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화룡점정의 의미(2)
홍의생들의 평가지에 다시 교성흑오대가 나타난 일.
그리고 그 교성흑오대의 습격을 마라승 각우와 나한들, 남아 있던 홍의생들만으로 막아 낸 일은 정도 무림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아직 관도생에 불과한 홍의생들이 귀천성의 이름난 무단과 맞서서 물리쳤다는 것이, 잠잠했던 정도 무림에 향상심을 일깨웠다.
“‘홍의생들을 무기를 들어라! 사특한 귀천성 무리에 맞서 나한들을 지켜라!’ ……캬아! 우리 공자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홍의십수(紅衣十手)를 이끌었다는 거 아니야!”
“뇌화공자 말이야?”
“그래! 그뿐만 아니라 홍의십수가 죽인 교성흑오대 놈들이 수십 명이라는군.”
“정도 무림의 홍복이네, 홍복십수라고!”
사람들은 두 명만 모여도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이번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였던 열 명의 홍의생을 홍의십수라 부르며, 새로운 고수들이 나타났다며 칭송했다.
하지만 기적적인 승리로 떠들썩한 이면에, 희생된 홍의생들과 나한들에 대한 애도가 묻혀 버리는 듯했다.
양청현에서 또다시 귀천성에 대대적인 공격을 당했다는 것에 정도 무림 전체의 사기가 흔들릴 수 있었다. 정의무학관에 제자를 맡긴 문파들은 불안에 떨며 항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을 영웅담으로 희석시키려는 정의맹의 의도가 다분했다.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와중에, 가장 축제 분위기를 즐겨야 할 당사자들은 조용히 침잠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흰색 안장을 찬 홍의생이 소림 나한들을 위한 향을 피우고 인사를 전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 있던 홍의생으로, 바로 옆에서 친구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던 모습을 본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지켜 주기 위해 몸을 바쳐 벽을 세워 주었던 나한들의 죽음을 잊을 순 없었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죽은 홍의생들의 장례식과 나한들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흐읍. 읍. 사형……. 흑흑.”
사방에선 홍의십수다, 홍복이다, 칭송 중인데, 그중 한 명인 현오는 체면이고 뭐고 던져 버리고 통곡하는 중이었다.
“현오야, 그만 울거라.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지 않았더냐. 사형들과의 만남이 여기까지 허락된 것뿐이다. 다 부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흐어어엉. 그런 게 어딨어요? 허어어엉! 나는 아직…… 크읍. 덜 만났는데……. 크허엉! 으어어어엉! 그걸 왜 부처님 맘대로 정한단 말입니까? 우어어엉, 현해 사형-! 현정 사혀어어엉---!”
불제자로서 가장 망극한 발언까지 쏟아 내며, 현오의 통곡 소리가 더 커졌다.
그를 달래던 현청은, 현오가 자신의 승복 앞섶에 코까지 풀어 놓은 것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각우가 호통을 치며 다가왔다.
“이놈, 현오,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으어어어엉, 사부도 미워요! 말려 줄 현각 사형도 없는데 혼내고오---!”
“혀, 현각은 아직 살았잖느냐!”
“어허엉! 아직이래-! 무정한 사부 같으니! 현묵 사혀어어엉! 사부도 데꼬가지. 허어어엉!”
“이…….”
우는 막내를 달랠 줄 모르는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각우의 말에 현오가 더 큰 소리로 통곡을 하고, 그걸 받아 주게 된 현청이 각우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그러니 각우의 속만 터졌다.
“아오! 아오! 내 전생에 무슨 업보가 많아서……!”
“흐어어어어, 사형들! 허어엉!”
시체는 찾았지만, 어떻게 해도 온전하게 맞추지는 못했다고 했다.
일부는 소실되었고, 일부는 뒤섞여서 누구의 어느 부분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고.
그래서 죽은 나한들의 시신은 한데 모아 같이 화장하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나한들의 소박한 장례를 안타까워했다.
“한날한시에 다정하게 부처님의 품에 가는 것도, 저들의 복이 아니겠는가.”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안타까움을 담아 염불을 외웠다.
그는 필요에 의해서, 더 큰 목표를 위해, 정의맹주로서 제자들의 희생을 조용히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동시에, 소림의 장문으로서 아까운 제자들의 희생을 더 크게 슬퍼하지 못하는 데에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
그런 정의맹주의 마음을 알기에, 무림의 많은 인사들이 나한들의 소박한 장례식을 찾았다.
“송구합니다.”
제갈가주가 정의맹주에게 사과했다.
애초에 소림 나한들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자고 건의한 사람이 제갈가주였다.
나한들이 지킨 홍의생들 중엔 가문의 제자인 제갈상도 있었고, 그는 이번에 홍의십수에 속하며 명성을 높였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정의맹의 허물을 덮거나 제자들을 띄우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
정의맹 총군사로서 오로지 귀천성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결정이었을 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정의맹주나 다른 문파의 사람들도 동의한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정한 무림의 승리는 저들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어쩐 일로 제갈가주와 함께 온 남궁조가 정의맹주에게 조의를 표했다.
두 사람뿐 아니라 많은 무림 명사들이 다녀갔다.
남궁세가와 팽가, 당문을 비롯한 많은 문파에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많은 조의금을 보냈다.
그렇게 세상에는 승리의 소식이 전해지며 사기를 진작시키고, 정도 무림 내부적으로는 슬픔에 공감하면서 결속을 강화했다.
* * *
죽은 홍의생들의 영결식이 정의무학관에서도 치러졌다.
많은 이들이 친우들의 죽음에 슬퍼했고, 많은 관도생들이 전쟁의 복판에 와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크헝…….”
현오는 아직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화는 그런 현오를 위해 새벽에 혼자 오성반점에서 줄을 서서 사 온 만두를 내밀었다.
“현오, 이거.”
“크흡. 남궁 시주, 고맙네. 하압. 큽, 마, 맛있네. 합! 크흑, 우리 사형들은 이 맛있는 것도 못 먹고 가고오오오…….”
“스님들은 원래 고기만두를 못 먹는데…….”
“흐어어엉! 극락의 맛이야아아아!”
진화는 고기만두와 눈물, 콧물을 함께 마시는 현오를 보며, 슬쩍 만두 봉지 전체를 내밀었다.
통곡하며 먹는데도 속도는 줄지 않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현오가 울면서 만두 한 봉지를 다 먹는 동안, 진화는 가만히 현오를 보았다.
그리고 이 순박하고 만두 앞에서 한없이 속물적인 스님이, 적과 싸우던 모습을 떠올렸다.
‘터뜨려 죽였지. 피는 물론 뇌수와 내장이 튀어나오는 데에도 잔인하게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각우도 그러했어. 금강야차공이라는 말이 달리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잔인하고 단호한 손 속. 현오는 그런 각우의 제자니, 손 속이 비슷할 수도 있지 않나?’
진화는 만두 한 봉지를 기어이 다 비워 가는 현오를 보며 제물의 조건을 떠올렸다.
‘살성(殺性). 피에 대한 갈증, 흥분, 공감의 부족, 목적의식, 수단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사형제를 위해 복수심을 느낄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사형제들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할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제 손을 잡고 맛난 만두를 함께 즐기려 했을 리 없지 않았을까.
‘현오는 아니라는 건가.’
진화는 그동안 현오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서, 제 몫으로 빼놓았던 만두 하나를 더 내놓았다.
“고오맙네에. 허엉, 합! 허엉.”
‘현오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지?’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순간 퍼뜩 스쳐 가는 잔상이 있었다.
‘나하연 낭자? ……허,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전투 중 자연스럽게 현오의 곁에 서서 싸우던 나하연을 떠올린 진화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 * *
“그게 왜 내 탓이라는 거야!”
“그럼 아니냐! 네놈의 거짓 정보만 아니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일이었어!”
교성흑오대를 동원했던 일은 실패로 끝났다.
관도생과 소림 나한들 몇을 죽이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교성흑오대원이 죽었고 산촌에 만든 은거지 중 하나를 잃었다.
게다가 뇌평 또한 한동안 팔을 쓰지 못할 정도로 부상을 당했다.
“나한들이 그렇게 많다는 걸 왜 숨긴 거냐고!”
“숨긴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니라고? 그럼 그 애송이들은 뭔데-!”
뇌평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치자, 문혜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지금 그 애송이에게 당했다고 내 탓을 하는 거야?”
“당하긴 누가! 빌어먹을 각우랑 그 애송이만 아니었으면…….”
뇌평이 버럭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뇌평은 남궁진화 한 사람에게 꼼짝도 못 한 일을 결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대충 각우와 남궁진화 둘을 동시에 상대했다고 말한 차였다.
하지만 나한들의 숫자가 들었던 것보다 두 배는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
교성흑오대가 그렇게 많이 죽은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문혜 또한 그 부분은 인정했다.
“분명 지난 기록에 따르면 나한들의 숫자는 다섯을 넘지 않았다고. 이미 평가를 치렀던 위 기수에도 확인했던 사안이고! 각우 놈이 나한들을 그렇게 많이 데려간 건, 나도 예상 밖이었어!”
“젠장! 예상 밖이었다고 하면 그만이야? 참 편해서 좋군. 앞으로 네 정보를 신뢰할 수 있겠어? 설마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
최대한 임무 실패의 원인을 문혜에게 물기 위해, 뇌평이 문혜의 정보 부실을 몰아갔다.
교성흑오대를 두고 한창 경쟁 중이라.
자신은 다치기까지 했으니, 문혜도 뭔가 실책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때, 제갈무진이 끼어들었다.
“그만.”
“예.”
“송구합니다.”
제갈무진의 말에, 한창 다투던 뇌평이 말 잘 듣는 개처럼 입을 다물고, 문혜도 뇌평을 노려보며 물러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확인했더냐?”
“저, 그것이…….”
제갈무진의 물음에 뇌평이 답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문혜가 기회를 문 듯 고개를 들었다.
“뭔가? 그것도 확인 안 했나? 대체 뭘 한 거야?”
“각우와 나한 놈들이 벽을 세우고 나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피에 대한 갈증, 과한 흥분, 공감 부족! 슬픔이나 복수심을 모르는 놈, 피를 보고 흥분해서 싸우는 놈, 그런 걸 확인하면 됐잖아! 가서 실컷 싸우다가 지고만 온 거야?”
“지긴 누가 졌다고!”
이번에는 문혜가 뇌평을 한심하다는 듯 쏘아보았다.
사실 이번 임무는 싸움에 지고 이기고가 문제가 아니라, 제물이라 파악해 놓은 자가 그들이 찾던 살성을 보이는가를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싸우면서 보이는 감정의 변화, 다른 사람과 이질적인 행동, 격렬한 싸움과 지인의 죽음에 반응하는 것을 살피면 그만이었다.
다만 문혜가 직접 가기에는 혹여 들킬까 봐, 아직 정의맹이 가진 역천비록에 대한 정보가 더 중요했기에 뇌평에게 맡긴 것이었는데…….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싸우고 피를 보는 것밖에 없는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봐라, 무림인이라는 것들은 이렇게 어리석은 것들이다.
문혜가 뇌평을 내려 보았다.
하지만 제갈무진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제물의 조건이라는 것이 단지 그렇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것이 아니다.”
평온하다 못해 은근히 미소까지 머금은 제갈무진은, 그저 뇌평과 문혜의 다툼이 귀엽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엔, 죽어 간 교성흑오대나 산화한 산촌마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어 보였다.
제갈무진의 말에 뇌평이 반색했다.
어찌 되었든 제 편을 든 것이지 않은가.
반면 문혜는 표정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하나 살성에 관해서 그 조건들이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까.”
문혜의 물음에 제갈무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들은 그저 살성들이 가진 특성을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 목적을 가진 살성이 중요한 것이지. 그중에서 최종 제물인 천살지체(天殺之體)는 모든 것들에 죽음을 인도하는 역천의 운명을 타고난 자. 죽음이 저절로 그에게 인도되는 운명이라.”
“하면 그런 걸 어찌 찾아야 합니까?”
“화룡점정, 화룡의 점정을 확인하거라. 너는 사람의 눈을 읽는 재주가 탁월하니, 쉬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원해서 문혜를 정의무학관에 보낸 것이 아니었다.
아직 어리석고 감정의 동요가 크나, 눈을 통해 사람의 속을 읽는 재주만은 인정하여 보낸 것이라.
저를 인정한다는 제갈무진의 말에, 문혜가 눈은 불만이 남았나 싶으면서도 뇌평에게 보이는 입꼬리만큼은 매끄럽게 끌어 올렸다.
“뇌평은, 네가 할 일에 집중하거라.”
“예.”
제가 할 일이라.
제갈무진을 지키고, 남궁진휘와 제갈후현을 죽이는 일.
문혜가 해야 할 것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
뇌평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은신처에서 나오는 길.
뇌평이 문혜를 향해 이죽거렸다.
“네가 할 일은 네가 해야지.”
“네놈이 제대로 했다면 필요 없을 일이었지.”
“아까 스승님 말씀 못 들었나? 그리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시잖아.”
“좋아 죽는구나.”
“흐흐흐, 간단하게 생각하라고. 다 죽이다 보면 하나 튀어나오겠지. 아니면 다 죽여서 살아남는 놈이, 죽음을 인도한 운명이었거나.”
뇌평의 이죽거림에, 문혜가 뇌평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잘 죽였나? 흥, 애초에 너 따위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너 같은 것들은 평생 모르겠지. 타고난 핏줄만큼 타고난 재능에도 특별한 것이 있다는 걸.”
무림인 따위가 뭐 잘난 것이라고.
몸이 튼튼하고 무식하게 움직이는 것은, 개나 소나, 짐승이 타고난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괜히 뇌평 따위에게 일을 맡겼다가 잘난 척하는 남궁진화에게 전공만 얹어 준, 우스운 꼴만 당했다.
“그럼 혼자 잘해 보라지, 잘난 재능으로.”
“넌 네 일이나 똑바로 해.”
뇌평의 말을 싸늘하게 받아친 문혜가 냉정하게 먼저 그를 지나쳤다.
문혜의 뒷모습을 보며, 뇌평이 고소를 지었다.
“스승님이 네 뭘 믿는지 모르겠지만, 네놈은 또 실패할 거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