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변하지 않을 진(眞) 죄 화(禍) : 복수는 시작되었다(1)
이전 생.
남궁세가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분명 소가주 남궁진휘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후 제왕검과 남궁가주가 흔들렸고, 독에 당하고 말았다.
만독불침의 경지를 이룬 제왕검을 중독시킨 독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남궁가주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결국 성치 않은 몸으로 약을 찾아 나섰던 제왕검마저 행방불명이 되었다.
세가는 혼란에 빠졌고,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고군분투해 보았지만, 남궁교명을 소가주에 올리고 장로들을 장악한 남궁도에게 세가의 결정권이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 남궁가주가 정신을 차린 후에도, 후사도 없이 건강이 온전치 않은 가주가 수습하기에는 남궁도와 장로들의 세가 너무 커졌다.
그리고 결과는 정해졌다.
남궁도의 남궁세가는 귀천성을 막아 내지 못했다.
‘막아 낼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지.’
진화가 한 손에 검을 들고 몸을 일으키는 남궁도를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시리도록 차디찬 눈동자와 마주한 남궁도가 몸을 움찔 떨었다.
‘늙은 쥐새끼! 당신은 거창한 야심가도 뭣도 아닌, 귀천성이 제왕검과 가주님을 노린 사이에 세가를 훔쳐 먹은 쥐새끼에 불과했어.’
처음 귀천성이 왔을 때엔 제왕검의 등을 떠밀어 몸을 숨겼고, 두 번째 본가 습격에선 아예 도망 나가 있었다. 세 번째로 피난을 떠날 때에도 결사대의 목숨을 미끼로 제 살길만을 찾았다.
저자는 단 한 번도, 남궁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감히 남궁세가 식솔들을 향해 검을 들어?”
진화의 눈이 남궁도가 든 검을 향했다.
진화의 온몸에서 살기가, 남궁도와 그를 지키는 수하들을 향해 쏟아졌다.
남궁도가 진화의 살기를 받아 내며 진화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뉘 앞에서 남궁세가를 논하는가!”
남궁도의 물음에 진화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전 생에 남궁도가 저렇게 물으면, 자신은 그저 우물쭈물했었다.
남궁세가의 진짜 직계 앞에서, 제 성을 말하기가 민망했던 탓이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성을 붙여 준 은혜를 갚으라는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진화는 은혜를 갚아야 할 남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나는 남궁진화. 지엄하신 가주님의 명으로, 가문의 역도들을 처단하겠다.”
남궁의 성을 다는 것이 아니라 남궁의 의지를 가졌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의천의기(義天意氣).
검을 든 남궁세가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은, 의로움을 위해 검을 택한 남궁의 의지와 세상의 바르고 약한 자들이었다.
남궁도는 지켜야 하는 자도, 지켜져야 할 자도 아니었기에, 진화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남궁……진화? 오호라! 네놈이 바로 그 귀천성 제물이나 하던 천한 양자로구나! 그래, 네놈의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 너 같은 천한 것에게 남궁이라는 성을 달아 주다니. 제왕검이 영웅 놀음을 하다가 정신이 나간 게지!”
진화의 말을 듣고, 남궁도의 얼굴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진화의 출신을 들먹이며 제왕검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도 계속하진 못했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화가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쉐에에에엑----!
“크아악-!”
남궁도의 앞을 막고 있던 수하들 중 하나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감히 가문의 역도 주제에 남궁을 입에 담는가.”
진화가 냉담한 눈빛으로 남궁도를 보며 말했다.
“창궁무애단, 모두 도착했나?”
“예!”
남궁도와 그 수하들이 선 사방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당황한 남궁도와 수하들이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진화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창궁무애단이 어느새 그들의 주변으로 와 있었다.
남궁도의 눈이 남궁교명을 확인하곤 찢어질 듯 커졌다.
“너, 네가 대체 어떻게!”
남궁도가 놀라는 모습을 보며, 창궁무애단 사이에서 앞으로 나온 남궁교명이 비릿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멍청하게 이용이나 당할 거라 생각한 거지?”
지금도 수하들 뒤에 숨어 있는 꼴을 보자니, 한심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당신 같은 자가, 한때는 제왕검을 이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니…… 그저 제왕검의 형제라는 것에 속아, 아버지도 나도 당신의 그 비루함을 보지 못했던 거지.”
남궁교명의 독설에 남궁도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때, 진화의 목소리가 금송 부락에 크게 울려 퍼졌다.
“창궁무애단은 무엇 하는가. 지엄하신 가주님의 명에 따라, 세가의 역도들을 처단하라--!”
“충-!”
창궁무애단이 진화의 명을 받아 남궁도와 수하들에게 달려들었다.
남궁교명 역시 검을 빼 들고 나섰다.
물론 누구보다 진화가 먼저 남궁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진화와 남궁교명, 창궁무애단 그리고 남궁도와 그 수하들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사이.
그보다 먼저 남궁구와 호현기가 여인과 아이를 챙겼다.
“고생했어요.”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전서구를 날려 주신 덕분에 빨리 올 수 있었어요.”
호현기의 말에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애틋한 눈으로 딸을 보았다.
“딸아이가 보냈어요, 새랑 노는 척, 무사들의 눈을 피해서.”
“그렇군요.”
호현기도 놀랍다는 듯 아이를 보았다.
남궁구가 아이의 곁에서 방정을 떨며, 아이를 달랬다.
“우와, 너 대단한데? 가주님께서 큰 상을 주실 거야.”
“그럼, 가주님이 우리 가족들을 다 용서해 주실까요?”
“당연하지!”
남궁구와 아이의 대화를 들으며, 여인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저기, 그 사람은…….”
“저희는 다른 경로로 와서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제왕무적단과 만나고 있을 겁니다.”
“아아!”
제왕무적단이라는 말에 여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버림받은 배신감에 독심을 품고 남궁문을 유인할 미끼를 자처했으나, 마음 한쪽에는 ‘설마 버리고 싶어서 버렸겠나.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희망도 품었었다.
남궁도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또 마음이 무너졌지만, 저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에 독심이 흔들리고 말았다.
“주, 죽겠지요?”
여인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호현기는 임신한 여인이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며 그제야 아차 싶었다.
“단주님께서 사로잡으실 겁니다.”
“네?”
“물을 것도 많고 남궁도와 남궁문이 가진 정보도 많으니, 사로잡아서 세가로 압송하게 될 겁니다.”
호현기가 여인을 안심시키려 최대한 유하게 말했다.
사실 사로잡혀서 세가로 압송된다고 해도, 심문을 당하다가 죽을 가능성이 더 컸다.
“하, 하지만 싸우다 보면…….”
“제왕무적단주님을 모르십니까? 감히 남궁문 따위가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닙니다.”
호현기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여인의 앞에서 그 지아비를 깔아뭉갰다.
그럼에도 여인은 호현기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 남궁문도 저와 수하들이 제왕무적단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죽더라도……!’
남궁문은 제갈무진이 지원을 보낼 때까지 제가 제왕무적단을 잡고 있는다면, 어쩌면 남궁도가 가족들을 살려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남궁문을 비롯해서 남궁문을 따라온 수하들은, 의천무학관 출신이거나 갱옥을 지키던 옥문 무사들이 대부분이라.
남궁세가 정예 중의 정예라는 제왕무적단의 발을 잠시라도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쉐에에엑-!
챙! 챙!
길을 달려오는 제왕무적단을 발견하는 순간.
정신없이 검기가 날아들고, 어느새 그들의 검이 코앞에 있었다.
“선수(先手)가 필승(必勝)이지!”
퍼-억! 퍽!
잔뜩 성이 난 사내들의 목소리와 함께, 주먹이 난무하고 사방에 피가 튀었다.
“으억!”
“조용히 해, 새끼야!”
퍼억!
일조 조장 고승진이 남궁문의 수하 중 제법 힘이 좋은 이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다가, 입에다 주먹을 박아 넣었다.
곳곳에 나무를 타고 오른 제왕무적단이 남궁문의 수하들을 죽이거나 제압하고 있었다.
육체적 단련이나 무공의 경지를 떠나, 죄인을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련하던 이들과, 적을 죽이기 위해 싸우던 이들의 차이였다.
애초에 제왕무적단의 임무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남궁세가 가주를 비롯한 직계들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라. 지난 전쟁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던 제왕검과 남궁가주를 지키기 위해, 제왕무적단은 그보다 먼저 나서서 싸워야 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무적진(無敵陳)이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믿는 현 단주가, 적이 보이는 즉시 먼저 죽여 버리라는 전략도, 뭣도 아닌 전투 방식에 그렇게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어이, 남궁문, 대가리 깨뜨리기 전에 무릎 꿇어.”
“헉!”
퍼—억!
남궁경과 눈이 마주쳤다 싶은 순간, 남궁경의 주먹이 남궁문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억!”
온몸의 내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지만,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야.”
이번에는 끔찍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그거 휘두르면, 대가리에 검을 쑤셔서 갈아 버릴 거다.”
그제야 남궁문은 제 턱 끝에 놓인 검과 거기에 맺힌 푸른 검강을 발견했다.
‘남궁제일검이 이 정도였다고?’
남궁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남궁경을 보았다.
명색이 대남궁세가의 장로로, 남궁세가의 갱옥을 지켰던 남궁문이다.
그런데 남궁경이 언제 검을 뽑았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도 못했으니.
남궁문은 남궁경과 저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나 까마득할 줄은 몰랐다.
‘이제 틀렸어! 하지만…….’
절망스러운 상황.
이 순간, 남궁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남궁도가 아닌 처와 자식들이었다.
그걸 지금에 와서야 안 것이다.
“창궁무애단이 벌써 갔다. 처자식 얼굴은 보고 죽어야지, 안 그래?”
“…….”
탕.
결국 더는 버틸 이유가 사라진 남궁문이 검을 놓았다.
상황이 모두 정리되고.
“살아 있는 놈들은 전부 묶고, 나머지는 올라간다!”
남궁경이 제왕무적단을 둘로 나누었다.
“승진이 네가 여기서 남궁문하고 잡힌 놈들 감시하고 있어. 나는 얼른 가 볼 테니까. 호현기가 잘하고 있나 모르겠네.”
“어휴, 그러게 우리도 창궁무애단처럼 마장에서 말 좀 빌리자니까요.”
“닥쳐.”
고승진의 말에 남궁경이 얼굴을 구겼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게 다 멀미 때문에 속이 뒤집혀서 말을 탈 기력이 없었던 탓이었다.
“간다!”
남궁경은 멀미 탓에 말을 타고 지나치던 창궁무애단 속에 누가 함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금송 부락으로 출발했다.
* * *
한때는 남궁세가에서 가장 이름난 무학관의 관주였던 자답게, 남궁도의 검에는 새파란 검강이 맺혀 있었다.
쉐에에엑----!
챙! 챙!
하지만 그 앞을 막아선 진화 역시, 아주 오래전 화경을 밟았다.
파지지지직---!
채-앵!
진화의 검을 흘리며 피한, 남궁도가 진화를 노려보았다.
“놈!”
설마 저 나이에 경지를 넘었을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제야 제왕검이 웬 천것을 양자로 삼은 이유를 알겠구나!”
남궁도의 말에 진화가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
진화는 자신을 통해 멋대로 제왕검을 재단하는 남궁도를 비웃었다.
그런 거창한 계산이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덜할 텐데.
제왕검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자비로움만으로 역천비록 대신 제물이었던 아이를 집어 왔었다.
‘그게 광마전의 미친놈들을 불러들일 줄도 모르고, 이번에도 덥석……. 하아.’
한숨과 함께 웃음도 같이 나왔다.
“그러니 내가 치워 드려야지. 그 빛나는 정의에 거슬리는 벌레들은 전부.”
진화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남궁도를 보았다.
남궁세가를 위해 칼을 한 번도 든 적 없는 자.
남궁세가의 불행을 기회로 삼은 자.
남궁세가를 멸망에 이르게 한 자.
그러니 저자는 나의 원수다.
진화는 이번에 반드시 남궁도를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슬슬 남궁도의 빈틈이 보이던 참이었다.
‘검을 흘리는 건 힘든 기술이지만, 흘리기만 해서는 상대를 죽일 수 없다.’
파지지직-!
진화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발을 뻗었다.
휘이이익-!
펑! 펑! 펑!
부딪히고 깨지는 동안, 천뢰기가 틔우는 불꽃이 점점 더 커졌다.
남궁이 그러하였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지키고자 하는 의지만은 더 활활 불태웠다.
“크읏!”
검을 타고 전해지는 뇌기에, 고통스러운 듯 남궁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 보지 못한 이는 모른다. 필사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들만이, 온몸을 내던지듯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싸울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고통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죽은 자들도 있었다.
“당신 같은 건 남궁이 아니야.”
파지지지직----!
진화의 검에 충분히 모인 천뢰기가 번뜩거리고, 남궁도를 노려보는 진화의 눈에 마침내 번개가 내리쳤다.
챙! 챙! 카-앙! 쾅!
몰아치는 진화의 검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히던 남궁도가, 마침내 진화의 검을 정면으로 받고 말았다.
진화는 물론 남궁도의 온몸에 뇌전이 번뜩거렸다.
“크아아악!”
“내가 지키는 남궁에서 이만 사라져---!”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남궁도를 향해, 진화가 남궁도의 검을 깨뜨리며 푸른 검강을 쏘았다.
콰광광----쾅---!
남궁도의 가슴에 진화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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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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