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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28)화 (128/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3)

남궁교명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떨떠름한 얼굴을 한 칠왕자 한문혜가 들어오고, 또 그 뒤로 남궁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서,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한문혜가 도끼눈을 뜨고 진화를 노려보았다.

“감히…… 제국의 왕자를 두 번이나 납치해?”

한문혜의 말에 진화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오히려 한문혜의 말에 펄쩍 뛴 건 남궁교명이었다.

“잠깐, 두 번? 그럼 이게 처음이 아니란 말이야?”

남궁교명이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남궁구가 한쪽에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어쩐지 협박하는 꼬라지가 익숙해 보이더라니…….”

남궁교명의 말에 남궁구가 입술을 꿍얼거렸지만, 정확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남궁교명이 이번에는 한문혜를 보았다.

입 밖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래위로 보는 시선이 마치 ‘두 번이나 납치를 당하는 너는 뭐냐?’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절대 진화의 무모함은 탓하지 않았다.

한문혜와 진화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이번엔 무슨 일이지?”

한문혜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문혜의 눈길이 한쪽 구석에 있는 허름한 나무 의자를 향했다.

“정보 교환.”

“허!”

진화의 대답에 한문혜가 코웃음을 쳤다.

정보 교환이라면서, 처음 저를 납치했을 때 묶어 두었던 그 의자를 왜 홍의장실에 놔두었을까.

언제라도 수틀리면 저 의자에 앉혀 놓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저런 뻔뻔한 대답이라니!

“난 당신이랑 교환할 것이 없는데, 어쩌지?”

한문혜가 비뚜름한 웃음을 달고 비아냥거리는 듯 말했다.

그에 진화의 미소가 한결 짙어졌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교환이라는 의미는 내가 너한테 줄 것도 있고, 받을 것도 있다는 의미야. 일방적이고 때에 따라 강압적일 수도 있는 교환이지. 저 의자도 그런 의미에서 홍의장실에 가져다 뒀는데, 몰랐나? 의자를 보기에, 그 정도는 알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너한텐 선택권이 없다는걸.”

뻔뻔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말투.

한문혜는 그제야 눈앞의 상대가 ‘적’이라는 걸 실감했다.

* * *

“숲으로 간다고?”

“정의무학관 관주가 더 이상은 정상 운영을 미루지 않겠다고 했다더군.”

한문혜의 말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무학관 관주인 금룡일권 나무열은 한때는 전투에 미친 괴짜라는 소리를 들었던 무인이었다.

전투에 있어서 물러서는 법이 없고, 귀천성과의 전쟁에서도 귀천성도들과는 어떤 타협도 없다는 강경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귀천성을 경계하기 위해 자신이 맡고 있는 정의무학관이 해야 할 일을 축소하거나 일정을 변경하는 것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

‘꽤 괜찮은 핑계네.’

누구라도, 그게 설사 제갈무진이라도 납득할 만한 핑계였다.

진화는 정의맹의 조치를 이해했다.

그사이에도 한문혜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진화의 눈짓이나 손짓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관찰했다.

‘당사자가 숲으로 갈 일정을 모른다고? 연기인가? 아니야. ……정말 몰랐군.’

한문혜는 진화의 질문에 순순히 답을 해 주면서, 본인도 얻어 갈 것을 찾았다.

“확실한 건가? 제갈세가에서 얻은 정보 맞아?”

“경로를 밝힐 생각은 없다. 왜, 다시 고문이라도 하겠나?”

한문혜가 강경하게 나갔다.

제갈지현이 제 손을 잡은 일은 최후의 보루이자 자신의 힘 그 자체라.

한문혜는 다시 저 혐오스러운 의자에 저를 앉히더라도 그것만은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나오는 한문혜의 모습에, 진화가 의외라는 그를 보면서도 납득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뭐, 좋아. 앞으로도 그 정보처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원래도 정의무학관은 일정에 대해 관도생들에게 미리 공지하지 않으니까, 다음 수업에서 통보를 하면 그때 진위 여부는 금방 밝혀지겠지.”

어차피 지금까지도 각우가 친절하게 수업 일정을 안내해 준 적은 없었기에, 진화도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서운 눈빛으로 한문혜를 압박했다.

“제갈세가의 미끼 전략일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는 건가?”

“뭐?”

“제갈세가는 예전부터 미끼를 던지고 함정을 파는 전략을 잘 사용했다. 일부러 말을 흘렸을 가능성은 없냐는 거지.”

“없다, 가주전에서 나온 정보니까.”

진화의 물음에 한문혜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동시에 한문혜의 마음속에는 ‘설마?’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사람을 믿지 않는 성격이라 사소한 물음 하나에도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갈지현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나와 한배를 탄 여자야. 내가 왕이 되어야 제갈세가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 지금 날 배신할 이유도 없어.’

한문혜는 제갈지현이 아니라, 제갈지현이 가진 욕심을 믿었다.

오히려 이쯤 되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게 줄 것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진화는 처음 제가 줄 것이 있고, 받을 것도 있다고 했었다.

한문혜가 그 말을 기억하고 물은 것이다.

“뭐, 정확히는 네게 줄 것이 아니라 확인할 것이 있었지. 천살지체가…… 소림의 현오인가?”

“……뭐?”

한문혜가 뒤늦게 물었다.

그에 진화가 알겠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럴 줄 알았어. 현오의 주변으로 주작단원들이 집중된 데다가 습격까지 당했으니까, 반쯤은 확신하고 확인한 거야.”

진화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한문혜가 눈빛을 달리했다.

“그러지 말고 정당하게 거래를 하는 게 어때?”

“뭐?”

“어차피 나를 정의맹에 발고하지 않는 것을 보면 너도 별수가 없는 거잖아. 앞으로도 알고 싶은 것이 많을 듯한데, 그렇다면 서로 정당하게 거래를 하는 게 어떤가?”

“허!”

한문혜의 당당한 요구에 진화가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도, 한번 말이나 해 보라는 듯 눈짓했다.

“숲으로 가는 일정이 통보되는 대로 내게 알려 줘.”

“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문혜가 다급하게 말했다.

“숲으로 가는 일정을 내게 알려 주면, 나도 정의맹이 어떻게 나올지 알게 되는 정보를 네게 주지.”

“……흐음.”

한문혜의 말에 진화가 구미가 돋는다는 듯 신음을 내었다.

그리고 조금 고심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문혜의 눈빛에 희열이 떠올랐다.

‘좋아! 멍청한 놈. 무시무시한 상대가 절 노리는 줄도 모르고. 이것을 광룡귀면대 부대주에게 알려 주고 다른 상을 달라고 하는 것도 좋겠어! 가령 가는 길에 이왕자에게 사고가 난다든가 하는…… 후후후후.’

한문혜는 눈앞의 진화를 팔아서 이득을 챙길 생각 따위를 하며 웃음을 참았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정의맹의 정보는 캐는 이유가 뭐야?”

“하!”

한문혜의 물음에 코웃음을 친 진화가 한문혜의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당연하잖아, 귀천성도를 내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지.”

“아. ……하하, 용기가 대단하군.”

흔들림 없는 진화의 눈을 보며, 한문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눈빛 안에는 진화를 향한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한문혜를 보는 진화의 눈에도, 그를 향한 비웃음이 가득했으니.

“결국 진실 하나를 뱉어 내고, 진실 하나를 얻고 가는군. 참 공평한 교환이야.”

한문혜가 돌아가고, 집무실 병풍 뒤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던 현오가 나왔다.

“허허, 두 번째라고? ……아미타불, 부처님, 제발 저 중생을 굽어살피소서.”

현오의 시선이 남궁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비로운 염불 속에 ‘간덩이를 내놓고 사냐’는 남궁구를 향한 비꼼이 담겨 있었다.

남궁구가 불만스레 말했다.

“난 그냥 도련님이 시키는 대로 한 거라고.”

“자네 도련님까지 부처님께 부탁하긴 너무 죄송하지 않나. 불제자의 몸으로 염치가 있지.”

현오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진화의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도 가뿐하게 넘기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정보를 흘린다고 하지 않았나?”

“흘렸어.”

한숨을 쉰 진화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흘렸다고? 언제?”

현오는 물론이고, 남궁구와 남궁교명마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진화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저런 놈은 남이 한 말은 믿지 않아. 제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고. 그래서 보여 줬지. ‘정의무학관 일정 변경에 대해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리고 ‘어쩌면 제갈세가의 기만책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둘 다 반쯤은 믿었겠지. 그러니 내게 일정 변경에 대해 거래를 하자고 한 것일 테고.”

“우와. 교활한 중생일세!”

진화의 말에 현오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그런데 어째서 감탄사와 함께 진화를 본 것일까.

진화의 눈초리가 가늘어지자, 현오가 급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의외로군. 자네가 아직도 천살지체를 확실하게 모르고 있다는 걸, 한문혜가 믿는다니.”

“그놈도 안 믿었어. 그러니 내게 속은 척, 뒤늦게 반응한 거지.”

“허!”

진화의 말에 현오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날렸다.

‘넌 알았냐?’

‘아니.’

같은 자리에 있었던 남궁구와 남궁교명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속고 속이는 연극인 건지. 둘의 대화에 과연 진실이 있긴 했나?”

현오가 사람에 상처받은 비뚤어진 소년처럼 물었다.

그 모습에 진화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했잖아. 서로 하나씩 주고받았다고. 정의무학관이 숲에서 하는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한 건 진짜겠지.”

“그럼 네가 말한 진실은?”

“귀천성도를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한 것.”

확인 가능한 정보만 던지고 간 한문혜도 한문혜지만, 진화는 결국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굳이 주었다면 살기 가득한 마음이랄까.

현오가 조금 질린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그에 진화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중요한 건, 제갈무진이 그놈의 말을 듣고 정의맹의 문건을 의심하는 일이야. 씨앗을 심었으니, 의심을 키우겠지.”

문득 웃음이 났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는 칠왕자와 그보다 더한 제갈무진이라니.

결국 제갈무진은 칠왕자가 가져온 정의맹 문건을 믿지 않을 것이다.

* * *

“믿을 수 없다라…….”

진화의 예상대로, 칠왕자는 진화의 말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갈무진에게 보내는 전서에, 진화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고스란히 써서 보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정보라는 건, 정의무학관주가 수업을 정상으로 돌리려 한다. 그래서, 정의맹 제갈가주는 그 핑계로 우리를 유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인가?”

진화에게 반쪽짜리 정보를 던져 준 것과 달리, 제갈무진에게는 알아낸 모든 것을 보냈다.

“제갈가주의 유인이라…….”

톡. 톡. 톡. 톡.

제갈무진의 고심이 깊어졌다.

‘나무열이라면 능히 그럴 만한 인물이지. 귀천성이라면 존재조차 부정하는 놈이니.’

그것을 제갈가주와 정의맹이 곤란해한다고 했다.

‘가능해. 제갈가주는 제 계획이 있기 전에 누가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지.’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남궁진화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눈빛에 읽히는 감정은 진실…….’

천살지체도 그렇지만 광마전 제물 또한 누구보다 요주의 대상이었다.

제갈무진이 이전에 만났던 남궁진화를 떠올렸다.

말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얼토당토않게 높은 무위.

그리고 저를 향한 증오심.

속에 있는 복수심을 감추지 못하는 애송이였다.

게다가…….

‘제갈가주가 제가 싫어하는 걸 하도록 두고 볼 가능성도 없지.

제갈무진이 아는 제갈가주는 정의맹 총군사 일에 세가의 일보다 더 큰 자부심과 자존심을 걸고 있었다.

아버지 천수현인의 뒤를 잇는다는 것이, 단지 가주직을 잇는 것뿐 아니라 정의맹 총군사의 역할까지 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제갈가주가 아직 숲에서 자신의 흔적도 쫓지 못했는데, 숲으로 들어가는 정의무학관의 일정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톡. 톡. 톡. 타악!

제갈무진이 결론을 내렸다.

“만만치 않은 애송이였지만, 눈빛마저도 속일 수는 없었을 터. 제갈가주가 나는 물론 모두를 속인 기만책을 꾸미는 모양이군. 가짜 일정을 만들어 놓고, 숲에서 우리가 어떤 경로로 오는지 찾는 동시에, 우릴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릴 작정일 터. 결국 천살지체는 안전한 보금자리에 두고, 무사들은 집을 비우겠구나.”

제갈무진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리고 앞에 있던 광룡귀면대 부대주 악수아를 향해 말했다.

“어떤가? 내 속아 주는 척 교성흑오대로 하여금 숲에서 놈들을 잡아 놓고 있으라 할 테니, 그사이에 빈집에 가서 나와 자네 주인의 물건들을 찾아오겠는가?”

“흐흐, 빈집털이는 별로지만, 그게 정의맹의 심장부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악수아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전하게 물건을 빼낸 후에 한바탕 뒤집어 놓고 오겠습니다.”

* * *

칠왕자 한문혜가 움직였다는 전서를 본 제갈가주가 힐끔 남궁진휘를 쏘아보았다.

“왜 그리 보십니까?”

“예상대로 칠왕자가 전서를 보냈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자네 동생이 칠왕자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군.”

“진화가요?”

“무모한 것이, 피도 안 섞였으면서 똑 닮았군.”

“하하하.”

남궁진휘가 웃으면서 제갈가주의 시선을 피했다.

진화와 닮았다는 말에 속없이 좋아하기엔, 지금 남궁진휘의 손에 남궁진혜가 이번 임무에 지원했다는 문서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총군사님의 예상대로 움직이겠죠?”

“끝도 없이 의심하고, 아무도 믿지 않는 놈이야. 연기를 하고 있다 한들, 그 본성이 가려질까.”

제갈가주가 제 앞에서 태연하게 연기하던 제갈무진을 떠올리며 눈빛을 칼날같이 매섭게 갈았다.

“자, 손님을 맞기 전에 정의무학관을 비우도록 하지.”

오랜만에 정의맹 총군사가 직접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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