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이를 진(臻) 재앙 화(禍) : 역천의 운명을 가진 이들(4)
타-앙!
정의맹 군사부.
총군사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역천비록의 연구 때문에 두문불출한 제갈가주를 두고 홀로 집무를 보고 있던 남궁진휘가 고개를 들었다.
총군사의 집무실 문을 이런 식으로 열 사람은 정해져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실제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그가 생각했던 세 사람 중 하나였다.
“이봐, 큰일 났어!”
적호단주 팽치가 소리를 질렀다.
적호단주의 말에 이번에는 남궁진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적호단주가 ‘큰일’이라고 말하는 건, 그를 안 지 칠 년 동안 처음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숲으로 간 추격조가 놈들에게 잡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걸 봐!”
적호단주가 남궁진휘에게 화살과 본래 화살에 묶여 있었을 쪽지를 주었다.
남궁진휘가 급히 쪽지를 펴 보았다.
“이, 이런! 주작단이 인질로 잡힌 겁니까? 어떻게요!”
“제갈무진 그놈이 주작단을 유인한 거야! 처음부터, 추격을 하면서 발각이 되었던 게 분명해. 숲에 있는 진법 안에 가둬 놓았다는군.”
“이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단주께서는 당장 제갈가주와 주작단주를 모셔 와 주십시오. 저는 곧바로 맹주님께 가겠습니다.”
남궁진휘가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마음만 급해 성급히 움직이다간 실수가 나올 수 있기에, 최대한 가슴을 냉정하게 식히고 행동을 빨리하기 위해 일어섰다.
하지만 그때…….
“저, 저기!”
적호단주 팽치가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것같이 얼굴을 구기고 남궁진휘를 불렀다.
그가 이렇게 어려워하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적호단주가 남궁진휘조차 긴장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얼굴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남궁진혜가 그쪽으로 갔어.”
“……네?”
“그 망할 녀석! 분명 의선문으로 임무를 돌려 놓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숲으로 갔다고! 인질로 잡힌 추격조에 남궁진혜가 있다.”
“……!”
최대한 냉정해야 하는데…….
남궁진휘의 마음과는 달리, 차게 식히려 애썼던 머리와 가슴이 진탕되어 뛰기 시작했다.
“쪽지 읽어 봐! 인질을 교환할 용의가 있다고 해.”
“……?”
적호단주의 말에 남궁진휘가 쪽지를 다시 폈다.
아니, 펴기도 전에 적호단주가 대신 말해 주었다.
“남궁진화를 포함한 홍의생들을 숲으로 보내라는군. 그 빌어먹을 새끼가 다 눈치챈 거야!”
“아아!”
남궁진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듯했다.
“지, 진화! 진화는 몰라야 합니다!”
남궁진휘가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충분히 적호단주에게 전해졌다.
인질로 잡힌 것도 그의 동생.
놈들이 원하는 것도 그의 동생이었다.
누구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험에 빠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다른 동생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맹주님께 가겠습니다. 말한 대로 총군사님, 주작단주님과 함께 맹주님의 방으로 오십시오. 대책을 논의해야지 않겠습니까.”
남궁진휘가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물론 마음은 이미 진탕이 되어 전혀 가라앉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의 말투만큼은 한결 안정을 찾았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남궁조 숙부님도 같이 와 주십시오.”
“알았다.”
적호단주에게 부탁을 남기고, 남궁진휘가 급하게 맹주의 방으로 갔다.
자신 또한 수하들이 인질로 잡힌 것이지만, 남궁진휘만큼 절망스러울까.
“제기랄! 망할 년! 이번에는 진짜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놔야겠어!”
적호단주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 * *
탕-!
“뒤져라! 남궁도를 데려와라!”
남궁경이 제왕무적단에 명을 내리고, 무사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의천무학관(義天武學官).
“의천은 니미!”
꽈직!
남궁경이 발밑에 떨어진 현판을 보고 발로 밟아 부쉈다.
벼르고 별렀던 곳이라.
남궁경이 고개를 돌려 천천히 의천무학관 안을 구경했다.
소박하고 단정하게 지어진 것 같지만,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장정 두세 명의 팔 길이를 족히 넘길 듯 거대한 나무 기둥과 대들보만 수십 개였다.
남궁도의 방으로 보이는 곳은 또 어떤가.
거기에 남궁세가 오대 무단 무사들이나 연습에 쓰려고 마련한 귀한 흑단목이 사방에 가득했다.
심지어 침상을 받친 바닥마저 흑단목이었다.
“돈이 썩어 나는구먼.”
남궁세가 가주의 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고상하고 사치스러운 방이라.
물론 실제 남궁세가 가주의 방은 조금 더 화려했다.
전대 가주의 취향 때문이라 제 형은 죄가 없었다.
속으로 남궁가주를 옹호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남궁경이 멈칫했다.
바닥에 밟히는 마루의 느낌이 달랐다.
남궁경의 눈이 이채를 띠고, 남궁경이 힘껏 발을 굴렀다.
쿠-웅!
역시나 속이 비었다.
쿵! 쿵!
남궁경이 한쪽으로 벗어나 본격적으로 바닥을 밟아 뚫었다.
그리고 그때, 집 안을 뒤지던 제왕무적단 부단주 남궁해가 달려 들어왔다.
“형님, 없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죄다 튀었습니다!”
남궁경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러게. 여기로 죄다 튀었네.”
“그, 그건! 비밀 통로입니까?”
부단주 남궁해가 그제야 남궁경의 발밑에 있는 비밀 통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비밀 통로는 장정 다섯은 족히 드나들 정도로 컸다.
“젠장, 남궁백이랑 남궁문의 위치 확인하고 잡아들여! 일성상단에 오늘 시작되는 표국이 없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남은 인원은 지금 당장 추격 시작한다. 얼마 못 갔을 거다!”
“충!”
명을 내리고, 남궁경이 제일 먼저 비밀 통로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남궁해의 명에 따라 제왕무적단원들이 남궁경의 뒤를 따랐다.
남은 반은 남궁해와 함께 남궁경의 명을 수행하러 나갔다.
“허어, 우리 단주, 또 귀찮은 건 다 떠넘겼네!”
남궁해가 수하들을 보내는 동시에 가주전에 보고했다.
상황이 심각했다.
비밀 통로가 천주산으로 이어졌고, 거기서부터 흔적이 딱 끊겼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 본가로 돌아가자!”
남궁경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흔적도 없는 남궁도를 찾아 수색하긴 천주산은 너무 넓고 험했다.
결국 단원들을 이끌고 본가로 돌아온 남궁경을 기다린 것은 형인 남궁가주였다.
“지금 당장 장강 포구로 가거라. 일성상단의 배가 움직일 예정이다.”
“뭐야? 여주평, 이 새끼가 기어이 배신을 한 거요?”
“아니, 남궁도의 명을 받아 따로 움직였다. 남궁도가 여주평 몰래 일성상단 안에도 세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모양이야.”
“여주평, 이 한심한 돼지 새끼! 집 밖으로도 못 나오는 늙은이한테 상단을 뺏기고 있었어? 젠장! 일단 난 먼저 가 볼게요!”
“그래. 이쪽은 내가 맡으마.”
남궁경은 쉴 틈도 없이 달려 포구로 향했다.
남궁경을 배웅한 남궁가주도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남궁도의 움직임과 같이 움직임이 있던 자들의 명단이다. 모조리 수색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가 있거든 압송해 오거라.”
“충!”
“남궁도의 집 안을 모조리 뒤지거라. 조그만 단서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충!”
“남궁문과 남궁백은?”
“남궁백은 자진해서 찾아왔고, 남궁문은 사라졌습니다.”
“크음. 처자식을 모두 버렸단 말이냐?”
“예.”
“지독한 놈. 그래. 일단 처자식을 확보해 두거라. 그리고 남궁문의 집도 샅샅이 뒤져!”
“충!”
남궁가주의 명에 남궁세가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남궁가주의 얼굴은 날카롭게 굳어서 펴질 줄 몰랐다.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구나! 남궁문이 배신을 한 것이라면, 진화에 대한 정보가 모조리 넘어갔을 수도 있겠어.’
남궁가주의 눈빛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귀천성에서 정의맹에 있는 진화를 노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정의맹 소가주에게 급전을 보내야겠다.”
“충.”
남궁도의 집으로 향하던 남궁가주가 일단 발길을 돌렸다.
진화의 일은 남궁세가 안에서도 극비에 해당하는 것이라, 전서를 쓰는 것도 남궁가주가 직접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급하지만, 항상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었다.
남궁도를 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아이들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일단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경이와 무사들을 정의맹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군.’
남궁가주가 정의맹으로 급전을 보내고 얼마 뒤.
남궁가주에게 정의맹에 나가 있는 남궁조가 보낸 급전이 도착했다.
* * *
촤르르르. 촤르르르.
바다를 보지 못한 자라면, 이 강을 두고 바다라 칭할 것이라.
누런 황토물이 아니었다면, 바다만큼 넓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강이라.
강을 거스르는 배 위에서 푸른 장포를 걸친 노인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어르신, 바람이 차니 안으로 드시지요.”
양주로 출발했던 뇌평이 배 위에 있었다.
그리고 평소 그의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공손하게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허, 아닐세. 실로 오랜만에 쐬는 강바람이야. 조금 더 즐기고 싶군.”
푸른 장포를 걸친 노인, 남궁도가 부드럽게 웃으며 뇌평의 친절을 거절했다.
“실로 오랜만의 상쾌함이야.”
의천무학관 장원에서 두문불출하던 남궁도가, 귀가 아릴 정도로 찬 바람을 마음껏 즐겼다.
뇌평은 수십 년 동안 자발적으로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노인을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비결은 기다림일세.”
“……!”
뒤돌아서 있으면서도 뇌평의 속을 읽은 양, 남궁도의 대답이 뇌평의 마음속을 정확하게 격중시켰다.
“자네도 조금 더 기다리게. 무공과 같이, 처음부터 많이 얻어지는 것은 없어. 꾸준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지. 경쟁자 또한 마찬가지일세. 천천히 두고 보며, 발밑부터 망가뜨리는 거야. 서로 치고받고 싸우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그러다 본인도 타격을 받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싸움이 되거든.”
오늘은 기분이 좋은 건지, 남궁도가 이것저것 조언을 해 주었다.
하나하나가 뇌평의 속을 꿰뚫어 본 듯 필요한 말들뿐이라.
뇌평은 ‘늙은이’라 무시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를 공손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뇌평은 스승 제갈무진이 남궁도를 높이 평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승님!”
선미에 있던 남궁문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남궁경이 쫓아왔습니다.”
“뭐?”
남궁문의 말에 남궁도와 뇌평이 함께 선미로 갔다.
“저기!”
남궁문이 손짓하는 곳에, 강을 따라 달려오는 무리가 보였다.
남궁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배의 속도를 올리게. 포구에 들르지 않고 통과해야겠네.”
“예. 그럼 좀 불편하시겠지만…….”
“엇! 스승님!”
남궁도와 뇌평이 대화 중에, 남궁문이 놀라 소리쳤다.
“야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악-----!
“스승님!”
“헛!”
강을 가를 듯, 배를 잘라 버릴 듯, 거대한 검기가 날아들고.
남궁문이 남궁도의 앞을 가린 사이, 뇌평이 도를 빼 들고 앞으로 나갔다.
퍼----엉!
굉음과 함께, 뇌평이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창 위에 박혔다.
“큿!”
검기는 겨우 막아 내었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힘 대 힘에서 져서 밀려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게 무슨……!”
뇌평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포구 쪽을 보았다.
“남궁경……!”
남궁도가 한 자 한 자 곱씹듯 검기를 날린 사내의 이름을 말했다.
그때, 남궁경이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마치 놓치지 않고 쫓겠다고 하는 듯, 제 눈을 가리킨 후 그들을 가리켰다.
“속도를 올리는 것이 좋겠소.”
남궁도가 남궁경을 노려보다 이내 싸늘하게 몸을 돌려 배 안으로 들어갔다.
* * *
기척.
‘기척이 사라져?’
진화는 저와 현오를 중심으로 있던 주작단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아니, 분명 몇몇은 있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함을 느낀 진화는, 장원으로 가서 남궁진휘에게 물어볼 요량으로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따라붙는 주작단의 수도 적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저자가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였다.
“흐응. 이상하네.”
“왜 그래?”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궁구가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진화도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없는 것이라.
결국 이 또한 정확하게 말해 줄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도착한 남궁세가의 장원.
“형니……!”
진화가 웃으며 안으로 들려는데, 그 전에 안에서 흥분한 듯한 남궁진휘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안 됩니다. 절대 진화가 알게 해선 안 됩니다!”
단호하고 필사적인 외침에, 진화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안에서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그대로 얼어붙어서 진화를 보았다.
“형님, 숙부님, 제가 알면 안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무엇이 남궁진휘를 필사적이도록 했단 말인가.
진화가 꽃같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