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이야기 화(話) : 이전 생엔 없던 이들(6)
이왕자나 그 일행이 다친 일은 잠시 화젯거리는 되었으나, 큰일 없이 지나갔다.
사람들 사이에 남궁의 소공자가 이왕자의 뼈를 부러뜨려, 오왕부와 남궁세가 간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소문이 났지만, 양측 모두 소문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왕자로서는 진화의 지나친 행사에 대해 따져 물을 수 있겠으나, 그렇게 된다면 당시 정황이 밝혀져서 유리할 것이 없었다.
진화는 진화대로 팰 만큼 팼으니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의선문 내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가뜩이나 검시방이 있는 별채 쪽 경계가 강화되었는데, 왕자를 비롯한 오왕부의 사람들까지 오가니.
정의맹 인사들은 오왕부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나, 일반 의원들은 왕족에 대한 처치 하나에 목이 왔다 갔다 할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양청현 현위가 다녀가면서, 의선문 의원들의 부담이 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왕자 본인이었다.
“아야! 아프잖아!”
손가락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부목을 풀었던 이왕자가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의원이 뒤로 물러서자, 이왕자가 아픈 손을 잡고 의원을 노려보았다.
“왜 아직도 아픈 거야! 치료를 하는데 왜 안 낫는 거냐고!”
“송구하옵니다. 본디 뼈라는 것이 완전히 붙기 전까지는 단단하게 고정하고 기운을 보해 주는 것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지라…….”
“감히 왕자의 몸에 아무 치료도 하고 있지 않다는 거냐! 이런 방자한 놈이 있나! 네놈이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 어떻게 왕자의 몸을 이따위 평의원 나부랭이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이야! 의선문주를 데려와라! 당장!”
“송구하옵니다. 문주님은 지금 중차대한 일을 맡고 있는지라 당분간 환자를 보는 일에서 손을 떼셨습니다.”
“왕자의 부상보다 중차대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의원의 답이 줄줄이 이어지자, 이왕자는 더 부아가 치미는 듯했다.
하지만 하루 한 번씩 매번 치는 난리에 의원들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의원들 사이에선 이왕자 대응 답안이 나돌고 있을 정도였다.
“오늘도 난리 치던가?”
“말을 말게. 하필 내가 들어가는 때에 난리인지.”
“바빠 죽겠는데 고작 골절상으로 하루 네 번이 웬 말인가. 행패가 따로 없네!”
“귀하신 왕자가 살면서 뼈가 뚫고 나오거나 내장을 손으로 잡아넣어 봤겠나? 그러니 저 정도로 난리를 치지. 쯧.”
전쟁 중인 무림이다.
의선문을 찾는 환자들 대부분이 멀리서 중병을 고치러 찾는 일부를 제외하곤, 죽도록 싸우다가 죽도록 다쳐 오는 경우였다. 지금도 병실에는 일단 인간의 형태를 만들어 놓고 목숨을 하늘에 구명하는 환자가 수두룩했다.
의원들의 입장에서 이왕자는, 상대하기 가장 귀찮은 환자였다.
해 줄 것도 없는데, 쓸데없이 귀해서 자주 찾아야 하는 성질 더러운 환자.
“왜 자꾸 문주님을 찾는지. 우리야 평의원 나부랭이니까 쓸데없어도 가 주는 거지, 천하의 의선이 제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나?”
“우물 안 개구리지. 그러니까 남궁의 소공자에게 호되게 당한 게 아니겠나?”
“허허허허! 그건 좀 고소하네. 에효, 난 이제 저 망나니 왕자가 무슨 말을 하든 입에서 술술 답이 나오는구먼.”
“클클클, 그러다가 묻기 전에 답할라, 조심하…… 이크! 흠흠.”
함께 킬킬거리며 농을 주고받던 의원들이 황급히 입이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하나같이 낭패한 표정을 짓는 것이, 이왕자의 방을 찾은 칠왕자 일행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네, 수고 많습니다.”
“그, 그럼!”
다급하게 인사를 마친 의원들이 자리를 피했다.
“휴우. 하필 거기서 마주칠 줄이야.”
“십년감수했네, 그려.”
“그래도 다행이네. 넘어가 주시는 거 같지?”
“형제가 어찌 저리 다른지. 쯧쯧쯧.”
의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병동을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한문혜와 이필성에게 고스란히 들렸으니.
이필성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왕자 저하에게 안녕하십니까라니! 저런 예도 모르는 천것들이 감히 뉘를 평가하는지, 경을 치시지 그러셨습니까.”
“후후, 괜찮아. 저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어야 이렇게 의선문 출입이 더 자유롭지. 한문태가 사고를 쳐 준 덕에 일이 잘되었지 않나?”
“그건, 뭐…….”
한문혜의 말에 이필성의 기색이 많이 누그러들었다.
실제로 이왕자의 부상 때문에 의선문의 출입이 자연스러워졌고, 의원들이 호의적일수록 잦은 출입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전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아.”
이필성이 밖에서 대기하고, 한문혜가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왕자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또 왔어?”
“오늘은 읽을 만한 거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거 말고 술이나 주전부리나 사 올 것이지, 쓸데없긴!”
“병동이지 않습니까. 출입이 까다로워 측근들 출입도 불가라는데, 술이 되겠습니까? 다음에 올 때엔 주전부리를 챙겨 올 테니, 잠시만 참으십시오.”
“젠장!”
한문혜가 달래는 말에, 이왕자도 성질을 내면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갈세가에서는 왜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야? 내가 다친 걸 몰라?”
“글쎄요.”
모를 리가.
한문혜는 이왕자의 말에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한문혜는 제갈세가에서 이왕자의 부상을 알면서도 찾지 않는 이유가 그에게 완전히 마음이 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제갈세가에 연통을…… 아니다, 됐다. 흥! 제깟 것들이 언제까지 나를 안 찾는지 두고 보지!”
“후우, 제가 한번 전갈을 보내 보겠습니다.”
“하지 말래도!”
소리는 버럭 질렀지만, 이왕자의 입꼬리가 이미 실룩거렸다.
한문혜가 제갈세가에 연통을 보내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체면은 차리면서 한문혜를 제 뜻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문혜는 그런 이왕자의 속을 훤히 보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무공이 모자라니, 오후 수련을 가득 채워야 해서요.”
“흥, 그러니까 미리 수련을 해 두었어야지. 너무 애쓰지 마. 무공이라는 게, 타고난 무재가 반이니까.”
이왕자의 말에 한문혜의 입매가 살짝 굳었다.
‘잘난 무재를 타고나서 네놈처럼 밥 먹듯 영약을 주워 먹었으면, 남궁의 어린놈에게 얻어터지진 말았어야지. 타고난 건 혈통밖에 없는 주제에……!’
특별히 자랑하거나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서 더 화가 났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문혜를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
제게 등을 보이며 침상에 눕는 이왕자를 보는 한문혜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럼 쉬십시오.”
“아아.”
이왕자가 한문혜가 가져온 서책을 펴며, 그를 보지도 않고 배웅했다.
‘그래. 네 어리석음이 결국 나를 돕는 것이니.’
한문혜는 그런 이왕자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그린 듯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의선문을 나와 무학관으로 돌아가는 길.
이필성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한문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수업이 시작한 지 꽤 되었습니다. 제갈세가에 연통을 보내는 것이 어떨는지요? 본래, 오후 수련 때에 제갈세가에 가기 위해서, 이왕자 측이나 저희나 따로 밖에 거처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이왕자도 다쳤는데, 여태 연락이 없는 것은 이상합니다.”
이필성의 말에 한문혜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이왕자와 날 평가하다가, 이왕자에게 실망을 했다고 여겼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건, 좀 이상하지? 이제 와서 오왕부와 척질 것도 아닐 테고.”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번 혼사에 더 매달리는 쪽은 제갈세가입니다.”
이필성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웃어 보였다.
그에 한문혜도 동조했다.
제갈세가가 아무리 대단한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오왕부에서 들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이필성이 한쪽을 가리켰다.
“어, 저기!”
“음?”
“제갈세가 가주 아닙니까?”
“그렇군.”
한문혜와 이필성이 제갈가주를 알아보았다.
제갈가주는 곧바로 별채 쪽을 향하며, 그들이 있는 쪽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다.
“바빠 보이는군요. 역천비록의 해석을 맡고 있다더니, 그 일로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해례본이 없어졌으니, 제갈가주가 해례본을 다시 작성하지 않는 이상 연구가 진행될 수 없어서 그렇겠지.”
이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문혜의 눈이 제갈가주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좇았다.
“저쪽이 열심히 연구해서 뒷부분까지 해석을 한들, 우리야 나쁠 것은 없지. 스승님께서는 역천비록의 뒷부분을 가져왔으면 하시지만…….”
적호단원들이 별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제갈가주조차 패를 확인하는 것이 보였다.
패를 가지지 않은 이상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삼엄한 경비.
한문혜는 저곳을 다시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곳은 정의맹이 지척인, 적진의 한복판이니 말이다.
“제갈세가에 우리가 먼저 연통을 보내도록 하지.”
“예.”
한문혜의 말에 이필성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한문혜는 의선문을 나오며 다시 한번 별채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우리 대신 많이 연구해 두라고. 후후후.’
* * *
별채를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부류였다.
역천비록과 관련된 사람과 의선의 환자.
진화는 의선의 환자 중 하나였다.
“이상합니다. 분명 없어진 혈맥은 거의 동일한데, 맥이 뛰는 것은 다릅니다. 완전히 같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다시 진화에게 맥을 부탁한 백소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맥이 뛰는 것이 다르다니, 혹시 내공심법 때문은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천뢰제왕신공은 음과 양의 조화를 깨뜨린다고 했으니. 하지만 그것으로는 갑작스러운 폭주나 심마에 빠뜨려서 폭력성을 증가시키는 증상들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심마에 빠뜨려서 폭력성을 증가시킨다고요?”
“약에 쓰인 약성들을 조합하면, 혈맥의 박동과 흐름을 고조시키는 것 외에도 심신미약과 실혼성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 의선께서는 단 공자나 제갈 공자의 폭주로 보였던 증상이 실은 심마에 빠져 폭력성이 증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판단하셨습니다.”
“실혼이라…….”
백소하의 말에 진화는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하게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 아니라, 희미한 잔상이 스쳤다고 할까.
‘갑자기 그곳의 제단이 왜 떠오르는 거지? 구덩이. 검은 물인 있는 곳…… 대체 왜 그딴 것들이 생각난 걸까?’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면서, 진화에게 남궁세가에 오기 이전 기억은 더 멀어졌다.
진화는 정확하게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계속 어렴풋한 잔상만 떠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같은 그림이지만 어쩐지 제가 죽을 때의 그곳이 아닌 느낌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 기억이 아니야. 그보다 훨씬 이전…… 마치 내가 거기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길 보고 있는 듯한……!’
다시 한번, 진화의 머릿속에 기억이 떠올랐다.
이전보다 조금 더 또렷해진 채로.
바위가 열리고, 까마득한 구덩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거기에 검은 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뿐이었다.
직접 본 것은, 그 앞에 줄지어 선 살색…… 사람?
“소공자. 소공자!”
갑자기 들린 백소하의 목소리가, 생각에 빠진 진화를 깨웠다.
“아! 뭐, 뭐라 했지요?”
진화가 저도 모르게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기억이 다시 흐려지고, 불길하고 기분 나쁜 느낌만 남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그리 불러도 못 듣습니까?”
“아. ……뭔가 떠오르는 듯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뭔가가 떠올라요? 혹시 이전의……?”
백소하의 물음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소하의 안색이 흐려졌다.
이전의 기억이라 하면, 귀천성에 붙잡혀 있을 때를 말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화가 귀천성에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 어쩌면 남궁세가 가족들보다 잘 아는 이들이 의선과 백소하가 아니겠는가.
백소하는 저도 어릴 적, 저보다 훨씬 어린 진화가 어떤 끔찍한 꼴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곤 안쓰러운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억지로 그때의 일을 떠올리실 것 없습니다. 제갈가주께서 해례본을 거의 다 작성하셨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면 자연히 알게 될 일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주 어릴 적이고 또……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니,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기억을 헤집으면서 왜곡될 가능성도 있고요.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니, 인내심을 가져 보지요.”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저를 타이르는 백소하의 말에, 진화가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물론 숙소로 돌아가면 다시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하겠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백소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진화의 모습에 어린 동생이 있으면 이렇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소식은, 어쩌면 연구보다 먼저 해약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해약이요?”
“좋은 사례의 실…… 환자들이 넷이나 있다 보니.”
분명 실험체라고 말하려다 눈치를 본 것이다.
백소하가 눈초리가 가늘어진 진화의 시선을 피했다.
“약성들이 일찍 밝혀지면서, 곧 해약을 만들 수 있을 듯합니다. 환자들 예후도 좋으니, 깨어나면 해약과 함께 치료가 더 빨라지겠지요.”
“아, 그거 다행이네요.”
백소하의 말에 진화의 시선이 침상 쪽을 향했다.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이제 종종 의식을 찾고 깨어나는 단승호와 아직 의식이 없는 제갈후현이 보였다.
‘제갈후현이 깨어나고, 해약을 가지고 치료를 한다라…….’
이전 삶과 달리, 제갈후현이 살아남았다.
진화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진화와 남궁세가 덕에 어쩌면 몸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교명, 그 친구의 도움이 컸습니다. 교명은 증상이 경미했으니, 해약이 아니라도 원상회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하하.”
첫 만남부터 교감을 나누더니, 백소하가 남궁교명의 회복을 제 일처럼 기뻐했다.
진화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진화의 시선이 제갈후현에게 닿았다.
“……예, 결과가 나쁘지 않을 듯하여 다행이네요.”
제갈후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며, 진화가 해사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