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사냥꾼의 정체는(4)
“자, 마지막 물건입니다!”
장사꾼의 말에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었다.
어느 정도 장이 마감되어 떠날까 하려는 찰나, 마지막이라는 말이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기대하시라, 마지막 물건!”
장사꾼이 ‘물건’으로 가져온 것은 여러 인종의 사람이었다.
손목과 팔이 묶인 채 목에 사슬을 메고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장족 사내였다. 나라에 전쟁이 계속되면서 부쩍 장족 출신의 노예가 늘었다.
그런데 웬일로 제일 끝에, 배가 볼록한 젊은 여인과 어린 여자아이가 끌려 나왔다.
“엥? 여자잖아!”
“여자랑 꼬마는 왜 데리고 나온 거야?”
물건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실망스러운 듯 외쳤다.
여자와 아이는 다른 이들과 달리 제법 고급스러운 복장에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노예를 사러 온 이들에게 가장 쓸모가 없는 부류였다.
임신한 여자는 유곽에 팔 수도 없고, 꼬마는 다 클 때까진 밥만 축내는 식충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 사람들은 떨이예요, 떨이. 몇 달 지나면 이 미색 좋은 여자는 해산도 할 거고, 십 년 지나면 꼬마도 쓸 만하게 클 거라고요! 그런데 가격은 한 사람 가격! 어때요, 떨이지요?”
“에이, 십 년은 무슨!”
장사꾼이 사람들이 혹할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특히 뒤쪽에 얼굴을 가리고 서 있는 사내는 당장 장사꾼을 때려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자, 여기 떨이들부터 계산하자고요. 단돈, 닷 냥! 닷 냥에 팝니다! 누구 없습니까? 오! 저기 있네요!”
장사꾼의 말에 사람들이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사내가 손을 들었다.
“잘생긴 어르신은 저쪽에 가서 대금을 치르고 데려가시면 됩니다!”
장사꾼이 신이 난 듯 사내를 한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는 둘만 사슬로 엮여 사내에게 안내되었다.
사내는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포구에서 배를 탔다.
장사꾼이 직접 사내를 배웅하고,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장사꾼은 배가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손을 내렸다.
“남궁문은 간 것이냐?”
“예, 아버지.”
장사꾼의 곁으로 한 중년인이 다가왔다.
까만 얼굴에 건장한 체격, 매서운 눈초리가 서로 닮아 있었다.
“널 알아보는 기색은 없고?”
“저자가 절 어찌 알아보겠습니까? 쭉 밖으로만 돌았는데. 전혀 그런 기색도 없었고, 제 마누라와 새끼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흥, 그런 놈이 마누라와 새끼를 버려?”
중년인이 아내와 딸을 구해 간 남궁문을 향해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대명아, 제왕무적단주에게 연락해라.”
“예, 아버지.”
중년인의 말에 장사꾼이 답했다.
그때, 그들의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졌다.
“그럴 것 없어, 여기 왔으니까.”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이 부르기도 전에 나타나 있었다.
“저 배가 어디로 가는 배지?”
“경산 포구입니다.”
“허! 남궁도 주제에 제법 멀리 도망갔네?”
남궁경이 감탄하듯 이죽거렸다.
남궁도가 자리 잡은 경산포구는 양주에서 남양으로 직행하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다.
양주를 벗어나진 못했을 거란 남궁경의 예상은 벗어났지만, 남궁가주의 예상까지 벗어나진 못했다.
“잠삼현과 직접 거래가 많은 곳입니다.”
“그래? 어쨌든 이번엔 수고했어. 내가 이장로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남궁경이 중년인을 향해 씨익 웃자, 중년인 또한 민망한 듯 웃었다.
“이장로라뇨. 이제 그냥 작은 상단의 단주일 뿐입니다.”
중년인, 남궁경옥은 이제 이장로라는 말을 사양했다.
이전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적에는 이장로라는 직함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부끄럽기만 한 과거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어디 배를 타고 왔는지는 확인했어?”
“예. 역시나 경산 포구에서 탔다고 합니다. 의성(義成)상단이라고 한다는군요.”
“하! 의성상단이라!”
남궁경이 남궁도가 바꾼 이름을 비웃었다.
이름 또한 남궁가주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똑하면 뭐 해, 늙은이 집착이 아주 대쪽 같은 것을. 우리는 이 길로 출발하지. 정의맹 지부에 서찰을 보내 놓게.”
“예. 저쪽 배를 타시면 됩니다.”
남궁경옥이 한쪽에 있는 제법 큰 배를 가리키자, 남궁경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육로로 가면 안 되겠지? 진짜 빨리 달릴 수 있는데.”
“경산 포구까지, 아무리 빠른 말도 이틀 꼬박입니다.”
남궁경옥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남궁경이 이곳에 오면서 뱃멀미를 하느라 거의 기다시피 배에서 내린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남궁제일검의 약점을 노출하지 마시고, 배에 오르시지요.”
“어쭈? 지금 날 비웃는 건가?”
“어이쿠, 죄인 주제에 그럴 리가요.”
“와, 남궁경옥 많이 컸네.”
“어서 오르십시오. 단원들은 전부 배에 올랐습니다.”
남궁경옥이 남궁경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남궁경이 배에 오르기 전, 남궁경옥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망설였다.
그 모습에 남궁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걱정 말게. 이번에 꼭 남궁도를 잡아서 다시는 자네 아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할 테니.”
“이게 다 죄 많은 아비 때문이지요. ……부탁드립니다.”
남궁경옥이 어렵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남궁경 또한 자식 가진 아버지라, 남궁경옥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배에 올랐다.
* * *
남궁세가 정의맹 지부 장원.
급히 말을 타고 달려온 표사 하나가 전서를 전했다.
“음…….”
“준비할까요?”
“헉! 이, 인석아! 기척 좀 내거라!”
전서를 읽던 남궁진휘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진화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욘석! 그 대단한 무위가 형님 모르게 전서 훔쳐 읽는 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그러니까요. 열심히 수련한 무위를 발휘하러 경산에 가면 될까요?”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그 모습에 남궁진휘가 한숨을 쉬었다.
어느 틈에 그걸 다 읽은 것인지.
“꼭 가야겠느냐?”
“창궁무애단을 보낼 것이 아닙니까? 남궁조 숙부님도 바쁘시고 형님도 움직일 수 없으니, 제가 가는 게 맞지 않습니까.”
“진…….”
“진혜 누님은 전에 한번 보았던 벽을 넘겠다고 수련 중이십니다.”
진화가 준비라도 한 듯 남궁진휘의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남궁진휘를 보았다.
“마치 ‘저요, 저요.’ 하고 손이라도 들 것 같구나.”
“그리할까요?”
“아니, 그리하지 않아도 이미 졌단다. 그래, 가거라, 가!”
남궁진휘가 일찌감치 손을 들었다.
“어차피 제왕무적단을 지원하는 것뿐이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다. 게다가 오랜만에 숙부님 얼굴도 뵙고.”
남궁경을 본다는 말에 진화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부모님을 보지 못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어서, 진화의 양 볼이 기대감으로 상기되었다.
“단, 호현기가 따라나설 것이다.”
“구와 교명도 나서고 싶어 합니다.”
보호자를 붙이려는 남궁진휘에, 진화가 혹 두 명을 더 붙였다.
가진 무력이 뛰어난 것과 별개로, 남궁구와 남궁교명 역시 아직 약관이 되지 못한 나이였다.
게다가 남궁교명은 아직 남궁도의 충실한 제자 역할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끝을 볼 테니까요. 교명은 제 눈으로 직접 끝을 보고 싶어 합니다.”
진화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남궁교명은 한때는 스승으로 존경했던, 그러나 결국 아버지를 몰락으로 이끌고 자신들을 버린 남궁도의 끝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진화는 남궁교명에게 분명 복수의 기회를 준다 약속했었다.
“하지만 남궁교명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남궁도와의 끈을 유지해 놓는 편이 좋을 수 있다.”
남궁진휘가 망설였다.
남궁진휘는 만에 하나의 실패까지 생각하며 앞일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진화의 생각은 달랐다.
“형님, 저도 교명에게 끝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망설이는 남궁진휘에게 진화가 재차 부탁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지만, 수십 년을 거슬러 와 다시 십여 년을 보낸 진화는 그것이 얼마나 답답한 시간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남궁진휘도 진화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귀천성에 복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교명의 복수라도 이뤄 주고 싶은 모양이구나.’
진화를 보는 남궁진휘의 눈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남궁진휘의 생각은 딱 반만 맞았다.
‘남궁교명의 복수는 이게 마지막이야. 이번에는 반드시 남궁도를 죽여 버릴 테니까.’
진화야말로 아주 오래 기다렸다.
바라는 대로 남궁세가가 굳건해진 이상, 진화를 잡고 있던 족쇄는 모두 사라졌다.
‘이제 곧 광마전도 오겠지.’
진화가 느끼는 떨림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이 끝이 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 흥분되는 마음이었다.
“함께 가렴.”
“감사합니다!”
남궁진휘의 허락이 떨어지고, 진화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신이 난 발걸음으로 남궁진휘의 집무실을 나갔다.
“녀석, 저리도 좋을까.”
남궁진휘는 교명의 바람을 이뤄 주게 되어 진화가 기뻐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흐뭇한 얼굴로 진화의 뒷모습을 보았다.
* * *
흠칫.
잔뜩 신이 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오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일어서다 말고 움찔했다.
“재밌는 일이 있나?”
“불길하군.”
아니나 다를까.
남궁구와 남궁교명에게 다가온 진화의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다.
“짐 싸. 경산으로 갈 거야. 빨리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남궁도를 차지하실 거다.”
“아, 남궁도를 잡아서 귀천성 놈들의 이동 경로를 심문한다고 했지?”
“우리가 먼저 가서 잡자는 겁니까?”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물음에, 진화가 고개를 저었다.
“남궁도는 앞에 나서서 스스로 뭔가를 하는 인간이 아니야. 뒤에 숨어서 지시나 내리는 인간이지.”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남궁교명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할 때도 남궁문과 함께했고, 새로운 상단도 남궁문을 움직여서 만들었겠지.”
“특히 위험한 귀천성과의 연락은, 다른 사람, 믿을 수 있는 남궁문에게 시켰을 겁니다.”
진화의 말에 남궁교명이 맞장구를 쳤다.
진화가 그런 남궁교명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꼭 남궁도를 붙잡아야 하는 건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남궁문이 더 잘 알 테니까.”
“……그렇다면?”
남궁교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진화가 눈빛에 살기를 번들거리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우린 먼저 가서 남궁도의 목을 날려 버리자고.”
진화는 오래 기다렸다.
그러니 이제 남궁세가를 망친 자의 목을 치며 복수를 시작할 것이다.
* * *
남궁문이 급하게 단주의 집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스승님!”
“무슨 일이냐?”
“제왕무적단이 포구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야? 놈들이 어떻게!”
남궁문의 말에 놀란 남궁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배! 배를 쫓아온 것인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제 수하가 놈들이 포구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하니, 지금쯤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탕-!
“이, 이런 끈질긴 놈!”
남궁도가 제왕검 남궁강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남궁도는 남궁가주가 아닌 제왕검이 아들들을 시켜 저를 감시하고, 이곳까지 쫓은 것이라 생각했다.
“남궁강! 앞에서는 자애로운 형인 척, 정의로운 척하더니, 뒤로는 은근슬쩍 가주 자리를 차지하고 제 놈의 일가로 하여금 남궁세가를 장악했지! 그 음흉하고 끈질긴 놈이 결국 예까지 따라왔구나.”
“스승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남궁문이 남궁도를 재촉했다.
하지만 제왕검을 향해 이를 갈던 남궁도는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남궁경이 여기까지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너는 제갈무진에게 연락해라.”
“구하러 오라 할까요?”
“아니. 제왕검의 아들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기회라고 전해.”
남궁도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을 번뜩였다.
“당분간 산속의 부락에 들어가 있으면, 제갈무진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제갈무진에게 연통을 보내고 금송 부락으로 오거라.”
제갈무진에게 연락을 하는 방법은 포구로 가서 표국을 통해 전서를 전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서 포구에 제왕무적단이 도착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 지금 포구로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서두르거라.”
“……예.”
남궁문의 대답이 조금 늦었지만, 남궁도는 이만 나가 보라는 듯 손을 저었다.
남궁도는 위험한 상황이나 남궁문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마치 제가 명령을 내리면, 그게 어떤 것이든 남궁문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건 남궁문에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남궁도의 방을 나온 남궁문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고민이 많은 얼굴.
그러다가 결국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를 준비해라. 곧 단주님이 나오실 것이다. 너희가 먼저 단주님을 모시고 금송 부락으로 가 있어라.”
“에? 장로님께서는요?”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갈 것이다.”
“예,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수하에게 명을 내린 남궁문이 빠르게 상단을 나왔다.
그리고 포구가 아닌 다른 쪽으로 급히 말을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