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1)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남궁진휘의 물음에 정의맹주와 제갈가주가 고개를 저었다.
“천살성에 대해서 제갈세가에 있던 기록을 없앤 흔적을 발견했네. 놈들도 이미 어느 정도 범위는 좁혀 놓고 있었을 거야. 빠르든, 늦든 결국 제갈무진도 알아냈을 거네. 천살지체를 꽁꽁 숨겨 둘 수도 없고.”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제갈가주가 정의맹주를 힐끗 보았다.
사실 제갈가주는 현오를 소림 구석 어딘가에 꽁꽁 숨겨 두자는 쪽이었다. 현오의 안위보다는 제갈무진에게 결코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정의맹주가 반대했다.
“허허, 가만히 숨어 있으라고 하면 또 소림 산문을 넘을 놈일세. 주작단원들과 함께라도 돌아다니는 편이 나을 걸세.”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현오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고, 그래서 더 웃음 뒤끝이 씁쓸했다.
운현대사라고 왜 현오를 숨겨 두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불마대법을 주기적으로 하고도 들끓는 피가 식지를 않으니, 소림 산문을 넘어 먹을 것이라도 탐하게 두고 싶었다.
제갈가주는 그런 정의맹주의 마음을 모르는 척 따라 준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바, 차라리 제갈무진이 넓디넓은 천하 어디론가 숨기 전에 잡는 것이 나아. 손에 잡히는 거리 안에 천살지체를 두고 쉽게 떠나진 못하겠지. 뭘 노리고 있는지 아니, 어렵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야지.”
제갈가주는 이번에야말로 제갈무진을 제 손으로 잡아넣을 것이라 눈을 빛냈다.
“주작단원들을 더 배치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허허허, 벌써 주작단원 열 명을 보냈다네.”
남궁진휘의 말에 정의맹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숲에 남아 있는 제갈무진의 진법이나 흔적을 찾아 추적하고 있는 주작단원을 현오와 남궁진화에게 스물, 숙청관 경계에 열 명을 차출했으니. 정의맹주는 그것도 과하다고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남궁진휘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것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부족하다고? 남궁의 소공자는 겨우 다섯 명이 호위하고 있지 않나?”
“그거야 우리는 창궁무애단 스물을 더 붙이니까요.”
“……허!”
정의맹주가 놀란 눈을 끔벅거리는 사이, 듣고 있던 제갈가주가 기가 찬 듯 콧김을 뿜었다.
남궁진화, 한 사람에게 호위 스물다섯이라니.
어디 고관대작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며 제갈가주가 남궁세가의 팔불출 행태를 비웃고, 정의맹주도 유쾌하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곧 정의맹주와 제갈가주는 현오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만 했다.
“저자에서 습격이 있었습니다!”
유쾌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 * *
백주(白晝), 그것도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 저자 한복판에서 일어난 습격에 정의맹은 물론이고 온 저자가 술렁였다.
습격으로 인해, 청성파에서 손에 꼽히던 검수인 완수검 강현필부터 점창파 제자 한충료를 비롯해서 정의맹에 위치한 중소 문파 출신까지 주작단원 넷이 죽었다.
제갈무진을 찾기 위해 비밀스럽게 전략을 짜고 임수를 수행하던 정의맹 수뇌부로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에서 정의맹 육 대 무단의 고수들이 죽임을 당한 일은 정의맹 전체의 사기를 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곧바로 정의맹 총연맹회의가 소집되었다.
“흐음…….”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연맹회의 참석자들 또한 하나같이 당황스럽고 비통한 표정이었다.
“현재 주작단원들이 놈들이 사라진 방향을 쫓고 있고, 죽은 주작단원들의 시신은 의선문으로 옮겨졌습니다. 다만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괴인 중 하나가 광룡귀면대 부대주 악수아의 아랑쌍정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괄적으로 교성흑오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다른 괴인들도 광룡귀면대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제갈가주는 최대한 감정의 동요 없이 덤덤하게 보고를 이어 갔다.
하지만 강현필과 가까운 사이였던 청성파 장로 부절검 이나용은 분을 참지 못했다.
탕-!
“어떻게 놈들이 정의맹 코앞까지 나타났는데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
청성파 장로 이나용의 말에 제갈가주는 냉담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이나용의 부아를 돋우었다.
“군사, 답 좀 해 보시란 말입니다!”
제갈가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갈가주가 말없이 이나용을 보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나용의 옆에 있던 점창파 장로 강자린이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흥분한 이나용이 되레 화를 내었다.
“왜요! 제가 뭐 없는 소리를 물었습니까! 뻑 하면 기밀이네, 임무네 하면서, 남의 제자들만 죽을 자리로 보내지 않습니까!”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크게 동요했다.
조금 큰 소리를 내는 것이야, 모두들 문파의 손꼽히는 인재를 잃은 비통함 때문이라 이해하며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설마 그동안 제갈가주의 일 처리에 대해 심심치 않게 해 대던 뒷말을 제갈가주의 면전에 던질 줄이야.
청성파 장로 이나용의 흥분이 과했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갈가주가 매서운 눈빛으로 청성파 장로 이나용을 노려보았다.
“미리 알았다면 벌써 놈들을 잡아 죽였겠지요! 왜, 세상일을 미리 다 알지 못하느냐고 묻지 그러십니까? 그럼 제 부족함에 무릎이라도 꿇었을 텐데요!”
탕-!
“뭐요!”
“허어! 왜들 이러십니까!”
“흥분 가라앉히십시오.”
제갈가주가 받아치자, 청성파 장로 이나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흥분하는 이나용을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고, 결국 정의맹주까지 나섰다.
“미안하네. 아이들의 호위로 주작단을 추천하고 그만한 인원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한 건 내 판단일세. 내가 안일했음이네.”
정의맹주 운현대사가 먼저 나서서 사과를 하자, 청성파 장로도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제갈가주를 노려보았다.
그때, 남궁진휘가 끼어들었다.
“동료나 동문이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하나 그에 대한 원망을 군사께 쏟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입니다.”
“뭐야?”
남궁진휘의 말이 정의맹주의 사과로 간신히 화를 누르고 있던 청성파 장로 이나용을 다시 흥분시켰다.
겨우 가라앉은 불씨에 바람을 불어 넣은 격이라, 모두들 이나용이 다시 벌떡 일어서는 것을 예상했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게 그의 모든 언행을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매 임무에서 죽은 사람이 나오면, 군사께 원망을 쏟을 것이냐는 말입니다!”
남궁진휘가 이나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럼 좀 위험하다 싶은 임무마다 힘없는 문파 제자들만 밀어 넣는 이유는 뭔데! 이번 일만 해도, 남궁진화의 호위에는 화산파와 무당파 제자들이 있었잖나!”
“실로 막무가내 말씀이로군요. 남궁진화의 호위에는 주작단원은 겨우 다섯 명이었고, 다섯 중 하나가 화산파, 하나가 무당파 출신이었을 뿐이죠. 다른 주작단원들은 얼마 전 큰 전투가 있었던 숲을 수색 중이었습니다. 주작단의 임무 편성은 주작단 내부의 결정이었습니다. 아니면 그조차도 주작단주가 조 편성에서 힘없는 제자들을 몰아넣었고, 위험한 임무만 골라 맡겼다고 하실 셈입니까!”
남궁진휘가 이나용 못지않게 언성을 높였다.
“지난번 남궁세가의 제자들이 정의맹을 돕다 죽은 것은 어찌 말씀하실 요량이십니까! 그도 군사의 음모입니까? 제갈세가 제자들이 죽은 것은요! 아,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지요? 제갈무진이라는 배신자가 제갈세가에서 나왔으니, 그를 무마하기 위해 나섰다고?”
타-앙!
남궁진휘가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 있던 이나용의 면전에다 소리쳤다.
“입이 있다고, 아무 말이나 막 내뱉어도 되는 건 아닙니다!”
“허! 허! 이, 이자가……!”
당황한 청성파 장로 이나용이 기가 막힌다는 콧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남궁진휘를 말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남궁진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전략은 군사부에서 수립하지만, 기밀을 요하는 것은 맹주님과 각 무단주들이 합의 이후에 진행됩니다. 희생이 나올 때마다 원망할 사람을 찾는다면, 각자 싸울 것이지 정의맹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남궁진휘가 여전히 서서 제 편을 찾는 이나용을 한심하다는 듯 쏘아보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나용은 점창파 장로 강자린이 억지로 팔을 끌어내리고서야, 겨우 자리에 앉았다.
“흐음…….”
정의맹주의 깊은 한숨과 함께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 분위기를 끊어 내듯 덤덤한 목소리로 제갈가주가 보고를 이었다.
“주작단이 나서서 도망 경로 추적하고 있지만, 숲으로 사라진 후부터 흔적이 끊겼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언제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바, 정의무학관과 협조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당분간 외부 수련을 삼갈 예정입니다. 다만, 정의무학관주가 워낙 강경하여, 수련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외부 수련을 삼가는 것도, 이번 일로 겨우 ‘당분간’이라는 조건을 건 것이니까요.”
제갈가주의 말에 곳곳에서 탄식이 흘렀다.
정의무학관 관주 나무열을 비롯한 무사부들의 강경함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일이 있기 전에 협조를 요청했을 때도, 수업 일정을 조정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귀천성이 무서워서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건, 싸우다 죽는 것보다 더 한심한 일이다.”라며 단칼에 거절당했었다.
실제로 몇몇 문파와 장로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의무학관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놈들이 정의맹 코앞에 숨어서, 백주에 우릴 도발하고 있습니다. 주작단만이 아니라 각 문파의 무단에서도 협조해, 하루라도 빨리 놈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뇌선검 남궁조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무겁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맞는 말일세. 두 아이의 호위는 정의무학관과 관도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니, 외부 호위는 각자의 문파에서 하기로 하고, 주작단은 놈들의 추적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네. 제갈연환대가 이미 돕고 있으니, 소림에서도 지원 인력을 보내겠네.”
정의맹주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제갈가주를 향했다.
이미 지난 조사단과 추격조 인력에 제갈세가 사람들이 나서면서 희생자가 나왔는데, 또 숲으로 지원대를 보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제갈가주를 비난했던 청성파 장로 이나용이 헛기침을 하며 제갈가주의 눈을 피했다.
“숲이 넓으니, 인력이 많으면 좋겠지요. 당문암혼단도 지원하겠습니다.”
“화산매화단 역시 숲에서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문가주과 화산파 장로 구선용의 말에 정의맹주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무진과 그 일파가 숨은 곳을 찾지 못하는 한, 우리 모두가 위험하다 할 수 있네.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갈무진과 그 일파를 잡기 위해서는 모두 힘을 합해야 할 것이네. 지원에 나서 준 문파에도 감사하네. 하나! 누군가의 말처럼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 각 문파에서 다섯씩, 지원을 하도록 하지.”
정의맹주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소승(笑僧) 운현대사가 한 말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그, 그게 무슨……!”
청성파 장로 이나용이 크게 당황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점창파와 곤륜파, 공동파, 종남파 장로들의 안색도 나빠졌다.
한창 격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종남파는 지원을 받아야 할 판국이었고, 점창파와 청성파 역시 세가 약하다는 핑계로 지원 임무에 소극적이었다. 게다가 지난 전쟁에서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던 곤륜파와 공동파는 아직 제자들이 어리고, 문파를 재건하는 중이라는 이유로 이런 지원에 관련해서는 배려를 받아 왔다.
그런데 방금 정의맹주의 말은 그런 배려를 모두 거두겠다는 말로 들린 것이다.
“맹주님!”
“형평성과 효율성 중에서 무얼 택하는가 하는 것은 늘 고민스러운 일이지. 문파의 세를 떠나, 사람의 목숨 앞에서 효율을 따져선 안 된다는 것을 잠시 망각하였네. 이제라도 불만이 없도록, 형평성을 갖춰야 하지 않겠나?”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주작단원들도 다 소중한 각 문파의 제자이자 동문이 아니겠나. 어렵다면 지원이 와 줘야지. 각 문파나 세가별로 다섯 명이라면 그리 어려운 숫자는 아닐 것이네. 모자라면 중소 문파에도 부탁해 보지.”
“크흠! 흠!”
“그것이…… 참! 흠!”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처럼 헛기침 소리가 나왔다.
점창파와 공동파 장로는 양옆에서 이 사달을 만든 청성파 장로를 힐끗 째려보았다.
남궁진휘와 정의맹주는 서로 눈이 마주치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어 정의맹주가 위엄 있게 말을 이었다.
“귀천성이 노리는 것이 명백한 시점이네. 부디 적호단과 남궁, 소림은 의선문과 두 아이의 호위에 소홀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희생된 이들의 문파와 가족에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나, 정의맹에서는 영웅들의 죽음에 마땅한 성의를 보내 주시게.”
“곧바로 보내겠습니다.”
“무엇보다, 적이 숨은 곳을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네. 각 문파는 오늘까지, 인원을 뽑아서 주작단주에게 보내시게.”
“그리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회의를 파하겠네.”
제갈무진과 습격해 온 이들을 찾아내지 않는 한 뚜렷한 대책이나 결론이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정의맹주의 기지로 일의 진척이 빨라지는 것을 기대해 볼 법했다.
회의 후.
군사부로 돌아가던 제갈가주가 슬쩍 남궁진휘를 보았다.
“그리 도와주지 않아도 되었는데. 남궁세가에서 제갈 때문에 적을 만들어서 어찌하나?”
제갈가주의 말에 남궁진휘도 슬쩍 제갈가주를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자리에 앉았을 때를 위한 대비니까요.”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가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자리를 노린다고?”
“언젠간 그렇지 않겠습니까.”
“허, 꿈이 크군.”
제갈가주가 남궁진휘의 말에 코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어떤 의도든 정의맹주와 남궁진휘가 제갈가주를 위해 나서 준 것은 사실이리라.
서로 친근한 시선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지만, 돌아가는 제갈가주와 남궁진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한편, 정의맹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궁조의 입꼬리는 한쪽만 말려 있었다.
남궁조는 청성파 장로 이나용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야, 이 시방새야, 아무리 나이가 어리지만, 부군사이자 우리 남궁세가 소가주가 네놈 친구야?”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뭘 어쨌다고!”
이나용이 어깨의 손을 치우려는데, 남궁조가 완력으로 내리눌렀다.
그리고 이나용의 귓가에 대고 조금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대가리가 궁둥짝 같은 놈이 어디 공식 석상에서 우리 소가주한테 반말을 찍찍 해 대고 있어! 내 성질 알지? 어제 네가 놀던 기루 연단에서 칼춤 한번 쳐 줘?”
“아, 아깐 감정이 격해져서 실수 좀 한 것이네.”
“그으래? 아무리 그래도 다음엔 예의 좀 지키자고. 내가 막 너한테 친애하는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응?”
“아, 알았으니 팔 좀 치우게!”
귓가에서 으르렁거리는 남궁조의 목소리에 이나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날건달 같은 놈!’
평소라면 같이 남궁조를 비난해 줬을 점창파나 공동파 장로도 오늘은 이나용에게 혀를 차며 먼저 가 버렸고, 이나용은 혼자 속으로만 욕을 하며 서둘러 정의맹을 나서야 했다.
* * *
진화가 의선문을 찾았다.
“대체 왜 여기로 온 거야?”
“흐흐흐, 내 연약한 심장이 놀랐으니 쉬어 줘야지.”
현오가 의선문 침상에 누워 뒹굴거리며 말했다.
이불을 끼고 실실 웃는 현오를 보며, 진화는 그가 지난번 의선문에서 먹었던 음식을 잊지 못해서라고 확신했다.
“각오 무사부님이 저녁에 복귀하지 않으면, 대마불동에 끌고 갈 거라 전하라시더군.”
“아, 왜!”
현오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자신의 사부라면 능히 저를 끌고 갈 사람이라,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주작단원들의 장례는 정의맹에서 치른다더군.”
“아, 그래?”
진화의 말에 현오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잠시 말이 없던 현오가 진화를 보았다.
“원래는 이렇게 침울한 것이 정상인데…… 내가 천살지체라서 그런가?”
주작단원들의 죽음에 대해 하는 말이었다.
현오는 주변의 걱정과 달리, 크게 충격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나한들과 살을 부대끼며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감정에 무딘 편이었다.
진화는 그게 제물 양육실에서 먹였던 탕약 때문인 듯했지만, 체질 때문이라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넌 그들의 죽음에 분노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런가.”
진화의 말에 현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작단원들을 위해 짧게 불경을 외웠다.
“극락왕생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 명복을 빌어 줄 수는 있잖아.”
현오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진화를 향해 말했다.
“그래. 너도 있는데.”
“……무슨 뜻이지?”
“흐흐흐흐, 본인이 받아들이는 대로지.”
현오의 말에 진화가 입을 삐쭉였다.
진화는 이전 삶의 기억과 이번에는 가족들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감정의 동화에 문제를 느낀 적은 없었다.
아니, 문제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제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확실하게 알았으니 말이다.
“칠왕자가 널 확인하고 갔으니까, 곧 올 거야. 오는 대로 치워 버리면 돼.”
“사형들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군. 한 번만 봐주세요, 부처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도요.”
진화의 말에 현오가 염주를 잡고 비는 척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앞으로 정의맹에서 제갈무진을 유인하려고 할 거야. 단, 절대 우리를 미끼로 내놓진 않겠지.”
“하긴 남궁세가라면…… 그럼 어쩌려고?”
“정의맹이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는 걸 놈들이 알게 하면 되지.”
“칠왕자가 가져가는 정보가, 가짜라는 걸 알게 한다고?”
현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 배신한 놈이 두 번 배신하지 못할까. 칠왕자를 통해서 정의맹의 유인이라고 알려 주면 돼.”
“오! 그래서 어쩌려고?”
현오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진화가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둘인 뱀은 가끔 먹이를 두고 싸우지. 먹잇감이 두 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진화의 질문에 현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뱀 머리끼리 싸울 거라고?”
“어차피 몸통은 하나야. 이전처럼 하면 돼. 네가 잡고, 내가 내리찍는다.”
“하하! 그거…… 기대되는군.”
진화의 눈빛에 살기가 번뜩이니, 현오도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둘은 서로가 비슷한 얼굴로 웃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듯했다.
정의무학관에 들어가기 전, 현오가 정문에서 앓는 소리를 했다.
“으으, 사부가 나 늦게 왔다고 대마불동에 넣진 않겠지?”
“…….”
진화는 당분간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숨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