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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71)화 (71/425)

남궁마제

움직일 진(進) 불 화(火) : 시도하는 자(1)

편백림 시험은 이웃한 조끼리 기습과 방어로 나뉘어 대결을 펼치는 모의 실전이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들의 직접 대결이라는 점에서, 두 조의 대결이 있은 날이면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로 숙청관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드디어 갑 조의 차례가 되었다.

편백림 시험이 시작되는 날.

갑 조 백의생들이 일찍부터 숲에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그 속에서 진화는 홀로 덤덤했다.

성적이야, 무학제에 나갈 상위 삼십 위를 유지할 정도면 되었다.

오히려 제갈후현과 용성의 뒤에 혹시 귀천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의 이목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초절정 언저리로 소문이 났으니, 그것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는 듯 평범하게.’

하지만 아무리 진화가 ‘평범하게’를 주문처럼 외운다고 한들, 그의 주변에는 도무지 평범한 것이라곤 없었다.

“……겨우 이틀 밤 머물 것인데, 그 짐은 다 무엇입니까?”

“아, 솥이랑 국자, 향신료와 먹을 것들일세.”

그걸 물은 것이 아니었다.

진화의 눈에도 커다란 솥단지와 식당에서나 쓸 법한 조리도구, 보자기 밖으로 삐져나온 대파 한 다발이 보였다.

다만…….

“이걸 다 챙겨 가겠다고? 승려 주제에 고기까지? 제정신인가?”

“……!”

진화가 제 속엣말을 뱉은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는지, 남궁교명이 현오에게 한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에이, 남궁 시주가 뭘 모르네. 우리가 다 먹으려면 이것도 한참 부족하네.”

“우리가 야유회를 가는 줄 알아?”

남궁교명은 현오의 반박이 더 어이가 없는 듯했다.

“우아, 땡중, 을 조 놈들이 밥 냄새 맡고 찾아오겠다!”

“하하하, 그럴지도. 하지만 아껴 먹어야 겨우 네 끼 정도 분량이니, 빼앗겨선 절대 안 되네.”

“그런가? 푸지게 먹고 첫날 끝내 버리면 딱 되겠네! 하하하!”

남궁구와 현오가 쿵짝을 맞추다 마주 웃었다.

그 곁으로, 어느새 팽수, 팽신 형제가 와서는 이리저리 먹을 것을 살피고 있었다.

“하아, 제대로 된 놈이 없군.”

“…….”

이번에도 남궁교명이 진화의 속엣말을 그대로 뱉었다.

그건 그것대로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갑 조가 준비를 하는 동안, 을 조 또한 준비를 마쳤다.

다만 진화가 있는 갑 조와 달리 을 조는 조금 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승호, 그건 뭐야?”

“응? 아, 차, 찻물. 목이 타서…….”

황보정이 다가오자, 단승호가 수통에 뭔가를 마시다가 급히 닫았다.

“뭐야, 긴장하는 거야?”

“아, 뭐, 그렇지. 이제 다 마셨어!”

“긴장 풀어. 괴물도 아니고, 그래 봐야 한 끝 차이일 뿐이니. 준비를 잘하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을 거야.”

“으, 응, 그래.”

황보정이 당황해서 버벅거리는 단승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평소와 다른 단승호의 모습을 긴장감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 조와 을 조는 명백하게 실력의 우열로 나뉜 편성이라.

편백림 평가에서 직접적으로 갑 조와 대적하게 된 후로, 을 조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무공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데에 자신감을 보였고, 누군가는 이번에야말로 갑 조를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 * *

저자의 장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신입 관도생들의 평가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다른 연차의 관도생들은 이미 우열이 어느 정도 가려져서 기대감이 덜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입 관도생 때의 결과가 졸업 무학제까지 이어진다는 정의무학관의 전통 아닌 전통이, 기대감을 높이는 데에 한몫했다.

과연 누가 이번 기수 최고의 후기지수가 될 것인가.

이번에 편백림으로 들어갈 조가 이번 백의생 갑 조와 을 조라는 것을 알고, 그 결과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곧 정의무학제가 시작되는 기간이라.

양청현 사람들은 큰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떠들썩한 저자와 달리, 제갈세가는 세상과 동떨어진 듯 고요했다.

제갈세가는 제갈소현의 죽음을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여기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다.

하지만 억지로 만든 침묵이야말로 기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제갈세가에서 평소와 달리 행동하는 사람은, 제갈가주가 유일했다.

제갈가주가 뜬금없이 연학원장 제갈무진을 찾은 것도, 평소와 다른 일이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군. 자네는 의무 휴무 때가 아니면 연학원에서 나오질 않으니.”

“하하, 저야 뭐, 그렇지요.”

제갈가주의 타박 아닌 타박을 연학원장이 웃음으로 넘겼다.

“세가에서 제일 바쁘신 분은 가주님이 아니십니까.”

“흠, 아무래도 내가 바깥일로 바쁜 탓에 집안일을 너무 소홀히 했는지도 모르겠군.”

“예?”

“소현이 일은 듣지 못했는가?”

“아! 죄송합니다. 연구에 빠져 어린 조카의 장례도 몰랐습니다. 나오자마자 인사부터 드렸어야 했는데……. 송구합니다. 제가 워낙에 정신이 빠져서…….”

연학원장의 낯빛이 급격히 굳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연구 외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제갈무진.

자식을 잃은 사촌 형을 위로하는 것조차 잊은 건, 딱 제갈무진다운 모습이었다.

“아니야. 연학원에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으니.”

“상심이 크시지요? 송구합니다. 제가 위로를 할 줄 몰라서…….”

“아닐세, 이미 지난 이야기인 것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연학원장을 보며, 제갈가주가 여상한 듯 넘겼다.

“그보다 자네에게 물을 것도, 일러둘 것도 있어서 불렀네.”

“무엇입니까?”

“그것, 그것의 연구는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아! 송구합니다. 워낙 암호처럼 된 터라 아직 반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학사들은 여전히 단 셋뿐인가?”

“예. 그렇습니다. 가주님의 명대로 안에서도 극비리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셋 이외에는 그것을 만지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연구가 늦어지는 데에는, 인력이 부족한 탓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요?”

“아니, 아닐세. 그저 확인차 물은 것이네.”

연학원장이 대답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제갈가주가, 연학원장의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잠시, 고심하는 듯하던 제갈가주가 심각한 얼굴로 연학원장에게 말했다.

“밖에 이상한 것이 돌고 있네. 후현이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이상한 것이요? 후현이라니……. 그게 무슨……?”

제갈가주의 말에도, 연학원장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표정이었다.

“자네 외에 나머지 두 명. 연학원장으로서 두 사람이 안에서 뭘 연구하는지, 따로 뭘 빼돌리지는 않는지 살펴 주게.”

“혹, 이상하다는 것이 역천비록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남은 두 사람이 누구인지, 가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연학원장이 크게 놀라며 물었다.

그는 이러한 의심을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혹시 몰라 확인하려는 것이야. 그저, 살펴만 주시게.”

“아, 알겠습니다. 명이시라면…….”

“연학원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뒤에 보고하면 되네.”

“명을 받듭니다.”

연학원장은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제갈가주의 명에는 고분고분 고개를 숙였다.

처소로 돌아온 뒤.

연학원장이 하인을 불렀다.

“계획을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제갈가주가 날 의심하는 듯하니.”

“주인님까지도요?”

“모르지. 완전히 의심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떠본 것인지. 어쩌면 제갈용성을 부추기고, 역천비록을 가지고 몸을 빼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어.”

“대비하고 있겠습니다.”

대비라는 건,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법이다.

최악의 상황을 잘 파악할수록, 대비도 완벽해지는 것이라.

연학원장이 생각하는 최악은, 연구를 마치지 못하고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연학원에 들어가는 날, 제갈용성에게 여분의 약을 쥐여 주어라. 무기가 손에 넉넉하면, 시험해 보지 못해서 안달이 날 거다.”

“예.”

“남궁진화에 대해 알아 오라는 것은 어찌 되었느냐?”

“송구합니다. 양주까지 거리가 있다 보니 다소 시일이 걸리는 듯합니다.”

“서둘러라. 평소보다 일찍 연학원에 들어야 하니.”

“존명.”

연학원장은 조금 일을 서두르기로 하였다.

* * *

갑 조와 을 조가 평가지가 될 편백림으로 향했다.

각자 목표 지점을 찾는 것 또한 평가의 일부분이라.

처음 가는 장소, 그것도 산속에서 방향을 잡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개는 사람이 내놓은 길로만 다니지만, 깊은 산은 그것조차 애매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해를 보며 방향을 찾는다.

봄, 가을에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지고, 겨울에는 동남쪽에서 떠서 남서쪽으로 졌다.

즉, 늦가을의 산은 해의 방향마저도 애매했다.

해가 아니라면, 밤에 별이나 달을 보고 구분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늦은 밤, 북극성은 언제나 북쪽에 떴다.

낮에 뜬 하얀 달 중에서도 초승달은 정 유시(酉時)에 서쪽, 보름달은 동쪽에 있었다.

하지만 진화 일행의 목표는 해가 지기 전에 목표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숲에서도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나무껍질이 이쪽이 두꺼운 것을 보면…….”

“음? 킁킁! 오, 저쪽에서 편백향이 짙군. 편백찜에 찌면 야채나 버섯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지. 저쪽이네!”

가끔은 그런 방법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끼가 핀 이쪽이 북…….”

“어라? 탁목조 소리로군. 이 계절에는 탁목조가 편백숲에 집을 짓지. 이쪽일세!”

인간의 감각이 자연의 질서를 능가하는 경우 말이다.

“……편백 냄새라니.”

“탁목조 소리가 들린다고?”

남궁교명과 팽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현오와 남궁구를 보았다.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감에도 겨우 들린 새소리를, 그냥 들었다고? 게다가 어떤 새인지 구분해서?’

진화는 이제껏 남궁구가 들키지 않고 정보를 알아 온 비결이, 잠입과 첩보에 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귀가 밝아서라는 걸 알았다.

‘숲에서 나무 냄새를 구분하는 코나, 새소리를 구분하는 귀라니. 대체 정체가 뭐야?’

진화는 현오와 남궁구가 얼마나 이상한 이들인지 새삼 깨달았다.

갑 조 일행은 현오와 남궁구의 활약으로, 점점 혼란스러운 기분과는 반대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 흰 깃발이다!”

평가지를 알리는 흰 깃발에 일행 모두 기뻐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는 건, 여러모로 평가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신호였으니.

그러나 곧 펼쳐진 광경에, 일행 사이에선 환호가 아닌 신음성이 터졌다.

“아……니, 왜!”

“……개판이군.”

전 조들의 대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망루며 간이 막사가 박살이 나 있었다.

그저 이곳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흔적만 있는 폐허.

그때.

망연자실한 일행 사이로, 진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짐 풀고 준비합시다. 팽가 형제가 막사를 세울 기둥이 될 큰 나무 좀 해 오시고, 다른 사람은 마른 장작이랑 낙엽, 물 좀 구해 오죠.”

진화가 능숙하게 일행에게 할 일을 배분했다.

그리고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를 모아서 손끝으로 불꽃을 터뜨렸다.

화아아아--!

불씨와 불쏘시개가 없다면 꽤 불편했을 불 피우기가 간단하게 끝이 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짐을 한쪽에 모으고, 제 키보다 큰 간이 막사 벽을 들어 움직여 뚝딱 바람막이를 만들었다.

“자, 여기!”

갑 조 일행은 그저 멍하니 진화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진화가 현오의 손에 큰 냄비를 쥐여 줄 때까지 말이다.

“……대체 남궁은 애를 어떻게 키운 겐가?”

현오가 냄비를 들고 물을 뜨러 가며 속삭이듯 물었다.

하지만 남궁교명이나 남궁구가 알 리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도련님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이냐.”

“시키는 대로 하자, 형.”

“기둥 할 나무라고 했던가.”

어쩌면 의문을 가지지 않은 팽수, 팽신 형제의 결정이 현명했다.

귀가 좋은 졸개 일호, 성격 나쁘게 생긴 졸개 이호, 고기 좋아하는 스님과 매일 바위를 드는 형제.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이상한 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꽃 같은 저 녀석이 아닐까.

일행은 수군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진화가 시킨 일을 수행했다.

뜻밖에 사람들의 활약으로, 갑 조 일행은 순조롭게 ‘기습을 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 밤 곧바로, 갑 조의 기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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