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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05)화 (105/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화룡점정의 의미(5)

언제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

아니, 시간 자체를 모르고 있던 때였다.

그때, 진화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지금이 흘러가길 가만히 버티고 있었다.

탕-!

“야-! 약 먹어!”

“…….”

탕-! 탕!

“얼른 일어나서 약 처먹어, 이 벌레 같은 것들아!”

거칠게 철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진화의 귀 끝이 움직였다.

‘거칠게 두 번. 그리고 놈의 욕설…….’

꺼림칙한 눈으로 소심하게 철창을 두드리던 첫 번째 간수와 달랐다.

간수들은 짝을 이뤄서 움직이지만, 진화가 있던 방을 담당하는 간수는 늘 일정했다.

‘그놈이군.’

웅크리고 있는 채로, 진화가 고개를 들었다.

까만 어둠 속에서 까만 눈동자가 번뜩였다.

진화가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진화와 같은 공간에 있던 아이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간수가 놓아둔 약사발이 담긴 쟁반을 향해 갔다.

머뭇거리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아이들의 태도에 간수가 다시 철장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재촉했다.

“빌어먹을,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내가 이 문 열어서 목구멍에 그거 쑤셔 박아 주랴!”

감수의 고함에도 아이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음식과 달리,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는 저 검은 약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저것을 먹은 날에는 대개 오장육부가 뒤틀리듯 아팠고, 더러는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저 간수가 들어와서 팔을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지켜보는 앞에서 독초 더미를 던져 넣듯 아이를 구덩이에 던졌다.

조금 큰 아이들이 지내는 다른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간혹 쓰러진 아이를 구덩이에 던져 놓고 나면 남은 아이들 중 두려움을 느낀 몇몇이 약에 손을 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창살 바깥에 있는 간수들이 들어와 나무 깔때기를 목구멍에 박아 넣고 억지로 약을 삼키게 했다.

“야! 너!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넌 뭐 하고 있어!”

밖에 있던 간수가 방망이로 꿈쩍도 않고 있는 진화를 가리켰다.

그리고 진화와 눈을 마주치자, 흠칫하며 물러섰다.

“이런 씨발!”

다시 제풀에 화를 냈다.

“약 처먹어, 개새끼야!”

탕-! 탕-!

철창을 때리며 화를 내는 간수를 보며, 약을 담던 간수가 그를 말렸다.

“그, 그만해.”

“아 씨. 저 소악마 새끼!”

“야아, 들어!”

“들으면! 썅. 저 새끼는 다 기분 나쁜데 특히 저 눈깔이 싫어! 악마! 저 악마 같은 눈깔부터 뽑아 버려야 하는데! 저 새끼는 왜 뒈지지도 않아! 퉷!”

겁을 먹은 동료 간수가 말리는데도 한번 입이 터진 간수를 진화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키우고 진화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진화에겐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겁쟁이.’

방금도 보라.

정작 눈을 마주치려니, 눈을 피하지 않은가.

‘저자는 약해.’

생각을 마친 진화가 몸을 일으켰다.

진화가 움직이자, 아이들이 자리를 비켜 줬다.

진화는 약사발을 들어, 눈을 간수들에게 고정한 채 쭉 들이켰다.

진화가 약을 들이켜자 다른 아이들도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새끼, 진즉에 말 들을 것이지.”

간수가 약을 들이켜는 진화와 아이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제게 겁이 나서 마시는 것이 아닌데, 우쭐대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

간수들의 대화는 진화에게 말을 가르쳐 주었고, 지금도 많은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제물 양육실.

진화와 아이들이 있는 곳의 이름도 그들의 대화로 알았다.

제물 양육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진화와 아이들에게 충분한 양의 죽을 주었고, 약 또한 고통을 견디고 나면 몸에 힘이 넘쳐 났다.

단, 약을 견뎌 낸 아이들에 한해서 말이다.

“이, 이봐, 빨리 다른 쪽으로 움직이자고. 나는 여기가 제일 기분이 나빠.”

“나 참, 그냥 애새끼들인데 뭘 겁을 먹고 그래?”

재촉하는 동료 간수의 앞에서, 간수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고 장난삼아 방망이를 휘둘렀다.

진화는 그런 간수를 보며 빤히 보았다.

“히익!”

진화와 눈이 마주친 동료 간수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런 동료를 본 간수는, 화가 난 듯 철창으로 다가왔다.

“응? 아이 씨, 뭘 봐, 이 악마 새끼야!”

탕--!

간수가 진화와 눈이 마주치자 강한 척 철장을 내리쳤다.

하지만 진화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간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고, 오히려 간수의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제물 양육실의 간수들은 모두 진화를 향해 ‘악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저를 두려워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안 진화는, 아까 전 간수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려 그를 비웃었다.

그러자 간수는 물론이고 동료 간수의 얼굴까지 창백하게 질렸다.

그러고 보니, 진화는 일주일 전쯤에 저 동료 간수를 공격해서 머리에 상처를 입혔었다.

“이, 이 빌어먹을 새끼가 웃어?”

탕--!

겁을 먹었다는 것이 창피한지, 간수가 당장이라도 진화를 때릴 듯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동료가 다시 그를 말렸다.

“하, 하지 마!”

“왜? 갇혀 있는데 뭐! 저 악마 새끼, 저걸 가만두니까 저게 더 의기양양하잖아!”

“그래도 하지 마! 저놈한테 상처를 냈다가 전의 간수들이 현인께 어떻게 되었는지 봤잖아!”

그랬다.

진화는 처음부터 몇몇 이들에게 제물 양육실의 귀한 몸으로 불리며, 간수들은 절대 진화를 상하게 할 수 없었다.

저들이 현인이라 부르는 남자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는 영악하게도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힘이 약해서 간수들을 공격할 수 없을 때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서 그들을 죽게 했고, 조금 자라서 힘이 생긴 뒤에는 물어뜯든, 때리든 그들을 공격하길 서슴치 않았다.

“저 빌어먹을 눈깔!”

동료 간수의 만류에도 진화와 눈싸움을 하고 있던 간수가 고개를 돌렸다.

탁. 탁. 탁!

하나둘, 나무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주변의 아이들이 자리에 누워 경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화는 익숙한 듯 일어나서 그릇을 모아 음식을 넣어 주는 배식구 앞에 놓았다.

그리고 와서 꺼내 가라는 듯 손짓했다.

“씨발, 기분 나쁜 새끼! 다른 새끼들은 다 눈깔을 뒤집고 쓰러지는데 왜 저 새끼만 멀쩡하냐고!”

“그, 그 덕에 일일이 그릇을 수거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잖아. 어서 하고 가자고!”

아까부터 불만이 많은 간수를 만류하는 동료는, 그저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했다.

“병신새끼! 대체 갇혀 있는 애새끼 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간수는 자꾸만 겁먹은 티를 내는 동료를 향해 투덜거렸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이 방 그릇만 치워 주면 다른 방은 전부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일일이 그릇을 수거해 오는 수고를 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방에 더 큰 새끼들도 전부 쓰러지는데, 이 새끼만 멀쩡한 건 진짜 이상한 거야. 현인께서도 곧 이 새끼의 이상함을…… 크악! 뭐, 뭐야!”

진화가 돌로 두 번째 간수의 손등을 내리친 것이다.

“겁먹는 게 당연한 거야, 죽을 수도 있으니까.”

간수와 눈이 마주친 진화가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팔을 올렸다.

퍽!

이번에는 손등을 내리쳤던 돌로 간수의 머리를 내리쳤다.

“크악!”

간수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느덧 달려든 아이들이 간수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안 돼-! ……헉!”

동료 간수가 놀라 소리쳤지만, 진화와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퍼-억!

“진짜 벌레만도 못한 건 너야. 영감한테 빌붙은 버러지! 그러니까 내가 네놈들을 어찌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

피를 흘리며 바둥거리는 두 간수를 보는 진화의 눈엔 어떤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이 새…….”

퍽! 퍽! 퍽!

진화는 간수의 버둥거림이 멈출 때까지 망설임 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으, 으아악! 아-악!”

간수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을 보며, 겁에 질린 동료 간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하지만 소용없을 것이다.

고작 간수 따위의 죽음으로 진화를 상하게 할 리 없었다.

‘날 죽일 수 없으니, 네놈들이 나보다 약해. 죽여도 돼. 이자는 시끄러우니까.’

퍼덕이던 간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바닥에는 새빨간 피가 흥건하고 깨진 머리에서 흘러나온 허연 조각까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잔인한 광경이었다.

간수의 팔을 붙잡던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가 시체를 못 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은 간수의 시체를 보며 진화가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었다.

잔인한 광경에서 눈을 돌릴 생각도 없이,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제가 만든 결과물을 보았다.

“그 늙은이에게 못 들었어? 나는 이상(異常)한 게 아니라 비상(非常)한 거야. 너같이 평범(平凡)한 괴물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비범(非凡)한 거라고…… 안 그래?”

진화의 눈이 매섭게 창살 밖을 향했다.

창살 밖에는 피처럼 붉은 혈포를 걸친 노인이 진화를 보고 있었다.

광마제의 손에는 아까 도망갔던 첫 번째 간수의 머리가 구겨진 채 쥐어져 있었다.

“허허허! 정답이다. 한 주 전에 배운 말을 잊지 않고 잘 사용하는구나.”

철컹.

광마제 구훤이 창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뒤를 돌았다.

진화가 열린 문을 통해 창살 밖으로 나와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의 동요가 더 컸다.

‘뭐지? 죽이라는 건가? 안 돼. 노인은 강해. 그럼 왜 문을 열었지?’

열린 문 앞에서 진화가 고민했다.

“아가, 네가 한 일은 끝까지 책임져야지?”

“책임?”

“네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노인의 말에 진화는 열린 문과 간수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노인이 한 말은 뭘까.

내게 문을 나와도 된다고 하는 걸까.

고민하던 진화는 문밖으로 나가 제가 죽인 간수의 다리를 잡고 잡아당겼다.

진화의 힘으로는 터무니없이 무거웠지만, 진화는 조금씩 조금씩 간수를 잡아당기고 굴려서 마침내 구덩이 앞에 섰다.

휙-!

풍-덩!

창살 앞 공터 한가운데에 있는 구덩이는 매우 깊었고, 안에는 검은 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많은 사람이 들어갔지만 한 번도 넘치지 않았다.

착. 꿀럭. 꿀럭. 꼴꼴꼴꼴…….

진득한 무언가의 표면에 닿는 둔탁한 소리 뒤에 간수의 시체는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진화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진화를 보지 않은 채, 검은 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순간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때, 노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화에게 말했다.

“전에 말했듯이 나를 여기에 빠뜨릴 수 없다.”

“……알아.”

짧게 대답한 진화는 어느새 노인의 바로 뒤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까지 낑낑대며 힘들어 보이던 것이 모두 연기였던 듯, 진화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노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또한 전에 말했듯이 넌 이곳을 나갈 수 없다.”

“알아.”

“저 아이와 힘을 합하더라도 말이다.”

흠칫.

노인의 말에 창살 안에 쓰러져 있던 한 인영이 어깨를 떨었다.

진화 또한 다른 아이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것도 알아.”

간수들의 말에 따르면, 저 아이는 자고 일어나 내일이라는 것이 되면 이곳을 나갈 거라고 했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진화를 보며,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이번 기수는 성과가 좋구나. 동화율이 높아. 허허허허!”

그중에서도 단연코 뛰어난 것이 눈앞의 아이였으니, 노인은 창살 속에서 얼굴을 숨긴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눈앞의 진화를 향해 눈을 빛냈다.

“영악한 놈! 뇌력의 증가를 인지한 건 물론이고 억지로 깨워 놓은 신체 능력까지 써먹고 있구나! 괴물 같은 놈! 아니, 내가 만든 괴물인가? 허허허, 그래. 네놈은 그래야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만큼은 내 것이다!”

노인은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진화를 향해 무시무시한 탐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진화는 노인이 잡은 팔이 아파 얼굴을 찌푸렸다.

노인이 가만히, 한참 동안 진화의 눈을 보았다.

진화는 팔이 계속 아팠다.

그리고 팔이 아프도록 저를 잡고 있는 노인에게 화가 났다.

“혼돈성의 눈이 완성되었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좋겠어! 하하하하하!”

노인은 진화의 눈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

한참 광소를 참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진화가 간수를 죽일 때 제일 먼저 간수를 팔을 붙잡았던 아이 또한 누군가가 나타났다.

“천살성의 눈은 아직이다. 하지만 천살성과 혼돈성이 함께 있어 봤자 서로의 운명을 갉아먹을 뿐이야. 놈을 데리고 꺼져!”

노인은 아이를 데려가는 사람에게 화를 내었다.

하지만 진화는 알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저 아이는 이대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아이는 끌려가면서 진화를 보았고, 진화 또한 끌려가는 아이를 한참 보고 있었다.

‘천살성의 눈.’

아이가 가고, 진화는 혼자 남았다.

“아아아악---!”

매일매일,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터뜨렸다.

머리와 팔, 다리.

온몸이 미동도 할 수 없도록 묶여 있었고, 노인은 익숙한 듯 진화의 비명을 들으며 그의 생살을 갈랐다.

“흐음. 아직 덜 여물었군. 하지만 하루 이틀 상간이면 준비가 되겠어.”

진화의 몸 안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살피던 노인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빛이 났다.

“이제 드디어, 드디어 광룡이 깨어나리라--! 으하하하! 아하하하하-!”

말 그대로, 두 눈을 번뜩이며 노인이 미친 듯이 웃어 댔다.

그리고…….

* * *

“……진화야!”

남궁진휘의 목소리에 진화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는 것이냐? 이렇게 식은땀까지 흘리고! 왜? 어디 아픈 게냐?”

남궁진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화를 살폈다.

더러움도 아랑곳없이 소매로 진화의 땀을 닦고, 진화의 이마를 짚었다가 볼과 귀를 어루만졌다.

그런 남궁진휘의 눈빛과 손길에, 진화는 큰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차갑게 식은 제 심장 소리 대신 남궁진휘의 따뜻한 손을 붙잡았다.

“형님, 제가 아닙니다! 천살지체는 천살성을 타고난 제 또래일 것입니다!”

“……!”

갑작스러운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가 놀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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