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사냥꾼의 정체는(1)
휙- 휙-!
숲이 소란스럽게 울었다.
바람이 없는데도 나무들이 흔들리고, 자리를 잃은 새가 날아올랐다.
그 아래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없습니다.”
“그런가.”
안타까운 얼굴로 주작단원이 고개를 젓고, 주작단주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임무 지역 주변으로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시체를 수습할 때에도 없었다면, 현홍사 주변에 없을 수도 있네. 지역을 조금 넓혀 보지.”
“예!”
“부탁하네.”
“어인 말씀입니까? 동료의 일입니다.”
주작단원의 말에 주작단주가 고맙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그들이 전투 지역의 숲을 다시 찾는 수고를 하는 건, 화산의 매화단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임무 이후 복귀하지 않은 매화단원을 찾아 화산파에서도 백방으로 움직였지만, 역시나 마지막 행적이 전투가 있었던 숲에서 끊겼다.
일반 무사들 중에는 전투 중 공포에 못 이겨 탈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화산 매화단은 화산파가 자랑하는 정예 중의 정예라. 아마도 전투 중에 습격을 당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었다.
정의맹에서는 화산파를 위해 주작단을 지원했다.
주작단주 구화검 구격용이 화산파 출신으로 지난 임무에서 매화단과 함께했었고, 주작단 자체도 이런 추적 임무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주님! 여기!”
“사형!”
주작단원과 매화단원 하나가 급히 주작단주를 찾았다.
“뭔가 발견했나?”
“이것 좀 보십시오.”
나무를 타고 개미들이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주작단원 하나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찍어 보였다.
손가락엔 말라붙은 적갈색 가루가 묻어났는데, 그게 뭔지 몰라볼 주작단주가 아니었다.
“피군.”
주작단주의 시선이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위.”
주작단주의 말에 주작단원과 매화단원의 고개가 올라갔다.
동시에 주작단주가 위를 향해 살기를 쏘았다.
푸드득!
푸드드드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까마귀 떼가 날아올랐다.
어떻게 몰랐나 싶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나뭇잎이 울창하고 엮인 가지도 많아서, 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여선아!”
마음이 급한 듯, 매화단원이 먼저 나섰다.
그리고 주작단주가 말리기도 전에, 여선이라 불린 어린 매화단원이 사라졌다.
잠시 후.
“여기 있습니다!”
여선이 큰 소리로 실종된 매화단원을 찾았음을 알려 왔다.
울먹이듯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주작단주와 주작단원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그들은 경험상 새들에게 뜯긴 시체가 그리 좋지 못한 상태일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린 여선에게는 꽤 충격이리라.
“제가 수습해서 내려오겠습니다.”
“저도.”
어느새 소리를 듣고 온 주작단원과 매화단원 모두 표정이 좋지 못했다.
주작단원들이 거의 뼈만 남은 듯한 시체를 보자기에 싸서 내려왔다.
함께 내려온 여선은 눈물과 달아오른 얼굴을 다른 매화단원의 품에 숨겼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죽어서 돌아온 동료의 시체.
성공적인 구출 작전인 줄 알았던 지난 임무에 나온 유일한 사망자였다.
“주변에 남아 있는 검흔은 없는지 살펴라. 시신은 화산파에 돌려주기 전에 의선문에 검시를 맡긴다.”
“충.”
주작단주의 명에 주작단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형, 저희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장로님과 본산에 연락을 취해야겠습니다.”
“가 보게. 정의맹에는 내가 보고해 놓겠네.”
“감사합니다.”
매화단원들 또한 감사 인사를 한 뒤 슬픈 얼굴로 헤어졌다.
* * *
제갈지현이 오랜만에 수련에 나섰다.
최근 후계 교육에 들어가면서 수련 시간이 적어졌었다.
그러던 중, 오늘 갑자기 제갈가주가 정의맹의 연락을 받고 자리를 뜨면서 교육이 취소되었다.
뜻밖에 생긴 자유 시간에, 제갈지현은 그동안 못 한 수련을 하기로 했다. 후계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림인의 기본은 어쨌든 무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곧 제갈지현은 자신이 하필 이 시간에 나온 것을 후회해야 했다.
연무장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반갑다는 말도 없었다.
제갈후현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제갈지현이 몇 번 찾아갔지만, 제갈후현이 만남을 거절했었다. 제갈후현이 제갈세가에 돌아온 후엔, 제갈지현이 제갈후현과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녔다.
바로 지금처럼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아직 회복이 덜 끝났다.”
“세가에 돌아오신 건가요?”
“글쎄…….”
제갈후현이 가만히 제갈지현을 보았다.
제갈지현은 예의상 으레 물어봐야 할 안부를 물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따라서 어떤 말에서든 의미를 찾기도 하는데, 지금의 제갈후현이 그러했다.
제갈후현이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며 제갈지현을 비웃었다.
“네가 날 생각해 주는 것이 의외구나. 내가 돌아오지 못해야 네게 좋은 것이 아니더냐?”
“……!”
직접적인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지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차분하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순수하게 걱정되어 물은 것입니다. 한배에서 난 남매가 아닙니까.”
“호오, 그래? 하긴 넌 항상 그랬지.”
제갈후현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코 제갈지현의 말을 인정하는 뜻은 아닌 듯했다.
역시나 제갈후현이 점점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제갈지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고분고분한 척, 욕심 없는 척, 조신한 척, 고상한 척……. 뒤로는 종을 부려 ‘한배에서 난 남매’를 염탐하고, 가주전의 명령을 엿보았지. 아, 다른 배를 타고 난 남자의 재물도 챙겼던가?”
“…….”
제갈후현의 말에 제갈지현이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제갈지현을 보며 제갈후현이 피식 웃었다.
“네가 여주관을 움직이는 걸 아버지가 몰랐을 것 같으냐? 네가 제갈용성이 가진 상단의 지분을 꿀꺽한 걸 모르셨을 것 같냐고.”
“용성 오라버니의 지분이라면, 아버지께서 주신 겁니다.”
“아니, 그런 것 말고. 지화상단! 처음 소현이가 들고 있었던 그것.”
“……!”
제갈후현의 비아냥에도 표정 변화 없이 굳건하던 제갈지현이 움찔하고 말았다.
눈이 크게 떠진 것을 들키고 만 것이다.
그제야 제갈후현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내게 몸을 완전하게 회복하라시더군. 이전 그대로 회복하지 못한다면 내 자리는 없다고. 실망스러웠지. 충격이었어. 그런데 말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난 이전처럼 돌아가기만 해도 내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더구나.”
제갈후현의 눈빛을 받으며, 제갈지현은 뱀 같은 눈빛이 자신의 팔다리를 하나하나 얽어매는 듯했다.
“……빠른 쾌유를 빌지요.”
“하하하하! 그래, 빌어. 많이 빌어 둬.”
제갈지현이 힘겹게 내뱉는 대답을 듣고, 제갈후현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연무장을 나갔다.
혼자 남은 제갈지현은 한동안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쥐고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잠시.
이를 악물고 마음을 가라앉히던 제갈지현이 고개를 들었다.
“후우…….”
‘그래, 이제까지 참아 왔는데 뭘 새삼.’
한숨을 내뱉으면서, 남은 분노의 찌꺼기도 내려놓았다.
그때.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누구!”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제갈지현이 돌아보자, 거기엔 칠왕자 한문혜가 서 있었다.
‘언제 내 옆에 온 거지?’
제갈지현이 놀란 마음을 숨기며 한문혜를 보았다.
제갈지현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에, 한문혜가 부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려봐야 할 사람이 제가 아닐 텐데요?”
“전부 지켜보신 건가요?”
“예비 정혼녀가 상처받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더군요.”
한문혜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제갈지현은 한문혜의 말투보다 자신의 그런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더 큰 수치심을 느꼈다.
“아직 ‘예비’조차 아니지요.”
제갈지현이 입술을 깨물며 쌀쌀맞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제갈지현이 가소롭다는 듯 한문혜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저런 자에게도 자리를 내줘야 할 위치라는 게 비참하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제갈세가를 가지고 싶지 않나요?”
한문혜가 제갈지현에게 다가섰다.
“제 손을 잡으십시오. 그럼 저런 머저리가 아닌 당신에게 제갈세가를 쥐여 드리죠.”
제갈지현은 한문혜의 목소리가 마치 제 속에서 속살거리는 마귀의 목소리 같았다.
그리고 제갈지현은 평생 그 목소리를 들어 왔고, 그 목소리를 견뎌 왔다.
방금의 상황이 어떠했든,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제갈지현이 아니었다.
“흥,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자신하시기엔 옥좌가 너무 멀지 않나요, 일곱 번째는.”
하지만 이번엔 그 말도 통하지 않았다.
“하하, 멀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먼 건 아닙니다. 이제 다섯 번째가 되었거든요.”
“네?”
“위에 있던 두 형제가, 불행히도 얼마 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한문혜가 짙게 미소하며 말했다.
그의 미소가 마치 ‘앞으로 고작 네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제갈지현도 조금 흔들린 듯, 떨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했다.
* * *
남궁세가 장원.
정의맹에서 돌아온 남궁진휘가 남궁조와 진화를 찾았다.
“사라진 매화단원이 오늘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음, 현홍사를 제거하던 중 습격을 당한 것이 맞더냐?”
“일단 의선께서 검시해 주신다고 합니다. 다만 시체의 훼손이 심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남궁진휘의 말에 남궁조와 진화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어쨌든 매화단원이 남아서 현홍사를 제거하기로 한 것은, 진화와 남궁조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역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그런데 왜 지원을 오지 않은 거지?”
“상황을 지켜본 것이겠죠. 나무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공터가 훤히 보일 정도로.”
“내 탓이로구나. 주변을 더 살폈어야 했는데…….”
“아무리 숙부님이라도, 진법 때문에 주변 기척을 느끼기 쉽지 않았습니다.”
남궁조가 자책하는 말에 진화가 나서서 위로했다.
진법에 의해 기운이 어그러진 곳이라, 진법이 완전히 와해되기 전엔 남궁조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일이었다.
단, 진화는 제외하고 말이다.
“하나, 제게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일반적인 교성흑오대는 아닐 것입니다. 제갈무진 본인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경지를 넘은 고수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 다른 고수라…….”
“그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은 계속 어디서 기어 나와!”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와 남궁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남궁조는 이제 귀천성도라면 지긋지긋한 듯했다.
하지만 진화에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지. 이전에도 한 놈을 죽이면 아무렇지 않게 다른 놈이 다시 찾아왔고, 더 많은 놈들이 나를 쫓아왔었다.’
이미 귀천성의 끈질김을 겪어 본 진화였다.
게다가 제갈무진이 진화의 예상대로 혼현마제가 맞다면, 결코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혼현마제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자다.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 상대를 몰아붙였으니까. 필시 다른 대책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뇌평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보았겠지.’
진화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뇌평이 남궁도를 구했다면 자신에 대한 정보가 간 곳은 제갈무진일 것이나, 어쨌든 광마전에도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갈무진의 다음 계책이 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인데…….”
“광마전이 진화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불안한데 말이다.”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칠왕자를 다시 납치해야 하나.’
진화가 남궁구가 알면 펄쩍 뛸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남궁교명입니다. 잠시 들겠습니다.”
남궁교명이 심각한 얼굴로 남궁진휘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가주님과 이공자님, 지부장님께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고개까지 숙이면서 정식 보고 형식을 취하는 남궁교명을 보며, 남궁진휘와 남궁조, 진화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교명, 무슨 일이야?”
“남궁도에게서 지령이 떨어졌습니다.”
남궁교명의 말에 남궁진휘와 남궁조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진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형님, 숙부님, 남궁도를 먼저 잡으면 됩니다!”
진화가 반색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