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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13)화 (113/425)

남궁마제

티끌 진(塵) 될 화(化) : 기꺼이 나쁠 것이라(2)

마비혈이 잡혀서 의자에 묶인 칠왕자를 보는 남궁구의 눈이…… 썩었다.

‘내 인생은 이제 완전히 끝났지…… 끝난 거야.’

그러면서 남궁구의 손은 착실하게 칠왕자의 손을 묶었다.

칠왕자를 잡아 오기 전.

“위험해!”

진화의 계획을 듣고 남궁구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진화는 단호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조사단이 들켰어.”

“뭐?”

남궁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조사단을 보란 듯이 찢어서 죽이고 나무에 내걸었대. 당문 암호대 한 명만 살려서 보냈다고.”

뇌평, 그 거미귀신의 짓이 분명했다.

그때 어떻게든 죽였어야 했는데…….

“가, 같이 간 우리 창궁무애단도?”

“전부.”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조사단에 창궁무애단원도 나섰고, 당연히 남궁구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다.

“구일 아저씨는 애가 아직 세 살인데…… 개새끼들!”

남궁구가 짧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가슴이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진화에게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한 명 살려 보냈다는 건, 아직 거래를 깨진 않겠다는 뜻이야. 하지만 이쪽에 경고를 하기 위해서도, 추적조에 뭔가를 할 거야.”

“총군사나 소가주님이 뭔가 방법을 찾으시지 않을까?”

“그 전에 누님이 들키면? 자꾸 잊어버리는데 우리 누님 남궁진혜야. 게다가 정의맹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 협상 따윈 생각도 안 할 거라고!”

진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화가 얼마나 초조한지 알려 주는 듯했다.

진화의 이런 모습은 처음인지라, 남궁구의 목소리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그래서, 어쩌려고?”

남궁구의 물음이 진지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 남궁구가 왕자의 팔을 묶고 있는 이유였다.

‘속은 거지. 설마 왕자를 습격해서 끌고 올 줄이야.’

남궁구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점점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했다.

“이러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칠왕자가 죽일 듯이 진화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가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럼 넌, 네가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진화가 덤덤하게 물었다.

차디찬 시선이 왕자를 내려다보고. 

진화의 눈을 본 칠왕자 한문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놈, 정말 날 죽일 생각인가?’

살기조차 비치지 않는 검은 눈동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문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읽어 낼 수 있었다.

분노나 살기는 당장 죽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나 비치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처럼 상대를 언제든 죽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대의 발언에 일일이 화를 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말 그대로, 언제든 죽일 수 있기에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여기는 것이다.

“와, 왕부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왕부에서 어떻게 알고?”

“내 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왕자들과 가장 많은 마찰을 빚은 것이 너이지 않나?”

“아까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오왕부 주제에 남궁세가의 직계를 증거 없이 압박할 수 있을 것 같아? 많고 많은 왕자 중에 하나, 그것도 말석인 칠왕자 하나가 위험한 무림에서 사라진 거야. ……그러게 왜 혼자 있었어, 왕자가.”

“……!”

한문혜의 눈이 커졌다.

진화의 말에서, 그가 정말로 자신을 죽인 후까지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내게 뭘 원하는 거지?”

한문혜가 태세를 달리했다.

“추격조가 어디 있지?”

“뭐, 뭐?”

스으으으.

한문혜의 되물음에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동시에 다시 한문혜의 정강이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크큭! 자, 잠깐!”

아까의 고통을 떠올린 한문혜가 시작도 전에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미안, 못 들었어.”

비명을 지르는 한문혜를 보며 진화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허억. 헉. 헉…….”

“너, 내 눈 봤잖아. 그게 뭔지 아니까, 제갈무진에게 달려간 거잖아. 다시 물을게, 추격조가 어디 있지?”

“헉. 헉…….”

진화의 말에 한문혜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

‘드, 들켰다고?’

정신적 압박과 고통이 한문혜의 판단력을 흔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궁지에 몰렸음에도 한문혜가 남궁진혜를 가지고 역으로 협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들은 아직 남궁진혜가 추격조에 있는 걸 모르는 듯했다.

진화의 마음이 급해지는 만큼 눈빛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았다.

“추격조는 나도…….”

“대답, 잘해야 할 거야.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나, 나도! 정확히는 몰라!”

한문혜가 급히 소리쳤다.

한문혜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는 진화의 눈빛을 읽고 완전히 겁을 먹었다.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읽어 내는 그의 재능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은 격이었다.

진화의 눈 속에 있는 깊은 증오를 읽고 말았으니 말이다.

“숲 어디쯤이야?”

“옥혼진을 설치한 건 뇌평이야! 숲 전체에서 가장 기운이 어질러진 곳을 찾는 건, 설치자밖에 모른다고! 정말이야!”

숲 전체에서 가장 기운이 어질러진 곳이라…….

진화의 생각이 깊어졌다.

‘이전에도 제갈무진이 현홍사와 교성흑오대로 만든 진법을 사용했었지. 환각에 빠진 듯했지만 그것과는 달랐어. 시각을 속인 거였다.’

어쨌든 하나는 확실해졌다.

남궁진혜와 추격조는 아직 그 숲에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알아낸 진화가 한문혜를 보았다.

진화와 눈이 마주친 한문혜가 다급해졌다.

“사, 살려 줘! 이 일은 절대로 함구하겠다!”

“…….”

한문혜의 눈을 보던 진화가 씨익 웃었다.

“어차피 넌 칠왕자잖아. 귀천성의 성패가 네게 중요한가?”

“뭐?”

“네 목적은 귀천성에 충성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아니야?”

“…….”

진화의 물음에 한문혜가 입을 다물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마자, 입을 다물고 머리를 굴리는군. 이런 인간은 절대 맹목적인 신념을 가질 수 없지. 역시 넌 귀천성도가 아니야.’

진화가 아는 귀천성도라면, 진화를 속이려 하든가 입을 다물고 죽었을 것이라.

한문혜가 입을 다무는 건 오직 자신을 위해서일 때뿐이었다.

“입 다물고 있어 주지. 서로 협력하자고. 어때?”

진화가 한문혜에게 제안하는 광경을 보며, 남궁구는 아주 오래전 진화가 남궁교명에게 손을 내밀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도 저렇게 웃으면서 ‘어때?’ 하고 물었었는데…….’

그러고 나서 남궁교명의 뒤통수를 때렸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한문혜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진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남궁진혜와 추격조가 그 숲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진화가 남궁진휘를 찾았다.

진화의 말을 들은 남궁진휘는 깜짝 놀랐다.

“왕자와 대화를 나눴다고?”

남궁진휘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진화를 보았다.

하지만 진화가 사안의 심각성을 모를 리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닌 남궁진혜의 일에 경솔하게 움직일 리도 없었다.

“왕자가 귀천성을 배신한 것이냐? 너는 무엇을 주었고?”

“그냥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식으로 설득했고, 그게 통한 겁니다.”

“설득을 했고, 그게 통했다고?”

더더욱 믿기지 않는 말에, 남궁진휘가 남궁구를 보았다.

남궁구의 표정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믿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형님, 그 숲에서도 가장 기운이 혼잡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가야 합니다.”

“뭐? 안 된다!”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부터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날 진화가 아니었다.

“저는 제갈무진의 진법에 당해 본 적이 있습니다. 눈의 맹점을 파고들어서 시각을 속인 진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음과 양의 기운이 어지럽게 깨어진 곳을 찾으려면 제가 가야 합니다.”

“진화야!”

“형님, 급합니다! 진혜 누님이 언제 나설지 알 수 없습니다!”

진화를 말리려던 남궁진휘도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진화가 순화해서 말했지만, 남궁진혜라면 벌써 난리를 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진법 파훼가 가능한, 경지를 넘은 무인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고민하는 남궁진휘에게 진화가 강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진화야…….”

무인인 자신의 경지를 숨기는 것은 목숨처럼 지키는 관습이라, 가족조차도 알지 못하고 묻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화가 제 입으로 경지를 밝혔다.

남궁진혜를 구하러 가는 데에 빠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남궁진휘가 진화의 눈을 보았다.

이글이글 불길이 타는 듯 진지한 눈빛.

“네가…… 숙부님 아들이 맞긴 하구나.”

남궁진휘의 말속에 한숨이 섞여 나왔다.

남궁가주도 이런 눈을 한 남궁경은 말리지 못했다.

“반드시 누님을 구해 올 것입니다.”

“하아. 부탁하마. 모든 전력을 동원할 것이다. 남궁조 숙부님부터, 동원되는 무단의 단주들이 모두 동원될 것이다. 그러니…… 넌 제발 안전하게 물러나 있어 다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아, 숙부님도 딱 저런 눈으로 거짓말을 했었는데…….

남궁진휘는 불안과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 * *

콰—엉!

“아아아아악! 짜증 나네, 정말!”

남궁진혜가 날린 검기가 나무에 부딪혀서 굉음을 냈다.

하지만 나무가 쓰러지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정말! 무슨 강철 나무야?”

남궁진혜는 숲이 날아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멀쩡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녀의 뒤에서 수하 중 하나가 한숨을 쉬었다.

“벌써 열 번째구먼. 매번 저렇게 난리 치는 것도 신기하네.”

“우리 조장 몰라? 한번 물면 포기를 모르는 남궁의 청견화!”

이미 적호단 조원들은 남궁진혜의 성향에 적응한 듯 보였다.

오히려 주작단원들이 불안한 듯 보고 있었다.

“좀 말려 보지그래? 저러다가 놈들을 불러오면 어쩌려고.”

주작단원 하나가 적호단원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주작단 조장 또한 아닌 척 적호단원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적호단주와 맞장뜬다는 청견화를 말릴 자신은 없는 듯했다.

“으아아아악! 누구라도 나타나라고!”

남궁진혜가 제 성질에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그걸 보며 적호단원이 주작단원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 조장 사부님이 그랬다는군. ‘네 머리로는 함정을 피하긴 어렵고, 진법은 더더욱 피할 수 없다. 대신 그걸 만든 놈을 작살 낼 순 있을 것이다.’라고.”

“아…….”

적호단원과 남궁진혜를 번갈아 보던 주작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때리다 보면 어떤 놈이든 오겠지! 아아아악!”

악에 받친 남궁진혜가 아까 그 나무에 검기를 날렸다.

콰---엉!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적호단과 주작단이 진동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효과가 있을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쉐에엑---!

퍼-엉!

이전의 굉음과 조금 다른 소리였다.

“누가 죽으려고 이렇게 발악을 하는 거지?”

나무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그와 함께 언제 왔는지, 그들 주변으로 빼곡하게 교성흑오대가 자리했다.

주작단과 적호단이 긴장하며 사방을 경계했다.

그 속에서.

“왜 이제 나타나고 지랄이야, 새끼야.”

남궁진혜가 당장 분풀이할 상대가 등장하자 살기를 풀풀 날리며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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