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19)화 (119/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사냥꾼의 정체는(3)

[일과 생활 중. 변동 사항 없음.]

“후우.”

남궁교명이 전서구에 쪽지를 붙여 보내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남궁교명은 매일매일 진화의 일과를 남궁도에게 보내고 있었다.

오전 수업 일과는 물론이고 오후 수련 일정을 어떻게 보내는지, 진화가 남궁진휘의 집무실에 들어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곳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 적어 보냈다.

‘이래도 되려나.’

남궁교명은 진화가 시키는 대로 쪽지를 보면서도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남궁진휘에게 따로 이 일을 보고해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남궁교명은 그러지 않았다.

전서구를 보낼 때마다 진화와 남궁구가 곁에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뭔가를 하는 느낌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진화의 옆에서 한 대 딱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웃고 있는 남궁구를 보면서, 이제야 겨우 동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궁교명도 아직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이건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자신을 포함해서 아버지와 가족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살려 준 것은 남궁가주였지만, 구명의 기회를 준 것은 분명 진화라.

복수의 기회마저 진화가 주었고, 남궁교명은 복수를 위해 진화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 남궁교명은 자신의 복수보다 진화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남궁교명만이 아니었다.

한숨 쉬며 돌아오는 남궁교명을 보며 진화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턴 더 조심해.”

진화가 남궁교명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비약에 대한 해약이 나온 것은, 아직까진 중원 전역에 알리지 않고 정의맹 수뇌부만 아는 사항이야. 해약에 대한 소식이 혹시라도 남궁도의 귀에 들어가면, 남궁도가 널 버릴 수도 있어.”

“오오, 남궁교명, 위험한데? 짜릿짜릿하겠어?”

듣기에 따라서 진화의 경고는 남궁교명에 대한 걱정처럼 들렸다.

그래서인지 남궁구가 음흉한 표정으로 웃으며 장난스럽게 남궁교명의 옆구리를 찔러 댔다.

‘왕자를 납치할 때는 말리는 척이라도 하더니…… 신났군.’

진화가 한심한 듯 남궁구를 보았다.

‘남궁도가 남궁교명의 배신을 눈치채고 일이 틀어지면 남궁도를 놓칠 수도 있는 판국에, 그게 그렇게 재밌나? 과연 의천재룡(義天災龍)이다.’

생각해 보면 이번에 진화가 살린 사람은 비단 남궁진휘만이 아니었다.

이전 생에 재미와 호기심 하나로 비영문 조사에 끼어들어 남궁진휘와 함께 죽었던 인물이 바로 남궁구였으니.

이전 생과 사건은 달라졌어도, 사람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의해서 봐야지.’

진화가 집 밖으로 나가 사고 치는 똥개를 보듯 남궁구를 보았다.

그리고 남궁구를 향해 주먹을 들고 있는 남궁교명을 향해 말했다.

“치료는 끝났어?”

퍽!

“윽!”

남궁교명이 주먹을 내리는 척 남궁구의 옆구리를 쳤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공손하게 답했다.

“예.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몸 상태를 이전으로 돌리기 위해, 약재를 쓰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진화 또한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약재는 세가를 통해 지급받고 의선문 출입은 자제하도록 해. 남궁도라면 네가 의선문 출입이 잦다는 걸 알자마자 네 배신을 의심할 거다.”

“조심하겠습니다.”

남궁교명이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남궁구의 깐족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쪼심하겠습니다. 에베베베. 좋아?”

퍽-!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 거다.”

“그래서, 좋아?”

퍽-!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투덕거리는 것을 보며 진화가 한숨을 쉬었다.

‘이놈들은 대체 왜 사이가 좋아진 거지?’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적어도 진화가 보이게 죽일 듯이 싸우는 것과 정말 죽이려고 싸우는 건 확실히 달랐다.

이전 생과는 다른 남궁교명을 받아들인 진화의 변화가 남궁구와 남궁교명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했다.

다만 진화는 결단코 둘이 사이좋게 지내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 * *

단출해 보이지만, 검게 그을려 옻칠을 한 값비싼 가구들이 자리한 방.

찾아볼 수 있는 색이라고는 방을 들어오기 전에 가려 놓은 푸른색 휘장, 그리고 전신에 푸른색 무복과 비단 장포를 걸친 노인뿐이었다.

잠삼현에 있을 때에는 한 번도 걸치지 않았던 푸른색 의복을 입은 남궁도는, 제 모습을 찾은 듯 그때보다 더 위풍당당해 보였다.

자애로운 미소로 포장하고 있던 표정을 걷어내자, 부리부리하면서 날카로운 눈이 오히려 이제야 제왕검의 형제 같았다.

“뇌평이 어디로 움직였는지 알아보라 보낸 배들이 모두 침몰했다는군.”

“전부 말입니까?”

남궁도의 말에 남궁문이 크게 놀란 듯 되물었다.

남궁도의 명에 따라, 뇌평을 데려다준 선원들의 정보에 따라 배를 보낸 사람이 남궁문이었다.

근처에서 작은 나룻배를 구해 옮겨 탔다는 이야기에, 남궁문이 그 일대로 보낸 나룻배만 열 척이 넘었다.

그 배와 사람을 모두 잃었다는 이야기였는데, 남궁도는 그다지 손해를 본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궁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사람이 죽어 떠내려온 곳으로 다시 배를 보낸 것이 맞았다. 확실히 그쪽에 뭔가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다시 보낼 배를 구할까요?”

“두어라.”

남궁도가 남궁문의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투자를 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멈춰야지. 더 나아가면 도박꾼이고, 과욕은 도박꾼이 실패하는 이유다.”

남궁도는 열 척 넘게 잃은 작은 배와 사람을 일종의 투자라 말하고 있었다.

“허허, 오히려 그렇게 철저하게 가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잘된 일이다. 그곳에 있는 것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제갈무진을 움직이긴 쉬울 테니 말이다.”

남궁도는 좋은 투자를 했다고 생각했다.

“교성흑오대라는 것들은 이번에 우리를 따라 나온 수하들보다 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갈무진이 가진 힘은 교성흑오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귀천성이라는 배경이다. 우리가 가진 무력이 아무리 강한들, 남궁세가의 모든 무단과 제왕검을 치워 버릴 정도는 아니다. 하나 귀천성은 다르지. 놈들에게 제왕검을 치워 버리게 할 것이다.”

남궁도가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갈무진에게 연락하거라. 남궁진화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네? 아직 별것 없는데요?”

“우리가 원하는 것도 아직 별것 없다. 그저 이렇게 연통이나 트여 놓자는 것이다.”

남궁도가 제갈무진에게 연락할 방법이라곤 은밀하게 신호를 남겨서 그쪽이 찾아오게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늦었다.

남궁도가 원하는 것은 제가 필요할 때 제갈무진의 힘을 빌려 쓰는 것 외에, 귀천성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제갈무진에겐 우리가 뭘 알아냈는지 모르게 하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남궁도가 눈을 빛내며 말하고, 남궁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남궁도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남궁문은, 평소와 달리 발걸음이 급해 보였다.

남궁문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표국이었다.

상단에서 전서를 보낼 때 따로 사람을 쓰지 않고 행선지를 지나는 표국에 부탁하는 것은, 수로 근방 상회와 표국 사이에선 일반적인 일이었다.

“의성상단입니다. 이걸 소실에 전해 주시오.”

“소실요?”

“공산 포구에 도착하면, 사람이 알아서 찾아갈 것이오.”

“아, 예, 알겠습니다. 은자 한 냥입니다.”

남궁문이 은자 한 냥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오늘 남궁문의 볼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성으로 가는 배 중 가장 빨리 출발하는 건 무엇이오?”

“포성요? 요즘 포성 쪽은 영 분위기가 흉흉해서…… 오, 운이 좋으시네. 반 각 후에 종래호를 타면 될 것입니다.”

“고맙소.”

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남궁문이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 * *

제갈세가.

제갈후현이 돌아온 후, 제갈세가의 분위기도 조금 어수선해졌다.

가솔들은 더 이상 소가주가 아닌 제갈후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듯했다.

제갈후현의 처소는 그가 태어나 지금까지 ‘소가주전’이라는 이름 외에 다르게 불린 이름이 없었고, 제갈후현 또한 ‘소가주’ 외에 달리 불린 이름이 없었다.

만약 제갈후현의 처소가 소가주전이었다면 그는 다른 처소로 옮겨야 했으나, 아직 가주전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해서 제갈세가 가솔들은 제갈후현을 ‘대공자님’이라 칭하고, 처소를 ‘대공자전’이라 임시로 바꿔 부르면서 적응 중이었다.

다만, 달라진 명칭과 분위기에 결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제갈후현 본인과 임시 소가주로서 업무를 보고 있는 제갈지현이었다.

“아가씨, 가주전에서 찾으십니다.”

“야! 너 말 똑바로 못 해?”

“예?”

제갈지현의 직속 하녀인 양선이 말을 전하러 온 하녀를 잡았다.

“아가씨? 감히 뉘께 아가씨야!”

“아!”

양선의 말에 하녀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제갈지현의 눈치를 살폈다.

“소, 소가주님, 가,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하녀가 더듬더듬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갈후현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갈지현이 ‘큰아가씨’로 불리고 있었지만, 제갈후현이 돌아온 뒤엔 아가씨라는 호칭에 제갈지현의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양선은 그런 제갈지현의 속을 알고 주변에 예민하게 구는 것이었다.

“곧 나서마. 가 보거라.”

“예! 예!”

제갈지현의 말에 하녀가 목숨이라도 구한 듯 헐레벌떡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하녀를 노려보는 양선을 말렸다.

“선아, 되었다.”

“하지만 소가주님…….”

“되었어. 어차피 임시이지 않니.”

“소가주님까지 그러시면 어째요!”

양선은 웃으며 말하는 제갈지현이 안타까운 듯 발을 굴렀다.

양선은 제갈지현이 얼마나 오래 세가를 바라 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포기하시면 안 돼요! 임시라도 아가씨가 소가주세요! 대공자께서 오신 지 꽤 되었지만, 아직 가주님께서도 별말씀 없으시잖아요!”

“아직…… 별말씀 없으신 거지, 오라버니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으니.”

“아가씨!”

웃으며 대꾸하는 제갈지현의 모습에 양선이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난번 제갈후현과 마주친 이후, 제갈지현은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양선은 제갈지현이 제갈후현에게 밀려날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포자기하시면 안 돼요! 그런 건 아가씨답지 않으세요! 대공자님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양선아!”

양선이 제법 표독스럽게 해선 안 될 말까지 하자, 제갈지현이 놀란 듯 그녀를 말렸다.

아직 세가 내에는 제갈후현의 사람들이 남아 있어, 잘못해서 그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양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서. 허튼 생각 말거라.”

제갈지현이 양선을 달랬다. 

양선은 하나도 겁이 안 난다는 듯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를 친여동생처럼 여겨 온 제갈지현은,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양선은 그런 제갈지현의 모습에 제가 더 억울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아가씨를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요,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후후, 알아.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단다.”

양선이 진심이라는 걸 알기에, 제갈지현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누가 자포자기한단 말이니. 그럴 일 없을 거다. 그러니 너도 걱정 말고 날 지켜봐 주렴.”

“아가씨…….”

제갈지현의 말에 고개를 든 양선이 감동받은 듯 그녀를 보았다.

어릴 적부터 저는 감히 품지 못할 큰 꿈을 품고, 저는 결코 하지 못할 노력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아가씨가 아니던가.

“그래요. 잘난 우리 아가씨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양선이 다부진 얼굴로 제갈지현의 옷매무새를 만졌다.

“어서 가 보세요, 가주님께서 찾으시는데.”

“다녀오마.”

제갈지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방을 나왔다.

제갈후현을 만난 날 이후로, 제갈지현의 고민이 깊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로써 제갈지현은 오랜 고민의 마침표를 찍었다.

제갈가주의 결정이 그녀의 결심을 더 쉽게 만들었다.

“오라버니의 혼인을 추진하신다고요?”

“그렇다.”

제갈지현이 처음으로 독기 어린 눈빛을 하고, 제갈가주를 노려보았다.

“제가 있는데도요?”

“너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 아이도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아버님!”

제갈지현이 크게 저를 부르는 소리에, 제갈가주는 냉담하게 그녀를 보았다.

“제게 기회를 주실 생각이 처음부터 없으셨군요.”

“그건 내 선택지다. 처음부터 네게 말하지 않았더냐, 제갈세가를 위해 네가 해야 할 역할은 다른 것이라고. 너는 네 선택만 하면 된다. 택하거라. 너는 어떤 삶을 살 것이냐?”

“…….”

제갈지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꽉 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제갈지현이 침묵을 지키며 제갈가주를 보았다.

제갈가주는 선택하라 했지만, 제갈지현의 입장에서는 강요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갈지현은 답을 해야 했다.

가장 원하는 선택지를 가질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가질 것이라.

“제가 가주가 될 수 없다면, 다른 것이라도 가져야지요. 다만, 앞으로는 제 운명은 제가 끌어갈 것입니다.”

제갈지현이 제갈가주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제갈가주가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안타까운 눈빛으로 방을 나가는 제갈지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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