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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11)화 (111/425)

남궁마제

이를 진(臻) 재앙 화(禍) : 역천의 운명을 가진 이들(6)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온 진화.

진화를 본 남궁진휘와 남궁조의 표정이 마치 귀신을 본 듯했다.

“…….”

“…….”

진화가 빤-히 남궁진휘와 남궁조를 쳐다보고,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무형의 압박에 대항하려고 했다.

‘네가……!’

‘숙부님이……!’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서로가 서로에게 일을 미루려 했지만, 결국 진화가 주는 압박감에 못 이겨 어색하게 말을 돌리려 했다.

“숙부님이 너를 깜짝 놀라게 할 일을 하고 싶으신……!”

“네 형이 널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는……!”

남궁진휘와 남궁조의 말이 서로 겹쳤다.

밖에 나가선 그렇게 철두철미한 사람들이 왜 집안에서는 이 모양인지.

한숨을 푹 쉰 진화가 남궁조를 보며 말했다.

“숙부님, 거짓말은 형님이 하시는 게 나아요.”

“그, 그렇지?”

“그런데 형님…….”

“응?”

“들었어요.”

“……어? 들었어?”

“그렇게 크게 소리치시면 아무나 다 들어요. 그러니까 그냥 말씀해 주세요.”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민했다.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그들의 모습에, 진화는 결코 쉽게 알려 주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도.

“누님, 제가 찾아갈까요?”

“진화야!”

“아서!”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펄쩍 뛰었다.

“인석아, 게가 어디라고 네가 간단 말이냐! 너까지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진화야! 일단 진정하고……!”

“그러니까, 누님이 잡히셨군요, 귀천성 손에.”

진화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동시에 남궁진휘와 남궁조의 얼굴도 굳었다.

“우리 진화가…….”

“……우릴 낚은 게냐?”

남궁진휘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고, 남궁조가 약간 배신당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진화의 충격만 하겠는가.

‘누님이 놈들의 손에 잡히다니, 어떻게, 왜!’

진화의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누님이 잡혔어. 왜지? 추격조에 들어가신 건가? 그런데 형님께서 내가 알면 안 된다고 소리치셨다. 물론 내 충격을 염려한 것일 수 있지만, 겨우 그 정도로 평정을 잃을 사람이 아니야. 귀천성 놈들이 추격조를 잡았다고? 죽이지 않고? 그렇다면…….’

머릿속이 어지럽게 얽히고, 속은 이미 진탕이 되는 듯 감정을 종잡을 수 없었다.

“진화야! 진화야!”

“……형님.”

“괜찮아. 형님이 구해 낼 것이다.”

“……형님, 제가 알아선 안 된다는 이유가 따로 있지요? 인질입니까? 저와 교환하자고 합니까?”

“헙!”

남궁조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진화의 까만 눈이 남궁진휘를 향하고, 남궁진휘의 눈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누님이 귀천성과 얽힐 만한 가장 최근 임무라면, 칠왕자를 쫓는 추격조밖에 없죠. 그 일은 주작단이 한다고 들었지만…… 누님이 그런 걸 따질 리가 없죠.”

“……너도 아는 걸 내가 몰랐구나.”

“갑자기 저를 보호하던 주작단의 기척이 사라졌습니다. 필시 주작단에 일이 생긴 것이니, 결국 놈들을 쫓다가 변고가 생긴 것이죠. 게다가 숙부님이 잡혔다 하셨는데. 놈들이 추격조를 죽이지 않고 잡았다는 건, 필시 원하는 것이 있어서일 터. 놈들이 원할 만한 것은 역천비록과 제물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형님이 그리 펄쩍 뛰실 것이라면…… 저밖에 없죠. 마침 칠왕자가 제 눈도 보고 갔으니.”

“허! 그놈, 무당도 아니고 다 때려 맞히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했는지.

진화의 추리에 남궁조가 감탄을 쏟았다.

남궁진휘가 걱정했던 것처럼 진화의 충격은 컸다.

하지만 진화는 착실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아무리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진탕이 되어도,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것.

이전 생에서 진화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았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필사적인 진화의 모습에, 남궁진휘의 눈빛이 단단하게 굳어 갔다. 냉정을 찾은 것이다.

“정의맹에서 의논할 것이나, 네가 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형님!”

“안 돼.”

진화가 반론하기도 전에 남궁진휘가 고개를 흔들었다.

“너희 모두 사사롭게 내 동생이지만, 혈육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정의맹의 원칙도 그러하지만, 우리는 창천의 제왕 남궁(南宮)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싸워서 구해 낼 것이다.”

“……!”

푸르른 창천을 입고 검을 드는 데에 한 치의 부끄럼 없는 의기의천(意氣義天).

귀천성으로부터 휘하의 모든 세력을 지켜 낸 제왕(帝王).

천하제일 세가라고 추앙받는 남궁세가가 당연한 듯 지켜 온 명예와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진화 자신이 지켜 낸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그 명예와 자존심을 말하는 건, 또 다른 감동이었다.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지금 널 보내는 것은 놈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건 싸우는 것이 아니야. 어떤 경우라도 남궁은 적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놈들이 원하는 건,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남궁진혜가 이렇게 일찍 잘못되는 건, 이전 생에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 일이 제가 칠왕자에게 눈동자를 보이면서 생긴 일이라.

진화는 저로 인해 남궁진혜에게 불행이 생긴 것은 아닌지 크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궁진휘의 말은, 진화에게 그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것과 같았다.

‘그래, 아직 틀리지 않았다.’

진화가 냉정을 찾았다.

“아무리 멋지게 말씀하셔도 누님을 구하는 데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안 통하느냐?”

“통했습니다. 정의맹에서 방법을 강구하는 대로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누님을 구하는 데에 손을 보탤 것입니다. 절 빼놓으시면 안 됩니다.”

“오냐. 알았다.”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가 크게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최소한 진화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한 적은 없으니, 혼자서 위험한 일을 하진 않을 터였다.

그렇게 한시름 넘겼으니, 이제 정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내일 오전에 총회의가 소집될 것입니다. 숨긴다고 숨겨질 사안도 아니니, 최대한 많은 문파의 협조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여기가 양청현이라 무인들을 모으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것이라는 게 다행이구나.”

현재 맹에 있는 무단은 주작단과 적호단, 백매단뿐이었다.

게다가 그마저도 현재 적호단은 의선문을 지키고 주작단은 홍의생들을 지키고 있으니, 가용할 수 있는 무사들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협조 요청이었다.

“우선 우리에게 우호적인 소림과 무당파, 화산파, 모용세가는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제갈무진이 환술과 진법에 능하다고 했다. 그러니 제갈세가나 공동, 계술문에도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주작단 때문이라도 제갈세가에선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내일 아침에 있을 회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진화가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형님, 놈들은 누님을 알고 잡은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주작단이라 생각하고 잡은 사람들 중에 누님이 있는 것입니까?”

“아……!”

“……서둘러야겠구나.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

진화의 물음에, 남궁조와 남궁진휘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 * *

뒤늦게 남궁세가 장원으로 온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세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진화가 오면 알게 모르게 창궁무애단원들의 얼굴이 펴지고 분위기도 활기차게 변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분위기가 조용했다.

무엇보다…….

“왜 웃음소리가 안 들리지?”

남궁조와 남궁진휘의 웃음소리가 나지 않자, 남궁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화라면 껌뻑 죽는 두 사람이 진화가 오는 시간에 정의맹에서 퇴근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도련님, 집에 누가 죽었어? 왜 이렇게 다 조용해?”

“…….”

남궁구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진화가 새까만 눈동자로 남궁구를 보았다.

뭔가 살기를 담았거나 분노를 담은 것도 아닌 담담한 눈동자인데, 남궁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헉, 진짜 누가 죽었어?”

“……제발 닥쳐.”

보다 못한 남궁교명이 남궁구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리고 진화가 덤덤하게 말했다.

“진혜 누님이 제갈무진의 손에 잡혔다.”

“뭐어?”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주작단과 함께 인질로 잡혔다. 놈들에게 협박문이 왔다는군.”

“……진짜야?”

남궁구는 언뜻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는데, 그도 그걸 것이, 납치 대상이 남궁진혜란다.

“그게 말이 돼?”

남궁교명 또한 남궁구와 같은 심경이었다.

진화에게나 자랑스러운 청명화, 착한 누님이지, 남궁구나 남궁교명에게는 힘센 마녀, 남궁세가의 이대 미친…… 여튼,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마녀는 살아 있는 겁니까?”

“놈들은 아직 잡은 이들 중에 남궁세가의 영애가 있는지 모르는 눈치야. 놈들이 알기 전에 어떻게든 빨리 누님을 빼낼 방법을 찾아야 해.”

진화의 말에 이제야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그들이 평소 어떻게 생각하든, 남궁진혜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요, 하나밖에 없는 직계 영애였다.

그 상징성만으로도 귀천성이 망가뜨리려고 할 이유가 수백 가지였다.

약하고 귀한 여인을 농락하는 건, 적에게 분노보다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실제로 전쟁 중 귀천성은 여인들을 농락하고 발가벗겨 장대에 꽂아 놓은 적도 있었다.

제갈무진이 제 손에 남궁진혜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녀의 목숨만큼은 교환하지 않을 것이다.

“정의맹에서는요?”

“구출 작전을 펴겠지.”

“놈들이 알아내기 전까지 절대 들키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우리 누님은 남궁진혜지. 조용히 있는 건, 누님에겐 가장 힘든 일이야.”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크게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조금 전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보여 준 표정과 비슷했다.

“어, 어쩌려고?”

“놈들이 일을 서두르도록 만들어야지.”

진화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진화 또한 가만히 있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 * *

배가 항구에 닿았다.

선원들이 부지런히 닻을 내리고 배를 밧줄로 묶었다.

장강은 물도 많고 물길도 세차, 바다를 운행하는 배와 다름없이 단단하게 붙잡아 놓아야 했다.

“짐을 내려라! 서둘러라!”

“예!”

남궁문의 외침에 상단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짐을 옮겼다.

그 뒤로 천천히 남궁도와 뇌평, 교성흑오대원이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명 받은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스승께도 내 말과 감사도 함께 전해 주게.”

“예. 들은 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래. 이리 일찍 헤어져서 아쉽지만,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또 봄세.”

“무사히 들어가십시오.”

남궁도의 인사에 뇌평도 공손하게 답했다.

처음에는 도움받는 주제에 다짜고짜 하대를 해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남궁도가 마냥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었고, 뇌평이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한 것이라곤, 남궁도가 모든 탈출 준비를 끝낸 뒤 호위 명목으로 함께 배를 타고 온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궁도와 함께 있는 동안, 뇌평은 그가 생각했던 만큼 별 볼 일 없는 노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제왕검 밑에 엎드리고 남궁가주의 감시 속에 숨죽이고 있는 줄 알았던 남궁도가 사실은 일평상단의 모든 것을 들고 나왔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궁도는 마치 이 사태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과 일평상단의 근거지를 바꾸고, 앞으로의 사업 활로를 마련해 두었다.

“그럼.”

뇌평이 느긋한 태도로 배에서 내리는 남궁도를 보았다.

마치 도망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거대 상단의 주인으로 무림에 출도한 듯 보였다.

‘남궁이 만만치 않은 늙은이를 풀어 준 건 분명하군. 뭐,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니지.’

“출발하라!”

뇌평이 배를 출발시켰다.

뇌평이 떠나는 것을 보며, 남궁도가 입꼬리를 말았다.

“제갈무진이 있는 곳이 아니라 물길을 타고 간다? 놈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아 오거라.”

“예.”

뇌평이 타고 가는 배도 일평상단의 것이었다.

“광마제의 제물에 대해 알게 된 뒤에 움직이는 곳이다. 필시 놈과 연관이 있을 터. 남궁진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구나.”

“더 자세히 말입니까?”

“모르긴 몰라도 놈들이 그 양자 놈의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알겠더구나. 조급하게 구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 잘하면 내가 세가를 되찾는 데에 놈들을 이용할 수도 있겠구나.”

남궁도의 말에 남궁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귀천성 놈들입니다. 놈들을 다시 써먹을 생각이십니까?”

남궁문은 스승이 귀천성과 손을 잡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귀천성이라는 것 자체부터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대남궁세가의 가주 될 자가 귀천성 놈들과 손을 잡아선 안 되지. 다만 놈들이 제왕검을 쓰러뜨리게 두는 건 괜찮지 않느냐. 모두, 귀한 세가에 그런 불길한 피를 끌어들인 제왕검의 실책이야. 남궁진화라…… 그 양자가 결국 제왕검과 그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남궁도가 눈을 빛냈다.

그는 여전히 남궁세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남궁세가를 벗어나고서 더 열렬하게 남궁세가를 향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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