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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72)화 (72/425)

남궁마제

움직일 진(進) 불 화(火) : 시도하는 자(2)

갑 조와 달리, 을 조 관도생들의 편백림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사실 숭산 자락의 소석산 깊은 골은 이쪽 마을 사람들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빽빽하게 자란 나무와 걸음걸음 막아서는 풀숲, 발이 푹푹 꺼지는 낙엽길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앗!”

턱.

“조심!”

황보정이 미끄러지는 단승호의 팔을 잡고 끌어 올렸다.

“아, 고, 고마워.”

“정신을 어디 빼놓고 다니는 거야? 집중해.”

“알았어.”

자신이 푹 빠질 법했던 자리를 보며 단승호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에, 황보정이 얼굴을 찌푸렸다.

“저기 표식 아닌가?”

“오! 맞네! 평가지 깃발이군!”

제갈상이 가장 먼저 목적지를 알리는 붉은색 깃발을 발견했고, 관서겸이 기쁜 얼굴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다 왔나 보네!”

“……절벽인데?”

“생각보다 빨리 왔군.”

“……글쎄, 절벽 너머로 어떻게 빨리 갈 생각이지?”

환한 얼굴로 좋아하는 관서겸을 보며, 제갈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과 반가운 붉은 깃발 사이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으니.

대책 없는 긍정주의.

남궁 쪽 사람들은 도무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제갈상은 절벽 끝이 서로 연결된 것을 발견했다.

을 조는 안전한 길을 찾아 헤매느니, 눈에 보이는 대로 절벽을 따라 위험한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해가 거의 다 진 늦은 저녁에서야 평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가지로 오는 동안, 황보정은 단승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침부터 과하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평가지까지 오는 동안 유독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봐, 승호. 어디 아파?”

짐을 풀며 황보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응? 아, 아니야! 숨만 좀 찼지, 끄떡없어!”

단승호가 손까지 저으며 부인했다.

평소에도 약을 먹고 나면 열이 올라서 진정이 필요했었다.

‘평가 직전에 약을 괜히 먹었나? 아니야! 이러다가 확 좋아지잖아? 평가에도 도움이 될 거야.’

실제로 숨을 좀 고르고 나자, 몸 가득 기운이 솟았다.

“하하!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진짜 괜찮아!”

단승호가 웃으면서 등을 떠밀자, 황보정도 밀려나듯 물러섰다.

단승호는 정말 괜찮아진 듯 평소처럼 움직였다.

표정도 밝아진 듯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진짜 아픈 거 아닌가? 근데 무슨 땀을 저렇게 흘려?’

황보정은 단승호가 며칠 전부터 나빴다 괜찮았다가를 반복하던 것을 떠올리며 그를 주시했다.

* * *

그날 밤.

을 조가 깃발이 매달린 나무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늦게 도착한 탓에 이제 겨우 간이 막사에 짐을 푼 터라, 주먹밥과 말린 육포로 허기만 달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가 될 줄이야.

[전음]-하하하, 내가 육포 냄새가 난다고 했지?

‘…….’

현오의 전음에, 갑 조 누구 하나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을 조의 깃발을 발견하자마자, 팽신이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졌다.

퍼-억!

“헉!”

조용히 나무줄기에 감겨야 할 갈고리가, 나무 기둥을 쪼갤 듯이 박혔다.

그 덕에 을 조가 기습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기습이다!”

“어떻게 벌써!”

관서겸이 대번에 창을 날려 밧줄을 끊었다.

“그래서 내가 팽가 녀석들은 아니라고 했잖아! 아오, 하여튼 힘만 무식한 놈들!”

저 밧줄을 타고 나무 위까지 단숨에 달릴 생각이었는데…….

허무하게 갈고리만 잃어버렸다.

결국 갑 조는 처음 진화의 말대로 풀숲에서 뛰어나가 을 조와 부딪히기로 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냥 가자고!”

“신이가 한 짓이다.”

“형, 치사하다.”

“아미타불들 하신가!”

남궁구를 시작으로, 남궁교명, 팽수, 팽신, 현오가 신나게 뛰어나갔다.

애초에 진화는 정면 승부를 주장했다.

도무지 남궁구를 제외한 갑 조의 조원들로는 은밀 기동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앙!

현오의 금강대력장이 바닥을 때리자, 마치 뱀이 기어 오듯 땅이 갈라져서 을 조의 불이 있는 곳을 향했다.

“불! 불을 지켜!”

제갈상이 현오의 기운을 끊어 내려 검을 휘둘렀다.

챙-!

제갈상의 검을 남궁교명이 가로막고, 관서겸이 현오의 기운을 찍어 냈다.

거기에 팽가 쌍둥이의 앞은 그나마 힘으로 붙을 수 있는 황보정과 단승호가 막아섰다.

그리고 갑 조와 을 조가 본격적으로 얽혀들었다.

“난장판이군, 매번.”

진화가 투덜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막아--!”

남궁구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을 보며 제갈상의 다급하게 외쳤다.

남궁구를 향해 을 조의 당위가 급하게 표창을 던졌다.

파-파파파팟-!

남궁구의 발 앞에 표창이 박히며, 남궁구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에 을 조, 화산파 구성일이 남궁구에게 검을 휘둘렀다. 남궁구를 막는다기보다, 깃발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제갈상과 관서겸이 허겁지겁 갑 조와 나무 사이로 끼어들었다.

‘생각보다 잘 막네…….’

진화가 덤덤한 눈으로 제갈상과 관서겸을 보았다.

잠깐 휴식처럼 흐르는 대치 상황.

제갈상이 한숨 돌리며 물었다.

“곧바로 온 건가?”

“약한 놈들을 상대로 시간을 주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제갈상의 말에, 남궁교명이 차갑게 대꾸했다.

한 끗 차이로 뒤처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을 조 백의생들을 자존심을 건드는 말이라, 제갈상이 분하다는 듯 남궁교명을 노려보았다.

맞는 말이라 더 화가 났다.

“어떻게 이렇게 금방 왔습니까?”

관서겸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진화에게 물었다.

“……냄새로.”

차라리 제갈상의 질문에 대답할걸.

“예?”

어리둥절한 관서겸과 놀림을 받은 듯 노려보는 제갈상의 눈빛을 받으며, 진화가 힐끗 현오를 보았다.

사실 갑 조도 이곳을 찾아오는 데에 고비가 있었다.

날이 그들의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져 길을 헤맬 뻔한 것이다.

그때, 현오가 을 조의 육포 냄새를 맡고 이곳을 찾았으니.

말을 해 줘도 못 믿을 말이라, 진화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숲은 해가 지면 특히 더 어두워진다.

그래서 보통은 하루 동안 자신들의 평가지를 찾고 작전을 세운 뒤, 기습조는 다음 날 날이 밝은 후에 상대 평가지를 찾아갔다.

운 좋게 일찍 상대 평가지를 발견하면 숨었다가 기습을 펼치든가, 그 전에 들켜서 전투를 치르든가 해서 승패를 결정지었다.

기습조가 방어조의 깃발을 빼앗든가, 방어조가 이틀 밤이 지나도록 깃발을 지키면 승리였다.

하지만 갑 조가 쳐들어온 것은 첫째 날 밤이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제갈상이 당황스러운 듯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듣기로는, 전투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격해지면 은밀하게 숨어 있던 각우 무사부가 나타나서 판정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각우 무사부는 나타날 기미도 없었다.

‘설마 진짜 이틀 밤이 샐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건가?’

제갈상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자신들의 전력이 열세였다.

물론 그렇게까지 오래 싸우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방어조가 먼저 기습조의 깃발을 부러뜨리거나 빼앗으면 된다.

“깃발은?”

관서겸도 제갈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갑 조의 깃발을 찾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들에게 더 좋지 않았다.

“남궁진화.”

제갈상의 짧은 대답에, 관서겸이 진화를 보았다.

어두운 밤에도 혼자만 빛이 나는 듯한 진화의 얼굴 뒤로, 하얀 깃발이 보였다.

“이런, 낭패로군.”

기습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관서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상대는 천뢰제왕신공으로 초절정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도는, 백의생 수석.

이미 한번 진화와 맞붙어 본 경험이 있는 관서겸은 천뢰제왕신공이 아니라도 진화가 얼마나 노련하게 싸우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 보란 듯이 등 뒤의 깃발을 숨기지도 않은 진화가 앞으로 나섰다.

“빨리 결론을 내는 것이 피차 좋지 않겠습니까?”

“……젠장!”

제갈상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너한테만 좋은 거겠지!

을 조의 표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진화의 손에는 이미 푸른 기운이 맺혀 있었고, 을 조 모두 잔뜩 긴장한 채 다음 격돌을 대비했다.

씨-익.

진화가 환하게 웃는다 싶은 순간.

“피해!”

을 조가 흩어지는 동시에, 진화의 손에서 날아간 천뢰장이 나무를 때렸다.

쫘아아아악----!

천뢰장이 닿은 곳은 당위가 박아 놓은 표창이었다.

표창을 따라 커다란 나무 기둥의 결이 갈라지며, 나무의 반쪽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뿔싸! 깃발을 노린 거였나!’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모두가 깃발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때.

펑! 펑펑!

“승호!”

생각지도 못한 굉음과 황보정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깃발을 향하던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 * *

기습이 시작되고부터, 황보정과 단승호는 팽수, 팽신 형제를 막고 있었다.

팽가 형제의 힘이라면 깃발이 있는 나무를 쓰러뜨리고도 남음이라.

그나마 팽가 형제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황보정과 단승호가 그들을 전담하는 것이 을 조의 계획이었다.

황보정과 단승호는 팽가 형제가 아예 나무 근처로 오지 못하도록 멀찌감치에서 그들과 부딪혔다.

채-앵!

“쳇! 괴물 같은 놈!”

검과 주먹이 부딪혀서 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금속성에, 황보정이 살짝 질린 눈으로 팽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팽가 못지않게 황보세가 또한 타고난 완력과 거기서 나오는 패도적인 검세가 일품이라, 황보정이 팽수를 막아 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옆에서는 단승호가 팽신을 향해 날카로운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퍼-억! 퍽!

휘이익-!

지금의 단천문을 있게 한 백호단야검(白虎斷爺劍)은, 검명 그대로 호랑이를 사냥하듯 팽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뭐야? 승호가 저렇게…….’

강하고 빨랐다, 황보정이 아는 단승호보다 훨씬.

그리고 훨씬 불안정해 보였다.

“허억. 헉…….”

단승호가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이겨야 해. 이번엔 이겨야 해!’

단승호의 머릿속에 그것밖에 없었다.

단천문 제자들이 죽은 일과 비영문이 얽히면서, 정의맹에서 단천문이 의심을 받는 상황.

그럼에도 제갈세가와 얽혀서 발뺌하지도 못하는 처지.

죽어 버린 사형제들과 아직 시체도 받아 보지 못한 그 가족들의 원망.

“단천문의 소가주로서, 반드시 정의맹에서 무시하지 못할 성과를 얻어야 한다! 너를 믿는다!” 라는 아버지의 말이 가슴의 돌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겨야 해, 반드시!’

조금만 미끄러지면 단천문은 비영문과 얽힌 일을 뒤집어쓰고 정의맹에서 밀려날 수 있었다.

제갈세가는 단천문을 도와주긴커녕 제일 먼저 끊어 낼 것이다.

‘결과를 보여야 해! 단천문의 소가주로서!’

단승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단승호는 그저 눈앞에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가슴에 내려앉은 모든 무게를 베어 내려는 듯, 맹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잠깐의 대치 상황.

진화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며, 황보정이 단승호를 힐끗거렸다.

“허억. 허억…….”

이상할 정도로 헐떡이는 숨.

단승호는 탈진한 사람처럼 창백하게 변한 얼굴에 머리칼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봐, 승호.”

불안감을 느낀 황보정이 속삭이듯 단승호를 불렀다.

“으으…….”

옆에 새어 나오는 신음에, 황보정이 놀라서 단승호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승호!”

황보정이 단승호를 부르자마자, 그들을 수상쩍게 여기던 팽가 형제가 먼저 달려들었다.

“아니, 잠, 잠깐-!”

퍼---억!

검신을 들어 막았지만, 팽신의 힘에 황보정이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그의 뒤로 팽수가 뛰어오르고, 단승호가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앗-!”

생각보다 강력한 내력이 실린 검기에 팽수가 놀라서 급히 양팔에 내공을 둘렀다.

퍼-엉!

팽수의 몸이 뒤로 떠오르듯 밀려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앗!”

퍼-엉! 펑!

“승호!”

황보정의 외침에 아랑곳없이, 단승호가 연달아 검기를 날려 댔다.

* * *

“뭐, 뭐야!”

갑 조는 물론 을 조까지 놀라서 단승호를 보았다.

서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는 공격은 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

‘치명적이다’의 기준이 애매할 수 있지만, 서로 실력이 비슷한 이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적정선이 잘 지켜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방금 단승호의 공격은 그런 규칙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었다.

“승호! 승호가 이상하다!”

황보정이 다급하게 외쳤다.

“크아아아-! 이긴다!”

퍼어어엉!

막무가내일 정도로 몰아치는 단승호의 공격에, 팽가 형제가 얼굴을 굳히고 내력을 끌어 올려 대항했다.

“내가! 내가-!”

단승호가 핏줄이 터진 듯 붉어진 눈으로 온몸의 내력을 뽑아 내듯 검기를 날려 댔다.

그제야 모두 단승호의 상태가 일반적인 흥분의 범주를 넘어섰음을 깨달았다.

단천문의 백호단야검은 날렵한 호랑이를 사냥하듯 빠르고 치명적인 검세가 특징이었지만, 단승호가 마구잡이로 날려 대는 검기는 사나운 기세에 비해 위험하진 않았다.

위험해 보이는 건, 오히려 단승호였다.

“도련님, 저거!”

남궁구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불렀다.

이성을 잃은 듯 극도의 흥분을 보이는 단승호의 모습에, 무언가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건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단천문 제자들은 과도한 상승 기운을 몸이 버티지 못했다고 했었지. 지금 단승호도 비정상적일 정도의 열기를 몸이 주체하지 못하고 있어. 만약 그들이 죽기 전에 단승호와 같았다면……?’

진화의 눈에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동시에 진화의 손에 있던 천뢰기가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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