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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09)화 (109/425)

남궁마제

이를 진(臻) 재앙 화(禍) : 역천의 운명을 가진 이들(4)

양주 잠삼현.

남궁세가, 창천원.

성을 방불케 하는 남궁세가 본가, 그중에서도 창천원은 남궁세가 직계들만의 처소라.

북으로는 천주산 자락의 날카로운 바위 절벽과 울창한 청림이 둘러싸고, 동서남쪽으로는 전 무림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제왕무적단의 무사들이 철통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현재 창천원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제왕검과 남궁가주, 가모 그리고 남궁제일검과 부인뿐이었다.

“우리 진화, 어쩜 글씨도 이렇게 귀여울까요?”

“그러게…… 그런데 뭐라고 적은 거야?”

정말 귀엽게도 글씨가 일곱 살 때와 변함이 없었다.

팽연화가 진화가 한 자 한 자 악필로 적어 보낸 전서를 읽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남궁제일검의 부인이지만 늘 본인을 진화 엄마라 소개하는 팽연화였다.

진화를 정의무학관에 보낸 지 일 년이 넘었는데, 그리움만큼 애정이 더 깊어진 듯했다.

가모 하후민은 그런 팽연화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진화의 전서 내용이 궁금했다.

“늘 그렇듯 안부를 묻고 안부를 전하는 거죠. 엄마가 걱정할까 봐 늘 기분 좋고 즐거웠던 것만…….”

팽연화의 말처럼, 진화는 이제까지 큰 전투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팽연화에게 전하는 전서에는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팽연화의 전서에는 진화가 좋아하는 것들, 대부분은 남궁진휘와 진혜의 소식 그리고 만두 이야기였다.

“이번 만두는 소림 숙수가 만들었나 봐요.”

“어휴, 야채만두?”

“아뇨, 고기만두.”

“응? 대체 그 숙수는 뭐 하는 승려길래?”

팽연화의 말을 들은 하후민이 미묘한 괴리감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웃겼는지 팽연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사실 동기들이 형님처럼 물었는데, 글쎄 고기를 만지는 건 된대요. 좋아하는 오성반점의 것에 견줄 정도의 맛이라네요.”

“뭐? 호호호호, 그것 참 재밌네. 소림 주방장이 만드는 고기만두라니.”

팽연화의 말에 하후민도 같이 웃었다.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부모는 늘 자식의 이야기로 울고 웃는 법이었다.

그래서…….

“후우, 그래서 이번엔 뭐래?”

가모 하후민이 한숨을 푹 쉬어 각오를 다잡고 물었다.

그러자 팽연화가 난처한 듯 눈을 돌렸는데.

“동서, 괜찮아. 자식이라고 둘 있는 것들 중에 하나는 제 아비에게 보고서밖에 쓸 줄 모르는 놈이고, 하나는 본가로 보내는 청구서로 생존 신고하는 년이야. 괜찮아.”

육 년쯤 되면 부모도 단련이 되는 걸까.

하후민이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했다.

“진휘가 부군사가 되었대요.”

“어머, 우리 진휘가 벌써?”

“제갈가주가 다른 일로 바빠진 터라, 진휘의 일이 늘어나 덩달아 바빠졌다는군요.”

“바쁘나 안 바쁘나 어미한테 관심도 없는 놈이야. 잘 있으면 됐어. 그러면 진혜는?”

“……진혜가 진화 보약을 만든다고 의선문 약재소를 썼는데, 청구서가 곧 올 거 같대요. 호호호호, 그래도 이번엔 뭘 부쉈다는 건 아니네요.”

“……망할 년.”

팽연화가 애써 긍정적인 부분을 말해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후우, 괜찮아. 어차피 우리 애들 소식은 가주전에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는 게 나은데 뭘.”

하후민도 이제 포기했다는 듯 웃어 버렸다.

“그나저나 그 망할 것들이 또 움직이고 있다는데…….”

“아주버님께서 잘 해결하실 거예요.”

“동서, 나는 서방님 걱정을 하는 거야.”

“……호호호호.”

혈을 찌르는 듯한 하후민의 말에 팽연화도 웃고 말았다.

저 집이 아들, 딸이 속을 썩인다면, 이 집은 아들 같은 남편이 문제라.

창천정.

가주의 집무실에는 아닌 밤중에 고성이 울려 퍼졌다.

콰-앙!

“이 망할 놈의 새끼! 머리통에서 면발을 뽑아 버릴 놈들! 제갈무진 그 새끼는 뭔데 자꾸 우리 진화를 가지고 지랄인 거요?”

“흥분을 가라앉히거라.”

남궁경의 고성에 남궁가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남궁가주의 말끝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라는 말이 따라올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상한 형님인 남궁가주는 자신의 동생이 저렇게 성질을 낼 만큼 내고 난 뒤에야 차분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더 욕을 쏟아 내던 남궁경이 마침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이번이 몇 번째요?”

“네 번째. 남궁도의 요구는 모조리 수용한다고 전해 왔다는구나. 아마도 더 이상 시간을 끈다면, 남궁도를 끌고 가려 할지도.”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남궁경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동생을 빤히 보았다.

“왜, 왜요?”

“잊은 것이냐, 잊은 척하는 것이냐?”

“……쳇. 그 개쉐이들, 우리 진화 털끝이라도 건들면…….”

“알았다, 알았다.”

남궁가주는 다시 욕 한 바가지를 쏟으려는 동생의 말을 황급히 끊었다.

하지만 동생의 마음을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진화가 위험하지 않도록 잘 대처해야지. 어째서 이렇게 위험한 전략을 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진화의 털끝이라도 다친다면…… 장담하건대, 제왕무적단을 제갈세가에 풀어 주마.”

“……거래 성립.”

남궁가주의 진지한 약속에, 남궁경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작전대로 남궁백이 정보를 전할 것이다. 남궁도가 직접 거래를 할지, 다른 자를 보낼지는 모르지만, 그 집 담장을 넘는 순간 천리호정단이 따라붙을 거다. 이참에 누군 만나는지, 양주에 숨어든 놈들의 끄나풀을 찾아내야겠구나.”

“창궁무애단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남궁도도 처리하자꾸나.”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약에 대한 것도 밝혀졌고 이번에 진화의 정보까지 적에게 전한다면, 아버님도 섭섭하다고 하시진 못할 것이다.”

“흐흐, 드디어 늙은 여우 놈을 사냥하겠군.”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남궁세가의 오래 묵은 가시를 빼낼 때가 되었다.

* * *

“이게 옳은지 모르겠구나.”

남궁진휘는 일을 진행하고도 연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진화가 남궁진휘를 단단히 붙잡았다.

“형님, 들키면 큰일입니다. 누님이 아시면 당장 검을 들고 왕자의 목을 베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지.”

“적호단이 나서기 전에, 백매단과 주작단, 창궁무애단이 속전속결로 끝낸다면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혹시 몰라서 당문암호대에도 협조를 구했다. 현홍사라는 것이 우리한테는 익숙하지 않아도, 당문에는 그런 현을 쓰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어서.”

“잘하셨습니다.”

이번 작전을 두고 남궁진혜 때문에 고민하던 두 남자의 선택은 완벽한 ‘회피’였다.

사람이 나쁜 짓을 같이하면 공조감이 끈끈해진다고 했던가. 진화는 어쩐지 이번 일로 남궁진휘와 더 끈끈해진 느낌이었다.

그건 남궁진휘도 마찬가지라.

“알겠지만 이번 작전은 네가 다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주작단이 지키고 있겠지만,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 무모하…… 아니, 위험하게 나서선 안 돼.”

남궁진휘가 진화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이제 곧 본가에서 전갈이 갈 것이다. 본가에선 네가 광마제의 최종 제물이었던 것을 빼고 단지 제물 양육실에 있었던 것으로만 정보를 줄 것이다. 칠왕자가 네 눈까지 보고 갔으니, 꼼짝없이 너를 혼현마제의 최종 제물로 알 것이다.”

“주작단의 추적은 실패했지만, 결국 역천비록과 제가 있는 이상 놈들이 우릴 찾아올 것입니다.”

“칠왕자를 감시하는 동시에 네 주변을 사람으로 가득 채우마.”

“예.”

마지막까지 걱정을 놓지 못하는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부담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미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기꺼운 것은, 진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지어진 미소였다.

웃는 것 하나도 남을 따라 하거나 과장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는 것밖에 못 하던 진화가 이제 제 스스로 웃게 된 것이다.

남궁진휘는 저 웃음을 지켜 주기 위해 어떤 것이든 해 줄 수 있었다.

“이 일이 끝나면 역천비록을 찾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제갈무진이든 누구든, 더는 귀천성의 그림자가 네게 드리우는 일이 없을 게다.”

남궁진휘가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예.”

제갈무진이 혼현마제의 후인이라면, 이 기회에 죽인다.

그리고 놈이 가진 역천비록을 없애 버리면, 귀천성은 영원히 천살성의 제물을 찾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생을 돌아오며 가장 꿈꿨던 일이었다.

그 기회가 제게 찾아오길 바랐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았다.

진화의 머릿속에 제물 양육실에서 표정이 없던 아이 하나와 투실투실한 볼살을 불룩거리며 만두를 먹는 현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화는 현오라도 이 더러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 * *

“스승님, 양주에서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주거라.”

제갈무진이 기다렸던 전서를 열었다.

그리고 긴 전서를 읽어 내려가던 제갈무진이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놈이 제물이 맞다고 합니까?”

“광마제의 제물 양육실 출신이라는구나.”

제갈무진의 말에 뇌평의 얼굴도 화색이 되었다.

하지만 곧 애매해졌다.

이렇게 되면 문혜가 가져온 정보가 정확했다는 게 되지 않는가.

속에 있는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뇌평을 보며, 제갈무진이 피식 웃고 말았다.

“남궁가주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야. 그동안 그 능구렁이가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야.”

“예?”

뇌평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남궁가주가 남궁도를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에?”

뇌평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제갈무진의 말에 뇌평의 얼굴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네가 직접 양주로 가야겠다, 최대한 빨리.”

“가서 무얼 하면 됩니까?”

공을 가져올 기회였다.

“광마전에 연락해라, 놈들의 제물을 찾았다고.”

“……!”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뇌평이 놀란 눈을 떴다.

그에 제갈무진이 기분 좋게 덧붙였다.

“정보를 가지고 내게 혼선을 줄 요량이었던 게야. 남궁도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둘러 갈 뻔했구나. 남궁도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라. 공을 세웠으니 상을 줘야지.”

“충.”

뇌평이 살짝 들뜬 얼굴로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제갈무진이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능구렁이는 능구렁이야. 그 와중에 빠져나올 방법을 찾다니 말이야.”

제갈무진이 양주의 능구렁이, 남궁도에게 감탄했다.

동시에 그 능구렁이 하나로 일이 비틀어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제갈가주를 비웃었다.

‘제법 수를 잘 썼지. 잠시지만 내 눈을 가렸으니. 하지만 그 보답으로 네 눈앞에서 제물을 빼앗아 주마.’

하마터면 정말 속을 뻔했다.

그러니 이 더러운 기분은 돌려주는 것이 맞을 것이라.

“우선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제갈무진은 정의맹 그리고 총군사인 제갈가주의 공격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줄 생각이었다.

* * *

숭산 산자락.

붉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빠르게 풀숲을 헤쳤다.

팔 앞엔 철침이 박힌 방패를 들었다.

탕-! 탕탕--!

앞으로 나갈 때마다 무언가가 걸리고, 힘껏 밀면 매서운 소리와 함께 끊겨 나갔다.

“새끼들, 거미 새끼처럼 온 데다 쳐 놨네. 어쨌든 이거 끝나고 돌아가면, 오라비고 뭐고 가만 안 둬.”

남궁진혜가 감히 저를 빼놓으려고 했던 남궁진휘에게 이를 갈며 숲을 헤치고 나갔다.

거침없이, 가장 앞서서.

“감히 우리 진화를 노린 놈인데, 내가 가만둘 수 없지. 내장을 뽑아서 목을 매어 주마!”

그러나 거칠 것 없이 전진하던 남궁진혜도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춰야 했다.

남궁진혜를 보호하며 현홍사를 걸러 주던 방패가 부서져 나갔기 때문이다.

파팟---!

피이이이잉---!

“헛! 피해!”

부서진 방패 파편 뒤로 불길한 파공성을 내는 무언가가 날아드는 것을 보며, 남궁진혜가 급히 검을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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