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90)화 (90/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이야기 화(話) : 이전 생엔 없던 이들(2)

정의무학관은 엄연한 실력 본위제라.

애초에 선발 시험부터 성적대로 각 조를 나누고, 수업 또한 성적에 따라 차별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이론 시험이 있긴 하지만 각종 수행 시험의 배점이 컸고, 수행 시험들은 관도생들에게 독을 먹이고 장사를 시킬 정도로 실전 위주였다.

결국 무학제에 참가한 상위 삼십 명을 지나 한두 차례를 지나고 팔강전이 되자, 갑 조와 병 조 일부만이 남았다.

갑 조의 전원과 병 조 당혜군과 나하연이 남은 것이다.

사람들의 응원이 어디로 향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었다.

팔강전은 처음부터 입석까지 가득 채운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있었다.

팔강전 첫 경기가 진화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열화와 같은 무림 인사들과 지역 명사들의 항의로 인해, 정의무학제가 일반에 공개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입석 관중이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어쨌든 그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 속에서, 진화는 팔강에서 남궁교명을 이기고 가장 먼저 준결승에 진출해 있었다.

그리고 관중은 다음 경기에서도 일방적인 응원을 이어 갔다.

“망할 뚱땡이-! 감히 독심화 님의 털끝도 닿지 마라-!”

“대머리 꺼져!”

눈살이 찌푸려지는 언행이 들려오는 중에, 단상에 있던 관주 나무열과 무사부들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특히 ‘망할 뚱땡이 대머리’의 사부 마라승 각우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부 지옥에나 떨어져라! 대머리, 뚱땡이나 되어 버려라!”

각우가 최대한 입 모양을 보이지 않으며 저주를 퍼부었다.

“허허, 이 사람아, 그게 승려로서 할 소리인가?”

“어차피 부처님도 제가 하는 욕은 포기하셨을 겁니다. 살생도 하는데, 저주나 욕쯤이야.”

“그렇군. 그래도 사람들 들리게는 하지 말게.”

각우의 말에, 무학관주가 단숨에 납득했다.

“아니, 애초에! 왜 저 사람들의 참관을 허락하신 겁니까? 이건 우리 무학관의 행사이지 않습니까!”

마라승 각우가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무학관주가 고개를 돌릴 가치조차 없다는 듯, 눈동자만 돌려 각우을 보았다.

“암. ‘우리’ 무학관은 공짜로 돌아간다나?”

무학관주의 물음에, 각우가 입을 다물었다.

정의무학관의 지금과 같은 교육 수준과 실전 수업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 또한 정의맹의 지원과 지역 인사들의 기부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기분 좋게 ‘함께’ 보지.”

“돈, 돈. 이럴 바엔 내년부터는 관람비를 받는 건 어떻습니까?”

“……오!”

각우가 그저 투덜거린 말에 무학관주가 무릎을 탁 쳤다.

게다가 관중의 응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현오의 상대가 다름 아닌, 독심화 당혜군이었기 때문이다.

“우아아아-!”

당혜군의 등장에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작고 아담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 새초롬하게 올라간 눈꼬리가 다람쥐같이 앙증맞은 매력이 있었다.

기존 무림삼화 중 청명화 남궁진혜가 졸업을 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부터 독심화라 불리며 낙양에서 이름을 날린 당혜군과 서주 천재라 불리는 용격권 나하연은 기존 무림삼화 못지않은 미모와 배경, 뛰어난 무공의 가진 터라. 근래에는 당혜군과 나하연까지 해서 무림오화라 불리고 있었다.

선녀 같은 미모에 고강한 무공이라니.

애석하지만 인격이 아닌 인기에서, 길이와 너비가 비슷한 스님이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다행인 것은, 현오 또한 어찌해 볼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일까.

* * *

두어 번 합을 겨룬 끝에 당혜군은 현오와 자신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잇!”

퉁퉁하고 짧은 팔다리로 펼치는 당랑권이 어찌나 유연하고 재빠른지, 당혜군의 삼양수가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태극권이 흐르는 물이라면, 당문의 금나수법은 흐르는 물 중에서도 폭포수나 장마의 계곡물이라.

세차게 흐르고 부딪히는 기세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다만 현오의 사마귀가 거의 해신급 수영 실력을 가졌을 뿐.

현오는 금나수법에 최고라 꼽히는 소림 출신이었다.

“어이쿠!”

능청스럽게 옆으로 피한 현오가 빠르게 다리를 뻗어 당혜군의 발밑을 공략했다.

현오의 발을 피해 위로 솟아오른 당혜군이 독기 어린 눈으로 현오를 쏘아보며 양손을 휘둘렀다.

타타타타타탁--!

당혜군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현오가 재빨리 움직이고, 중지 길이의 침이 빼곡하게 연무장 바닥에 꽂혔다.

“아잇! 망할 땡중!”

당혜군이 단지 몸을 굴리는 것만으로 만천화우를 피하는 현오를 얄미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현오 또한 연무장 바닥을 한 치 이상 뚫고 들어간 장침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당소저야말로, 소나무 십장생이외다!”

“뭐야?”

팟-! 팟팟팟--!

현오의 나한권이 거리를 주지 않겠다는 듯 당혜군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거리를 주지 않는다면 다시 뛰어오르면 그만.

당혜군은 노골적인 현오의 움직임에 코웃음 치곤, 단숨에 뒤로 뛰어올라 독주를 던졌다.

퍼퍼펑! 펑! 펑!

독이 담긴 구슬이 현오에게 터지는 것을 보며, 당혜군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왔다.

그때, 현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독 연무를 뚫고 당혜군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꺄악-!”

퍼—억!

무려 무림오화로 손꼽히는 미녀 복부에 정권을 박아 버리는 패기!

현오의 주먹이 당혜군의 몸에 직접 닿지 않고 기운만으로 날려 버린 금강붕산권이었다.

“한번 당했던 것에 다시 당하진 않소이다.”

“칫!”

“한번 먹어 본 독은 모두 소화시킬 수 있지요, 하하하하!”

“그게 자랑할 건 아니지 않아요? 아, 진짜! 도무지 정상이 없어!”

당혜군의 패착은, 그녀가 쓴 독주에 든 독연이 현오가 먹어 본 것이라는 걸까.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의 비무는 조금 더 길어졌을지도 몰랐다.

멋지게 말하며 껄껄 웃는 현오의 모습에, 당혜군이 짜증을 내며 연무장을 내려갔다.

“와, 와아아…….”

빛나는 소림승의 승리에 결국에는 함성이 터져 나오긴 했다.

* * *

이제는 허리에 손까지 얹고 웃고 있는 현오를 보며…….

“대체 저 독은 언제 먹어 본 거지?”

진화는 현오가 독이 든 만두를 훔쳐 먹었던 때를 떠올렸다.

“아니, 대체 독을 왜 먹는 거지?”

“것보다, 당 소저의 말처럼 저게 저렇게 뻐길 일이야? 세상에서 제일 낯이 두꺼운 스님일 거야. 얼굴도 살쪘어, 뚱뚱땡중.”

남궁구는 현오를 향해 이상한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남궁구도 여유롭게 현오를 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음은 그의 시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팽가 쌍둥이 중 동생, 팽신이었다.

공평하게 터지는 환호나 응원과 달리, 둘의 비무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퍼어어억---!

“우악!”

쿠-웅!

“으아악!”

퍽! 퍽!

“악! 동생, 미쳤어?”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팽신.

팽신의 파갑추(破甲錘)에 연무장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남궁구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 다녔다.

소리만 듣는다면 남궁구의 패배를 예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비명의 대부분은 남궁구가 놀라서 지르는 것이었다.

팽신과 남궁구의 비무 또한 상극의 문제였다.

단단한 하체에, 타고난 천력과 가공할 내력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데에 강한 팽신이지만, 그것도 상대가 잡혀야 말이다.

남궁구는 매섭고 유연한 검술도 검술이었지만, 경공은 무학관 전 관도생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 진화는 경신술만 따진다면 남궁구의 천풍신법이 무림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인정한 바 있었다.

“크아아- 젠장!”

퍼---억! 쿵!

힘과 함께 성질이 잔뜩 실린 한 방에 연무장 바닥이 깨어졌다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남궁구가 사색이 되었다.

“좀! 이성을 찾으라고, 동생!”

“네 동생은 아니다!”

쉬이이익! 쿵!

“악! 너무하네!”

비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남궁구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팽신이 잡히지 않는 남궁구를 잡으려고 무차별적인 공격과 연무장 파괴를 반복하다가, 결국 연무장 귀퉁이가 무너지면서 장외로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검 한 번 제대로 뽑지 않은 남궁구의 승리에, 무사부들은 물론 관중까지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짜 당황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으니.

* * *

이어진 비무는 나하연과 팽수의 것으로, 나하연의 등장 때에도 당혜군 못지않은 환호가 쏟아졌다.

새초롬하고 아담한 당혜군과 달리 나하연은 다소 서늘한 분위기의 냉미녀라.

무림에서 모든 소녀 무인들이 꿈꾸던 아름답고 강한 여제의 젊은 모습처럼 보여, 여인들의 환호가 대단했다.

하지만 비무가 시작되자, 환호는 점점 다른 소리로 바뀌어 갔는데.

나하연이 무심해 보이던 표정과 달리,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마치 부나방이 불에 뛰어들듯 팽수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군!”

“와, 저렇게 미친 여자는 우리 집에 있는 마녀 외에 처음 봐.”

현오의 감탄 다음 이어진 남궁구의 말에 진화는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다.

설마 팽수와 힘을 맞붙는 여인이 있을 거라곤, 진화도 상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붙어 보자고-!”

“하하하하! 재밌군!”

파-앗!

퍽! 퍽! 퍼---엉!

보통 아리따운 여자 무인의 별호에는 ‘화(花)’가 붙기 마련이었지만, 나하연은 자신의 별호가 어째서 용수권(龍秀拳)이어야만 했는지 증명했다.

콰-광!

팽수의 장과 나하연의 권이 부딪히며, 연무장이 울렁일 정도로 큰 기의 폭풍을 일으켰다.

팽수는 쌍둥이 동생 팽신이나 팽가 다른 직계들처럼 남다른 체격에 타고난 천력도 빼어났지만, 그 큰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성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그 유연성은 단지 신체적 유연성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는데.

쉐에엑---!

일 품(品)을 그리듯 팽수의 주먹이 사방을 찌르고 삼 방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연속기에 나하연이 물러서자, 이번에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듯 사혈로 주먹을 뻗었다.

퍽! 퍽! 퍼-억!

다른 형태(形態)에 다른 기질(器質).

팽수는 팽가의 철혈백사십팔퇴(鐵血百四十八腿)를 가장 완벽하게 익힌 이로, 단지 각(脚)공으로서만이 아니라 수십 가지 방향과 성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힘을 실을 줄 알았다.

신체의 유연함, 무공의 유연함 그리고 무공을 펼치는 사고의 유연함이야말로 팽수의 가장 큰 장점이라.

파파파팟---!

팽수가 뱀이 꿈틀거리듯 반원을 그리며 전진하는 동시에 주먹과 팔꿈치를 자유자재로 내질렀다.

주먹이 닿는 거리와 팔꿈치의 강력함에까지 변화를 주어, 나하연이 자신의 공격에 익숙해지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유연함이라면, 나하연도 만만치 않았다.

뻐--억-!

나하연의 용수권이 작렬하며, 팽수의 팔꿈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주먹이 팔꿈치를 때린 격이었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물러섰다.

그리고 사납게 웃은 나하연이 재빨리 뛰어들어 팽수의 목과 가슴, 골반을 노리며 수십 수백의 주먹을 내질렀다.

“허! 용수팔반(龍殊八半)을 연속기처럼 쓰는군!”

“저런 무지막지한!”

“……끄음.”

용수권 용수팔반은 모든 기운을 응축해서 단 여덟 번의 권을 쏟아붓는 최종장이라 할 수 있었는데, 나하연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연속기로 변환했다.

어마어마한 힘의 소모를 무시한 공격에 무사부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감탄하는 동시에, 무학관주이자 나하연의 숙부인 나무열은 그저 신음만 삼켰다.

그렇게 팽수와 나하연은 서로 물러서거나 피할 생각이 없었고.

비무의 말미.

그들은 당연한 듯 체력을 아끼기보다 서로 가진 힘을 단번에 부딪치기로 작정하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끝장을 보자-!”

“좋은 생각이다!”

이제까지 움직이면서 응축한 힘을 모두 쏟아 내듯 팽수의 건곤신장이 새빨간 기운을 뿜으며 날아가고, 나하연 또한 용의 송곳니를 부술 듯 두 주먹에 황금빛 기운을 두르고 내질렀다.

퍼----엉!

거대한 기운의 폭발.

그리고…….

“파국일세.”

“미친!”

파국이었다.

나하연과 팽수, 두 사람 모두 무너진 연무장 위에 대자로 뻗었다.

무학관 의약방에서 두 사람을 싣고 내려가는 것을 보며 현오와 남궁구, 진화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리되면, 삼파전인가?”

“기권해도 삼(三)등이군.”

“…….”

현오와 남궁구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