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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23)화 (123/425)

남궁마제

변하지 않을 진(眞) 죄 화(禍) : 복수는 시작되었다(2)

검강이 경지를 넘은 무인의 상징과 같이 된 것은, 밀도 높은 내공과 유형화시키는 세밀한 사용, 어떤 것이든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강도와 같은 것은 절정의 고수라도 감히 만들어 내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징일 뿐.

검강만으로 경지를 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검강을 보이는 것만으로, 같은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것을 모르니 ‘우물 안 개구리’라 하는 것이다.

“너, 네가 어떻게……?”

남궁도가 제 검을 깨 버리고 공격에 성공한 진화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저 어린 녀석이 경지를 밟은 것도 놀라운데, 자신을 이기다니!

남궁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제왕검에 뒤떨어진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제왕검은 무(武), 자신은 문무(文武) 모두에 재능을 보였다. 

남궁도는 자신이 제왕검보다 처진 이유가 그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왕검보다 조금 늦을 순 있겠지만 언젠가는 제왕검이 넘은 경지를 자신도 넘을 것이라 확신했고, 실제로 경지를 넘었다.

경지를 넘은 후, 남궁도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지략으로 제왕검을 뛰어넘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늦기야 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남궁도는 지금의 이 믿기 힘든 현실이 차라리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끔찍하게 밀려드는 고통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했다.

‘아파! 아프다!’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남궁도는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휘청거렸다.

그때, 진화가 덤덤하게 남궁도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라고? 왜 그런 게 궁금하지?”

진화의 눈이 남궁도를 차갑게 응시했다.

“애초에 그렇게 성긴 것을 검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 검강이랑 부딪쳐 본 적은 있나?”

“……!”

허를 찔린 듯 남궁도의 두 눈이 커졌다.

진화는 그런 남궁도를 비웃었다.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걸 묻는 거다.”

한 번도 강한 무인과 검을 맞대 본 적 없으니, 자신의 부족한 점을 모르고.

저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본 적이 없으니, 이겨 낼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스스로를 제왕검에 비했더냐.”

진화가 남궁도를 온전히 내려다보았다.

남궁도는 진화를 올려다보며, 자신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에서부터 퍼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면서 싸웠다. 저 연약한 이들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었다.”

진화의 말에 남궁도가 저에게 대들던 모녀를 찾았다.

임신한 배를 감싸고 딸을 품에 꼭 안은 여인이 멀리서 남궁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왕검이 만든 남궁은, 저런 이들을 지키는 곳이다.”

여인의 경멸 어린 시선과 주변의 눈초리 그리고 진화의 말.

남궁도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닥쳐! 내 아버지가 만든 남궁이고, 내 어머니가 키운 남궁이다! 네까짓 것들이 뭐길래 감히 나를 내려다봐! 제왕검이 아니라면 응당 모두 내 것이었다! 나는 본래 내 것을 되찾으려는 것뿐이란 말이다-! 커헉! 콜록! 콜록!”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던 남궁도가 결국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의 아집(我執)을 꺾진 못했다.

“컥! 나, 나야말로 남궁의 진혈(眞血)이다! 나야말로……!”

남궁도가 고집스럽게 말을 이어 가던 중, 금송 부락으로 날듯이 달려오는 남궁경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도의 눈엔, 젊은 날의 제왕검이 다가오는 듯했다.

“너는 왜…… 왜 나를 두고 그렇게 앞서간 거지? 어떻게 한 것이냐?”

속에만 담아 두고 있었던 질문이, 남궁도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궁도의 상념을 깨우듯, 진화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남궁을 이어 가는 건, 진혈(眞血)이 아니라 진의(眞意)이니까.”

“…….”

진화의 말에 남궁도가 이전처럼 반발하지 않았다.

이제야 남궁도의 눈에, 젊은 날의 제왕검이 아닌 남궁경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선 굵은 외모와 당당한 체격뿐 아니라, 그 시절 제왕검의 눈빛까지 닮은 모습.

남궁경뿐 아니라 주변의 남궁세가 무인들의 눈빛도 한결같이 당당하고 맑았다.

제왕검의 의지가 모든 남궁세가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끝……인가?”

아버지 대부터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남궁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제가 아닌 남궁경에게 이어진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결국 남궁도의 마음도 꺾이고 말았다.

언제나 꼿꼿하던 남궁도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때, 진화가 남궁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구 마음대로 끝이래.”

“……뭐? 커억!”

서늘하게 귀에 박히는 말에 고개를 든 남궁도는, 갑자기 심장에서 시작된 격통에 눈을 부릅뜨고 앞을 보았다.

혈관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가 느끼는 고통을 이야기해 주는 듯, 핏발이 터진 눈이 진화를 향했다.

그 눈을 마주하며, 진화가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끝은, 죽어야 끝나는 거지.”

콰과광-쾅!

진화의 눈 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보며, 남궁도가 그대로 쓰러졌다.

“진화야---!”

놀란 목소리가 저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진화는 제 품으로 쓰러진 남궁도를 바닥에 놓았다.

‘실패는 끝이 아니야. 제왕검이나 가주님의 자비에 기대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게 둘 줄 알아? 이전 생도, 지금도, 당신 때문에 죽어 간 많은 남궁세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지옥으로 떨어져라.’

진화가 남궁도의 시체를 보며 말로 다 하지 못한 분노를 쏟았다.

그리고 곧, 누군가 진화를 끌어안으며 진화의 시선을 가렸다.

* * *

모두가, 남궁도가 가슴에 진화의 일격을 맞은 것을 보았다.

사실 남궁도의 어깨를 잡는 척 엄지로 남궁도의 심장에 천뢰지를 쏜 것이었지만, 겉으로 볼 때는 진화의 일격을 견디지 못한 남궁도가 끝끝내 진화의 품에 쓰러진 모습이라.

“진화야!”

남궁경은 제 아들이 시체를 보고 놀랐을까 봐 진화의 얼굴을 제 가슴으로 안았다.

“아, 일평생 도움도 안 되는 영감탱이가 왜 하필 죽어도 꽃 같은 내 아들 품에 쓰러지고 지랄이야!”

남궁도가 가문의 역도이기는 하나 사사로이는 숙부가 되는 사람이 아니던가.

남궁경의 패륜적인 발언을 들으면서, 창궁무애단은 어쩐지 남궁진혜를 떠올렸다.

남궁진혜 또한 진화가 뇌평의 목을 치고 피 비를 뿌리는 잔인한 광경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진화의 얼굴에 묻은 피만 닦았었다.

“에구구, 내 새끼, 이렇게 위험한 곳에는 왜 온 것이냐?”

“아버지.”

제 얼굴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쓰다듬는 남궁경의 모습에, 진화 또한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했다.

건재하다.

눈이 부시도록 힘찬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다 자란 제게도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남궁경의 모습은, 처음 시간을 거슬러 돌아와 살아 있는 남궁경을 보았을 때보다 더 감동적이어서, 진화는 저도 모르게 그때 다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말았다.

“그, 그으래? 에구구, 내 아들,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으하하하하하!”

진화의 말을 들은 남궁경이 한껏 솟아오른 광대를 뿜으며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남궁경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본 제왕무적단원들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좋아 죽는구먼.”

“멀미 때문에 얼굴도 썩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남궁경의 온갖 성질을 받아 주며 이곳에 왔던 수하들이 투덜거리는 동안, 뒤늦게 사로잡은 이들을 정리해 끌고 올라온 고승진이 딱 한마디 날렸다.

“눈꼴시어 죽겠군.”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제왕무적단을 막아섰던 이들은 몇몇이 죽고 대부분 사로잡혔지만, 남궁도를 지키고 있던 이들은 진화의 명에 따라 모두 죽었다.

남궁경이 일 년간 많이 자란 아들의 손가락 길이 하나하나에 감탄하는 동안, 남궁교명이 남궁도의 시신 앞에 섰다.

창백한 얼굴로 잠을 자는 듯 누운 남궁도를 보는 남궁교명의 눈이 복잡했다.

한때는 누구보다 존경했던 스승이었고, 한때는 누구보다 증오했던 원수였기에.

남궁구가 그런 남궁교명의 곁에 와서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야, 괜찮냐?”

“괜찮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 괜찮네.”

“그게 뭐냐?”

“마음이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편해.”

남궁교명은 아버지 남궁경옥이 전서를 통해 그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자신과 다른 식구들은 지금이 가장 편하다고 전해 왔을 때, 그저 제 마음이 편하라고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남궁도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버지 남궁경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묵혀 놨던 청소를 한 듯 후련했다.

‘제자리를 찾은 거지, 아버지도, 나도.’

남궁교명은 편안해진 얼굴로 제 옆에 있는 남궁구와 멀리 있는 진화를 보았다.

그리고 남궁도의 시신을 복잡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또 있었으니.

고승진과 함께 올라온 남궁문이 남궁도의 시신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

저도 모르게 나온 탄성.

스승의 죽음 앞에 남궁문이 느낀 것은 슬픔과 동시에 족쇄에서 풀려난 듯한 가벼움이었다.

복잡한 심경을 정리할 새도 없이, 남궁문이 불안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가족들을 찾았다.

그리고 한쪽에 창궁무애단원들에게 보호받듯이 함께 서 있는 아내와 딸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문의 아내는 배를 안고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고, 딸은 남궁문과 눈이 마주치자 어미의 품에 얼굴을 숨겼다.

“저들은…….”

“안전할 거다. 최대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거라 가주님께서 약속하셨다.”

남궁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승진이 대답해 주었다.

남궁문은 크게 안도하며,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아내와 딸을 눈에 담았다.

자신을 향해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내를 향해, 남궁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것은 전부 다 말하겠소.”

남궁문의 말에 고승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무적단이 다시 배에 올랐다.

단주 남궁경은 몹시 슬픈 표정으로 진화를 끌어안았다.

“내 새끼, 또 언제 볼꼬.”

남궁경이 슬퍼하는 부분이 단지 그뿐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진화는 웃는 얼굴로 남궁경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제왕무적단은 남궁도의 시신과 남궁문, 살아남은 수하들을 데리고 본가로 돌아갈 참이었다.

“아비가 준 것, 소가주에게 잘 전해 주고.”

“예.”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있거라.”

“그럴게요. 아버지도 건강하시고, 어머니와 가족들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에구구. 그래, 그래.”

남궁경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진화를 다시 끌어안았다.

“아, 그만 좀 해요!”

결국 고승진과 수하들의 손에 배로 끌려간 남궁경이, 진화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배가 사라진 후, 같이 손을 흔들어 주던 진화의 표정이 서늘하게 돌아왔다.

“일단 공산 포구 인근부터 뒤져야겠군.”

남궁문이 배에 타기 전, 제갈무진이나 귀천성에 관련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말해 주었다.

남궁문의 태도를 보면 전부 믿을 수 있을 듯했지만, 어쨌든 정의맹에서 다시 확인해 볼 것이었다.

‘공산을 지난 곳에 보낸 염탐꾼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지? 그곳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야겠군.’

그곳에 있는 뭔가야말로 제갈무진이 준비한 한 수일 가능성이 컸다.

‘뭘 준비했든 상관없었다. 네가 혼현마제든 누구든, 이번엔 반드시 죽여 주지.’

진화가 남궁경이 간 반대쪽을 향해 눈을 빛냈다.

* * *

제갈가주와의 대화 이후, 제갈지현은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소가주 업무는 계속 수행했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태도였다.

이전에는 소가주 업무를 통해 세가의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했다면, 지금은 그저 주어진 업무만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느낌이랄까.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제갈세가 가솔들은 그날 제갈지현이 가주에게 뭔가 밀려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점점 확신으로 굳어 갈 즈음.

제갈지현이 한문혜를 찾았다.

“당신은 내게 뭘 해 줄 수 있죠?”

다짜고짜 찾아와 묻는 제갈지현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미 제갈세가에 도는 소문을 들은 한문혜는, 궁지에 몰린 제갈지현이 결국 저를 찾은 것이라 확신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날 찾아오지 않고는 못 배기지!’

벌써 삼왕자와 오왕자가 죽었다.

멍청한 이왕자와 한량 같은 육왕자는, 제갈무진이나 귀천성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한문혜 혼자 충분히 밀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제갈지현이 함께한다면, 아예 왕세자를 밀어내는 것도 가능하리라!

“당신이 내주는 것에 따라, 뭐든지 줄 수 있소.”

제가 왕이 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제갈세가를 제갈지현에게 주고 제 아들에게 뒤를 잇게 하는 것도, 자신에겐 손해 볼 것 없는 선택지였다.

한문혜가 손을 내밀었다.

“좋군요.”

제갈지현은 일렁이는 한문혜의 눈을 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역천비록과 천살지체에 대해 알려 드리죠. 내게 제갈세가를 주세요.”

제갈지현의 말에 한문혜가 소리 없이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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