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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07)화 (107/425)

남궁마제

이를 진(臻) 재앙 화(禍) : 역천의 운명을 가진 이들(2)

피를 머금은 혈월이 일곱 번 뜨고 지고.

다시 떠오른 보름달이 완전히 어둠에 잡아먹힌 날.

태어날 때부터 하늘의 별빛을 죽이고, 달의 운명을 빼앗은 자.

서쪽 하늘의 가장 밝은 별이 북두를 가리고 떨어질 때.

하늘의 운명을 바꾸었다.

역천(逆天)의 죄를 지은 자들.

하늘을 죽이는 자, 천살성(天殺星).

죽음을 쫓으리라.

하늘의 운명을 바꾸는 자, 혼돈성(混沌星).

길을 잃으리라.

“비서에 전해진 것은 그것이 다였소.”

정의맹주의 말에 제갈가주와 남궁진휘의 생각이 깊어졌다.

“천살성과 혼돈성이라…… 세상에 살계를 열고, 혼란을 일으킨다는 말일까요?”

일차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했지만, 고사에 별을 인용한 예언은 다른 특별한 의미를 담는 일이 많았기에 아닐 가능성이 더 컸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소. 다만 그 비서는, 역천마제 파륜이 무림 정벌을 시작하기 전 소림에서 반드시 가져가고자 했던 것이었소.”

“역천마제가 무림 정벌 전에 움직였다면…… 비무행 때인가요?”

제갈가주가 물었다.

하지만 정의맹주는 깊은 애환을 담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림은 묘림 조사전에 있던 비서를 지키기 위해 수백의 제자들이 희생되었소. 선승와 불승 사백들이 나서…… 불승께서 승화하시고 나서야 겨우 절반을 빼앗기고 절반을 지켜 내었지.”

그 말만으로, 제갈가주와 남궁진휘 모두 눈치챘다.

“그럼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귀천성의 소림 침탈이군요!”

“그러하오.”

정의맹주의 인정에 남궁진휘가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마제의 배경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무림 출두 후의 행적에 대해선 정도 무림만큼 많이 아는 곳도 드물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이기기 위해 머리털 하나까지 쫓고 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림비사의 이면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제갈가주는 정의맹주의 고백을 남궁진휘처럼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제갈가주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혹 천살성을 찾으셨습니까?”

남궁진휘의 눈이 커지고, 제갈가주는 운현대사를 압박하듯 똑바로 직시했다.

하지만 말을 꺼낸 시점에서 이미 숨길 생각도 없었다.

운현대사가 소림에서 자라고 있는 천살성을 떠올리며, 자애롭게 미소를 지었다.

“소림의 품 안에서 지키고 있네.”

남궁진휘와 제갈가주의 눈이 커졌다.

진짜 표정은 내비치지 않기로 유명한 두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표정을 짓자, 운현대사는 그런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질색하는 표정마저 비슷했다.

* * *

무학관에 자주 없는 휴식 시간이었다.

오후 수련 자체가 자율적으로 주어진 시간이기에, 따로 휴식을 챙겨 주는 일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천성과의 전쟁으로 동기를 잃은 홍의생들은 물론 위기감을 느낀 관도생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연무장에 나오거나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관도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동기끼리, 어떤 이들은 사문끼리.

진화의 곁에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있었다.

늘 함께 있던 현오와 팽가 형제가 수련을 위해 소림과 팽가 장원으로 갔기 때문이다.

“각우 사부가 그만둔다는 소리가 있던데.”

“각우 사부의 수업에서 작년도 그렇고 올해까지, 두 번이나 인명피해를 내었으니까.”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서로 지근거리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니.

불과 일 년 전을 생각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믿고 대련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일 년 전이었더라면, 어느 한쪽이 대련만 요청했더라도 ‘암살 시도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도생으로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는 걸 가장 크게 실감할 수 있는 건, 역시 작년까지 그들이 입었던 백의를 입고 있는 후배들의 존재가 아닐까.

진화가 백의생들을 보았다.

정확히는 사결 매듭을 짓고 이쪽 눈치를 보며 수련을 하고 있는 백의생장을 보았다.

“개방의 심원. 개방의 팔장로 소주팔의 제자래. 무학관 삼 년을 마치고 나면, 개방의 소방주가 될 자지.”

어느덧 다가온 남궁구가 정보를 주었다.

뭔가 재미있는 것이 생겼나, 남궁구의 눈빛이 반짝였다.

남궁교명 또한 진화가 왜 심원인가 하는 백의생장을 보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너희…… 좀 비슷해지고 있지 않아?”

“무슨 악담이야!”

“누가 할 소리!”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펄쩍 뛰었다.

진화의 눈이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빤히 보았다.

“사람은 말이야, 동조와 공감이라는 짐승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지. 짐승에게 그게 없다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유독 강하다는 거야.”

“그게 왜?”

“저 거지와 상관있습니까?”

진화는 무학제 이후 자신에게 존대를 하고 있는 남궁교명을 보았다.

“방금도 너희가 똑같은 시점에, 비슷한 표정으로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게다가 서로 말투는 다르지만…… 나를 대하는 감정이나 행동양식도 비슷해지고 있어. 서로 감정에 공감하고 서로의 행동에 동조하고 있다는 거야.”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서로를 보다가 똑같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진화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백의생장에게 눈을 돌렸다.

“광마제의 실험실에 있으면서 들었던 거니 얼추 정확할 거야. 너희처럼 오랫동안 함께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어.”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남궁교명은 입을 다물고, 남궁구는 펄쩍 뛰었다.

하지만 진화에게 괜찮냐고 묻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도 진화가 과거에 대한 것을 기억해 냈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두 사람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펄쩍 뛸 필요 없어. 다행히 너희가 인간이었다는 증거니까.”

“어이.”

“그런데 말이야 저 백의생장, 자꾸 칠왕자를 보고 있네.”

“뭐?”

“얼마나 본 것인지 흉내가 제법이네.”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시선이 백의생장에게 갔다.

“와, 방금 손끝 봤냐?”

“거지 주제에…… 기품 있게 움직이네.”

“큭!”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말에 진화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백매단으로 모자라서 주작단이 은밀하게 홍의생들을 지키고 있어. 그런데 개방의 제자, 그것도 소방주라고?”

“어. 개방은 특이하게 장로들의 제자들 중 가장 합당한 인물로 소방주를 정해. 비단 무공뿐 아니라 도량과 구걸, 품새와 청결도 등등 여러 가지를 본다더군.”

“구걸이랑 청결도?”

남궁구의 설명에 남궁교명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백의생장, 심원을 보았다.

“어쨌든. 개방의 차기 소방주가 오왕부의 왕자를 감시하고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

“왕자가 부러웠나?”

“생각 좀 하고 말해라, 한심한 놈.”

“농담이잖아! 재미없는 놈 같으니…… 어쨌든 정의맹의 정보처로 움직이는 개방이야. 차기 소방주에게 어떤 명령이 갔겠지.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개방이 다루는 정보는 종류나 목적을 불문하니까.”

남궁구의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개방이 정의맹의 정보처로서 움직이는 것은 맞지만, 귀천성과의 전쟁 이후 개방의 모든 정보력은 귀천성과 관련된 것에 집중되었다.

이유 불문, 목적 불문, 귀천성과 연관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의 집요한 추적으로 수집된 정보는, 이후 거미줄처럼 퍼지고 얽힌 귀천성의 세력 연결망을 파악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전 생에 진화는 개방의 정보를 바탕으로 몇 번이나 그들의 거점을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었다.

‘문혜. 역시 귀천성과 연결이 되었던가. 그렇다면 제갈은……?’

제갈가주가 역천비록 연구에 몸소 나선 이후, 남궁진휘에게 제갈가주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 왔던 진화였다.

하지만 이전 생에 제갈지현은 한문혜와 정략혼을 맺었었다.

‘그렇다면 제갈세가와 귀천성의 연결 가능성이, 아직 남은 것인가.’

진화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과 비슷하게 남궁진휘와 제갈가주의 관계가 발전하고 있는 듯한데, 그의 자상한 형님이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화가 제갈세가에 가진 억하심정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때, 오후 수련을 나갔던 현오가 돌아왔다.

“어이, 남궁 시주.”

“수련을 갔다고 들었는데…….”

“아아, 요즘 마음이 영 헛헛해서 말이네.”

현오가 슬픈 듯 눈을 내리깔았다.

손에 소중한 만두 봉지를 들고.

진화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현오가 만두 하나를 건네주었다.

어차피 이제 숙소에 복귀할 시간이라.

진화는 만두를 받아 들고 입에 물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네 번째 대련이 마무리되는 대로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일련의 백의생 무리가 진화에게 다가왔다.

‘저놈도 좀 수상하지.’

진화는 제게 다가오고 있는 한문혜를 보았다.

식당에서 부딪힌 이후로 한동안 저를 피하더니, 요즘 들어 갑자기 다시 접근하고 있었다.

얼굴 가득 불편한 기색을 하고서 말이다.

“선배님들.”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옆에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칠왕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진화와 현오는 멀뚱멀뚱 그를 보았다.

여느 명문 정파 자제들답게 예법을 차려 인사한 남궁구, 남궁교명과 달리, 만두를 하나씩 물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진화와 현오에게 측근들의 불편한 눈초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첫날부터 이왕자가 당하는 것을 본 터라, 누구 하나 ‘무엄하다’라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하나둘, 연무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진화를 비롯한 면면이 워낙 관심을 끄는 인물들이긴 했지만, 특히 진화와 또 다른 왕자의 만남은 구경거리를 원하는 이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었다.

옆에만 해도 남궁구가 눈을 총총히 빛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진화의 물음에 칠왕자의 뒤에 있던 인물이 있는 힘껏 진화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왕자 때와는 달리 함부로 나서진 않았다.

“현오 스님이 계셔서 말입니다. 따로 조문을 못 하여……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칠왕자의 인사에, 현오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인사를 받았다.

“많이 늦은 조문이군요.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진화가 은근히 입꼬리를 올리고 물었다.

그러자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뒤에 있던 측근 중 하나가 발끈하고 나섰다.

“무엄합니다!”

언뜻 비꼬는 듯도 들리는 말에, 현오와 남궁교명도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고 있었다.

남궁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칠왕자에게 물었다.

“내 말이 무례하게 들렸나?”

작정하고 무례하고자 한 것인지, 말까지 놓았다.

이쯤 되니 시비처럼, 아니 시비가 맞는 듯했다.

진화의 이런 태도에 측근들은 물론 한문혜마저도 당황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거지? 이왕자 놈 때문에 왕가 자체에 감정이 좋지 못한 건가?’

한문혜의 생각에, 그게 아니라면 이유가 없었다.

“무……례하진 않았습니다. 무림인이고, 지금은 같은 관도생이니. 너희도 물러서거라.”

한문혜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진화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하!”

“어허.”

한문혜의 명을 내리고 측근들이 억지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며, 진화가 입꼬리를 말았다.

한문혜는 진화의 말을 받아들인 듯 말하면서 여전히 측근들에게 왕자로서 명령하고 있었고, 측근들은 신하처럼 저하라 부르며 명을 받들고 있었으니.

진화뿐 아니라 무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유감의 표시라면 모를까, 무림에서 늦은 조문은 하지 않습니다. 꼭,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 같거든요.”

진화의 말에 한문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눈빛을 달리했다.

진화가 적대하기로 했다면, 한문혜라고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남궁 공자께서 참 예민하고, 민감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오지랖도 넓으시고.”

일전의 일까지 꼬집어 말한 것이었다.

그에 진화가 한문혜에게 성큼 다가갔다.

얼굴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

진화가 한문혜의 눈을 똑바로 보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가요? 함께 겪은 일이다 보니…… 어쩐지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진화와 얼굴을 마주하고, 진화의 눈을 노려보고 있던 한문혜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진화의 눈에서 번쩍이고 있는 번개를 본 것이다.

그런데, 일전에 본 그것과는 또 달랐다.

아니, 그건 번개도 아닌 것 같았다.

“제, 제가…… 실례를 한 모양이군요.”

한문혜가 눈빛의 동요를 숨기듯 한발 물러섰다.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다시 상처를 들춘 것이라면 송구합니다. 그럼.”

“아, 아니, 그건 아닌데…….”

현오가 답을 하기도 전에 한문혜가 급히 자리를 떴다.

황급히 연무장을 벗어나는 한문혜를 보며, 진화가 싱긋이 웃었다.

* * *

진화가 한문혜를 쫓아내듯 보내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애는 물어요.’ 하고 써 놔야 할까 봐.”

“보통 ‘개 조심’이라고 쓰지 않나?”

“너 지금 도련님한테 개라고 했냐?”

“…….”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남은 대련을 마치기 위해 연무장으로 갔다.

그리고 현오는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는 진화를 매우 묘한 표정을 보았다.

“왜 그런 것인가?”

“아무래도 ‘널’ 찾고 있는 게 저 녀석인가 싶어서.”

“……!”

진화의 달라진 말투에, 현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봐야 눈두덩 살 때문에 커지지도 않을 눈이지만, 처음으로 눈동자가 다 보인 것 같았다.

“역시, 너지?”

진화의 물음에, 현오가 표정을 굳히는가 싶더니 이내 히죽- 웃었다.

“이제야 날 알아보는 거야?”

설마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던 듯, 진화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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