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98)화 (98/425)

남궁마제

볼 진(診) 그림 화(畵) : 화룡점정, 최종 제물(4)

푹.

“어, 어떻게……!”

불시에 들어온 칼을 보며 중년의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다.

그를 찌른 사람은 다름 아닌 오래된 친우였다.

“너야말로 왜 따라온 거야!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친우는 독한 눈으로 쓰러지는 중년인을 노려보며, 모든 것을 중년인의 탓으로 돌렸다.

덜덜덜 떨리는 손은 그의 죄책감을 보여 주는 듯했지만, 독하게 뜬 눈빛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중년인의 친우는 그를 죽이고 안도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중년인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찰당 소속 양영진.”

“헉! 무, 무슨!”

친우를 죽이고 안도하던 사내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검은 무복의 감찰당원들이 그를 포박했다.

“이게 어떻게 된…… 자, 잠깐, 오해요! 이건, 이자가……!”

“내가 뭘 말인가?”

당황하던 양영진이 몸을 뒤틀며 소리치는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중년인이 일어났다.

“헉! 너, 너! 어떻게……!”

그때, 감색 무복을 입은 냉막한 인상의 사내, 감찰당주 견강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견강위를 본 양영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표정만으로도 누가 죄인인지 드러났다.

“괜찮나?”

“미리 조처해 주신 덕에 괜찮습니다.”

견강위의 물음에 답하는 중년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먼저 발고부터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리를 저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한 것이 모두 쓸데없는 짓이더군요.”

“말하지 않았나. 귀천성의 것들은 그저 인면을 가진 수심자들뿐이라고.”

“……!”

중년인과 견강위의 대화로 상황을 파악한 양영진은 경악한 눈으로 중년인을 보았다.

“너, 너……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귀, 귀천성이라니! 아닙니다-!”

귀천성.

그 단어에 견강위가 얼마나 잔인해지는지는 감찰당 소속인 그가 가장 잘 알았다.

겁에 질린 양영진이 온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곁에 있던 감찰당원이 수혈을 짚자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

견강위가 얼음보다 차고 시린 눈으로 늘어진 양영진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 데려가라.”

“충.”

감창당원들이 기절한 양영진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잠깐.”

견강위가 그들을 불렀다.

“지금 정의맹에 숨은 첩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다. 감찰당에서 잡힌 놈들은 섞이지 않도록 따로 분리해 놓아라. 지난번 복수는 해야지.”

“충!”

견강위와 감창당원들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지난날, 귀천성도를 잡고도 첩자에 의해 감찰당 뇌옥이 습격당하면서 많은 동료들을 잃지 않았던가.

바다같이 쌓인 원한에 모래 한 삽의 원한을 더한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자존심에 상처받은 감찰당 귀신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정의맹이 벌집을 쑤신 듯이 부산했다.

갑자기 빈번하게 움직이는 적호단과 각 부처마다 하나둘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들의 부재를 느낀 후에야, 사람들은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만큼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부 첩자들은 얼추 추려 낸 것 같군.”

“돈만큼 인간의 속내에 솔직한 것이 없으니까요.”

“개방에서도 수상쩍은 행보를 보인 이들을 걸러 냈더군.”

제갈가주가 쪽지로 모인 정보를 하나하나 문서에 옮기고, 남궁진휘는 그걸 다시 쪽지에 옮겼다.

제갈가주의 쪽지는 개방에서 보내온 정보였고, 제갈가주는 그것을 취합해서 문서로 남겼다.

남궁진휘는 취합된 문서에 있는 총군사의 판단에 따라, 각각의 무단에 명령을 옮겼다.

“백매단이 대기 중입니다. 하나하나에 붙여 둘 생각입니다. 부군사가 첩자였을 줄은…… 이번에 가주님께서 빨리 알아채고 모든 문서와 명령을 대조해 보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남궁진휘가 슬쩍 제갈가주의 눈치를 보았다.

“그나저나 의선문 출입자들 중 의외의 인물이 있더군요.”

“칠왕자 말인가? 확실히, 그 형제가 매일 찾을 정도로 우애가 좋진 않지.”

제갈가주가 남궁진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그리고 남궁진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제갈가주를 보았다.

애초에 오왕부를 끌어들인 곳은 제갈세가였다.

그런데 서슴없이 칠왕자를 의심하는 제갈가주를 보자니, 대체 그의 의도를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첩자들은 일거에 소거(掃去)하지.”

“무고한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가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리고 스르륵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 어리군. 거기에 무고한 자는 없다.”

“……!”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있어, 죄의 경중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작은 것을 간과한 대가 또한 아군의 죽음으로 돌아오거든. 잊지 말게. 가장 중요한 건 제갈무진을 찾는 것이네. 일거에 죽여야 그림자가 움직이고, 제갈무진이 움직이는 걸세.”

분명한 목적과 과감한 움직임.

귀천성과의 전쟁을 이끄는 정의맹 총군사로서 제갈가주의 본모습이었다.

* * *

휙. 스윽.

이필성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장사하는 사람들, 아까도 자신의 뒤에 있던 사람들, 새로 가게를 오가는 사람들까지. 조금 전 돌아보았을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필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 풍경을 보고, 기억했다.

그리고 일부러 조금 더 걸어갔다.

‘지금!’

이필성이 갑자기 한쪽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늘 다니던 길이라 어느 지점에서 급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필성은 일부러 이쪽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골목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포목점 주인, 경단 가게 주인, 지게꾼…… 그리고 길을 가던 사람들.’

“하아. 그냥 예민한 거였나?”

이필성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최근 칠왕자의 비밀스러운 심부름이 잦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라 생각했다.

“후우.”

다시 숨을 고른 이필성이 주변에 이상해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저자로 나갔다.

누군가에게 눈에 띄어서 좋지 않은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필성이 군데군데 숙소로 돌아가는 백의생들과 함께 정의무학관으로 이동했다.

현혜관.

지난해 지금 동의생들의 숙소였던 이곳은, 숙청관과 인내관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삼층 건물이 팔각원형으로 지어진 모습도 숙청관, 인내관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는데, 한창 전쟁 중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요새처럼 지어졌기에, 처음 오왕부에서 두 왕자가 온다고 했을 때 안전 면에서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세월에 의한 노후화된 가구와 불편한 구조, 그리고 식당에서 먼 거리는 왕자들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왕자님.”

“늦었군.”

칠왕자 한문혜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필성을 타박했다.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가 입버릇일 정도로 세심한 것에도 예민한 한문혜였다.

특히 다른 황족들과 달리 유별나게 시간에도 민감했다.

“송구합니다. 혹시 미행이 있는가 싶어서 길을 돌아왔습니다.”

“미행?”

이필성의 변명 아닌 변명에, 한문혜가 표정을 풀고 물었다.

“미행은 없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요. 제가 좀 예민해졌나 봅니다.”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어. 다만, 느낌이 이상했다고? 수상한 이가 없는지 확인은 했고?”

“예. 두어 번 길을 돌고, 숨어서 사람도 확인했습니다.”

“……지붕은?”

“예?”

“검은 까마귀 놈들도 지붕으로 다니잖아. 지붕은?”

“아, 확실하진 않지만 누가 있었던 것 같진 않습니다.”

이필성이 자신 없는 태도로 말하자, 한문혜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을 확인할 때도 전부 확인해야지.”

“송구합니다.”

“됐어. 어차피 흑오대 놈들과 같다면 네 경지로는 알아채지도 못했을 테니.”

대체 잘못을 했다는 건지, 안 했다는 건지.

이필성은 그저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자 혼자 고심하는 듯하던 한문혜가 종이와 지필묵을 가져왔다.

“미행을 느꼈을 때, 본 것을 적어 보거라.”

“아, 예.”

한문혜의 명에, 이필성은 불필요한 짓이라 생각하면서도 붓을 잡고 기억을 떠올렸다.

현승의 밑에서 기록관을 하는 아비를 둔 이필성은 평소에도 기억력과 그림 실력은 자신이 있었다.

포목점, 작은 식당 두 개. 그 앞의 경단 가게.

주인들, 손님들…… 마실 나온 듯 곱게 차려입은 여인, 뛰어다니는 아이.

거리에 나와 장기판을 펴고 앉은 노인들, 동냥하는 거지.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복귀 중이던 낯익은 정의무학관 관도생들까지, 풍경과 함께 사람들의 생김, 복장도 자세히 그린 이태성이 붓을 놓았다.

휘익.

한문혜가 빼앗듯이 그림을 들었다.

한참 그림을 노려보다가, 뭔가를 발견한 듯 눈매를 좁혔다.

“허!”

코웃음을 친 한문혜가 신경질적으로 그림을 내려놓았다.

“뭐, 뭔가 이상합니까?”

“여기…… 이 거지를 봐라.”

“예?”

“무림엔 거지들만으로 이뤄진 문파가 있다. 여기 이 거지의 허리를 봐. 매듭이 보이지? 개방의 거지다. 미행을 당했구나.”

“……!”

한문혜의 말에, 무림의 사정에 어두웠던 이필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늘은 고향에 전갈을 보내는 지극히 사적인 외출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놈들이 며칠을 널 따라다녔는지 모르지.”

“아닐 것입니다. 이전에는 저하와 함께 다녔고, 시선을 느낀 것도 오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

이필성의 말에 한문혜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개방 거지라면, 필성이 느낄 정도로 어설프게 미행했을 리가 없는데, 필성을 쫓은 것이 아닌가?’

긴가민가.

불안하면서도 아닌 듯 애매한 느낌이었다.

“청림에 가는 놈들을 늘여야겠다. 그 산도적 같은 놈에게 연락해서 도우라고 해.”

“뇌평 단주의 도움을 받으시려고요?”

“놈이 몹시 하고 싶어 하는 걸 시켜 주는 것뿐이야. 놈이 내게 감사할 일이지.”

“하고 싶어 하는 것이요?”

“무림의 잘난 후기지수들을 찢어 죽이는 것. 때마침 놈이 싫어할 만한 놈들이 다 모였잖아. 후후후.”

굶주린 맹수에게 제일 맛있는 고기를 던져 주는 격이라.

‘죽어 가면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입을 나불거릴지 보자고.’

한문혜가 머릿속으로 잘난 듯 떠들던 이들이 찢어발겨진 광경을 상상하며 즐겁게 웃었다.

* * *

백의생들의 첫 평가가 한창 진행되던 때에, 홍의생들의 첫 평가도 시작되었다.

장소는 청림(靑林).

이전에 평가지였던 편백림처럼 숭산 자락에 있는 인공 숲 중 하나였다.

청림은 계절과 상관없이 푸른 전나무로 조성된 곳으로, 전나무의 푸른색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청림은 좀 더 험한 산속에 위치하고 이용할 수 있는 구조물이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환경으로 설정된, 실습에 나가기 전 청의생들을 위한 최종 평가지였다. 청림의 청(靑)은 청의생들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그런데, 그 청림을 붉은 옷을 입은 홍의생들이 오르게 되었다.

“이게 다 네놈들의 업보다! 온갖 편법과 속임수, 시설 파괴의 전례를 남겨 놓아서, 네놈들 탓에 무사부들이 올해 백의생들 수업 준비에 차질을 빚었단 말이다! 그 업과 과오에 대해 두고두고 갚게 해 주지!”

“…….”

부당했다.

애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은 무사부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수석 무사부라는 자가 저런 차별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여서야…….

진화가 용기 있게 항의하려고 손을 드는데, 어째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팽가 쌍생 형제가 진화의 팔을 꾹 눌러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무슨 짓이지?”

진화의 물음에, 대답은 현오에게서 들려왔다.

“청림이 안 되면, 남은 숲은 오림(悟林)밖에 없네.”

“그런데요?”

“오림은 대대로 소림백팔나한의 최종 시험을 치르는 곳이지. 장담하건대, 선발 시험에서 보았던 기관진식은 어린아이 장난이라 말하게 될 걸세.”

현오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심각한 눈빛으로 진화를 쏘아보았다.

‘눈치 챙겨!’라는 그들의 눈빛이 아니더라도, 진화는 벌써 팔에서 힘을 풀었다.

성실하게 무학관 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사서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좋아. 잘 생각했네. 홍의생이 일으킨 사건의 반절은 자네들의 것이니, 앞으로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게.”

“요주의다.”

“각성을 요구한다.”

현오와 팽수, 팽신 형제의 눈길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억울한 표정으로 진화를 향해 눈짓했다.

진화야말로 몹시 억울했다.

남의 독을 훔쳐 먹은 사람이 누군데…….

어쨌든 갑 조 모두, 이번엔 제발 원활한 평가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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