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00)화 (100/425)

남궁마제

볼 진(診) 그림 화(畵) : 화룡점정, 최종 제물(6)

“막아라! 관도생들을 지켜라!”

“합!”

각우의 처절한 외침과 함께, 소림 나한들이 봉을 들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무 봉.

관도생들의 평가에서 다치는 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 가져온 나무 봉으로 이제 적들과 싸우고, 관도생들을 지켜야 했다.

“나한진을 짜라! 관도생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쉐에에에엣--!

쉐엑-!

그들의 은거지 사방, 빽빽이 둘러싼 나무 위로 뭔가가 지나가는 소리.

“헙!”

파—앗!

나무 봉을 던져 본 각우는, 그것이 나무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고 터져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도망하지 못하도록 현홍사를 친 것이다.

“놈!”

각우가 노성과 함께, 빠르게 백보신권을 뻗었다.

퍼-억! 펑! 펑!

팔괘를 그리는 보법이 세찬 계곡물처럼 흐르고 주먹에서 뻗어 나간 권기가, 그사이 겁에 질린 관도생들을 노리던 교성흑오대의 가슴을 터뜨렸다.

죽음을 만드는 검은 가면을 쓴 까마귀들.

“겁먹지 마라! 검을 들고 싸워라!”

각우의 외침에 관도생들이 정신들 차리고 검을 뻗었다.

죽음의 공포는 이겨 내기 힘겨웠지만, 그들 또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선발시험부터 지금까지, 그들 또한 전쟁을 위해 수련한 강호의 무인들이었다.

“타핫---! 나한들을 도와야 해!”

“앞으로 나가지 마! 나한들을 보조한다!”

피 흘리는 동기의 시체를 넘어, 호명기와 당위의 외침에 따라 관도생들이 나한진 속으로 들어갔다.

“크아아앗! 죽어!”

푸-욱!

쉐에에엑-!

관도생들이 나한들을 대신하여 나한진 속에 들어온 교성흑오대를 죽였다.

누군가는 공포, 누군가는 복수심, 또 누군가는 투기를 발산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강호의 은원과 귀천성과의 전쟁을 알아 가고 있었다.

“허! 애송이들이 제법 하는구나.”

나무 위에서 아래의 광경을 보고 있는 사내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상기된 눈썹, 희열 가득한 눈동자, 웃고 있는 입꼬리.

교성흑오대에 대항해 버티고 있는 각우와 나한들, 그리고 정의무학관 홍의생들을 보며, 사내는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좀 더, 좀 더! 더 발버둥 쳐 보라고!”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흥분에 고조되고, 그런 목소리에 반응하듯 전장이 소리가 격해지고 피비린내가 짙게 퍼져 나갔다.

퍼-억! 펑! 펑!

각우는 나한진을 유지하기 위해 무너지는 곳마다 움직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쇠사슬에 힘없이 나무 봉이 잘려 나가고 죽어 가는 나한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촤르르르르---.

잔인한 소리가 나한들의 다리를 옭아서 끌고 올라가고, 끌려간 나한을 검은 까마귀들이 덮쳤다.

푹. 푹. 푹.

“커헉!”

잔인한 소리와 함께, 난도질당해 죽은 나한의 시체가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의 눈에 공포가 박혀 들었다.

“으으!”

“무, 물러서지 마! 나한들을 지켜!”

“똑바로 봐! 우리 때문에 나한들이 죽게 해선 안 돼! 나한들이 우릴 지키고, 우리도 나한들을 지킨다!”

공포심을 이겨 내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며 소리를 질렀다.

촤르르르르---.

다시 잔인한 소리가 그들을 파고들었다.

“안 돼!”

호명기가 사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르라니 피어오른 푸른 아지랑이.

검사가 피어오른 호명기의 검이 사슬을 잘랐다.

겁에 질려 끌려가던 나한이 호명기를 보고, 투기를 발산했다.

“하압!”

완전히 끊어 내진 못했지만 반쯤 부서진 사슬쯤은, 나한의 기합성과 함께 끊겼다.

“가요!”

호명기가 나한을 도와 다시 나한진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는데 불길한 소리가 땅을 기어 호명기의 발을 붙잡았다.

착. 착.

“……!”

호명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검은 까마귀들이 그를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죽는다!’

어머니, 아버지!

죽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형!

제 위를 덮치는 까마귀들의 발톱처럼 휘어진 검을 보며, 호명기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닥칠 고통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쉐에에엑----! 쉐엑!

“눈떠, 인마.”

“……구?”

“검을 들어라, 끝까지.”

“남궁교명!”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검은 까마귀들이 피를 뿌리며 힘없이 쓰러지고, 홍의생 관도복을 입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남궁구가 호명기의 발목에 걸린 사슬을 끊어 내고 그를 일으켰다.

그때까지 남궁교명이 주변에 있던 교성흑오대원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둘을 지켰다.

“어, 어떻게……?”

“묻기 전에 뛰어!”

얼떨떨한 호명기가 주변을 보기도 전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에게 이끌려 나한진 쪽으로 뛰었다.

그리고 호명기의 눈에, 피처럼 붉은 홍의생 관도복을 입은 이들이 나한진에 앞서서 교성흑오대와 싸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파지지지지직----!

퍼---엉!

눈부신 푸른 번개가 사방을 관통하고, 나한진을 노리던 교성흑오대원들이 죽음의 사슬에서 튕겨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 *

“싸우는 소리!”

“피 냄새!”

남궁구와 현오가 먼저 교성흑오대의 습격을 알아챘다.

“전투준비! 내 뒤로, 진형은 그대로 유지한다. 가자!”

진화가 기감을 펼치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챙! 챙!

모두 검과 창,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진화의 뒤로 남궁구와 나하연, 이선에서 현오와 남궁교명, 당혜군, 관서겸, 제갈상, 마지막에 팽수, 팽신 형제가 따랐다.

“오십 장 앞! 긴장해라.”

“아아!”

자연스러운 하대와 명령.

위급한 상황에 진화는 침착하고 신속한 명령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챙-!

진화가 검을 빼 들었다.

“이십 장 앞, 적이다!”

쉐에에엑---!

푸른 검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갔다.

타-앙! 탕!

쿠—웅!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 그리고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부님, 사형----!”

시야로 들어온 광경에, 현오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에 진화가 더 속도를 높였다.

파파파파팟---!

채-앵!

그들을 향해 날아든 쇠사슬을, 진화가 검으로 베어 냈다.

파지지지짓-!

쇠사슬 하나에도 뇌전의 기운을 실어 베었기에, 단지 사슬이 끊어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파팟--!

사슬을 타고 올라간 뇌전이 그것을 잡고 있는 교성흑오대원의 손을 지졌다.

촤라라라락!

그들이 놓친 사슬이 살아 있는 생명처럼 파드득거리며 날뛰어, 나뭇가지 위에 있던 교성흑오대원들은 땅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하얀 광휘가 그들을 덮쳤다.

“이놈들---!”

퍼-엉!

백보신권이 날아가 교성흑오대원을 때리고, 그 뒤로도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날린 푸른 검기가 살아 있는 이들을 베었다.

그리고 그 뒤로 곧바로…….

파지지지지직----!

나무 사이로 걸려 있던 끊어진 현홍사들이 춤을 추며, 남아 있던 모든 교성흑오대원들을 무참하게 베었다.

“들어가서 나한진을 보호해라!”

진화가 뚫어 놓은 길을 따라, 일행이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그때…….

사아아아악---!

진화의 기감으로 섬뜩한 검기가 날아드는 것을 느껴졌다.

파지직!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뇌전이 내리치고, 진화의 검에서 벼락이 뿜어졌다.

파파파파팟! 퍼---엉!

“헛!”

쇠사슬 끝에 달린 갈고리같이 생긴 칼날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쇠사슬을 쥐고 있던 사내가 칼날 조각을 황급히 피했다.

“아우, 놀라라!”

전혀 놀라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니, 오히려 장난스럽게 들렸다.

실제로 진화 일행까지 모두 모인 광경을 본 사내는,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이제 먹잇감이 전부 모였나?”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나무에서 내려갔다.

* * *

나무에서 내려온 사내를 보며, 남궁구가 물었다.

“녹림이 배신한 건 아니지?”

“교성흑오대다.”

진화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게 뭔데?”

“제갈무진의 수하들.”

“아! 근데 녹림이랑 편 먹었나?”

“…….”

이 상황에 웃기지도 않는 대화를 나누는 제자들을 보며 각우의 입에서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구레나룻에서 수염까지 풍성하게 이어지는 거친 털과 말의 갈기같이 늘어진 머리칼, 너저분한 복장을 한 사내를 보면 영 글러 먹은 의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의 뒤로 빼곡하게 자리한 검은 가면을 쓴 교성흑오대의 모습은, 녹림 따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다만 그들 앞에서도 여유를 부리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습게도 제법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진화와 남궁구의 대화에, 나한들과 홍의생들도 잠깐 긴장을 푼 모습이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각우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혀, 현묵 사형…… 현정, 현해 사형까지!”

만신창이가 된 나한들에게 다가간 현오가 자리에 없는 이들을 찾았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 있는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그 주위로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나한들의 주검까지…….

“사, 사형들!”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 차는 것과 동시에, 붉어진 눈에 눈물이 고였다.

“현오야, 정신 다잡거라!”

각우가 현오를 향해 소리쳤다.

나한들 또한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오를 보았다.

“가만, 가만두지 않을 거다. 모두 똑같이, 똑같이 갈기갈기…….”

“현오, 이노-옴!”

주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주검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오를 향해 각우가 소리를 질렀다.

현오의 흔들리던 동공이 또렷하게 돌아오고, 고개가 각우를 향해 돌아갔다.

“정신 차리거라. 살아 있는 이들을 지켜야 하느니.”

“……예!”

사부 각오의 단호한 말에, 현오가 울음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관도복 윗도리를 벗고, 나한진 사이로 들어갔다.

사형제들이 잠시 백팔나한으로 돌아온 현오를 환영했다.

남궁구와 웃기지도 않는 대화를 나눈 것은 다분히 일행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진화가 왜 이 눈앞의 사내를 못 알아보겠는가.

교성흑오대 부대주 승현(蠅絃) 뇌평.

파리잡이거미의 줄. 별호처럼 시체를 조각조각 내어 공중에 매다는 악취미로 악명이 높았던 거미귀신.

교성흑오대가 아니라 녹림의 부채주같이 생긴 생김새로, 현란하고 세심하게 현홍사를 다루던 자였다.

이전 생에서 내내 진화를 쫓던 자.

명문 정파 후기지수에 대한 원한이 유독 깊던 자.

교성흑오대를 이끄는 듯한 사내가 앞으로 나오자, 각우가 긴장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진화에게 눈길이 닿았다.

사고를 치기로도 역대급이지만, 가진 무력으로도 역대 최고라 불리는 홍의생들.

그중에서도 합류한 홍의생들은 하나같이 백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기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절정을 넘어선 무위를 선보인 바 있는 이들.

어리고 미숙하지만, 검을 단단하게 쥐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한들의 앞에 선 그들을 보자니. 각우는 새삼 금룡일권 나무열을 따라 정의무학관을 만든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 최고라는 홍의생들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남궁진화.

말간 얼굴의 어린 소년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행의 앞에 서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나서도 되겠군.’

이제까지 홍의생들과 나한들을 지키느라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던 각우가, 죽은 제자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기다려라. 극락 왕생길에 저들을 발받침으로 던져 주마.’

“까드득!”

각우가 앞으로 나섰다.

“나한들은 관도생을 지켜라!”

“오옴!”

“홍의생들은 모두, 나한들을 지키며 싸운다!”

“충-!”

시키지 않아도, 홍의생장의 명에 답하는 홍의생들의 대답이 우렁찼다.

아니 그렇겠는가.

자신들의 홍의생장의 검에서 푸른 번개가 번뜩거리고 있는데.

진화의 번개를 보는 거미귀신 뇌평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재밌게 나오는군. 모두 찢어 죽여라---!”

뇌평의 명과 함께 비처럼 교성흑오대가 쏟아져 내려왔다.

“모조리 죽여 주마!”

각우의 양팔에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금강야차신공이라 불리던 마라승 각우의 권기가 밀려드는 교성흑오대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진화는 뇌평의 앞을 막아섰다.

“하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누가 할 소리인데.”

진화가 뇌평을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웃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전 생에 너무 곱게 죽여서 아쉬워하고 있던 자가 제 발로 진화의 앞에 나섰으니 말이다.

* * *

“이런, 꼬리를 달고 왔구나.”

스르르르. 툭.

제갈무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제갈세가의 그림자가 그대로 무너졌다.

물이 쏟아진 것처럼, 조각조각 떨어진 몸에서 금세 피 웅덩이가 생겼다.

“제갈성진……!”

한 자, 한 자 곱씹듯이 제갈가주의 이름을 뱉은 제갈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책들을 챙겼다.

그리고 남아 있는 죽간들과 문서, 소박한 자신의 처소를 둘러보다, 이내 냉막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전부 불태워라.”

제갈무진이 밖으로 나가고, 잠시 뒤 그의 거처에서부터 불길이 올랐다.

불길은 이내 산 능선 전체에서 타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