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2)
탁! 탁탁!
봉끼리 마주치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무사부 각우의 앞에서, 홍의생들이 봉으로 대련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각우의 수업은 밖에서 전술을 이용한 집단 전투를 경험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근래에 있었던 사고와 귀천성의 공격으로 외부 수업이 잠시 중단되었다.
그 덕에 관도생은 소림의 무기술들을 배우고 있었다.
현재 소림에서 가장 유명한 무공은 대승반야선공, 대력금강장과 같은 권이나 장을 쓰는 것이었지만, 정도 무림에서 소림만큼 다양한 무공, 다양한 무기 사용법이 존재하는 곳도 없었으니.
각우는 나한각의 총사부 출신으로, 소림 안에서도 가장 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퍼억-!
“윽!”
각우의 단봉이 매섭게 팽수의 등을 때렸다.
“어설프게 봉을 쥐고 무공을 펼치려고 하지 마라! 며칠간은 봉이 움직이는 원리를 익히란 말이다!”
모든 무기는 각각의 목적에 따라 생김이 다르고, 생김에 따라 사용법도 다르다.
각우는 소림의 무공이 아니라, 무기 자체를 다루는 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정도 무림과 달리 사파나 마도, 그리고 네놈들이 싸우게 될 귀천성의 무인들은 우리보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즐비하다! 세상의 모든 무기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검과 도, 창, 장봉과 단봉, 채찍 그리고 암기가 움직이는 원리를 안다면, 어지간한 무기들이 움직이는 원리는 파악할 수 있다.”
퍽!
이번에는 각우의 단봉이 제갈성을 때렸다.
“누가 봉을 익히라고 했나! 싸우는 법을 익혀라! 내가 봉을 들고 싸워 봄으로써 봉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하고, 상대방과 싸우면서 봉을 든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라고! 멍청하게 봉을 들고 잘 싸우려고 하지 말란 말이다!”
각우의 말이 쩌렁쩌렁하게 연무장에 퍼졌다.
-단봉으로 때리는 건, 얻어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라는 건가?
-한번 물어보지그래? 얼마나 아픈지.
-닥치라더군.
-……그걸 진짜 물어봤나, 미친놈아.
탁! 탁탁!
남궁교명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남궁구의 봉을 때렸다.
-역시…… 수상하지?
-부쩍 현오와 어울리시는군.
-뭔가 이상해. 현오가 습격당한 이유가, 현오가 그 천살지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어.
-작은 공자님이 아니라?
-우리 도련님은 광마전 제물이었지! 현오야말로 제갈무진이 노리는 천살지체인가 뭔가고!
-저 만두쟁이가?
-나도 우리 뚱뚱땡중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근래 둘이 속살거리는 일이 는 게 수상해.
-작은 공자님께 언행을 주의해라. 하지만…… 네 생각에 동의한다. 수상하군.
-소가주님이 숙소 안에서도 절대 떨어지지 말라고 명하신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요새 우리 도련님한테 섭섭해. 재미난 일에 날 빼놓다니! 뭔가 진짜 재미난 냄새가 난다고!
남궁교명과 남궁구가 현오와 짝을 이룬 진화를 힐끗거리며 전음을 나누었다.
따악!
“아얏!”
“집중해라!”
각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진화를 보고 있는 남궁구의 등짝에 단봉 맛을 보였다.
-이제 얼마나 아픈지 알겠군.
남궁교명이 남궁구를 비웃고, 둘의 목봉 대결이 격렬하게 변했다.
진화와 현오는 자신들에게서 시선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저 시주들은 갑자기 왜 저러는고?
-형님께 뭔가 지시를 받았겠지.
진화는 안 봐도 뻔한 사실이라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저자에 나올 때마다 창궁무애단원을 스물이나 붙이는 남궁진휘가 정의무학관 안에 아무것도 해 놓지 않을 리 없었다.
다행한 것은 정의무학관에서 숙청관의 방비를 금, 은, 동의생들이 도맡아 하게 했다는 걸까.
정의맹 본부가 있는 양청현에서 전투가 일어나면서, 본래는 귀천성과의 전선으로 갔어야 하는 많은 금, 은, 동의생들이 양청현에 남게 되었다. 덕분에 정의무학관 안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남궁세가 혹은 양주 출신 관도생들이 노골적으로 진화를 주시하는 것만 빼면, 정의무학관까지 창궁무애단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의맹은 움직이고 있는가?
-글쎄. 나도 형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만 알 수 있으니까.
현오의 전음에 진화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현오가 눈을 크게 뜨며 진화의 봉을 때렸다.
-뭐? 그러면 곧 정의맹이 제갈무진을 유인한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 건가?
-그거야…… 애당초 놈들에게 네가 천살지체라는 걸 흘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제갈무진이 숨기 전에 찾아내기 위해서잖아.
비단 천살지체를 흘려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그게 제갈세가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전 생에서 진화가 숱하게 겪어 본 방식이었다.
좋은 군사나 전략가는 이미 이길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전쟁을 한다 했던가.
지금의 제갈가주나 이후 소가주로서 제갈세가를 이끌었던 제갈지현도,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 함정을 파고 귀천성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잘 사용하는 편이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얼마나 진짜처럼,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되어 귀천성을 유인하는가였는데, 뇌왕이라는 명성과 광마가 열렬하게 노린다는 점에서 진화와 남궁세가가 그 미끼로 자주 쓰였다.
그 덕에 진화와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매번 귀천성과 위험한 전투를 치러야 했고, 그 과정에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었다.
‘남궁도와 소가주 일파를 구하는 데에, 남궁결사대를 미끼로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그래서 하는 거고.’
승리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그들의 전략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들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진화였고, 남궁세가였다.
진화에겐 그들이 귀천성과 얼마나 잘 싸웠는지, 최종적으로 귀천성에 승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 과정에서 많은 문파들은 희생을 당했고, 남궁세가 또한 멸문당했으니 말이다.
‘네놈들이 얼마나 선하고 정의로웠는지는 상관없다. 남궁세가를 배신한 것이라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번에 살아남는 것은 남궁세가다!’
이번에도 제갈가주와 정의맹은 진화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숲을 수색하는 데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결과가 없으니까, 곧 변화를 찾겠지.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칠왕자에게 흘리든지, 네 생각대로 할 것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칠왕자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에 장인이 하나 있거든.
진화의 눈이 남궁구에게 향했다.
-구, 말인가? 구가 그렇게 위험한 일에 나서려고 할까?
현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진화는 확신했다.
-재밌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갈 거다.
진화가 칠왕자를 납치하라고 했을 때도 화들짝 뛰긴 했지만, 결국 왕자를 납치해 왔던 남궁구였다. 그저 감시만 하라고 한다면 좋다고 나설 것이 분명했다.
* * *
정의맹 군사부.
제갈가주가 심각한 얼굴로 전서를 읽다가, 남궁진휘를 찾았다.
제갈가주와 눈이 마주친 남궁진휘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공산에서도 아무 소식이 없나?”
“백매단주님이, 정보원들이 아닌 민가의 어부까지 보냈지만, 근처에만 가도 모조리 죽인다고 합니다. 육지를 통해 보낸 백매단원들은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밀을 유지하는 데에, 사람을 가리는 놈들이 아닙니다.”
“제갈무진의 수하가 들은 곳은 보안이 철저한데, 하필 근래에 조력자로 등장한 인물이 광룡귀면대 악수아라…….”
“그곳에 광마전 놈들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죠.”
“위치가 너무 위험하군. 정의맹과 가까운 것도 문제지만, 뇌평이 무슨 수로 사흘 거리를 좁혔는지 알아내지도 못했으니…….”
제갈가주나 남궁진휘 모두 벽에 봉착했음을 인정했다.
공산 포구에 백매단을 보낸 것 외에도 개방을 비롯한 인근 문파들과 정보를 주고받았지만, 누군가 근처에서 죽었다는 소식 외에는 얻는 것이 없었다.
“주작단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겁니까?”
“숲 곳곳에 제갈무진이 함정을 펼쳐 놓았네. 혹여 놈의 진법 근처에 뭔가 있을까 해서 진법을 뚫고 깊게 들어가면, 오히려 함정에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군. 각각 문파의 지원을 늘려 인원을 투입해 봤자, 속도도 낼 수 없고 부상자만 늘어날 뿐이야.”
오늘 제갈가주가 받은 전서에는, 잠깐 숲에서 물러나서 나서 다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요청서였다.
주작단과 단원들은 잘 견디고 있었지만, 역시 각 문파에서 차출된 인원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 아닙니까. 주작단에도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저들이 요청했으니, 잠시 물러난다고 해도 다른 말은 못 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답답한 노릇이군. 정의맹 코앞에 놈들이 칼을 들이밀고 있는데, 우린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제갈가주는 남궁진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좀처럼 걱정을 놓지 못했다.
남궁진휘가 안타까운 눈으로 제갈가주를 보았다.
‘제갈세가 또한 귀천성의 공격을 당하고 본가를 옮겼었지. 귀천성에 밀려나 본 경험 때문인가? 귀천성에 대한 공포심이 남은 듯하군.’
남궁진휘는 제갈가주가 조급증처럼 보일 만큼 일의 진척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며, 그가 귀천성에 모든 것을 잃어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궁세가와 양주는 제왕검과 이전 세대 무인들 덕분에 온전하게 살아남았으니, 상대적으로 귀천성에 대한 두려움도 덜하고 전투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리라.
그때, 한 중년인이 급히 들어왔다.
“총군사님!”
중년인은 군사부 소속 당은방이라는 자로, 정의맹의 전서구를 관리하고 전서를 모아 군사부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은방이 곧바로 제갈가주를 찾았다는 건, 곧장 총군사에게 전하는 급전이 왔다는 의미였다.
“은방, 어디인가?”
“주작단입니다.”
당은방이 전서를 전하고, 남궁진휘와 눈인사를 나눈 뒤 방을 나갔다.
당은방이 나간 후 급히 전서를 펼친 제갈가주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무슨 일입니까?”
“숲을 뒤지던 이들 중 사망자가 나왔다는군.”
“이런…….”
남궁진휘가 탄식을 흘렸다.
사망자가 나온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 이상 숲에 대한 수색을 계속 진행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연맹회의를 소집하지. 언제 제갈무진과 귀천성 놈들이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자를 늘릴 순 없으니.”
제갈가주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남궁진휘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었다.
잠시 제갈가주를 보던 남궁진휘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외람되지만,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부군사로서는 총군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남궁세가 소가주로서, 남궁진화를 위험하게 하는 그 어떤 일에도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미리 말하는 이유는?”
제갈가주의 눈초리가 가늘게 남궁진휘를 향했지만, 남궁진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했다.
“나중에 섭섭해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허! ……방도를 찾아보자고.”
남궁진휘의 덤덤한 듯 너스레 섞인 말에 제갈가주가 기가 찬다는 듯 그를 보았다.
하지만 군사부를 나서며 제갈가주와 남궁진휘가 하나의 합의점을 찾았다.
* * *
이튿날.
집무실에서 문서를 처리하던 제갈가주가, 제갈지현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떴다.
그사이, 제갈지현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가주의 책상으로 갔다.
“…….”
은근슬쩍 제갈가주의 책상 위 문서를 읽은 제갈지현의 눈이 커졌다.
잠시 후 제갈가주가 자리로 돌아오고, 제갈지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에서 업무를 보았다.
모든 일이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날, 제갈지현이 칠왕자를 찾았다.
이미 제갈세가에서는 제갈지현이 정혼자 후보 둘 중에서 칠왕자 한문혜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소문이 파다한 터라, 선남선녀가 가볍게 차를 나누는 일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남궁구가 환하게 웃으며 진화를 찾았다.
“도련님--! 도련님, 내가 물어 왔다고!”
남궁구의 촐싹거림을 본 진화가 현오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진짜로 왕자를 감시할 줄이야. 구는 간덩이를 배 밖에 숨겨 두었나?
-이다음엔 구가 왕자를 납치해 올 거야.
“뭐-!”
진화의 전음에 현오가 경악하며 소리치고 말았다.
남궁교명이 놀라서 그를 보았지만, 현오는 진화와 남궁구를 번갈아 보며 도무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