 가문에서도 그에 대해서는 깊게 감사하고 있단다.”

단천문은 약과 관련해서 정의맹에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뚜렷한 증거 없이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어쨌든 단천문의 위상이 상한 것은 사실이라.

그 와중에도 단천문은 비밀을 잘 지켜 내고, 제갈과의 신뢰는 오히려 돈독해졌다 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그보다, 차향은 어떠하냐?”

“예? 아, 좋습니다.”

“이번에 새로 구한 것이란다. 이전과 차이를 모르겠느냐?”

“글쎄요. 제가 차에는 문외한이라, 하하. 전 그냥 이전의 것이나 지금 것이나, 다 똑같은 차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래? 그렇지. 차는 차일 뿐이지. 송구할 것까지야. 하지만 여유를 찾아야 할 때 이만한 것도 없다네. 가는 길에 이것도 좀 챙겨 주겠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역시, 소제에게 이런 것까지 챙겨 주시는 건, 형님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단승호가 너스레를 떨며 웃자, 제갈용성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나누고, 단승호는 주머니 하나를 더 받아서 자리를 떠났다.

단승호가 떠난 후, 제갈용성의 얼굴에 짙게 머물던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

“이렇게 약 향이 나는데, 그걸 모른다고?”

은은하지만 분명 약을 아는 사람은 바로 눈치챌 정도로 향이 났다.

약을 탄 것을 눈치챈다면, 미리 선물로 하나 차에 탔다고 할 작정이었다.

단승호가 입에도 안 대던 독주를 마시고, 평소 좋아하던 요리에도 영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시험 삼아 차에 약을 타 본 것이었다.

그런데 변명을 준비한 것이 무색하게, 단승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미각에 이상이 있다라……. 새로운 차라면, 우리 형님도 좋아하시겠지. 승호, 부디 이 우형을 위해 열심히 마시고 결과를 알려 주게. 후후후!”

단승호와 있던 때와 달리, 홀로 웃는 제갈용성의 미소는 어딘가 많이 비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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