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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04)화 (104/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화룡점정의 의미(4)

진화의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아침마다 전 관도생이 모두 모이는 식당으로 가자,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시선이 진화와 일행에게 와서 박혔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지그래?”

“닥쳐.”

남궁구가 놀랄 정도로 열렬한 시선.

심지어 하나둘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이내 식당 전체로 번졌다.

짝짝짝짝짝짝---!

“와아! 역대 최고의 홍의생장이다!”

“멋지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모두의 은인이야!”

휘이이익--!

진화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와 찬사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졌다.

하지만 홍의생들, 그중에서도 이번 교성흑오대의 습격에서 진화와 일행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박수만큼이나 열렬한 눈빛을 보였다.

이전 금은동의생들이 관도회주인 남궁진휘의 등을 보던 그 눈처럼, 홍의생들 또한 진화에게 신뢰와 존중을 품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했다.

그때, 식당으로 들어서던 한문혜가 일행과 함께 자리로 가는 진화를 보았다.

진화의 피가 나는 듯 붉어진 귀보다 당연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쳇, 저 녀석이라도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뇌평 그 한심한 놈이 저놈의 명성만 올려놓았군.’

한문혜는 속으로 혀를 찼다.

‘경지를 넘어섰다고 했던가?’

뇌평이 그렇게 자랑하던 그것이었다.

한문혜 또한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먼 경지인지 알았다.

다만 너무 멀어서, 얼마나 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할까.

무엇보다 뇌평이 경지를 넘어선 것을 빌미로 교성흑오대의 대주는 제가 되는 게 당연한 듯 구는 게 제일 짜증스러웠다.

‘저 어린놈보다 먼저 경지를 넘어 놓고, 아무리 각우와 함께 붙었다지만 저런 놈 하나를 못 죽여? 잘난 척만 하더니, 차라리 이렇게 놈의 기세가 꺾여서 다행이군.’

한문혜가 진화를 보며 속으로 뇌평을 씹어 댔다.

다만 그의 생각에는 몇 가지 착각이 있었는데, 진화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뇌평보다 늦게 경지를 넘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뇌평은 진화와 각우를 동시에 상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지를 넘어섰다는 것이 단지 강기를 날리고 내공을 폭발시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뇌평은 사사로운 내력의 운용과 무공의 활용, 몸의 움직임 등등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진화에게 밀렸고, 결국 한쪽 팔에 부상을 당하고 도망친 것이었다.

제가 도망치다시피 후퇴했다는 걸 숨긴 뇌평이, 자신만만해하던 한문혜의 실패를 확신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한문혜는 지난번 진화의 기세에 밀려 물러선 저나 이번에 실패하고 돌아온 뇌평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뇌평의 실패는 스승님께 들켰으니, 오히려 제가 나았다.

‘이번 일만 성공시키면……!’

여긴 무림이었다.

사방이 저렇게 경지를 넘어선 강자들이라면, 뇌평의 무력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가 가진 부와 배경이야말로 특별한 것이 될 것이니.

자신이 이 특별한 것으로 부족한 힘을 얻고, 힘을 얻은 후에는 날아오르게 될 것이라!

한문혜는 식당을 둘러보며, 저를 날아오르게 할 힘을 찾았다.

제갈지현.

키는 크지만 마르고 꼿꼿한 체격이 무림의 여인답지 않게 위태로워 보였다.

제갈가주를 닮은 듯 날카로운 눈매가 예민해 보였지만, 그것을 빼면 아주 도도해 보이는 미인이었다.

‘나쁘지 않네.’

애초에 필요에 의해 묶일 정략혼이다.

제갈지현의 외모나 성격은 한문혜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지현이 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마음이 동하는 듯도 했다.

모두가 동경의 시선으로 남궁진화를 향해 웃어 보일 때, 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 오히려 더 튄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덤덤한 표정과 질투 가득한 눈빛을 보며, 한문혜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가갔다.

“처음 보는 것이던가요?”

“……?”

갑자기 말을 건 한문혜를 보며, 제갈지현이 눈썹을 들썩였다.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인사가 늦었습니다.”

한문혜가 곱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제갈지현의 눈빛은 더 냉담하게 식었다.

“인사를 오셨으니 어쩔 수 없군요. 제갈지현입니다.”

제갈지현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이번에는 한문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보다 건방지군.’

고작 무림 세가의 여인.

현재 가진 힘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평민이었다.

한문혜의 위치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정실 자리는 고민을 해 보았어야 했을.

“하하, 격식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다시 인사하지요. 오왕부의 칠왕자, 한문혜라 합니다.”

격식을 차려서, 한문혜가 다시 인사했다.

제갈지현과 한문혜의 눈빛이 마주치고,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 찾은 혼인.

한문혜는 제갈지현이 이 혼인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또한, 한문혜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까? 피차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곧 만남을 가질 것인데…….”

“피차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날 것이니, 이렇게 따로 인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제갈지현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되받아칠 줄은 몰랐는지, 한문혜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하지만 곧, 피식 웃으며 물러섰다.

“불편하시다면야. 하나, 어차피 소저의 선택지는 둘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같은 선택지입니다. 제갈세가와 오왕부가 손을 잡는 것이니. 하지만 굳이 이왕자와 칠왕자를 따지라면 차이가 꽤 크지요.”

제갈지현이 물러선 한문혜를 한 번 더 쏘아붙였다.

한문혜가 그런 제갈지현을 보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무림의 여인이라 그런지 강인하시군요. 그러나 아직 왕부의 일에 대해선 잘 모르시는 듯합니다.”

입가의 웃음이 걷히자, 한문혜의 서늘한 눈빛만이 남았다.

“왕가는, 황금좌 아래로 나열된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지요.”

차디차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제갈지현의 귓가에 가서 박혔다.

그리고 제갈지현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야심이 이왕자보다 높다고 말하는 것인가.

하지만 제갈지현의 귀에는, 태어난 순서와 성별에 구애받아 한발 나서지 못하는 그녀의 처지와 다르다고 말하는 듯했다.

“어차피 곧 만나게 되겠지요. 그때, 같이 보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제갈지현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니.

한문혜는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미 자신의 마지막 말에 흔들리는 제갈지현의 눈을 확인했으니, 언제든 다시 흔들 수 있으리라.

* * *

한문혜가 생각한 시기는 그의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덜컹.

“아가씨!”

본가에서 보내온 전갈을 읽은 제갈지현이 몸을 휘청거렸다.

겨우 탁자를 붙잡고 선 제갈지현은, 다시 한번 전갈을 읽었다.

그리고 그 전갈을 사정없이 구겼다.

제갈지현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아가씨.”

제갈지현과 같은 조, 같은 방을 쓰면서 그녀를 보좌해 온 양선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불렀다.

전갈은 양선의 어머니이자 제갈지현의 유모, 양주사가 보내온 것이었다.

“좋지 않은 소식인 것입니까?”

“……오라버니께서 깨어나셨다고 하는구나.”

“아! 아, 아가씨……!”

그간 제갈세가에 좋지 않은 소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제갈지현에게 가장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대체 어떻게요?”

“의선이 해약을 완성해 낸 모양이야.”

“어, 어떡해요, 아가씨? 이제 겨우 우리 아가씨 소원 성취하시는가 했는데…….”

양선이 안타까움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제갈후현이 제갈무진에 야무지게 이용당한 것이 제갈세가뿐 아니라 온 세상에 퍼졌는데, 왜 이렇게 곧바로 제갈세가의 여식답게 명성을 올리고 몸가짐을 바로 한 우리 아가씨의 위치가 흔들려야만 한단 말인가.

양선은 억울한 마음부터 들었다.

“가주께서 본가로 오라 하시는구나.”

“네? 버, 벌써요?”

“오왕부 사람들과 정식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아아, 아가씨!”

결국 양선은 억울함에 서러움이 복받쳤다.

가주님도 너무하시지. 우리 아가씨를 기어코 시집보내시려는가 보다.

눈이 붉어진 제갈지현 대신 양선이 눈물을 흘렸다.

꾸깃.

제갈지현이 본가에서 온 전갈을 짓이기듯 손안에 움켜쥐었다.

‘아직, 아직이야! 오왕부의 사람을 만난다고 했지만, 아직 소가주 위에서 내려오라 하진 않았어!’

제갈지현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그날 오후.

진화는 남궁세가 장원에서 남궁진휘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천살지체라고요?”

진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성이라는 것이, 예로 들린 특성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천살지체라는 것은 진화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이것도 내 혼돈지체와 같은 것인가?’

하지만 진화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자신이 혼돈지체라는 것도 이전 삶에서 죽을 때가 되어서 겨우 알아냈던 것으로, 역천비록에 ‘천살지체’라는 말이 직접 쓰여 있다는 것은 진화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역천지체라는 말은 없었습니까?”

진화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남궁진휘는 진화가 내심 기대를 버리지 않은 것이라 여기며,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천살지체. 역천의 운명을 타고난 자……라는 문구뿐이라 들었다.”

남궁진휘는 진화의 실망이 커질까 걱정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의 말이야말로 진화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전 생에서 의선은 역천비록에서 혼돈지체에 대한 내용을 보았다고 했다. 정확한 명칭이나 의미는 못 봤지만, 혼돈지체에 대한 내용을 비록에서 알아냈다고 했어! 그럼 의선이 본 역천비록은 제갈세가의 것이 아니었던 거다. 역시, 혼돈지체를 다룬 역천비록이 따로 있었던 거야!’

진화의 눈이 반짝였다.

남궁진휘는 진화가 말은 없었지만 표정이 나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종 제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진화가 실망할 것을 제일 걱정했기 때문이다.

걱정이 해소되고 나자, 다른 이야기를 나누기가 한결 편해졌다.

“들었는지 모르지만, 해약이 완성되었다.”

“해약이요?”

“그간 시험했던 약들이 증상에 차도를 보이면서 교명이와 단승호에게 큰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제갈후현은 완전히 폭주를 했기에 몇몇 혈맥들이 모두 터져 나간 상태였고, 의식 또한 차리지 못했지. 그런데 이번에 연구를 진행하며 비약에 각성과 환영, 흥분, 나아가 실혼까지 유발하는 약재를 발견하고, 거기에 대한 해독제를 찾아내면서 큰 진전이 있었어.”

“그렇군요.”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화의 머릿속으로, 다시 흐릿한 기억이 스쳤다.

검은 구덩이.

줄지어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

“귀천성 놈들이 찾는 것이 천살지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 홍의생들을 따로 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충분히 눈치챌 것이라 여겨, 따로 단서를 줄 궁리를 하지 않고 기다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총명하고 눈치 빠르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들이라, 남궁진휘라면 몰라도 제갈가주에게 함부로 단서를 주었다가 괜한 의심만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살성에 대한 조건들이 단지 특성일 뿐,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진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라는데…… 목적에 따라서 모든 특성을 다 보일지, 몇몇 개만 보일지, 어떤 식으로 보일지조차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구나. 놈들이 천살지체를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하는데…….”

“천살지체에 관한 것은 더 이상 알아낸 것이 없습니까?”

“온통 추상적이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내용뿐이다. 천살지체를 알아보는 방법이라는 것이, 화룡점정이라는 단어만 나와 있으니. 용의 눈동자……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는 것에 뭐가 있다는 건지. 제갈가주가 그에 관한 내용은 제갈세가의 고서고와 연학원, 소림과 정의맹의 무고를 뒤져 본다 하였다. 시일이 좀 더 걸리겠구나. 그 전까지…… 진화야?”

남궁진휘는 답답한 마음에 말을 잇다, 중간에 진화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화가 반응을 멈춘 것은 ‘용의 눈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손에 쥐어진 약사발.

사방에 하나둘 쓰러지는 아이들.

진화의 귓가로 어딘지 익숙한 음성이 떠올랐다.

“악마! 저 악마 같은 눈깔부터 뽑아 버려야 해!”

그때, 그들은 분명 진화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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