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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18)화 (118/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사냥꾼의 정체는(2)

정의맹 회의가 소집되었다.

정의맹주를 비롯해서 총군사인 제갈가주, 감찰당주와 현재 맹에 머무르고 있는 백매단과 적호단, 주작단의 단주들만 자리한 내부 회의였다.

남궁진휘 또한 부군사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남궁진휘가 먼저 전달해야 할 내용들을 설명했다.

“남궁도라…….”

남궁진휘의 설명을 들은 제갈가주가 조용히 이름을 읊조렸다. 

제갈가주는 아주 어릴 적 남궁도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때 제갈가주가 본 남궁도는, 청순한 학자처럼 보였지만 꼿꼿하게 세운 고개를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나갔음에도 가주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사달을 만들었구나.’

본래 욕심과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

나이나 성별,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리고 갈망하는 것을 ‘꿈’ 혹은 ‘소망’이라 말하는 순간, 어느 누구든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남궁세가 내부의 일로 처리하려고 했으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걸리는 것?”

“이번에 구출단에 속해서 남궁진화가 죽인 인물이, 남궁도의 탈출을 도운 것 같습니다.”

“잠깐!”

제갈가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남궁진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방금 남궁도의 탈출이 ‘얼마 전’이라 하지 않았나?”

“이레 정도 되었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뇌평은 나흘 만에 움직였겠더군요.”

“말도 안 되네!”

남궁진휘의 대답에 백매단주가 소리쳤다.

“양주에서 이곳까지, 육로로 말을 바꿔 달려도 스무날, 수로를 통해도 이레는 넘게 걸리는 길이네!”

뇌평이 천하제일 고수라도 되면 모를까, 절대적인 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배를 탔다면 경공을 썼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제갈가주는 남궁진휘가 나이는 어려도 누구보다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는 것을 겪어 알고 있었다. 남궁진휘가 그런 것도 몰랐을 리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제갈가주가 진지한 눈빛으로 남궁진휘에게 물었다.

“다른 경로를 만든 것이라 보는가?”

제갈가주의 질문에 남궁진휘가 속으로 감탄했다.

척하면 척, 바람만 불어도 어느 산기슭에서 시작되었는지 추리해 낼 사람이 아닌가.

“뇌평이 남궁도를 구하러 갔다가 다시 이곳에 온 시간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시간입니다. 만약 놈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었거나 수로를 연 것이라면…….”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에 우리가 모르는 길이 있다면 큰일이지. 혹시 귀천성이 대대적인 습격을 해 와도 모를 수 있으니까.”

남궁진휘의 말을 제갈가주가 이어서 받았다.

그제야 회의에 참석한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게 그 쥐새끼 같은 놈들의 특기였지!”

감찰당 당주 정속마검 견강위가 이를 갈았다.

견강위가 속한 종남파가 지금까지 귀천성과 어려운 전쟁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몰랐던 길을 통해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종남파만이 아니었다.

아미파나 사천당문이 속수무책으로 사천을 떠난 것도,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귀천성에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라.

정의맹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정의맹에는 역천비록과 천살지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궁도에 의해 진화가 광마의 제물이었다는 것도 전해졌을 겁니다.”

“광마까지…….”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까지 부딪친 제갈무진이나 교성흑오대와, 광마제(狂魔帝) 구훤은 이름이 주는 무게감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귀천성 놈들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모르는 경로로 움직인다면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광마전까지 합류한다면…… 길을 알아내 없애거나 대비책이 꼭 필요합니다.”

정의맹을 움직이는 두 군사의 확언이 아니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그래서 자네의 생각은 뭔가?”

“남궁세가에서 남궁도를 잡아들일 겁니다.”

“남궁도를 사로잡아 뇌평이 이동한 경로를 알아낼 생각인가? 음, 가능성이 있군.”

제갈가주가 대번에 남궁진휘가 말하는 바를 꿰뚫었다.

그때, 두 군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의맹주가 물었다.

“그래, 정의맹에서 뭘 어떻게 해 주면 되는가?”

“세가에서 남궁도를 잡아들일 동안, 놈들의 눈을 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지.”

정의맹주의 결정이 떨어졌다.

당장 귀천성이 노리는 곳은 남궁세가가 아닌 정의맹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남궁도는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건가? 그를 사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네. 필요하다면 정의맹 무단을 파견해 줄 수도 있네.”

제갈가주는 남궁도를 잡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을 남궁세가에만 맡겨 둔다는 것이 불안한 듯했다.

가문의 반역자를 잡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긴 조심스러웠지만, 정의맹이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역천비록과 천살지체를 빼앗기면, 이후의 상황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남궁진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본가, 가주님께서 지휘하시고 제왕무적단이 직접 움직일 것입니다.”

“으음!”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가주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제갈가주는 물론 누구도 더는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현 남궁가주는 제갈가주가 그토록 원했던 천하제일 세가의 위명을 남궁세가 앞에 달아 놓은 수완가였다.

게다가 남궁세가의 제왕무적단이라면, 이곳에 있는 백매단과 적호단, 주작단조차 한 수 접어준다는 최강의 무단 중 하나였으니. 그 제왕무적단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남궁제일검이라 불리는 창천일검(蒼天一劍) 남궁경이었다.

제왕검의 아들들이 직접 움직인다니,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 * *

남궁세가 가주전.

전서응이 급보를 달고 날아왔다.

남궁가주가 전서를 보다가 곧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내용이 뭔데 그래요?”

남궁가주의 반응에 남궁경이 물었다.

“진혜가 무사하다는구나.”

“잘됐네요. 근데 그게 뭐가 이상해요?”

남궁경이 남궁가주야말로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걱정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 놀리진 못했다. 

그러기엔 남궁가주의 표정이 몹시 진지했기 때문이다.

“네가 봤다는 그자, 뇌평이라는 자가 인질로 있던 추격조를 죽이려다가 진혜와 부딪힌 모양이야. 결국 구출단과 함께 온 진화의 손에 죽었다는구나. 뭐 느끼는 바가 없느냐?”

“뭐요? 느끼는 거?”

남궁가주의 질문에 남궁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도의 옆에서 제 검기를 막은 놈이 내 아들 손에 죽었다라…… 여기에서 느끼는 점이라면 한 가지였다.

“하핫! 꼴좋다, 그 얌생이 새끼!”

남궁경이 통쾌하다는 듯 뇌평을 비웃었다.

“……후우, 그래.”

남궁경의 대답에 한동안 말을 잃었던 남궁가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경은 남궁가주의 반응을 보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답이 틀렸다는 건 알았다.

“진혜가 무사한 건 잘된 일이고, 내 아들이 안 다쳤다면 더더욱 잘된 일인데, 또 뭘 느껴야 합니까?”

남궁경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남궁가주도 더는 남궁경에게 뭔가를 묻거나 공감을 얻길 포기했다.

“너무 빨리 도착했어. 아무리 뱃길이라도 말이야.”

“아!”

남궁경이 그제야 알았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남궁도부터 찾는 것이 시급하구나.”

“그 쥐 새끼 같은 영감탱이! 내 새끼 정보를 팔아먹고, 내가 편하게 발 뻗고 자게 냅둘 것 같소? 양주 근처, 서주로 가는 수로에 있는 포구 중에서 최근 새로 생긴 상단은 죄다 뒤져 보고 있습니다!”

남궁도를 생각하며, 남궁경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남궁경의 말처럼 수색 작업이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수로 근처에는 크고 작은 표국이며 상단이 수천수만 개였다. 거기에 하루에도 수십 개가 새로 생겼다가 수백 개가 사라지는 데다, 비슷하거나 같은 이름도 수십 개씩 되니.

아무리 남궁세가라도 그걸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일단 강을 타고 가는 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남궁도가 내렸겠지. 남궁도의 성격상, 남궁세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남궁세가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게다가 상단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 해도, 그 집착을 생각하면 남궁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할 것이니……. 잠삼현과 직접적인 거래가 있는 포구 주변! 그리고 의천, 의기, 창천, 남궁 중에서 비슷한 자를 쓰는 곳부터 뒤져 보거라.”

남궁가주가 남궁도의 성격을 생각하며 범위를 좁혔다.

하지만 남궁도는 이미 한차례 그들의 감시를 빠져나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길이 어렵다면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지.”

남궁가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일은 창궁무애단에 맡기고, 너는 다른 일을 하거라.”

“다른 일요?”

“소문을 퍼뜨려라, 배신자 남궁문의 처자식이 노비로 팔려 나갈 것이라고.”

남궁도가 어렵다면 그와 통하는 문을 건드리면 그만이었다.

혈연을 괜히 천륜이라 부르겠는가.

처자식을 한번 버렸다곤 하지만, 노비로 팔려 가는 것까지 두고 보진 못할 것이다.

남궁경이 남궁가주를 보며 입을 벌렸다.

“우아, 진짜 나쁜 놈이오?”

“아니, 소문만 그렇게 퍼뜨리라고!

남궁경의 비난에 남궁가주가 펄쩍 뛰었다.

물론 가문의 역도의 처자식이니, 그렇게 처결한다고 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처가 임신 중이고, 딸은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몰랐다.

특히 처는 대대로 잠삼현에서 남궁세가의 녹을 먹은 가솔 가문의 사람이라, 그들 스스로 나서서 죄인이라 청하며 남궁가주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협조를 구한다면, 성심성의껏 협조해 줄 것이었다.

“아아. 시시하구먼.”

“대체 어쩌란 거냐!”

맥 빠진 듯 귀를 후비는 남궁경의 모습에 남궁가주가 울컥하고 말았다.

“애초에 내 망아지 같은 딸이 그런 들소 같은 망나니로 큰 게 다 너 때문이다! 망아지를 명마로 만들지는 못할망정, 들소로 만들어 놔?”

“그게 왜 내 탓이오? 우리 진화는 꽃같이 잘만 컸는데! 이제 보니 그래서 아까부터 꽁해 있었구먼.”

결국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있던 남궁가주의 성질이 폭발하고, 천하제일 세가의 가주와 남궁제일검의 다툼은 가모 하후민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남궁세가의 전서응이 다시 양청현에 도착하고.

남궁진휘가 급히 정의맹으로 갔다.

정의맹이 남궁세가에 협조하기 위해서도, 일의 진행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궁경이 자랑하는 꽃 같은 아들은, 진지한 얼굴로 남궁교명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흘려.”

“뭐……요?”

남궁교명이 뭔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진화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가족들이 노비로 팔릴 거라고, 남궁문에게 흘리라고.”

소문 따위보다 같은 편이 흘려 주는 정보가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제갈무진이 제물 때문에 남궁진화를 잡으려 한다는 것도 알려 줘. 내가 어딜 가는지, 무얼 하는지 일거수일투족 전부 다 알려 줘.”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의 눈이 커졌다.

“안 됩니다. 남궁도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

남궁교명이 펄쩍 뛰었다.

남궁도는 남궁세가를 가지기 위해 귀천성과도 손을 잡은 인간이었다.

게다가 남궁교명이 아는 남궁도라면 정보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무슨 짓을 좀 하라고 알려 주라는 거야.”

진화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남궁도는 지금 뭐든 힘을 가져야 하니, 나에 관한 정보를 빌미로 제갈무진에게 연락을 할 거야. 그리고 남궁문이 제 가족을 구하려고 나서다 남궁도의 소재지를 흘리는 순간, 다급해진 남궁도가 제갈무진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겠지. 두 마리 뱀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야.”

“하지만 소공자께서 두 배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그러자 진화가 까만 눈을 휘면서 웃었다.

“그거 기대되네.”

어쩌면 남궁세가의 원수라 할 수 있는 남궁도를 제 손으로 죽일 기회였다.

진화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 * *

결국 남궁교명은 남궁도의 전서응에 몰래 쪽지를 실어 보냈다.

[본가 급보. 수로를 따라 수색. 칠장로 식솔들이 사흘 후 노비로 팔려 나갈 예정.]

한쪽 옆에서 진화와 남궁구가 흡족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남궁구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미친놈아.”

남궁교명이 남궁구에게 욕을 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 진화가 남궁교명을 빤히 보았지만, 남궁교명은 결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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