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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21)화 (121/425)

남궁마제

늘어놓을 진(陳) 재앙 화(禍) : 사냥꾼의 정체는(5)

“와아!”

포구에 있던 상인 하나가 입을 턱 벌렸다.

경산 포구는 낙양과 관도항을 잇는 지류에 있는 꽤 이름난 포구라, 종종 무림인들인나 군사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배에서 내리는 이들은 그런 경산 포구의 상인들조차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라.

남궁(南宮) 제왕무적(帝王無敵).

청룡을 품은 깃발을 가지고, 푸른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우르르 내리자, 포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구에 부리부리한 안광을 빛내며, 열 하나 흐트러짐 없이 배 옆에 도열하는 제왕무적단의 모습은 이제까지 그들이 본 어떤 정예 군인들보다 절도 있고 위압감이 느껴졌다.

“저, 저기!”

“저 사람이 남궁제일검!”

마지막으로 남궁경이 내리자, 사람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다른 무인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바위같이 단단해 보이는 체구, 미간을 잔뜩 구긴 사나운 눈초리는 누구도 감히 정면으로 보지 못할 정도로 살벌했기 때문이다.

과연 귀천성 마제들을 때려잡았다는 제왕검의 아들이자 남궁제일검다운 모습이라 감탄만 늘어놓았다.

-괜찮으십니까?

-죽겠다!

-땅을 밟았으니, 곧 나아지실 겁니다.

-에헤! 단주, 주변에 보는 눈이 있지! 여기서 토하면 그게 무슨 망신이오! 조금만 참아요!

남궁제일검이라는 남궁경이 살벌하게 인상을 구긴 이유가 뱃멀미 때문이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를 챌까, 남궁경은 몇 번이나 속을 게워 내고 싶은 것을 겨우 삼켰다.

이때다 싶어서 수하들이 놀려 대니, 남궁경은 더 살벌한 눈으로 주변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뒤져!

남궁경이 이를 꽉 깨물고 전음을 보냈다.

남궁경의 명에 제왕무적단원들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났다.

-오른쪽으로 두 번째 놈.

-봤습니다.

-저기, 수레에 짐 싣는 놈.

-짐 싣는, 어느 놈이요?

-눈 짝 째져서 족제비같이 생긴 놈!

-아, 봤습니다.

부단주 남궁회와 남궁해는 본래의 임무인 창천원의 경계를 맡아 오지 않았지만, 대신 경험 많은 조장들이 나서서 수상한 자들을 찾았다.

몸에 무기를 숨긴 것으로 보이는 자.

몸놀림이 무공을 익힌 것으로 의심되는 자.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행동하는 자.

-인시 방향, 남궁문인 것 같습니다!

-뭐?

남궁경은 가장 경험이 많은 일조 조장 고승진의 말에 따라 눈을 돌렸다.

얼굴을 가리고 최대한 주변 사람과 어우러진 채 걷고 있었지만, 타고난 덩치나 오랜 세월 굳어진 걸음걸이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특히 사람의 걸음걸이는 모두 고유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무인이 아니더라도, 비단 걷는 방식이 앞발바닥부터 닿는지 혹은 뒤꿈치부터 닿는지, 좌우 어느 쪽에 힘이 실리는지, 거기에 오랜 세월 비틀어진 골격이나 아픈 부분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걸음걸이는 무공 수련보다 오래된 습관이고, 그 습관은 다시 보폭이나 무릎의 쓰임, 몸의 흔들림과 머리의 반동까지 거슬러 영향을 주며, 사람이 가진 고유의 자태를 만들어 내었다.

-왼발 뒤축, 그리고 저 어깨의 흔들림. 남궁문이군.

-어찌할까요?

-……잠깐 모르는 척 지켜봐. 저 새끼가 죽으려고 여길 기어 온 건 아닌 듯하니까.

남궁경이 눈을 빛내며, 일부러 남궁문을 등졌다.

제왕무적단 역시 전열을 정비하며 남궁문에게는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 * *

남궁문은 한쪽에 서 있는 남궁경을 보며 심장이 터질 듯했다.

‘설마, 정말로 남궁경이 왔을 줄이야!’

남궁문은 여기서 남궁경에게 들키는 건,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 괴물 같은 놈은 내 숨소리만 달라져도 눈을 돌릴 것이다. 절대로 박자를 달리해선 안 돼!’

마치 은신하는 사람처럼 기척을 죽이고, 주변 사람의 호흡 소리에 자신의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겨우 포구 한쪽에 마련된 집무처를 찾았다.

“이거…….”

“아이코, 놀라라!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갑자기 말을 건 남궁문에, 포구 직원 하나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문에겐 그 작은 농담 하나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그제와 같은 것이네.”

남궁문이 은자 하나와 함께 전서를 주었다.

그러자 포구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공산으로 가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은 공산으로 가는 배가 없는데…….”

포구 직원이 말끝을 흐리자, 남궁문이 은자 하나를 더 던졌다.

“아니, 나리, 은자가 문제가 아니라…….”

툭.

이번에는 은자가 주머니째로 떨어졌다.

“헉!”

포구 직원이 두 눈을 번뜩 떴다.

“이거 참…….”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포구 직원이 은자 주머니를 챙기고, 전서도 받아 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이 돈이면 따로 배를 알아보겠습니다요. 헤헤헤.”

“곧바로 가야 하네.”

“아이고, 물론입니다.”

주머니를 펼쳐 보진 않았지만, 묵직한 소리만으로도 배를 따로 알아보고도 남을 금액이라.

포구 직원이 만개한 웃음으로 남궁문을 배웅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 주머니 먼저 확인해 볼 참이었다.

“어이쿠, 이게 얼마야?”

포구 직원이 한 말이 아니었다.

분명 제가 하려던 말이었지만, 아직 입 밖으로 내진 않았기 때문이다.

“응?”

포구 직원이 놀라 고개를 들자, 아직도 검은 그림자가 저를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로 고개를 들자…….

“어이쿠!”

생전 처음 보는 살벌한 얼굴에, 포구 직원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사이 은자는 거대한 사내의 손에 쥐어졌다.

“방금 저 사내가 부탁한 게 뭐지?”

“예, 예?”

얼이 빠진 듯 되묻는 포구 직원의 말에, 거대한 사내가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포구 직원은 당장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겁에 질렷다.

그때, 누군가가 포구 직원을 부축하며 그를 일으켜 의자에 앉혀 주었다.

“제발요. 단주님은 얼굴부터 들이밀지 말라니까요.”

“내 얼굴이 뭐!”

제왕무적단 일조 조장 고승진이 저를 돌아보는 포구 직원에게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말아요,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다치지 않으니까. 그래서, 방금 저 곰 같은 사내가 뭘 부탁하고 갔습니까?”

고승진의 물음에 포구 직원의 시선이 남궁경에게 향했다.

“아니, 여기 있는 곰 말고, 방금 다녀간 조금 더 작은 곰.”

남궁경이 발끈하기 전에 고승진이 웃으면서 말을 정정했다.

정정하지 않았더라도 어쨌든 포구 직원은 답을 했을 테지만 말이다.

“매, 매번 전서를 찾아가시거나, 전서를 보내십니다.”

“어디로?”

“으헤헥! 고, 공산 포구요! 거기 소실로 보냅니다.”

남궁경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을 뿐인데, 답이 빨라졌다.

“소실? 소실이라는 곳도 있나?”

“아니요! 사, 사람이 나와 찾아간다고 합니다!”

포구 직원이 소리치듯 답했다.

주변에서 포구 직원이 얻어맞는 줄 알고, 놀라서 쳐다보았다.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남궁경과 고승진에겐 그들이 원하는 답이 나왔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있지도 않은 곳에 보내는 전서에 따로 사람이 나온다라…… 허! 요것들 봐라? 나 오늘 횡재한 거 같은데 그래?”

남궁경이 눈을 빛냈다.

“오늘도 전서를 맡겼지? 줘 봐.”

남궁경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내밀자, 포구 직원은 오히려 겁에 질려 움츠러들었다.

“참 나, 그렇게 건달처럼 말하면 겁을 먹잖습니까!”

“그런가?”

“어휴, 가주님이 또 나가서 새는 꼴통 망나니 어쩌고 하실 겁니다.”

“그럼 네가 해 보든가!”

“가만히 계십시오!”

고승진이 버럭 하는 남궁경을 한쪽으로 밀고 포구 직원의 앞에 웃어 보였다.

“우리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협조 좀 합시다.”

“…….”

포구 직원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남궁문이 부탁한 전서를 내놓았다.

좋은 것을 알아낸 제왕무적단의 단주와 일조 조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집무처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는 제왕무적단이 빈틈없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수상쩍어 보였던 이들이 일거에 제압되어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 * *

긴장되는 상황 혹에서 전서를 전하고 금송 부락으로 온 남궁문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배가 부른 아내와 어린 딸이, 스승 남궁도의 앞에 무릎 꿇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승님!”

남궁문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날아든 기운이 남궁문의 볼을 스쳤다.

쉐에에엑---!

“큿!”

“아버지!”

화끈거리는 고통과 함께 딸의 비명이 들렸다.

딸이 걱정되어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남궁문은 볼에 피가 흐르는 그대로 그저 고개를 숙였다. 괜한 행동은 스승의 화만 키울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것이냐?”

“제 처자식과 일가가 모두 노비로 팔려 나간다는 것을 듣고 조용히 이들만 구해 온 것입니다!”

“놈들의 함정이면 어찌하려고!”

“그럴까 봐 조용히 혼자 포성까지 갔습니다. 경매를 지켜보았고, 의심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궁문이 고개를 푹 숙이고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남궁도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그럼 놈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어찌 설명할 것이냐?”

“이들을 쫓았을 리 없습니다! 이들이 거친 노예상을 모두 확인했고, 제 신분을 노출한 일도 없거니와 미행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러나 놈들이 여길 찾지 않았느냐!”

남궁도가 소리쳐 질책했다.

그의 생각에 빈틈이 있을 만한 곳은 남궁세가의 손에서 나온 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이들과는 처음부터 없는 인연이라 하지 않았더냐. 있지도 않은 연을 왜 또 이어 붙여 이 사단을 만드느냔 말이야!”

“…….”

남궁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남궁문의 귓가에 어린 딸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울음기 섞인 자식의 목소리,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아내의 부푼 배에도 내내 시선이 갔다.

‘내 자식들이 왜 처음부터 없는 인연이란 말입니까!’

속에서 울컥 반발심이 솟았다.

“외가를 보아 한 번은 봐줄 줄 알았는데, 모조리 노비로 팔아 버린다 하지 않습니까. 제 애까지 밴 여자와 저 어린 딸자식까지! 포성에는 어디서, 어떻게 온 노비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 빽빽 합니다. 거기서 이름도 밝히지 않고 데려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구할 생각도 안 할 테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남궁문이 고개를 박고 엎드렸다.

그 모습을 남궁문의 처자식은 물론 수하들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도는 당장 저 머리통을 깨 놓고 싶었지만, 주변의 눈을 의식에서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자애로운 스승인 양 가면을 뒤집어썼다.

당장은 저의 남궁을 따르는 이들이 저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허어, 차라리 내게 말했다면 내가 나서서 구해 왔을 것이다. 그럼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송구합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지원이 올 때까지 결코, 여길 내줘선 안 될 것이다.”

“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자애롭게 용서하는 남궁도의 말에 남궁문이 다시 고개를 박고 감사를 올렸다.

“그래. 네 가족까지 있으니, 너를 믿으마.”

남궁문을 보는 남궁도의 시선은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바짝 고개를 숙인 남궁문은 그를 알지 못했다.

“길목에 나가 놈들을 방어할 준비를 하거라.”

“예!”

남궁도의 명에 남궁문이 수하들을 끌고 씩씩하게 나갔다.

나가면서 남궁문의 시선이 가족들에게 향했다.

“아버지, 가지 마요! 살려 주세요!”

딸아이가 남궁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팔을 뻗고, 그의 내자가 그런 딸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드시……!’

가족들을 보며 남궁문이 의지를 불태웠다.

남궁문이 자리를 뜨고 난 뒤, 남궁도의 서늘한 시선이 남궁문의 처자식에게 꽂혔다.

“살려 달라?”

흠칫.

남궁도의 말에 여인이 딸을 숨기듯이 꼭 끌어안았다.

남궁도조차 들은 딸아이의 말을 남궁문은 왜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일까. 그의 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가지 마요.’가 아닌 ‘살려 주세요.’였거늘.

결국 마지막까지도 남궁문과 그의 가족은 엇갈리고 말았다.

남궁문의 아내는 물론 어린 딸조차도, 남궁도가 자신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말이다.

“남궁가주가 너희를 미끼로 쓴 것인가?”

남궁도의 말에 여인이 더욱더 딸을 꼭 껴안았다.

남궁세가의 그늘에서 자라며 행복했던 나날들, 남궁세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넘쳤던 다른 가족들, 그러나 마지막에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땅에 엎드렸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여인이 느낀 감정은, 오롯이 딸과 함께 버림받았다는 배신감뿐이었다.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남궁도를 노려보았다.

“가주님이 우릴 미끼로 썼느냐고? 아니! 오히려 저 죄인의 새끼를 밴 나를 걱정하셨지! 죄스러워 견딜 수 없어서 먼저 나선 것이다! 감히 남궁의 녹을 먹고, 남궁의 그늘에서 마음 편히 발 뻗고 산 주제에, 세가를 배신해? 퉤엣! 이 더러운 배신자!”

“허어, 살려 주려 했더니, 결국 죽을 짓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했겠다?”

남궁도가 여인의 독기 어린 말을 비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살기를 풀풀 날리며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자식을 끌어안은 여인의 독기는 남궁도의 살기에도 겁을 먹지 않았다.

“당신 같은 인간이 제왕검의 형제라니 지나는 개도 웃을 말이지! 전대 부인이 밖에서 데려온 아들이라는 말이 맞았던 게지!”

“이년, 감히 터진 입이라고----!”

이번만큼은 남궁도도 여인의 독설을 비웃을 수 없었는지, 크게 분노를 터뜨렸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딸을 끌어안은 여인을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들었다.

그때.

파지지직.

“누구냐!”

이질적인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콰광광----콰-앙!

남궁도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쳤다.

쿠웅!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남궁도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하얀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남궁도가 겨우 충격을 추슬렀을 때.

“천벌이야, 지옥에서 돌아온 천벌.”

하늘이 보낸 사자처럼 아름다운 소년이 푸른 기운을 뿜으며 검을 들고 나타났다.

“참 오래 기다렸어.”

진화가 남궁도를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참 오래도록 맹수를 기다린 사냥꾼의 눈처럼, 환희와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이 남궁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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