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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03)화 (103/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화룡점정의 의미(3)

정의맹.

맹주의 집무실에 은밀히 사람이 모였다.

맹주인 운현대사의 집무실이었지만, 오늘의 요청은 제갈가주에 의한 것이었다.

역천비록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는 제갈가주의 말에 맹주인 운현대사를 비롯해 부군사로 올라선 남궁진휘와 의선문주가 모였다.

“천살지체?”

제갈가주의 설명에 운현대사가 놀란 듯 되물었다.

“‘대자(代者)는 살성을 타고난 자로 한다. 그는 목적이 확고하여 공감이 없고, 피를 즐거워하며, 살생을 저어하지 않는다.’ 제물의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목적성, 공감 부족, 피에 흥분하고 살육을 즐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조건들이 목적성을 전제로 한 특성에 지나지 않다는 겁니다.”

비록의 글자를 해석하는 것은 해례본을 가진 학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어가 가진 뜻을 해석하는 것부터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정확한 조합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까지가 연구의 영역이라.

진정으로 연구자의 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자로서 능력이라면, 제갈가주는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니.

제갈무진이 제갈가주를 경계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기서 대자란 제물을 말하며, 최종 대자라 함은 최종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종 대자는 역천의 운명을 가진 천살지체여야만 한다.’ 제갈무진이 노린 것이 바로 이 최종 제물이라는 천살지체인 듯합니다.”

제갈무진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의 표정이 모두 달랐다.

‘천살이라니, 역시 우리 진화를 말하는 게 아니었군. 다른 역천비록을 찾아보아야 하나.’

남궁진휘는 조금 아쉬워 보였다.

그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도 숨죽이고 있는 동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직 조금 더 먼 이야기인 듯했다.

그때, 의선이 남궁진휘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역천의 운명이라 하여, 저는 역천지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말입니다.”

“음?”

의선의 말에 제갈가주가 의문을 표했다.

“역천지체라는 특별한 체질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다만 모든 내부 장기나 혈맥이 보통 사람과 반대로 자리했을 뿐, 기능과 효율 면에서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물로 있다 살아남은 남궁의 소공자 또한 그러한 경우였지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갈가주가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처음 의선이 남궁세가로 가서 진화를 치료한 자체가 정의맹에서 의선문에 의뢰를 한 것이었다.

당시 제갈가주는 역천비록을 가진 것은 숨겼지만, 대신 그에 대한 단서를 얻고자 의선을 통해 살피게 한 적이 있었다.

“남궁의 그 소공자가 광마제의 제물이었다고 했었지요.”

광마제, 대반격을 통해 죽었다고 알려진 팔현마제 중 하나였다.

“남궁 소공자의 경우엔 완벽한 역천지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지요. 다만, 오랫동안 독물에 당해 이번 비약에 당한 것과 같이 몇몇 혈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이번 비약의 연구에 소공자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만…….”

의선이 제갈가주와 남궁진휘를 번갈아 보았다.

양측의 관계가 좋지 않아, 과거에도 남궁세가는 제갈세가에서 진화를 걸고넘어지지 않도록 의선에게 부탁했었다.

의선 또한 남궁세가의 손을 들었었다.

게다가 지금은 비약에 대한 연구, 즉 해약을 만들어 내는 일이 가장 시급한 쪽이 제갈세가였다. 특히 제갈후현을 위해 진화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제갈세가에서 남궁세가에 빚을 진 것과 같았다.

더 이상 남궁진화를 걸고넘어질 수 없을 것이었다.

“현재로선 남궁 소공자의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하여, 혹시 역천지체라는 특별한 체질이 그 비약의 부작용과 같은 증상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비약의 부작용을 견딘다라……. 비약이라는 것이 내공의 축적과 활력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부작용 없이 효능만 취한다면…….”

그 남궁진화가 초절정의 경지에 달했다고 했던가.

“확실히 무공의 증진에 있어 범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빠르겠군요.”

제갈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진화의 빠른 성취가 납득이 간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때, 남궁진휘가 불편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건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은 것이지요. 당시 많은 이들이 죽었고, 진화 또한 의선의 도움으로 겨우 살았을 뿐입니다. 지금 진화의 성취 또한 그 아이의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우리마저 귀천성이 만든 비약의 효능에 집중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아, 비약의 효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의선의 추측이 맞다면 말이 그렇다는 것뿐일세.”

남궁진휘의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제갈가주가 한발 물러섰다.

어쨌든 제갈세가가 도움을 받고 있는 쪽이었으니.

다만 물러서면서도 ‘내가 물러나 준다’는 티를 꼭꼭 내는 것이, 참 얄미운 인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제갈무진이 노리는 것이 역천비록 외에도 더 있다는 것입니다. 천살지체가 어떤 것인지 나와 있습니까?”

“아니, 그 부분 또한 사료를 더해 연구가 더 필요할 듯하네.”

“어찌 되었든 그들보다 먼저 천살지체를 찾아야 합니다.”

남궁진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갈가주가 의선에게 물었다.

“……의선님, 혹시 남궁의 소공자가 천살지체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제갈군사님-!”

남궁진휘가 놀라 제갈가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제갈가주가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다른 뜻은 없네. 자네의 말에 동의해. 아무래도 놈이 역천비록 뒷부분 외에 그 제물을 찾고 있는 것 같거든.”

“설마……?”

“놈이 괜히 홍의생들을 공격한 것은 아닐 걸세. 그들 중 천살지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놈 또한 연구를 계속했으니, 나보다 더 많은 단서를 찾았을 가능성이 크네. 단서에 따라 해당되는 사람을 찾았겠지.”

“흐음…….”

제갈가주의 말에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굳은 신음을 내었다.

남궁진휘, 의선도 표정을 굳혔다.

제갈가주의 시선이 운현대사의 얼굴로 향했다.

남궁진휘나 의선과 같은 반응이었지만, 평소의 운현대사와는 달랐다.

“앞으로도 홍의생들이 위험할 수 있겠소. 백매단으로 하여금 은밀하게 보호하도록 하고, 또 달리 임무가 끝난 무단은 없소?”

“현재 주작단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적호단이 의선문을 경계 중이니, 주작단이 돌아오는 대로 홍의생들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의맹주가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제갈가주가 답했다.

하지만 정의맹주의 결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귀천성이 준동을 하려 하고 있소. 역천대법을 완성하려는 의도가 뻔하니, 우리가 먼저 다른 역천비록을 찾아야겠소.”

“……!”

‘다른 역천비록!’

제갈가주는 물론 의선과 남궁진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남궁세가가 기다렸던 일이었다.

남궁진휘가 슬쩍 제갈가주의 눈치를 살폈다.

이전에는 제갈가주의 반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던 일이었다.

잠시 침묵이 지나고, 마침내 제갈가주가 입을 열었다.

“청룡단의 임무가 끝났다고 하니, 은밀히 임무를 하달하겠습니다.”

제갈가주가 공손하게 답했다.

결국 다른 역천비록을 찾아 정의맹으로 가져온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말이었다.

자신들의 역천비록을 내놓았으니 다른 자들도 갖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남궁세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 군사께서 천살지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동시에, 역천비록과 홍의생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대처하도록 하고. 다른 역천비록의 행방이 파악될 때까지, 당분간은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

“아직 귀천성 첩자들이 남은 이상 그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정의맹주의 결론에 세 사람이 공손하게 읍하는 것으로 동의했다.

회의를 마치려는데, 정의맹주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의선, 좋은 소식이 있다고요?”

“예.”

회의를 하기 전 맹주에게 슬쩍 말해 놓은 것이었다.

의선은 궁금해하는 제갈가주와 남궁진휘를 보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해약 조제가 끝이 났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이오? 정말 수고하였소!”

“제갈과 남궁세가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 의선의 발품을 줄여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정의맹주의 칭찬에 의선이 겸손하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남궁진휘도 모든 공을 의선에게 돌렸고, 특히 제갈가주는 섣불리 말을 떼지 못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오늘 내로 제갈후현 공자를 깨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변이 좋은 제갈가주가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만을 반복했다.

제갈후현이 깨어난다는 소식은, 남궁진휘에게도 남다른 감정이 드는 일이었다.

‘제갈지현이 임시 소가주로 있는데, 제갈후현이 깨어난다라……. 제갈세가가 다시 시끄러워지겠군.’

남궁진휘가 의선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갈가주를 보았다.

손을 잡을 순 있지만, 제갈가주가 야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국 가까워질 수는 없는 관계라.

역천비록에 대한 남궁세가의 희소식을 제갈가주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제갈후현이 깨어난다는 제갈세가의 희소식이 남궁세가에 어떻게 작용할지.

남궁진휘는 그저 지금처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조하는 관계가 깨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 * *

깊은 밤.

이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침을 준비한 의선을 곁으로 백소하와 제갈가주가 섰다.

“그럼.”

“부탁합니다.”

의선이 제갈후현의 몸에 꽂아 둔 침을 뽑았다.

“흐음.”

제갈후현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편히 잠들어 있던 가슴이 부풀었다.

이후, 의선이 신중한 손놀림으로 제갈후현의 얼굴, 찬죽과 청명, 머리의 곡차에 침을 꽂고 돌렸다가 뽑았다.

그리고 총회에 침을 꽂고 세심한 손놀림으로 침을 돌렸다.

“으음…….”

제갈후현의 입에서 신음이 났다.

그리고 다시 침을 돌리고 뽑아냈을 때.

제갈후현의 눈꺼풀이 꿈틀댔다.

긴장한 얼굴로, 의선과 백소하, 제갈가주가 제갈후현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갈후현의 눈꺼풀이 열렸다.

“아……버지.”

“일어났구나.”

제갈후현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제갈가주를 찾았다.

제갈가주는 조금 복잡한 눈빛으로 제갈후현을 보았다.

“맥은 안정적입니다. 저희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선, 백 의원님.”

제갈가주가 의선과 백소하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제갈가주와 제갈후현만 남았다.

“멍청한 놈.”

막 깨어난 아들에게 제갈가주가 한 첫마디였다.

제갈가주가 그간의 일을 제갈후현에게 전했다.

제갈용성이 한 일과 그의 죽음까지도 가감이 없었다.

“그 빌어먹을 놈이 감히!”

“네 어리석음으로 벌어진 일이다.”

제갈용성을 향해 이를 가는 제갈후현에게 제갈가주의 질책이 떨어졌다.

너무 명명백백한 일이라, 달리 반발할 것도 없었다.

“지현이가 임시 소가주로 있다.”

“곧바로 복귀할 것입니다.”

“해약이 만들어졌으니 몸을 회복하는 일에 전념해라.”

“복귀할 것이라 했습니다!”

“…….”

제갈후현이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제갈가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갈후현을 내려다보았다.

“몸을 회복하라 하였다.”

가당치도 않은 고집을 받아 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제갈가주의 싸늘하게 꽂히는 눈빛에 제갈후현의 눈이 커졌다.

“아버지!”

“그래. 넌 내 아들로, 그렇게만 살다 죽겠지.”

제갈가주가 확인 사살을 하듯 말을 이었다.

“귀천성도에게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고 어떤 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더냐?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내 실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몸을 회복하지 못하면, 네 자리라는 건 영원히 없을 것이다.”

“……!”

제갈가주에게서 떨어진 선고.

제갈후현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죽지 않고 깨어났건만, 악몽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세가에 오왕부의 이왕자와 칠왕자가 와 있다. 앞으로 삼 년 동안 있을 것이다. 삼 년 뒤, 지현이와 함께 떠날지, 그렇지 않을지는 너 하기에 달렸을 것이다.”

“으드득!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까맣게 죽어 가는 마음에 꽃씨 하나를 던지듯 던진 말에, 제갈후현이 손이 저리도록 주먹을 쥐었다.

* * *

비약에 대한 해약이 완성되고, 변화가 생긴 곳은 제갈세가만이 아니었다.

“너는…….”

단승호가 조금 초췌하긴 하지만 멀쩡한 모습으로 숙청관을 찾은 것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길 속에, 숙청관으로 온 단승호가 진화를 찾아왔다.

“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의선께서 네가 폭주하던 내 몸을 안정적으로 잡아 준 덕분에 내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별로.”

하고 싶어서 해 준 일은 아니었다.

그런 진화의 속내와 달리, 단승호는 진화가 쑥스러워한다고 받아들인 듯 다시 감사를 전했다.

“알고 있겠지만, 속 좁게 너를 질투했었다. 늦었지만 미안하다. 내 스스로 쫓기면서 열등감도 키운 모양이야.”

“…….”

관심 없던 일이었다.

“이번 일로 제대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또한 네 덕분이다. 다시 한번 살려 줘서 고맙다.”

“아니, 이럴 것까진 없어! 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단승호가 허리까지 숙이며 감사를 전하고, 진화가 화들짝 놀라 그의 인사를 만류했다.

주변에서 흐뭇한, 혹은 감동받은 듯한 얼굴로 그들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살려 준 목숨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

“그래. 그렇게 해.”

그걸 왜 제게 말하는 것일까.

진화로선 전혀 관심 없는 일이었다.

진화는 그저 이 어색한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어쩐지 제게 쏠려 있는 주변의 시선이 몹시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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