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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85)화 (85/425)

남궁마제

성낼 진(瞋) 불 화(火) : 보물을 노리는 이들(4)

제갈세가 가주전에 다시 직계들이 모였다.

제갈용성과 제갈지현이 조용히 자리한 가운데, 서상아가 불만스러운 듯 제갈용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불편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제갈가주가 무심하게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역천비록을 옮기기로 했다.”

“네?”

“하지만 아버님, 그건 태상가주께서 가져오신 전리품입니다. 사유재산까지 정의맹의 간섭을 들을 이유는 없을 텐데요.”

그저 깜짝 놀라는 서상아와 달라 제갈용성이 차분하게 반발했다.

제갈지현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제갈가주의 시선이 차례로 셋을 보았다.

‘지현이는 역천비록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한 모양이군.’

제갈가주의 시선이 제갈지현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사이, 서상아가 제갈용성을 노려보았다.

“천한 놈이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는구나.”

“여기서 제일 자격이 없는 사람은 부인 같은데요.”

“뭐야?”

“역천비록을 옮긴대도, 부인이 딱히 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허! 네놈은 뭐 하는 일이라도 있는 듯하구나.”

서상아가 코웃음을 치는데, 제갈용성은 기분이 들떴다.

이 말을 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제가 소가주니까요.”

“임시지, 임시! 너 따위, 우리 후현이가 깨어나면……!”

“하하, 깨어나고 말씀하시죠, 깨어날 수 있으면.”

“너어!”

서상아가 분함을 참기 힘든 듯 몸을 떨었다.

그러다 제갈가주를 원망스럽게 보았다.

아주 잠시 제갈후현이 누워 있을 뿐인데, 아무리 임시라지만 제 아들의 자리에 하필 저놈을……!

하지만 제갈가주는 서상아의 원망이든, 무엇이든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악에 받친 서상아의 분노가 다시 제갈용성을 향했다.

“거지 같은 새끼! 주제도 모르고 남의 자릴 탐내는 건, 어미나 자식이나 같구나!”

서상아의 말에 제갈용성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내 어머닌 날 살리고 죽었는데, 당신은? 이런 걸 천벌이라고 하나?”

“네놈! 그때 네놈을 죽였어야 했어! 천한 네 어미와 같이 죽였어야……!”

“감히! 그 입에 내 어머닐 담지 마-!”

제갈용성이 서상아에게 소리를 질렀다.

처음 있는 일이라, 서상아도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용성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살기를 담은 눈으로 서상아를 노려보았다.

“……아직 조금 덜 불행한가 보군요.”

제갈용성이 꾹꾹 인내심을 눌러 담아 말했다.

“너 이 새끼!”

제갈용성의 살기에 움츠러들었다는 게 수치스러웠던 듯, 서상아가 더 독기를 품고 손을 올렸다.

그때…….

“그만하지.”

제갈가주가 끼어들었다.

서상아와 제갈용성이 제갈가주를 보았다.

서상아는 원망을 가득 담고 제갈가주를 노려보았고, 제갈용성은 입 끝에 미미한 미소를 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제갈가주는 덤덤하게 서상아에게 먼저 축객령을 내렸다.

“지현이는 부인과 함께 내부 단속하거라. 아직 장례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쪽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에 각별하게 신경 쓰거라.”

“가가!”

“차질없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지현이 서상아의 반발을 끊고 대답했다.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보다 품격 있게. 가문을 위해 희생한 이들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녀를 무시한 채 제갈가주와 제갈지현이 대화를 주고받자, 서상아가 묘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제갈지현에 이끌려 가주전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제갈가주가 제갈용성을 보았다.

꿀꺽.

일전에도 이렇게 둘이 있을 때 중요한 말을 했기에, 제갈용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나 다를까, 제갈가주의 입에선 제갈용성이 생각도 못 했던 말이 나왔다.

“역천비록을 옮기는 임무를 맡아라.”

“제, 제가요?”

“임시라곤 하지만 너도 소가주니, 이전의 잔상을 지우려면 공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제갈가주의 말에 제갈용성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전의 잔상’이란 귀천성의 호구짓부터 제갈후현의 개 노릇을 하던 모습을 말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런 정도로 마음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갈용성은 오히려 제갈가주의 말이 더 의외였다.

“공을 ……세우라고요?”

“은의제에서 의생장이 될 만한 무위를 선보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실력은 못 되지 않느냐.”

얼마든지 비꼬라지.

이전에는 저런 비꼼조차 제갈용성의 것은 아니었다.

제갈용성이 무학제에 나간다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던 제갈가주가 아니던가.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상현대와 하현대를 붙여 주마. 정의맹 적호대가 나설 듯하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

제갈가주가 말을 마치고 제갈용성을 볼 때까지, 제갈용성은 살짝 멍한 표정이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게냐?”

“아, 예, 예. 실수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나가서 상현대주를 찾아봐라.”

“예.”

제갈가주의 축객령에 제갈용성이 고개를 숙였다.

제갈가주의 시선이 제갈용성이 나갈 때까지 진득하게 쫓았다.

“예. 예……라. 그렇군.”

제갈가주가 제갈용성의 대답을 덤덤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제갈용성 또한 제갈가주의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공을 세워라, 공을……. 허!”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떨렸다.

심지어 자신을 비꼬았을 때조차, 가슴이…… 설렜다.

“미친놈. 아직도 기대라는 것을 해? 허! 지랄은.”

제갈용성이 스스로를 탓했다.

고작 그딴 것에 흔들리다니.

“상황이 이리되니, 내게도 기회라는 걸 주긴 주는구나.”

평생, 제갈후현에게 밥 먹듯이 주어지는 그것을, 그저 지켜만 봐 왔다.

제갈용성에게 가주가 주는 기회라는 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도 결코 제 손에는 닿지 않는 것이었다.

“이젠 늦었어. 이젠 내가 손을 접어 버리기로 했거든.”

제갈후현이 그렇게 되었건만 제갈가주는 어째 끄떡없다.

제갈후현이 그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인지, 그저 제갈가주가 독한 것인지.

“그 여자가 무너지는 것을 보자니, 어쩌나. 우리 가주님이 무너지는 꼴도 꼭 보고 싶어진 것을. 후후후.”

제갈용성은 약속 시간에 맞춰 조용히 외출 준비를 마쳤다.

* * *

적이 올 것을 알고 있는 건…….

미리 대비책을 세우고 전력을 준비할 시간을 얻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곧 다가올 확정적인 전투를 기다리며 오래 불안해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남궁세가 양청현 지부를 이끄는 남궁조와 남궁진휘는,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매를 먼저 맞는 것과 나중에 맞는 것의 차이와 비슷하군요.”

“뭐가 말이냐?”

“전자는 오래 불안하진 않지만, 매의 수와 강도를 모르고 맞으면서 후회하고 아파하죠. 그리고 후자는 오래 불안하지만, 어떻게 맞을 걸 알면서 맞고 아파하겠죠.”

“그게 왜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이냐?”

“불안과 후회 중 어느 쪽이 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아파한다는 결론은 같다는 것? 하하하.”

남궁진휘가 웃으며 하는 말에 남궁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떤 방도를 짜내든, 결국 싸우다 뒈지거나 다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걸, 소가주만 아니면 한 대 쥐어 팰 텐데 말이다.”

“가문의 장자로 낳아 주셔서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혜가 기어이 적호단에 들어갔다고?”

“예. 정의맹 숙소에 들러 짐 싸서 들어갔습니다.”

남궁조는 남궁진휘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던 남궁진혜를 찾았지만, 오히려 남궁진휘의 얄미움만 키웠을 뿐이었다.

“하아, 방법이 없구나.”

남궁조와 남궁진휘는 창궁무애단을 이끌고 작전을 수행할 사람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었다.

“제가 가는 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 돼. 가문의 소가주를 위험한 임무에 넣을 정도로 급하지도 않고, 그것은 본가의 허락이 있기 전엔 절대 용납 못 한다.”

남궁조가 남궁진휘의 의견을 세 번째로 반대했다.

방금까지 농담하던 것도 잊고 심각하고 단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남궁진휘도 마찬가지였다.

“진혜가 유인조에 들어갈 겁니다.”

“진혜가 걱정되는 건 이해한다만, 그렇다고 네가 같이 위험할 필요는 없다. 역시 이번에도 내가 나서는 것이 맞다.”

“오른쪽 어깨 부상이 낫지 않으셨죠. 말씀대로, 부상자를 넣어야 할 정도로 급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들이 이렇게 고민하게 된 건, 남궁조의 부상 때문이었다.

제갈무진과의 전투에서 남궁조는 어깨 골절상을, 팽치는 늑골 골절을 당했다.

“망할! 나이 드는 것도 서럽네. 팽치 그놈이 더 심하게 다쳤는데, 그놈은 벌써 멀쩡하더구먼.”

“그 사람의 몸은, 비단 나이의 문제가 아닐 텐데요? 어쨌든 부상인 채로는 임무에 못 나가십니다.”

남궁조의 말처럼 적호단주 팽치는 벌써 붕대를 풀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뼈가 고작 며칠 만에 붙다니.

남궁조가 의선의 멱살을 잡고 무슨 영약이라도 줬냐고 따질 뻔했다.

어쨌든 두 사람이 서로의 출전을 반대하는 터라, 의견 조율은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화가 안으로 들어왔다.

“진화야, 또 숙소에서 몰래 나온 것이냐?”

“아뇨. 정식으로 집안 사정상 며칠 외박 신청을 했습니다. 내일이지요? 제가 창궁무애단과 함께 가겠습니다.”

“뭐?”

“무, 무슨……!”

다짜고짜 하는 말에 남궁조와 남궁진휘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그에 진화가 씨익 웃으며 뭔가를 꺼냈다.

“이거, 백의장 권한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외박 신청서에 인장 좀 찍어 주십시오.”

선처리 후보고였던가.

외박 신청서의 사유란에는 ‘가족 병가’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죄인이로군.”

“두 분도 힘드시고 진혜 누님도 없는 마당에, 직계인 저야말로 적임자입니다.”

“하지만 너는…….”

남궁진휘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제갈무진과 싸울 때 경지를 숨기지 못했다.

지금이야 적호단주의 도움으로 그저 소문으로만 퍼지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 지켜지지 못할 것이란 걸 남궁진휘와 진화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가장 중요한, 적이 이미 알게 되었지 않은가.

“어차피 대충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진짜’ 역천비록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습니다.”

진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겨우 역천비록이 제 손에, 아니 의선문으로 들어가는 때였다.

진화에겐 이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 의미로 이것에도 인장 좀 부탁드립니다.”

진화가 내민 것은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외박 신청서였다.

나름의 총력전이었다.

* * *

어두운 밀실.

검은 그림자가 붉은 주머니에 든 전서를 건넸다.

탁자를 둘러싸고 네 명의 인영이 앉아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내일 술시, 상현대와 움직인다는군요.”

“속이려는 기색은?”

가래에 끓는 듯한 불쾌한 목소리.

귓불에서 흔들리는 달 문양의 귀걸이가 눈에 띄었다.

바로, 적호대가 그토록 찾던 비영문주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 해결되면 대가로 서상아와 제갈지현을 죽여 달라더군요.”

“허!”

“제갈후현이 그렇게 되고 오히려 더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더 볼일 없는 놈이다.”

“일이 성공하면, 놈의 의뢰를 생각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때 되어서 주군께서 생각하실 일이다.”

비영문주는 수하의 말을 냉정하게 끊었다.

생각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건 제 주군이 할 일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주군의 장기 말로 움직이면, 그뿐이었다.

“제갈세가가 있는 외곽에서 의선문이 있는 중심까지, 어떤 길을 택하든 태평로를 지나야 할 것입니다.”

“태평로에 매복조를 준비시키겠습니다.”

“아니, 매복조는 제갈세가 앞에서 대기한다.”

“네?”

“문주?”

비영문주 외에 탁자에 있던 세 명이 문주의 결정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비영문주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제갈용성 따위에게 정확한 때와 시를 알려 준다? 이것은 미끼다.”

“하면 문주의 생각은?”

“태평로야말로 놈들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겠지. 매복조는 제갈세가를 감시하다가 진짜 역천비록을 옮기는 때를 기다린다.”

비영문주는 제갈가주가 제갈용성을 완전히 신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내야말로 신뢰라는 말과 가장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소가주인 제갈후현의 흔적을 쫓아서 비영문의 비밀에 가장 가깝게 닿은 것도 제갈가주였다.

“진짜는 제갈가주가 비밀리에 움직일 것이다.”

“그자가 비밀리에 옮기는 것을 우리가 알아볼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놈이 필요했지. 굳이 미끼를 이용한다는 것은, 진짜 또한 그때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니까. 그리고 진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각별한 움직임이 필요하겠지. 지금부터 감시조는 백매단의 움직임을 파악해라. 시선을 끄는 적호단 대신 정의맹에서 움직일 무단은 백매단뿐이니까.”

“예.”

정의맹 감찰당과 적호단은 지금도 비영문의 흔적을 쫓고 있었고, 비명문의 감시조는 다시 정의맹 무단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거기에 제갈용성의 곁에는 제갈가주는 물론이고 정의맹과 비영문의 눈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 않았다.

물론 정의맹은 귀천성의 습격을 경계하고 있을 뿐, 비영문이 끼어들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영문 또한 정의맹이 무얼 준비할지 몰랐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기에, 더더욱 상대의 수를 읽는 치밀한 전략이 중요한 때였다.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희생을 내야 한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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