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움직일 진(進) 불 화(火) : 시도하는 자(3)
갑 조와 을 조, 모두 평가를 멈추고 단승호를 보았다.
하지만 섣불리 단승호에게 다가서거나, 그를 멈추지 못했다.
“으아아아-!”
퍼-엉! 펑! 펑!
이제는 사방에 막무가내로 날려 대는 검기.
“어쩌지?”
“생각 좀 해 봐! 저러다 큰일 나겠다!”
“밧줄! 밧줄이라도……!”
“소용없어. 끊어 낼 거야.”
황보정이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모두 당장은 속수무책인 듯했다.
결국 제갈상이 ‘단승호를 다치게 하더라도, 모두 동시에 달려들어 그를 멈추자.’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퍼-엉!
“크어억!”
뒤에서 날아든 공격이 단승호를 때리고, 단승호의 몸이 바람맞은 낙엽처럼 튕겨 나갔다.
“뭐, 뭐야?”
그대로 땅바닥에 꼬꾸라진 단승호의 모습에, 모두가 놀라서 공격자를 찾았다.
하지만 그 전에.
“으아아아악!”
벌떡 일어선 단승호가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몇 걸음도 걷지 못해, 다시 바닥에 꺼꾸러졌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 으으……. 으으으으……!”
단승호가 바닥에서 파드득- 몸을 떨어 댔다.
꿈틀거리는 그의 몸 주변으로, 푸른 기운이 번뜩거렸다.
뇌전(雷電).
그리고 기습적이긴 하지만 단 두 번 만에 흥분한 단승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
모두의 시선이 진화를 향했다.
덤덤하게 걸어 나온 진화가 단승호에게 다가갔다.
“와, 아직도 기절을 안 했어?”
“……!”
그게 때린 놈이 할 말이냐!
심지어 신기한 걸 구경하는 듯한 얼굴이라, 반발하려던 황보정을 포함해서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남궁은…….”
제갈상의 중얼거림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눈을 피했다.
그리고 진화는 아무렇지 않게 단승호의 기혈을 집었다.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단승호를 향해 황보정이 급히 달려왔다.
“승호!”
단승호를 안아 드는 모습이, 누가 죽기라도 한 듯 다급해 보였다.
하지만 진화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일단 기절을 시켰으니, 의선문으로 데려가는 것이 좋겠는데요.”
진화가 갑 조와 을 조가 있는 쪽, 정확히는 그 뒤를 보며 말했다.
모두가 놀라 돌아보자, 그곳엔 각우가 당황한 얼굴로 진화를 보고 있었다.
각우는 단승호의 이상을 알아차리자마자 나타났다.
다만 진화의 손이 더 빨랐을 뿐이었다.
“생명에는 지장 없나?”
각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을 조 백의생들이 급조한 들것에 단승호를 실었다.
당연히 평가는 중단되었고, 그들은 최대한 빨리 단승호를 의선문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진짜 괜찮은 건가?”
각우가 여전히 불안한 듯 물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뇌기로 기운을 다스린 덕에, 맥과 호흡이 안정되었습니다.”
“흐음.”
맥과 호흡이 안정된 것은 각우도 보아서 알았다.
하지만 그 뇌기로 다스렸다는 것이…… 단승호의 입가엔 거품을 문 흔적까지 있었다.
‘설마 그 뇌기로 때리고 지진 것이 기운을 다스린 것일 줄이야.’
말간 얼굴로 답하는 진화를 보다가, 각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을 조는 나와 함께 의선문으로 가고, 갑 조는 무학관으로 복귀해라.”
“예.”
각우의 말과 함께 갑 조와 을 조가 헤어졌다.
각우가 가고,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고 있던 갑 조 관도생들도 그제야 사태가 어느 정도 파악되는 눈치였다.
“단천문에 변고가 계속되는군. 극락왕생하소서, 아미타불.”
“아직 안 죽었다고!”
“너야말로, ‘아직’은 무슨 뜻인데?”
“관세음보살, 가련한 중생을 돌보소서.”
현오가 단승호의 안위를 기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진화는…….
‘각우 무사부님과 ……나한이 아니었단 말이지?’
각우가 내려온 반대쪽에서 느껴지던 기척을 향해 눈을 빛냈다.
* * *
평가 중 단승호가 쓰러진 일은, 갑자기 돌아온 갑 조와 을 조에 의해 금방 소문이 퍼졌다.
보통은 이 박 삼 일이 걸리는 시험을 다음 날 아침에 돌아온 것도 이상한 일인데,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단승호의 부재를 말하고 있었으니.
단승호를 주시하고 있던 제갈용성의 귀에 소문이 들어간 것은 다음 날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제갈용성은 그길로 단천문에 사람을 보냈다.
‘정말로 쓰러졌다고? 하하하, 정말로 쓰러졌다니!’
제갈용성이 희열로 가득한 눈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눈이 약이 담긴 주머니를 향해 번들거렸다.
* * *
기감이란, 오감의 예민함을 높인다거나, 각자가 가진 고유의 기운이 다른 기운에 반발하는 것을 말함이었다.
내공은 결국 생명이 가진 고유의 근원이라, 같은 심법을 익힌다고 한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의 그것은 조금 달랐다.
진화가 다루는 기운에는 내공과는 구별되는 선천적인 뇌기가 존재했으니.
툭. 툭.
진화가 손가락을 두드리자, 진화의 손끝에서 푸른 뇌전이 번쩍였다.
그리고 빠르게, 땅과 나무의 기운을 따라 퍼져 나갔다.
‘만물의 조화는 하늘의 순리니.’
진화의 뇌기는 음양의 조화를 가진 모든 만물에 퍼져 나갔고, 진화의 기감은 그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경기를 넘어서기 이전부터, 남궁세가의 청림에서 꾸준히 수련한 결과였다.
‘대들보와 지붕의 사이. 남궁의 어린 송골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실력자라…….’
진화가 찾고자 한다면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기감을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각우를 따라온 나한인 줄 알았던 인기척은, 갑 조를 쫓아 숙청관까지 따라와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완전히 잠이 든 후에야 자리를 떴다.
‘잠이 든 호흡까지 확인하고, 어디를 가는 걸까?’
진화가 눈을 떴다.
잠이 든 자와 아닌 자는 호흡이 다르기에, 일부러 옆에 있는 남궁구의 호흡까지 흉내 내며 기다리던 차였다.
진화는 몰래 준비해 놓은 검은색 외투와 복면을 챙겨, 인기척이 사라진 곳을 쫓았다.
타다다다다닷-!
진화와 같이 검은 무복에 검은 복면을 한 인영이 지붕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진화는 아주 멀리에서 그의 기척을 쫓다가, 잠시 후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진화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시선은 세월에 삭은 기와에 고정되었다.
다 깨진 기와에 다섯 개의 점이 희미하게 찍힌 것뿐이지만, 진화는 그 흔적을 알아보았다.
‘귀천성의 흑조보(黑鳥步)!’
귀천성의 추격대라면, 신물이 나도록 쫓아도 보고, 쫓겨도 보았던 진화였다.
진화가 다섯 발가락 끝만 간신히 남기는 흑조보법 특유의 흔적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이건, 교성흑오대(攪猩黑烏隊)의 독문 보법이었다.
‘갑자기 교성흑오대라니……!’
남궁세가 결사대를 죽였던 광마제의 흑면귀갑대처럼, 귀천성 팔현마제는 각자가 부리는 독립 무력 부대가 있었다.
그중 교성흑오대는 혼현마제가 부리는 방첩, 추적, 교란 전문의 부대로, 절망의 까마귀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이자들이 벌써 양청현에 있었다고?’
진화가 급히 다른 기와로 흔적이 남은 기와를 덮어서 보호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독문 보법의 흔적은 귀천성도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라.
상대가 방심한 탓에 흔적을 확보했으니 운이 좋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성흑오대라니…… 교성흑오대가 왜 무학관 관도생을 감시한 거지?’
이전 생에서, 교성흑오대의 집요한 추적에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도망치던 때가 떠올랐다.
뒤에서 들리던 동료들의 비명이 귓가에 선연했다.
허겁지겁 숲을 헤치던 때처럼, 진화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찬찬히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없었다.
진화는 흑의인의 기척이 어떤 장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급히 따라붙었다.
흑의인이 들어간 장원은, 진화가 예상했던 대로 제갈세가였다.
‘참 공교롭기도 하지.’
기와를 덮어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갈에, 교성흑오대라니,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상대였다.
‘침착하자. 상대가 교성흑오대라는 것만 빼면, 귀천성이 제갈세가와 연관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일이다.’
진화가 냉정함을 찾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흑의인의 기운이 멈춘 곳은, 제갈은 제갈이었으나 진화의 예상과는 다른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제갈세가 직계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장원.
심지어 오가는 하인도 별로 없는 외진, 장원이라 부르기도 소박한 별채였다.
잠시 기다리자, 안으로 들어갔던 흑의인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흑의와 복면을 벗고, 제갈세가 하인들과 같은 차림으로.
‘교성흑오대가 제갈세가의 외진 별채에서 하인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진화가 의아함을 느꼈다.
교성흑오대가 절망의 까마귀가 불린 건, 그들이 위장하고 있던 신분이 하나같이 깊은 신뢰를 받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정사 문파의 요직에 숨어 있다 등 뒤에서 칼을 들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한 지경이었다.
특히 전쟁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었던 종남파와 점창파의 반란은, 두 문파를 멸문으로 몰고 갔을 정도였다.
그렇게 치명적인 곳만 노리던 교성흑오대가 제갈세가 가주전도 아닌 별채의 하인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제갈세가에 역천비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런데 왜 하필 하인이지?’
진화가 조용히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여느 집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층 전체가 책으로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서책은 많지만, 남궁의 창서각 같은 곳이라기엔 이렇게 서투르게 관리할 리 없고. 그럼 전부 주인이 있는 서책인가?’
진화의 의문은 곧 풀렸다.
이 별채의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책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지럽게 문서들이 널려진 책상을 보며 진화가 우선 겉으로 보이는 문서들을 읽었다.
잡다한 진식과 진법에 관련된 내용과 기관, 예산 자료 그리고 어떤 연구원이 올린 보고와 같은 장계.
‘……연학원장, 제갈무진?’
연학원. 연학원…….
진화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제갈무진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다만 연학원에 대한 것이라면 기억이 났다.
‘태상가주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제갈세가의 총체로 만들었던 두뇌 집합원. 그러나 어느 순간, 정의맹 군사부 소속들이 그걸 대신했었지.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사라졌었다!’
이전 생에서 많은 것,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었다.
전쟁 중엔 그게 이상할 것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든 사라진 것엔 귀천성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진화의 눈에 장계 아래로 작은 쪽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진화가 눈빛을 빛내며 쪽지를 빼 들었다.
단(檀), 졸도(卒倒).
여기서 단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역시 단승호는 목표가 아니었다.
목표, 특별한 징후 없음. 숲에 숙련됨. 주동적이지 않음.
그리고 마지막.
뇌전 사용.
‘목표가…… 나라고?’
쿵!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진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시 보아도,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귀천성 놈들이 벌써 날 찾아?’
쪽지를 보는 진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쿵. 쿵…….
순식간 긴장감이 몰려왔다.
세간에 진화는 귀천성에 의해 죽을 뻔하다가 제왕검에게 구출된 양자 정도였다.
역천대법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남궁세가의 직계와 남궁조 그리고 그날, 제왕검의 손에 구출될 때 함께 있는 사람들뿐이라.
‘아니야. 아직 광마가 날 찾을 시기가 아니야. 그런데 대체 날 왜 관찰했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진화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쪽지를 쥔 손이 살짝 떨렸다.
두려운 건가? 조금 그런 듯하다.
이전 생에서 진화는 평생 귀천성에게 쫓겼고, 그들을 쫓았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손에 죽었다.
물론 지금은 이전 생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다.
이전 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경지를 뛰어넘고, 광마가 그토록 제 몸을 탐했던 이유, 혼돈지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게다가 광마가 모르는 천뢰기(天雷氣)도 있었다.
그런데도 꽁꽁 웅크리고 있는 중이었다.
바보같이 웃으면서, 어린 얼굴과 몸을 방패 삼아 숨었다.
백의생들 중에서 최고의 실력이지만, 후기지수들 중에서 최고는 아니다.
남궁세가 직계가 주는 무게에 비하자면 평범한 수준.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평범함’ 속에 맞추는 것이 힘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적정 수준을 지키고 있었다.
혹여 남궁세가가 이전처럼 될까 마음 졸이면서 웅크렸다.
본능적인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습관적인 두려움이 아직 진화에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화가 저도 모르게 쪽지를 구겼다.
‘아직은 안 돼! 아직 역천비록을 얻지 못했는데!’
여기서 끊어 놓아야 했다.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 * *
여느 때처럼 새벽부터 앞마당을 비질하는 하인의 등 뒤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학원장님은 안 계신가요?”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를 못 채다니!
하인의 눈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이, 행동해야 했다.
“아, 연학원장님은 연학원에 들어가셔서 나흘 후에 나올 것입니다.”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웃으면서, 손바닥에 단검을 감추고 뒤를 돌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파지지지직--!“
“그래? 잘됐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하인이 쓰러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쓰러졌는지도 모를 것이었다.
진화가 쓰러지는 하인의 멱살을 쥐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