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움직일 진(進) 불 화(火) : 시도하는 자(4)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남궁진휘의 집무실에 소란이 일었다.
처음엔 남궁세가 소가주를 노린 침입자가 든 줄 알고 경계를 하던 무사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착. 착. 착. 착.
무사들이 집무실 사방의 문이 급히 닫히고, 그대로 주변 경계를 섰다.
곧 남궁조와 남궁진혜가 집무실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가령.
“진화야, 너 또……!”
아닌 밤중에 남궁진화가 귀천성도를 잡아 오는 일 따위 말이다.
* * *
반 시진이 지난 즈음, 남궁조가 지친 얼굴로 나타났다.
“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일단 귀천성 문양은 확인했다. 허벅지 안쪽에 인피로 가려 두었더구나.”
진화가 데려온 귀천성도를 확인하고 온 남궁조는, 그사이에 십 년은 늙은 듯 보였다.
“정말 귀천성도가 제갈세가에 있었다니…… 아, 진화 네 말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워서 그런 것이다.”
“이해합니다. 저도 웬 감시자인가 하고 따라간 곳이 제갈세가라서 엄청 놀랐습니다.”
남궁진휘의 변명 아닌 변명에, 진화가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때, 진화의 귓가에 음산한 목소리가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동생, 지금 웃을 때니?”
“아. 하하하…….”
진화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입매만 끌어 올린 남궁진혜의 서늘한 시선에, 진화는 감히 눈을 마주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분명 이전보다 친근해졌는데, 왜 이전보다 무서울까.
“우리 진화, 겁도 없이 오밤중에 첩자일지 모르는 놈을 쫓아간 것도 모자라서, 제갈세가에 무단 침입을 해? 게다가 귀천성도인 것은 어찌 알고?”
남궁진혜의 말에 진화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귀천성 흑조보를 알아보았다고 하기엔, 지금의 진화는 그걸 알 리 없었다.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한 진화가 꾸깃꾸깃 뭔가를 꺼냈다.
“놈이 남긴 쪽지와, 쪽지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장계입니다. 증거로 훔쳐 왔습니다.”
“훔쳐…… 허어!”
“……장계는 왜?”
“누구의 자리인지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갈세가의 공식 보고임이 분명한 장계에는 보고자와 연학원장 제갈무진의 이름이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심지어 잡아 온 귀천성도는 제갈세가 하인임을 알리는 패와 복장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쯤 되면 제갈가주도 완전히 발뺌하진 못하리라.
확신에 찬 진화가 눈을 빛냈다.
그런 진화를 보며, 남궁진혜마저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제갈세가에 무단 침입 그리고 납치, 도둑질이라……. 정의맹은 그렇다 쳐도 이걸 본가에 어찌 알려야 할지 눈앞이 깜깜한 남궁진휘였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진화였다.
남궁진휘의 표정이 냉정해졌다.
“귀천성 놈들이 진화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라면, 진화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놈이 도망치기 전에 붙잡아야지. 문제는 놈들이 있는 곳이 제갈세가라는 건데……. 대체 제갈세가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내려면 제갈 놈들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일단 정의맹으로 가야겠구나.”
“본가에도 전서응을 보내겠습니다.”
남궁조와 남궁진휘가 심각한 얼굴로 일어섰다.
‘연학원이다. 아깐 당황해서 번뜩 생각해 내지 못했지만, 거기에서 귀천성 놈이 뭘 했겠어?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귀천성 첩자도 잡고, 역천비록도 얻어 낼 수 있겠구나.’
자신에 대한 놈들의 관심을 끊어 놓는 동시에 역천비록까지 얻어 낼 수 있다니.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진화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진화의 모습을 보며 남궁진혜가 한숨을 푹 쉬었다.
“으이구! 뭐가 그리 좋으냐?”
“귀천성도를 잡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역천비록이지만, 제갈세가에 역천비록이 있다는 것은 모를 때이니 그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남궁진혜의 눈이 말랑하게 녹았다.
“이 순진한 녀석! 누님이 꼭 지켜 줄게!”
“윽, 누님.”
남궁진혜가 귀천성의 표적이 되고도 웃고 있는 동생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 * *
정의맹주의 집무실.
맹주 운현대사는 물론이고, 총군사인 제갈가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조는 적호단에 연락해서 함께 움직였다.
“귀천성도가 확실한가?”
“예. 역천의 문신도 확인했고, 남궁 공자가 가르쳐 준 곳에 놈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흔적?”
“남궁의 소공자가 찾은 것 이외에도 백매단이 흔적을 찾았습니다. 귀천성 교성흑오단 놈들의 흑조보였습니다. 제갈세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적호단주 팽치가 흘깃 진화를 보고 말을 이었다.
어린 진화가 귀천성 흑조보를 알 리 없으니, 조작이라 의심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 또한 진화가 노린 바였다.
진화가 슬쩍 맞은편의 제갈가주를 보았다.
굳은 얼굴로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무릎에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잡은 놈은 어찌했나?”
“감찰당 부당주에게 넘겼습니다.”
정의맹 감찰당의 부당주는 두 사람이 있었지만, 죄인과 포로의 심문은 정속마검 견강위의 담당이었다.
견강위는 얼마 전 뇌옥이 습격당하며 수하들과 심문 중이던 포로를 잃고 독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원래도 귀천성도들에게 잔혹한 손 속으로 유명하던 그가, 잡은 첩자를 어찌 처리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하인의 문제는 그렇게 맡겨 두고, 이제 모두의 시선이 제갈가주를 향했다.
맹주인 운현대사가 무거운 눈으로 제갈성진을 보았다.
“군사, 이 경우에는 제갈가주라 해야겠지. 제갈가주께서는 어찌 처리하고 싶은가?”
운현대사가 조용히 물었다.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제갈가주의 빗장을 풀듯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제갈가주가 눈을 크게 뜨고 운현대사를 보았다.
세가 내에 귀천성도들이 있었고 심지어 가문의 성을 달고 주요 직위에 있다는 것을 듣고도, 운현대사는 제갈가주에게 변함없이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그게 제갈가주의 마음을 흔들었다.
“……놈의 말대로, 연학원장은 지금 수하가 잡혀 온 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연학원의 방비 수위를 한층 높여 놓았으니까요.”
말을 하면서, 제갈가주가 운현대사를 보았다.
정의맹에서 총군사의 지위를 이용해서, 가문의 입지를 키우던 그였다.
어떤 때에는 운현대사를 견제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그를 배제하거나 맹주의 권한을 축소시키기도 했다.
운현대사 또한 그런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근 몇몇 일들을 자신 모르게 진행한 것이, 저를 경계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내 집에 귀천성 놈들이 있었을 줄이야!’
운현대사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질수록, 사태의 심각성 또한 실감했다.
‘제갈무진…… 까드득!’
제갈가주가 감히 제 앞에서 연구밖에 모르는 학사의 얼굴을 하던 제갈무진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최근 제갈세가에서 일어난 일과 제갈무진을 엮어 생각했다.
‘그래, 그 약! 놈의 짓이로구나! 세가에서 그걸 만들어 낼 이가 그놈밖에 없었어! 그럼 후현이와 아이들은 그놈에게 이용당한 건가? 후현이를 뒤에서 조종하면서 사태가 커지도록 한 것이로군. 그 약 때문에 가문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끝내 소현이까지…… 망할! 그 약이라는 것이 나왔을 때 그놈부터 의심해야 했건만!’
후회를 시작할 때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이미 제갈후현이 그 약과 연관이 있었고, 상당한 재물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약을 이용해서 세력을 모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리 모인 세력까지도, 약과 관련된 것이라면 필시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몰아넣는다! 놈의 음모, 놈의 속임수로 생긴 일로 일축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자식들의 소소한 비행이 잘못된 것과 귀천성이 얽힌 것은 차원이 달랐다.
문제가 번진다면 자식이 아니라 가문, 세가를 위태롭게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제갈소현과 달리 제갈후현은 대안이 따로 없는 후계자였다.
이번엔 자식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제갈가주는 필요한 모든 희생을 치르더라도 문제가 커지기 전에 이 일을 수습하기로 결심했다.
“제갈무진은 연학원에 있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나흘 후 놈이 연학원을 나오는 때를 노려서 잡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제갈가주가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내며 말했다.
하지만 남궁조가 기다렸다는 듯 반발했다.
“미리 눈치채고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적호단을 동원해서 잡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연학원은 서로 다른 제작자의 기관진식과 장치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게다가 태상가주이신 아버님의 진법이 펼쳐져 있습니다. 정해진 입구를 봉쇄하면 가주인 저는 물론 개미 새끼 한 마리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 만큼, 연구 중인 전략과 무기, 진법은 물론 무림의 기밀 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첩자 하나 잡자고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잡아야죠. 애초에 제갈세가의 방비를 믿을 수나 있겠습니까? 귀천성 놈이 장으로 있는 곳인데! 게다가 내부에 얼마나 더 협조자가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뭐라!”
“뭐!”
제갈가주와 남궁조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때, 남궁진휘가 나섰다.
“이미 놈이 우리 진화를 감시하는 중이었습니다. 본 세가 또한 놈을 놓칠 수 없으니, 이렇게 하시지요.”
앞에는 정의맹주와 제갈세가 가주가 있었지만, 남궁진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었다.
‘남궁진휘!’
제갈가주가 남궁진휘를 노려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남궁진휘는 피하기는커녕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제갈세가를 감시할 것입니다. 나흘 안에 놈이 도망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나흘 후, 놈이 나온다면 제갈세가 안에서 잡으십시오. 놈이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온다면, 적호단과 창궁무애단이 나설 것입니다. 또한 제갈세가는 놈들과 연관된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제갈가주의 한쪽 눈이 잘게 떨렸다.
‘어린놈이 당돌하고 빈틈이 없구나!’
제갈세가에 책임을 물 여지와 함께 진화의 일을 빌미로 남궁세가의 공을 챙겼다.
동시에, 제갈세가 스스로 일을 수습할 기회를 주면서 거래를 청한 것이다.
제갈가주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래였다.
“난 그동안 정속마검과 함께 놈을 조져 보지. 놈이 왜 우리 진화를 감시했는지 알아봐야지. 이봐, 제갈성질, 감시 잘해.”
남궁조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제갈가주에게 경고했다.
“쓸데없는 간섭이로군.”
“흥, 잘난 척은. 집안 꼬라지를 그 꼴로 해 놓고.”
“뭐라! 입조심 좀 하게!”
“뭐, 틀린 말 했나? 코앞에 배신자를 들여놓고 중책을 맡겨? 놈이 내 조카 털끝이라도 상하게 했다면, 그 집구석을 다 뒤집어 놨을 거다!”
“무식한 놈!”
“헛똑똑이보단 낫지!”
남궁조의 말은 안 그래도 번잡한 제갈가주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갈가주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실 남궁세가와 맹주가 제갈세가를 궁지로 몰고자 했다면, 의심을 빌미로 세가를 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
제갈세가가 쌓아 온 신뢰와 명성 덕분에 가문이 위태롭진 않았겠지만,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맹주는 그러지 않았고, 남궁조가 아무리 고깝게 굴어도 그들에게 배려와 은혜를 입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군사.”
운현대사가 나가려던 제갈가주를 불렀다.
제갈가주가 남궁조 때와 달리 한결 부드러운 눈길로 돌아보았다.
“귀천성도일세. 신중하고 철저하게 처리해야 하오.”
혹, 제갈무진의 앞에 달린 성에 연연할까, 노파심이 보내는 경고였다.
제갈가주도 운현대사의 경고만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남궁조와 제갈가주가 자리를 뜨고, 진화도 남궁진휘와 함께 물러나려던 참이었다.
진화는 어떻게 첩자를 쫓게 되었는지, 증거는 어찌 찾았는지 증언을 하러 온 터라, 할 일은 일찌감치 끝났었다.
“소공자가 수고가 많았구나.”
“별말씀이십니다.”
“아니, 실로 엄청난 일이란다,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 그것도 제갈세가의 안에 귀천성의 마귀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단지 첩자를 잡은 것을 치하할 줄 알았는데, 들어 보니 말에 다른 의미가 있는 듯했다.
진화가 고개를 들어 운현대사를 보았다.
어린아이와 같은 맑은 눈, 하지만 진화의 눈에는 그 안에 정순한 내공이 타오르는 불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소공자, 실로 위험한 일이었네, 특히 공자에게는 더욱더.”
“……!”
운현대사의 말에 진화의 눈이 커졌다.
그는 진화에 대해, 진화가 왜 귀천성과 엮이는 것이 위험한지 알고 있는 듯했다.
진화가 놀란 얼굴을 하자, 운현대사가 싱긋이 웃었다.
“내 말뜻을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공자, 조심, 또 조심하시게. 제왕검과 남궁세가가 공자를 아끼는 만큼, 공자 또한 스스로를 아끼시게.”
“……고언, 감사합니다.”
“허허, 아니야. 벌써 그리 올라섰으니, 제왕검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게지. 참으로 잘 컸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운현대사는 진화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궁진휘 또한 진화를 보며 웃었다.
“학관으로 가 보시게. 귀천성 첩자를 잡은 보상은 남궁세가로 따로 보내겠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진화와 함께 남궁진휘도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때, 진화의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먼저 간 줄 알았던 제갈가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가주가 조용히 진화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앳된 얼굴.
소문대로 저절로 눈이 가도록 어여삐 생겼다.
하지만 제갈가주의 눈길을 끄는 것은, 진화의 눈이었다.
검고 큰,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내 집에 몰래 들었다고, 놈을 쫓아서 별채 깊숙이?”
“예.”
“게다가 첩자를 잡아서 가고?”
“예.”
“허허……!”
덥석덥석 대답도 잘한다.
말간 정신머리로 남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 남궁조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이런 녀석이 천뢰제왕신공을 익히고, 벌써 절정을 넘어섰다?’
제갈가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치 진화의 속까지 샅샅이 살피려는 듯 눈빛이 집요하여, 결국 남궁진휘가 나서 진화의 앞을 가렸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러지.”
남궁진휘가 진화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제갈가주의 시선이 아직 따라붙는 듯했다.
‘제갈무진 그놈이 저 아이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왜지?’
실제로 제갈가주는 진화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