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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93)화 (93/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이야기 화(話) : 이전 생엔 없던 이들(5)

뇌화공자(雷花公子) 남궁진화.

사내의 별호에 꽃이 따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와 뇌전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이끌려 중요한 것을 잊곤 한다.

그의 별호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작 백의생의 몸으로 비영문도들을 도륙하고 소가주 남궁진휘를 구한 후라는 것을.

“저, 저하!”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오!”

몸 성히 움직이는 이왕자의 측근들이 기절한 이왕자에게 달려갔다.

측근들은 의원을 재촉했지만, 무학관에서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니면 의원이 달려오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이왕자를 위해 나서 주는 동기들도 아무도 없었다.

결국 도의상 칠왕자의 측근들까지 나서서 이왕자를 수레에 실어 나갔다.

진화 일행은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어째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매년, 연초에 한 놈씩은 확실하게 패고 시작하는구나.”

현오와 남궁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남궁교명은 불쾌한 기색이 숨기지 않았다.

“감히 남궁세가 소공자를 희롱하고도 살아남은 것을 감사해야지. 제 아버지인 오왕이나 양주 자사도 태상가주님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감히!”

진화는 제 일처럼 분노하는 남궁교명이 아직 어색했다.

하지만 아버지인 남궁경옥이 남궁세가의 해상상단을 움직인 터라, 남궁교명은 다른 사람들보다 세상 물정에 밝은 편이었다.

한문태는 왕비 출생의 이왕자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실권 없는 왕부의 수많은 왕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오왕은 황제에게 간신히 구명을 받아 양주 한 귀퉁이에 오왕부를 꾸렸지만, 대부분의 실권은 양주 자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궁세가는 그런 양주의 무력과 지배권을 양분하고 있는 대세가였다.

“괜찮겠나?”

“궐 안에서 오냐오냐 떠받들어지고 살다 보니, 바깥세상은 영 모르는 개구리가 된 모양이지.”

현오의 걱정에 남궁교명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명색이 왕자인데, 황실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어쩌려고요. 괜한 구설에 오르는 것보다 관도회에 올려 징계를 받게 하는 게 나았어요. 게다가 오왕부라면 왕비의 집안이 태복령을 지내는…….”

잔소리를 쏟아 낼 듯하던 당혜군이 진화와 눈이 마주치고 말을 멈추었다.

속이 훤히 비칠 듯 맑은 눈이……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현오가 다시 물었다.

“괜찮겠나?”

“…….”

이번에는 남궁교명도 코웃음을 치지 못했다.

* * *

어차피 뼈가 부러진 것뿐이라 무학관 의약방에서 해결될 치료였지만, 이왕자가 노발대발하는 통에 그와 다친 측근들은 의선문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쾅!

“망할 자식! 그 미친 자식을 당장 데려와! 당장 내 앞에 무릎을……!”

“남궁세가 소공자라고 합니다.”

“뭐?”

칠 왕자 한문혜의 말에 이 왕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양주에서 살면서 남궁세가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이가 있을까.

심지어 제왕검의 위명은 궐 안에도 소문이 자자했었다.

다만 이왕자에게는 무료한 궐에서 듣는 흥미 있는 영웅담이었을 뿐.

이왕자가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흥! 남궁이면 뭐! 천한 무부의 자식 따위, 감히 황실 종친의 몸에 손을 대? 왕부에 알리고, 어마마마께 말해 황제께도 고할 것이다! 이건 반역이나 마찬가지야!”

“…….”

한문혜는 조용히 있었다.

그는 이왕자의 어이없고 지루한 말에 대꾸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이왕자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싶을 즈음, 다시 입을 열었다.

“무학관에 올 때부터 부왕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정의맹과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를 보내는 것이니, 삼 년 동안 철저하게 무림인들의 법에 따르라고.”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냐? 감히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천한 무부들이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건 다 알고 오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이왕자는 제 알량한 덩치와 무력을 믿고 모두를 제압할 거라면 의기양양했었다.

선발 시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겨우 들었을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온갖 영약과 황실 고수들을 초빙하여 수학을 하고서도 말이다.

뭐, 본인은 어처구니없는 독에 당한 것이라며 방방 뛰었지만.

“이 일을 왕부에 어찌 연통하시겠습니까. 전후 사정까지 밝혀야 할 텐데요.”

전후 사정이라 함은, 아침부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남궁세가의 소공자를 희롱하다가 한 사람에게 떼로 당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번만큼은 저도 부끄러운 것은 아는지, 이왕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궁세가에서 일을 따지겠다 들면 더 골치가 아파질 것입니다.”

“천한 무부들이 따지면 뭐!”

“양주 자사가 우리 편을 들겠습니까?”

“……치잇. 그 망할 인간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걸 모르니까, 그 좋은 혈통을 타고나고도 세자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다.

남궁세가가 따지고 들면 양주 자사가 무에 필요가 있을까.

그걸 모르는 이왕자의 불평에 한문혜는 자꾸 비웃음이 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외모와 달리, 남궁세가 셋째 남궁진화가 홍의장이라고 합니다. 형님께서 조금, 성급하셨습니다.”

한문혜가 은근히 주제를 모르고 덤빈 것이라 돌려 말했다.

하지만 이왕자의 안이함은 한문혜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으니.

“의생장은 또 뭐야!”

“……의생장은 기수 중 가장 무력이 강한 자가 맡습니다. 관도회의 자치권이 강한 정의무학관에서, 같은 기수의 기강을 확립하고 즉결적인 징계 권한도 가지는 만큼 꽤 강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뭐야? 그런 게 있었다고? 허! 별걸 다 만들었군. 젠장! 그렇다고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그냥 두란 말이야?”

“왕부에 알린다면 일이 커질 수 있으니, 다른 쪽을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자칫 부왕을 골치 아프게 했다간, 그 불똥이 형님께 튈 수도 있습니다.”

“그, 그건…….”

오왕은 욕심만 많고 비굴한 자였다.

그러면서 지금 이왕자와 같이 권위 의식만 높아, 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양주 자사를 상대하길 꺼려 했다.

오왕에 대해 한문혜처럼 냉정하게 평가하진 못해도, 이왕자 또한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는 부왕의 성격은 알고 있었으니.

“부왕의 말처럼 무림인의 법과 생리를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형님의 의선문 치료를 제갈세가에서 의뢰해 주었다더군요.”

“오! 거기가 있었지. 제갈세가도 무림에선 남궁 못지않게 명성이 높은 곳이니, 이참에 처가 덕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한문혜의 말에 이왕자가 옳다구나 제갈세가를 끌어들였다.

그에 한문혜는 말없이 그저 웃어 보였다.

이왕자의 병문안을 마친 칠왕자 한문혜가 건물을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그의 측근이 곁에 섰다.

“어찌나 멍청한지, 말을 받아 주는 것조차 곤욕이군.”

“수고하셨습니다.”

“그놈이 처가 덕을 보겠다더군. 허! 벌써 제가 제갈세가의 사위가 된 듯 굴어. 그 제갈세가는 지금 세자의 혼처 말고는 관심도 없는데.”

“오왕께서는 세자빈 자리에 무부는 들이지 않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왕께서 주제 파악을 못 하신 덕에 내게도 기회가 온 거지.”

한문혜가 아버지 오왕마저도 싸늘하게 비웃었다.

“것보다 필성, 알아 온 것을 말해 봐.”

이필성은 비딱하게 비웃음을 건 한문혜를 보며 친근한 눈길을 보냈다.

한문혜가 이렇게 본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필성 앞에서만이었다.

이필성은 한문혜의 젖형제이자 그가 유일하게 믿는 신하였기 때문이다.

“남궁진화, 올해로 십육 세가 되었습니다. 천뢰제왕검법을 익혔고 절정을 넘어섰다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죠.”

“다들 아는 것 말고.”

“어리고 고운 외모 덕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작년에도 같은 기수를 이렇게 폭력적으로 제압한 일이 있습니다. 비영문도에 대한 살생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을 보면, 피를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절정의 경지를 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시다시피 남궁진휘를 구할 때와 비영문주를 상대할 때, 경지를 넘어섰다고 했죠.”

“그렇게 어린데 경지를 넘었다라……. 듣기보다 더 어려 보였지?”

“천재죠. 남궁세가에서 애지중지한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더. 남궁진휘와 남궁진혜가 동생을 끼고도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죠. 지난번 제갈소현의 일 때에도, 남궁세가는 제갈세가와 전면전을 각오한 듯했다니까요. 이왕자가 한 짓을 들으면, 남궁세가에서 이왕자를 갈아 마시려고 들 겁니다. 큭큭큭!”

이필성이 웃으며 말했다.

한문혜도 당장 남궁진화를 어찌할 듯 굴던 이왕자를 떠올리며 고소를 지었다.

“무사부 각우의 집단 전투에선 외모와 달리 상당히 냉정하고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상재나 금전 감각은 빈약해서 왕진오 사부에겐 ‘만두 왕자’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남궁세가의 금력을 생각한다면 흠은 아니지요. 의선문과 교류가 깊습니다. 소문주 백소하와 친분이 깊고, 최근 남궁교명과 남궁구와 함께 출입이 잦습니다.”

“의선문에 출입이 잦아? 친분 때문인가?”

이필성의 말을 듣던 한문혜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이필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글쎄요. 별채 검시방 출입을 본 목격자가 있다는군요. 그곳이 단지 친분만으로 출입이 되는 곳인가요?”

한문혜의 눈이 커졌다.

“제갈세가에 잠입해 있던 귀천성 교성흑오대를 최초로 잡은 것도 남궁진화라고 합니다.”

“허!”

한문혜의 눈에 이채가 돌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산촌의 어르신이 제법 좋아할 정보지요? 이제까지 어르신의 일을 방해한 것이 남궁진휘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숨어 있었지 뭡니까.”

“알고 보니 더 재밌는 놈이었구나.”

한문혜는 원치도 않은 병문안을 하며 불쾌했던 기분이 사악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번 일로 이왕자는 일찌감치 제갈세가의 눈 밖에 날 거야. 세자가 아니면, 쓸 만한 대안은 나밖에 없겠지. 스승님께는 조금 있다가 알리자고. 공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한문혜의 새하얀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오후 수련을 위해 남궁세가 장원에 가는 길.

진화가 남궁구를 멈춰 세웠다.

“구, 칠왕자에 대해 조사해 줘. 출신이나 배경, 행적 중심으로.”

“칠왕자? 이왕자가 아니라?”

남궁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진화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왕자는 아무것도 못 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해 봐야 고작 오왕부에 이르는 거겠지.”

“그러니까. 양주잖아. 본가까지 일이 커지는 건, 도련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지 않아?”

남궁구도 이젠 진화가 어떤 사고로 움직이는지 꿰고 있었다.

아니, 꿸 것도 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진화의 모든 지시가 남궁세가와 남궁진휘를 위해 이뤄진 것이었으니.

“현재 황실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제압하는 데에 매달리고 있지. 그래서 감히 역천을 외치는 귀천성의 범람을 막는 데에도 정의맹이라는 방패가 필요한 거고. 황제에게 형제는 잠정적 반역자야. 이제나저제나 빌미만 있으면 오왕의 목을 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양주에서 훌륭하게 귀천성을 막고 있는 남궁세가를 압박하게 두겠어? 오왕이 병력을 움직이고 싶어도, 양주 자사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런 것도 모르는 놈을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놀란 듯 입을 벌리고 진화를 보았다.

“왜?”

“너, 네가 그걸 다 알고 있었다고?”

놀란 부분이 거기였나.

진화가 남궁구를 흘겨보았다.

진화가 어떻게 그걸 모를까.

이전 생에 양주 자사와 오왕부의 알력 싸움은 오왕부의 승리로 끝났고, 때를 맞춘 듯 남궁세가의 본가 역시 귀천성에 습격당했었다.

오왕부의 승리에는 세자 한문혜와 정혼한 제갈지현 그리고 제갈세가의 힘이 컸고, 남궁세가의 몰락으로 제갈세가는 더 큰 힘을 얻었다.

남궁세가의 비극을 거름 삼아 승승장구하는 것들을 향해 얼마나 이를 갈았던가.

이런저런 사실을 말할 순 없었지만, 남궁세가 직계로 양주의 세력을 파악해 놓은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이상한가?”

“아니, 양주 똥개도 아는 건데 도련님이 안다고 이상할 건 없지만. 아깐 왜 모르는 척한 거야?”

“모르는 척한 적 없어. 죄다 멋대로 생각한 것뿐이지.”

진화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당혜군이나 현오, 남궁교명의 반응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입술을 툭 내밀고 말하자 오히려 귀여운 투정으로 보일 뿐이니.

남궁구는 그들이 진화의 표정만 보고 그런 오해를 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안다고 하지 그랬어?”

“오해가 무척 불쾌하긴 하지만, 상대가 방심하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으니까.”

“와. ……도련님은 정말 가차 없구나.”

언제 어떻게 적이 될지 모르는 게 무림 아니던가.

진화는 내내 붙어 다니는 현오에게조차 적당한 경계심을 버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꽃잎 아래에 숨긴 날카로운 이빨.

“흐흐흐, 이래서 내가 도련님을 좋아해.”

“……당장 죽고 싶어?”

“농담도.”

“진혜 누님에게 일러 주지.”

“아, 정말 너무하네!”

진화의 진심에 남궁구가 펄쩍 뛰었다.

“구.”

“왜!”

“칠왕자의 최근 행적을 중심으로 조사해. 주변 인물들, 그리고 지금 데리고 있는 측근들까지. 상세하게.”

진화의 말에 남궁구의 얼굴도 조금 심각해졌다.

“그렇게 알아볼 정도로 칠왕자가 수상한 거야?”

“갑자기 오왕부에서 왜 정의무학관에 왕자들을 보낸 거 같아? 이왕자와 칠왕자, 그 둘을 함께 보낸 이유도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아까 이왕자를 좀 불리하게 만든 것 같거든.”

“……그것까지도 알아볼게.”

“숙부님이나 형님이라면 뭔가 아시는 게 있을 거야.”

어찌 되었든 오왕부는 양주의 한 축을 담당하는 권력을 가진 곳이었다.

본가에서도 아무 언질이 없었는데, 갑자기 정의무학관이라니.

양주를 기반으로 있는 남궁세가로서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인 것만 분명했다.

‘그게 제갈세가와 관련한 것이라면 더욱더. 제갈세가가 오왕부의 손을 잡고 날아오르려고 한다면, 그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꺾어 버려야지.’

진화의 눈빛이 검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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