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77)화 (77/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행 화(禍) : 기회를 잡는 자(2)

무림이 귀천성과의 전쟁을 멈춘 지도 십오 년이 흘렀다.

하지만 잠정적인 휴전일 뿐, 모두가 언제고 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귀천성과의 경계 지역에선 치열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의 시기.

대문파와 세가, 중소 문파 할 것 없이 살기 위해 강해져야만 하는 시기였다.

과거엔 약관에 이르러 절정을 넘어서면 천고의 기재라 칭송했으나, 지금은 문파의 모든 가르침과 영약의 보조를 받고 실전 경험까지 쌓은 천재들이 무학관에만 한 기수에 몇 명씩 있을 정도였다.

특히 이번 금의생들의 기수는 실력자들이 많기로 유명했기에, 벌써 절정의 무위를 보인 이들만 열 명이 넘었다.

하지만 약간의 재능과 전폭적인 지원 속에 누구나 노력하면 절정에 닿을지는 모르나, 검기를 발출하는 초절정의 영역은 그 너머의 것이었다.

평생을 수련해도 검기를 발출하지 못하는 무인들이 대다수니, 인력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서른이 되기 전에 초절정의 무위를 보이는 이들은 그야말로 무림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라 할 수 있었다.

육 년.

세월은 노력에 대해 공평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타아아앗--!”

챙--!

이미 실력 차가 확연하여, 금의생들의 비무는 진행이 빠르고 결과도 즉각적이었다.

벌써 단 네 명만 남았다.

퍼-억!

남궁진혜가 무당일검이라는 무현의 검을 쳐 내고 그대로 발로 상대의 가슴을 찼다.

일견 막무가내로 몸싸움을 걸어오는 듯 보였지만, 사실 무현의 검을 받으며 일부러 무현의 검격을 좁혀 들어간 것이었다.

결국 남궁진혜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무현이 뒤로 몸을 날리며 위력을 상쇄했다.

쿵! 쿠-웅!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남궁진혜의 발 공격을, 땅에 몸을 굴려서 피해 냈다.

발길질 한번.

그 한 번에 거미줄처럼 금이 간 연무장이 내려앉는 것을 보며, 진화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휴, 저걸 어찌 시집보내지?”

“하하, 형님도 누님을 시집보내기 아까우십니까?”

남궁진휘의 한숨에, 진화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남궁진혜의 검에서 펼쳐진 창궁대연검 일휘낙안(一揮落雁)에 연무장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며, 진화의 감탄과 남궁진휘의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오!”

“이런! ……정말로. 무현이 마지막 희망이었단다.”

“……무현은 무당의 도사인데요?”

“그러니까. 무당일검쯤 되는 도력이 아니면, 뉘라서 저걸 감당하겠느냐.”

남궁진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퍼—엉!

남궁진혜의 검기가 연무장 한 귀퉁이를 잘라먹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무현과 검을 맞대고,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퍼억!

“큭!”

“빈틈-!”

순간, 남궁진혜가 고통과 당황으로 힘을 뺀 무현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남궁진혜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무혁의 멱살을 잡고 온몸의 기운을 다해 연무장 밖으로 눌러 버렸다.

쿠—웅!

짙은 먼지구름과 함께 남궁진휘의 한숨이 더욱 짙어졌다.

“약점이 얼굴밖에 없으니, 마음 약한 무현이 제 얼굴을 치지 못할 걸 알고 들이밀었어! 들소 같은 녀석이 점점 영악해지기까지 하는구나, 마치 스승님처럼.”

“……아버지는 괜찮아요.”

남궁진휘의 한탄에, 진화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누님의 짝이라면, 이전 생에선 그때 보았던 적호단주와 혼담이 오가며 서로 나쁘지 않았는데…… 남궁도가 누님을 다른 곳에 보내려고만 하지 않았다면, 적호단주와 혼인하지 않았을까?’

문뜩 떠오른 생각에, 진화가 남궁진휘를 보았다.

“일전에 보았던 적호단주님과는 잘 지내시는 것 같던데, 그분은 어떻습니까?”

“진화야.”

진화가 슬쩍 말을 꺼내는데, 남궁진휘가 목소리를 깔며 단호한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아서. 그 집안에서 왜 팽치 형님 같은 인재를 정의맹 적호단주로 돌리고 있겠느냐?”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진혜가 정의맹에 남았으면 하는 것과 같은 이유지.”

“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지만, 제발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샜으면 하는 마음.”

“…….”

이번엔 진화도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금의부장끼리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청명화 남궁진혜와 청수검 무현의 대결이 남궁진혜의 승리로 끝이 나고, 이제 드디어 남궁진휘의 차례였다.

“괜찮으십니까?”

진화가 할까 말까 입술을 오물대다가, 결국 묻고 말았다.

그런 진화의 모습에, 남궁진휘가 웃음을 터뜨리며 거칠게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하, 요 귀여운 녀석! 아직도 이렇게 귀여워서 어쩔꼬.”

“아, 혀, 형님!”

“하하하하! 형님이 질까 봐 걱정되느냐?”

남궁진휘가 물었다.

거친 손길이 없어진 진화가 남궁진휘의 얼굴을 보았다.

댓 발은 튀어나온 입이 쏙 들어갈 만큼 시원한 미소.

느긋하고 여유 있는 그 웃음에, 마음이 절로 단단해져 왔다.

“전혀요.”

진화가 남궁진휘처럼 시원하게 웃으며 답했다.

* * *

남궁진휘가 천천히 연무장으로 올라갔다.

반대편에서는 제갈후현이 올라오고 있었다.

남궁진휘에게 경쟁의식을 불태우던 제갈후현이었다.

모두가 남궁진휘와 제갈후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단상에 있는 무학관주와 정의맹 주요 인사들 또한 그들의 비무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화의 눈은 제갈가주에게 향했다.

‘무슨 희망을 품고 있는지 뻔히 보이지만, 과연 원하는 대로 될까?’

지금쯤 정의맹 인사들이 제갈무진을 잡기 위해 갔을 터였다.

그 전에 제갈세가 무사들의 손에 잡힌다면 더 좋겠지만, 어쨌든 제갈세가는 가주가 총군사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자와 귀천성 첩자에게 당했다는 오명을 지울 수 없으리라.

거기에 ‘그 약’ 문제까지 터진다면?

‘제갈후현은 타격이 크겠지. 그것 때문에라도 여기서 만회를 해야겠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전 생에선 남궁진휘의 죽음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대결.

약 문제를 덮기 위해 만든 사고로 남궁진휘가 죽고, 제갈후현은 만족했을까.

답은 제갈후현의 죽음에서 이미 나왔다.

남궁진휘에게 이겼다고 생각했다면 계속 약을 복용했을 리 없으니. 제갈후현은 계속 남궁진휘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일전에도 보았지만, 남궁세가 소가주 남궁진휘는 그만큼 강한 무인이었다.

“오오-!”

환호 소리가 커졌다.

정의무학제가 하나의 축제이자 큰 볼거리라는 걸 입증하듯, 그들의 비무는 시작부터 화려했다.

남궁진휘와 제갈후현,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검기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쉐에에엑--!

퍼엉!

“흥, 맨날 나보고 과격하다고 하면서, 저렇게 뒤로 호박씨를 까지.”

“…….”

앞에서 당당하게 비무 중인 건데…….

심지어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리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화려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현명하게 속엣말을 뱉지 않았다.

남궁진혜가 편드는 거냐고 서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궁진혜의 말처럼 남궁진휘와 제갈후현의 대결은 벌써 연무장이 반파될 정도로 치열했다.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자존심과 가문의 명예를 걸고 있었다.

게다가 제갈후현이 남궁진휘에게 가진 열등감과 경쟁의식은 자존심보다 치열했다.

“크억!”

남궁진휘의 발길질에 제갈후현이 신음과 함께 뒤로 굴렀다.

검술을 구사하면서 남은 손과 발로 격투술을 쓰는 건 남궁경의 특기라, 남궁진휘 또한 남궁경의 제자였다.

볼썽사납게 구른 제갈후현이 분노에 찬 눈으로 남궁진휘를 노려보았다.

“크읏-!”

제갈후현이 양 주먹에 불이 붙은 듯 일렁이는 기운을 담고 남궁진휘에게 마구 휘둘렀다.

“으아아--! 죽어라!”

쿵! 쿵!

급소를 노리는 응혈신조에, 남궁진휘가 급하게 제갈후현의 공격을 피했다.

‘흥분하기 시작하는군. 그럴수록 이기지 못할 거다.’

제갈후현의 공세에 남궁진휘가 밀리는 모습이었지만, 진화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운이 안정적인 남궁진휘는 냉정한 눈으로 제갈후현의 공격을 모두 살피고 있었고, 제갈후현은 본인의 공세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갈후현은 본인의 공세에 스스로 휘둘리는 것처럼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리석긴!”

쉐에엑!

남궁진휘가 달려드는 제갈후현의 발밑을 검으로 내리그었다.

순식간에 제갈후현의 발밑이 무너지고, 스스로의 힘에 밀린 제갈후현이 연무장을 굴렀다.

“큿!”

제갈후현이 당황한 순간…….

‘너도 이쯤에서 정신 차리는 것이 좋겠지.’

남궁진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파파파파파팟---!

남궁진휘가 펼친 창궁대연검 파해일물(波海溢岉)이 연무장 바닥을 뒤집으며 거대한 파도처럼 제갈후현을 덮쳤다.

이것으로 비무를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친선 비무에서 빈틈을 보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할 기회를 주었다는 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지금의 공격이 치명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패배를 인정할 생각 또한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이대로 비무를 끝내려는 남궁진휘의 속셈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감히-!”

콰-앙!

분노한 제갈후현이 모든 파편을 부쉈다.

그리고 기운을 일으켜 파편을 모았다.

휘이이익--!

바람이 일며 크고 작은 파편들이 제갈후현의 기운 속에 모였다.

제갈세가의 적엽비화(摘葉飛花)는 사천당문의 만천화우 못지않은 화려한 암기술이라.

붉은 기운에 모인 파편이 마치 꽃처럼 활짝 피었다.

제갈후현이 남궁진휘를 쏘아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붉은 꽃잎 같은 파편이 일제히 남궁진휘에게 쏘아졌다.

파바바바바---박!

꽃비처럼 쏟아지는 파편들을 보며 얼굴을 굳힌 남궁진휘가 검을 세워 기운을 폭발시켰다.

퍼-엉!

“우아아-앗!”

사방으로 퍼진 파편에 장내가 술렁였다.

남궁진혜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파편과 기운의 여파에서 진화를 보호해 주는 동안, 진화는 눈을 크게 뜨고 남궁진휘를 찾았다.

단상의 정파 무림 주요 인사들 또한 비무를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수준 높고 치열한 공방을 예상하긴 했지만, 그 수가 친선 비무에서 펼치기에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그들 정도의 고수들이 제갈후현의 상태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흠, 제갈의 소가주가 너무 흥분한 것 같지 않소?”

“그러게요.”

단상에 있는 정의맹 인사들이 수군거렸다.

무학관주 나무열이 무사부들에게 비무의 진행에 대해 물었다.

그때, 갑자기 사색이 된 의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 비무를 중단해야 합니다! 제갈 소가주의 기운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제갈가주가 반사적으로 쏘아붙였다.

고작 저 정도 손 속으로 비무를 중단하는 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의선이 더욱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서요! 급합니다! 저러다가 제갈 소가주뿐 아니라 남궁 소가주마저 위험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무학관주 나무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물었다.

“그 약에 의한 폭주입니다!”

“의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측이오!”

“일전에도 단천문의 단승호 공자가 같은 증상으로 실려 왔었습니다! 쓰러지고 나면 늦습니다!”

제갈가주가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지금 계속해서 공세를 펼치는 쪽은 제갈후현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제갈후현이 이길 듯 보였다.

제갈후현이 이기고 나서 비무를 멈춰도 멈춰야 했다.

“의선, 금의생들의 무학제는 단순한 평가비무가 아니오. 그럼에도 확신하는 것이오?”

“단천문의 소공자는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흐음…….”

계속되는 의선의 확고한 말에, 고민하던 무학관주는 관도생들의 안전을 택하기로 했다.

“비무를 중단시키지.”

“안 됩니다! 다 이긴 비무를 이렇게 멈출 수……!”

제갈가주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하니, 반발하며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크아아아아아아----!”

마치 기운이 폭주하는 듯, 제갈후현이 온몸으로 붉은 기운이 뿜어냈다.

제갈가주의 고개가 뻣뻣하게 돌아가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피가 식어 내린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들을 찾았다.

“후현아!”

“형님!”

진화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갈후현이 불이 붙은 짚단처럼 남궁진휘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피이---용!

퍼-엉! 펑펑-!

남궁조로부터 신호가 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