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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15)화 (115/425)

남궁마제

티끌 진(塵) 될 화(化) : 기꺼이 나쁠 것이라(4)

콰—광!

굉음과 함께 기파가 퍼졌다.

“큿!”

“내 동생한테서 눈깔 치워, 새끼야.”

뇌평과 검을 맞댄 남궁진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슴속에서 열이 들끓어서일까.

속에서부터 기운이 솟구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꼭 남궁진혜의 기분만은 아닌 듯.

챙-! 챙챙--!

뇌평과 검을 부딪칠 때마다 남궁진혜의 기운이 강해졌다.

그녀의 검에 어린 푸르스름한 기운도 점점 짙어졌다.

“누님…….”

진화가 놀란 눈으로 남궁진혜를 보았다.

붉어진 그녀의 눈이 점점 맑아지고, 상처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멈췄다.

‘경지를 넘어서시려는 건가!’

진화의 눈빛이 울렁거렸다.

이전 생에선 남궁진혜가 경지를 넘어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저렇게 눈부신 재능이 남궁세가의 불행 속에 매몰되었었다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미안해졌다.

자신이 아주 조금 달라진 것만으로도 남궁이 변하는 것을 보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선 위험한데…….’

진화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쉐에에엑--!

푸-욱!

“큭.”

진화가 찔러 넣은 검을 돌리자 교성흑오대원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누님의 곁엔 아무도 못 간다.”

진화가 뇌평과 남궁진혜의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곳에선 이미 교성흑오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 온 무단들 면면이 실전에서 다져진 무인들로 구성된 데다, 남궁조와 모용관천이라는 전쟁 경험이 풍부한 고수들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으니.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주작단과 매화단이 곳곳에 있는 현홍사를 끊으며 진법을 풀었고, 창궁무애단과 모용은하단, 무당현문단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방심 없이 교성흑오대를 몰아붙였다.

쉐에엑-!

진화의 검이 남궁진혜의 뒤로 접근하는 교성흑오대원의 몸을 날카롭게 갈랐다.

동시에 진화의 왼손이 뇌기를 뿜었다.

파파팟--!

“크어억!”

천뢰장의 뇌기가 공중으로 뿜어지는 피를 타고 번지며, 다른 교성흑오대원의 접근을 막았다.

남궁조와 진화의 눈이 마주쳤다.

-진혜를 맡거라.

남궁조의 전음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조는 물론이고, 모용관천 또한 남궁진혜의 상태를 눈치챈 듯 교성흑오대를 뒤로 물리면서 싸우고 있었다.

이제 진화의 시선이 안심하고 남궁진혜와 뇌평에게 집중되었다.

‘뇌평.’

죽여야 하는데…….

그를 놓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던가.

귀천성 놈들은 기회가 되었을 때 죽여야 하는데, 지금 또 이렇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일 수도 없는 것이, 지금 남궁진혜가 경지를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무인에게 경지라는 건, 단지 무재가 있고 수련이 오래되었다고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공할 무재에 오랜 수련과 깨달음 그리고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전한 시간이 필요했다. 경지를 넘은 무인을 달리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리라. 

저렇게 찾아온 깨달음의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다시 올지,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이렇게 위험천만한 순간에 깨달음을 맞은 남궁진혜를 보며, 진화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콰광-!

쾅! 쾅!

흥분은 가라앉은 듯했지만, 여전히 남궁진혜가 뇌평을 몰아붙였다.

공격 일변도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본래 남궁진혜의 성격이라.

계속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뇌평도 만만치는 않았다.

촤아아아아---!

쉐에엑-!

휘어진 도가 남궁진혜의 검을 긁어내리듯 내려와 그녀의 팔을 그었다.

진화의 눈이 움찔했다.

“아……!”

진화가 탄성을 내었다.

푸욱-!

등 뒤로 쓰러지는 교성흑오대의 시체를 털어 내며, 진화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남궁진혜를 보았다.

방금 뇌평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으며, 남궁진혜의 각성이 끊긴 듯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목전에서, 남궁진혜는 호흡과 눈빛이 안정되는 것과 달리 내기는 요동치며 폭발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의 공격 이후 내기가 안정을 찾고 있었다.

요동치던 그것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오히려 남궁진혜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깨달음의 목전에서 깨어진 것이다.

하지만 진화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이대로 내기가 폭주하면 주화입마에 들 수도 있었어. 차라리 다음을 노리는 게 나아.’

그러면서 진화의 눈이 매섭게 뇌평을 향했다.

남궁진혜가 안전하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뇌평이 그것을 깨어 놓은 것도 사실이라.

‘저 세상 무용한 놈!’

그러나 진화가 눈으로 비난을 하든 말든. 

뇌평이 남궁진혜에게서 승기를 잡아 갔다.

뇌평은 영리하게 남궁진혜의 힘과 속도를 이용하고 있었고, 남궁진혜는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넘어설 수 있었던 문턱 앞에서 꺼꾸러진 것이 먼저라.

남궁진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헉. 헉. ……젠장!”

욕지거리를 뱉은 남궁진혜가 이를 악물었다.

불리해진 정황은 남궁진혜 본인이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울컥한 마음도 솟구쳤다.

왜 하필 그때에……!

남궁진혜가 이를 악물고 뇌평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선택은 아무래도 ‘일단 때리고 보자.’인 듯, 마지막 기운까지 쥐어짜서 공격을 감행했다.

“타아아앗-!”

남궁진혜가 위에서 내리치는 뇌평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불리한 위치였지만,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다.

콰—광!

“크윽!”

남궁진혜가 제 모든 기운을 실어서 뇌평에게 갖다 박듯이 맞부딪쳤다.

공중에서 충돌하며 강한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이 양쪽으로 튕겨 나갔다.

“헉. 헉. 씨이, 헉…….”

진기까지 끌어다 썼는지 남궁진혜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로 욕도 제대로 못 할 만큼 기운이 빠졌지만, 두 눈은 여전히 뇌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진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님, 큰어머니께 편지 쓸 겁니다.”

“……뭐?”

“지금이야 정의맹 무인들이 가득하다지만, 다른 때였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겁니다.”

“그야 뭐…….”

“편지 쓸 겁니다.”

“지, 진화야?”

남궁진혜가 놀란 듯 돌아보았다.

언뜻 들어 보면 동생의 귀여운 타박 같았지만, 어쩐지 등골이 서늘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진혜를 받쳐 든 채 검을 든 진화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아니, 진화야!”

파지지지직-----!

남궁진혜가 뭐라 붙잡기 전에, 진화가 튀어 나갔다.

시리도록 푸른 뇌기가 진화의 검에서 번뜩였다.

쉐에에엑--!

쉐에엑!

진화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었다.

진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뇌평의 앞을 막아선 교성흑오대의 살과 뼈가 갈랐다.

검은 머리칼이 매끄럽게 흩날리는 사이로 푸른 뇌기가 번쩍이는 모습이, 마치 검은 하늘에 번쩍이는 거친 은하와 같았으니.

진화가 푸른 뇌전을 번쩍이며 검은 까마귀들 사이를 휘젓는 모습에, 싸움을 멈춘 무인들이 넋을 빼앗긴 사람처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저 아이……!”

“쉿.”

모용관천이 경악하며 남궁조를 보고, 남궁조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모두가 보고 듣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입 밖으로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으니.

소문이 퍼지면 지금처럼 믿는 사람과 못 믿는 사람이 난무할 테니, 내버려 두면 될 일이었다.

“우리는 주변을 정리하지.”

“포로는 필요 없네.”

모용관천의 말에 남궁조가 냉정하게 답했다.

모두가 사방에 걸린 조사단의 시체를 본 후였다.

이곳에 있던 교성흑오대가 백여 명.

이미 전황은 굳었고, 점점 줄어들던 교성흑오대원도 이제는 반도 남지 않았다.

전부 죽여 시체를 사방에 걸 순 없어도, 조사단이 흘린 피보다 많은 피를 흘리게 할 순 있을 터였다.

남궁조와 모용관천이 상황 정리에 나섰다.

진화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뇌평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진화의 세계에서, 제 앞을 막아서는 교성흑오대는 그저 낙엽일 뿐이었다.

내가 통제할 순 없지만, 위협되는 것도 아닌.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낙엽 따위, 손으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시리도록 검은 눈동자가 뇌평을 향했다.

파지직. 쉐에에엑-!

진화의 검이 뇌평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푹! 푹!

교성흑오대원 둘이 몸을 날려 막았다.

하지만 진화 또한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으로 흘리는 뇌기를 키웠다.

“크아아아악---!”

악명 높은 감찰당의 고문도 견디던 교성흑오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비명에, 사람들이 시선이 다시 한번 진화에게 향했다.

서늘하리만큼 순수한 얼굴로, 속을 태워 버린 교성흑오대원을 발로 떨구고 뇌평에게 향하는 진화를 보며, 많은 이들이 소름을 털듯 몸을 떨었다.

뇌평 또한 수하들을 죽이며 끈질기게 저를 노리는 진화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저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은 저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라!

“감히……!”

상처 입은 짐승처럼 뇌평이 으르렁거리며 진화를 노려보았다.

혈관이 부풀어 오른 듯 붉어진 눈.

진화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폭주?’

진화는 눈에 익은 증상을 찾아 뇌평을 꼼꼼하게 살폈다.

몸 곳곳에 툭 불거진 혈관과 거친 호흡, 확장된 동공.

심상치 않게 요동치는 기운이 뇌평의 제어를 벗어난 것이 보였다. 

‘그렇군. 너희도 그걸 처먹었단 말이지.’

진화가 조용히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무슨, 컥!”

소리도 없이 검이 지나고, 매화단원의 경악한 얼굴 위로 붉은 선이 지났다.

털썩.

귀면갑을 쓴 흑의인이 별 감흥도 없이 죽은 매화단원을 딛고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아무렇게나 걸어 놓았다.

“진법이 깨졌군. 점점 정의맹 무인들의 움직임이 살아나고 있다.”

“허허, 괜찮네. 자네가 확인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 줄 걸세.”

나무 아래, 공터.

이제 상황이 끝나 가고 있었다.

교성흑오대원들이 모두 죽어 나가고 있었지만, 제갈무진은 태연한 얼굴로 여유를 부렸다.

귀면갑을 쓴 흑의인 또한 교성흑오대의 죽음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진화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더 많은 교성흑오대원이 진화에게 덤벼들길 원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나 검에서 번쩍이는 뇌전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저 살기(殺氣), 저런 눈…….’

죽어 가는 교성흑오대원을 보며 귀면갑의 눈빛에 점점 흥분감이 떠올랐다.

마침내.

뇌평이 온몸의 기운을 폭발시키며 진화에게 달려들어 검을 부딪쳤다.

파지지직--!

진화의 왼손에 맺힌 거대한 뇌기가 그대로 뇌평의 복부에 꽂혔다.

그리고 뇌평의 허리가 숙여졌다.

진화가 몸을 굽힌 뇌평을 향해 푸른 번개를 꽂듯 검을 내리쳤다.

번뜩--!

귀면갑을 쓴 흑의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뇌평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고, 온 사방으로 그의 피가 비처럼 떨어졌다.

붉은 혈우 속에서 뇌전이 번뜩이고, 남아 있던 모든 교성흑오대원들을 꿰뚫듯 스쳐 지났다.

“크아아악---!”

“아악!”

섬뜩한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쓰러진 이들이 더 많았다.

비명이 가시고 침묵이 찾아왔다.

고요한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은 곳에, 홀로 선 사람처럼 덤덤하게 주변을 보는 까만 눈.

삭막하리만큼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검은 눈동자가 흑의인의 뇌리에 박혀 들었다.

“……하!”

귀면갑이 벌어지며 탄성이 터졌다.

제갈무진이 흑의인의 반응을 보며 요요하게 눈을 빛냈다.

‘알아보았군.’

제갈무진의 예상대로, 귀면갑을 쓴 흑의인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주군의 물건이 맞군. 협조하겠다.”

“거래 성립이로군.”

“당신의 제물을 확인하는 것까지다. 그러고 나면, 나는 주군의 것을 찾아 돌아가겠다.”

“허허허,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귀면갑 사이로 흑의인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제갈무진 또한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뇌평의 목이 떨어지고 교성흑오대 백여 명이 모두 죽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둘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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