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4)
교성흑오대원 하나가 제갈무진에게 뭔가 말을 전했다.
그리고 곧 제갈무진에게 뭔가 지시를 받고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악수아가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제 말이 맞지요? 진짜 관도생들입니다! 수하들 말에 의하면, 정의무학관 관도복을 입은 놈들이 숲으로 들어오고 있답니다. 백색, 홍색, 청색…… 의생별로 나뉘어서 위치도 다르다고 합니다.”
교성흑오대원이 확인하기 전, 악수아의 수하가 먼저 숲으로 들어오는 관도생을 발견하고 보고를 한 터였다.
“……편백림과 송림, 청림은 관도생들의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맞긴 하지.”
“이래도 관도생들이 정상 일정으로 돌아온 게 아닙니까? 진짜 관도생들이 숲으로 왔다면, 우리는 물건도 놓치고 허탕만 치는 것이 아닙니까!”
악수아의 따지는 듯한 말투에 제갈무진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제갈무진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후우, 이거 참. 일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개는 개일 뿐이라고.”
제갈무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악수아에게 향하고, 악수아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가 자신의 수하들을 ‘개’라고 부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악수아는 엄연히 말해 제갈무진의 수하는 아니었다.
그에 모욕감을 느낀 악수아가 검을 빼 들려는 찰나.
뱀처럼 서늘한 기운이 악수아의 목을 감쌌다.
스으으으으.
“부대주님! 큿!”
“이런, 씨……!”
거칠기 짝이 없는 광룡귀면대원들이 악수아가 위협을 당하는 순간 나서려 했지만, 순식간에 그들의 목에도 서늘한 기운이 휘감겼다.
실제로 거대한 뱀과 같은 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악수아를 포함한 광룡귀면대원 셋의 목을 한꺼번에 옥죄기 시작했다.
“……!”
순간, 악수아와 수하들의 눈이 커졌다.
제갈무진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는 동시에, 그의 얼굴이 일렁거렸기 때문이다.
제갈무진의 얼굴 안으로 붉은 눈을 빛내는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건방 떨지 마라. 난 개에게 의견을 말하라 하지 않았다.”
“크읏!”
제갈무진의 음성 위로 노인의 음성이 겹쳐졌다.
매서운 경고와 함께 목이 조여들며, 악수아와 수하들은 붉어진 얼굴로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제갈무진이 고개를 돌려 가며 악수아는 물론 그의 수하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의 눈 속에 깃든 공포심을 확인한 후에야 비릿하게 웃으며 조였던 목을 풀어 주었다.
뱀이 스치듯, 스르륵- 서늘한 기운이 목을 핥듯이 지나가는 느낌에, 악수아와 수하들이 몸이 떨었다.
제갈무진은 어느새 인자한 학사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제갈가주가 우릴 유인하겠다고 작정했다면 이 정도도 안 할 것 같은가?”
“크읏. ……이러다가 광마제 님의 물건을 놓친다면……!”
“숲엔 교성흑오대를 보낼 것이네. 만약 정말로 천살지체와 네놈들 주인의 물건이 거기 있다면, 그땐 내가 직접 나서서 찾아 주지. 됐나?”
“…….”
제갈무진의 확답에 악수아도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교성흑오대원 하나가 다시 들어왔다.
손에 든 전서를 전달하고, 제갈무진에게 전음으로 뭔가를 보고하자, 그걸 들은 제갈무진이 야릇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관도복을 입은 놈들 중 일부가 적호단의 검을 들고 있었다는군. 이제 됐나?”
“…….”
제갈무진의 말에 악수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관도복을 입은 놈이 적호단의 검을 들다니, 제갈무진의 말대로 유인책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의무학관 정식 일정은 사흘 후로 정해졌다는군. 이동 중인 놈들도 확인이 끝났고, 이제 일만 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네놈들이 약해서 정의맹이 준비한 함정을 뚫을 수 있을지 걱정이군.”
“맡기신 일은 반드시 해냅니다. 그러니 약조는 반드시 지켜 주셔야 합니다.”
“허허허. 보자고, 누가 약속을 지키는지.”
당장 죽을 뻔한 주제에 기세를 죽이지 않은 악수아를 보며 제갈무진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무인들에게 관도복만 바꿔 입힌 건가? 제갈성진,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교성흑오대에게 단원들을 관찰하게 시켰던 제갈무진이, 이 유인책을 계획했을 제갈가주를 비웃었다.
제갈무진이 제갈가주의 유인책을 간파하면서, 괜한 소리만 한 격이 되어 버린 악수아가 호들갑을 떨었던 수하를 노려보았다.
“이 망할 원숭이 새끼, 잘 좀 보지!”
“아, 제가 적호단 검을 본 적이 있어야죠. 부딪힌 적이 없는데…….”
작은 키에 유독 팔이 긴 사내, 오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악수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근육질의 사내, 신호가 악수아에게 물었다.
“저 노친네 정체가 진짜 뭐래요? 괴물같이 얼굴도 이상하게 변하고…….”
“알면 뭐 하게?”
“그냥…… 아무튼 마음에 안 듭니다. 애새끼들 잡아다가 개돼지 취급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도 그냥 이용만 당하다가 개죽음당하는 거 아닙니까?”
근육질의 사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에 악수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라. 광마제 님의 물건은 확실하게 확인했으니까.”
“그럼……?”
“다른 건 필요 없어. 저 노친네 애새끼들이 죽어나는 사이에, 우린 주인님의 물건만 제대로 챙기면 그만이야.”
“흐흐흐, 그건 그렇죠.”
악수아와 수하들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금 목숨의 위협을 당한 것과 함께 제갈무진과의 약속마저 잊어버린 듯했다.
* * *
그날이 되었다.
악수아를 포함하여 스무 명의 광룡귀면대원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앞으로 까맣게 색칠을 한 듯, 백여 명의 교성흑오대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놈들을 저렇게 동원하면, 숲은 어쩐대요?
-어차피 마지막 기회야. 숲에 뭔가 있다는 걸 들킨 시점에서 그 노인네도 여기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으니까.
-동굴을 들킬까요?
-정의맹 놈들이 아무리 병신 같아도, 떼거지는 많잖아. 제갈무진을 찾겠다고 혈안이 됐는데, 언젠가는 들키겠지.
-그럼 우리가 온 길은요?
-돌아가는 즉시 없애 버려야지. 쓸 만한 길이지만, 주군께서 완전히 회복하시기 전까지 위험한 일은 피해야지.
악수아의 바로 옆에 원숭이처럼 자유롭게 지붕을 넘는 오원과 근육질의 신호가 달리고, 그들의 뒤로 수하들이 달렸다.
정의무학관에 다다라서 모두 멈추었다.
교성흑오대원들이 정의무학관 뒤쪽 숲에 몸을 숨기고, 광룡귀면대원들을 기다렸다.
-우리 차례군.
-가지.
광룡귀면대원들이 망설임 없이 담을 넘었다.
외진 곳이라 비교적 침투가 쉬운 현해관의 담을 넘어, 뒤쪽 대나무 숲을 통에 안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교성흑오대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담을 넘어 숲으로 들어왔다.
깜깜한 밤, 당연하게도 모든 경계 인원이 숙청관에 집중된 터라 대나무 숲 안까지 살피는 무사들은 없었다.
미리 칠왕자를 통해 정의무학관의 구조를 알아 둔 광룡귀면대의 움직임에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앞에 건물이 보입니다.
단 하나 있는 숙청관의 입구.
-너희는 이곳에서 대기한다.
오십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악수아가 교성흑오대를 세웠다.
-여기서 대기하다 우리가 제물을 가지고 빠질 때까지 놈들을 막아라.
악수아의 말에 교성흑오대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거리에 교성흑오대를 숨긴 뒤, 악수아와 광룡귀면대만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숙청관 입구를 지킨 은의생 두 명의 앞에는 커다란 화로가 있었다.
붉은 귀면을 쓴 악수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오원이 화로를 향해 수면향을 던졌다.
휙-휙---!
소리도 없이 날아간 수면향 가루가 순식간에 불에 타들어 가고, 연기와 함께 섞여 들었다.
잠시 후, 입구를 지키던 은의생들이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악수아와 광룡귀면대원들이 건물 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쓰러진 줄 알았던 은의생이 갑자기 일어나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놀란 악수아가 아랑쌍정으로 은의생의 목을 꿰뚫었다.
“무슨……!”
댕-댕-댕댕댕댕---!
종이 울렸다.
“이런! 죽여!”
푹! 푹!
동료가 죽는 사이, 종을 울리던 은의생의 옆구리 양쪽으로 신호와 오원의 검이 박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종소리는 퍼져 나갔고.
“적이다--!”
숙청관과 맞은편 인내관에서 정의맹 무사들이 달려 나왔다.
동시에 숨어 있던 교성흑오대 또한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발각되긴 했지만, 이미 예견된 상황에 악수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붕으로 타고 간다.”
악수아의 말에 광룡귀면대원들이 마치 거미처럼 숙청관 건물 벽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콰-광!
벽이 부서지며 광룡귀면대원 두 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이 어딜 기어올라!”
쉐에에엑---!
오원이 구멍 속 인물을 향해 빠르게 표창을 날렸다.
‘응?’
그러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단 가십시오.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신호가 벽에서 떨어진 수하들에게 다가갔다.
악수아가 신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수하들과 함께 벽을 타고 올랐다.
악수아와 광룡귀면대원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쉐에에엑-!
채-앵!
툭. 툭. 툭. 툭.
신호는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서야, 제게 날아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오원이 던진 표창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우그러져 있었다.
“흐흐흐! 계집, 성질이 급하구나.”
신호가 귀면 밖으로 비치는 눈동자에 살기를 번들거리며, 벽 안으로 들어갔다.
* * *
야심한 밤.
제갈가주와 남궁진휘의 앞에 찻잔이 놓여 있었다.
“오랜만의 휴가라 다들 좋아하겠군.”
“홍의생들은 이 년째, 청의생들은 삼 년째 휴식다운 휴식을 즐겨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인내관과 숙청관을 통째로 비우시다니, 다음 총연맹회의에서 다들 원성이 자자하겠군요.”
“허허, 공평하게 공을 나누자고 했으니, 공평하게 기여를 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남궁진휘의 말에 제갈가주가 통쾌하게 웃어 보였다.
주작단과 함께 각 문파에서 차출된 인원도 모자라서, 각 문파의 무단을 통째로 지원받았다.
그래서 홍의생과 청의생의 인원만큼 관도복을 입혀서 숲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정의무학관에 넣었다.
“유인책을 쓸 생각이었네만…….”
“양청현에 더 이상 교성흑오대를 숨겨 둘 곳도 없습니다. 이 기회에 숲도 제대로 뒤지고, 놈들도 다 잡아내면 좋지 않습니까.”
“한 곳이 아니라, 두 곳 모두에 함정을 판다니. 그게 남궁세가의 방식인가?”
제갈가주의 말에 남궁진휘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답변을 피하는군. 하긴 기어이 숙청관에 누워 있는 자네 누이를 생각하면…….”
남궁진휘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남궁진혜가 기어이 진화를 지킨다고 지원을 가는 바람에, 남궁세가가 기지가 아니라 팔불출을 발휘했다는 제갈가주의 비난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갈가주가 사뭇 통쾌하다는 얼굴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군사부를 향해 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제갈가주와 남궁진휘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렸다.
“종이 울렸습니다!”
탁.
제갈가주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뒤를 남궁진휘가 따라나섰다.
* * *
“적이다!”
“죽여라---!”
챙! 챙!
사방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리고 침상에 누워 있던 진화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시작되었네. 오고 있어.”
밖에서 나는 소란은 물론, 같은 층에 있던 무사들의 인기척이 하나둘 꺼져 가고 있었다.
“흐흐흐, 여기까지 알아서 와 주면 고맙지.”
현오도 웃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진화와 현오는 그동안 정의맹 총군사와 남궁진휘의 명에 따라 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 건물 안까지 들어왔다면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왔군.”
쉐에에엑---!
진화의 검이 문을 향해 푸른 검기를 뿜었다.
콰--앙!
천장이 단번에 내려앉았다.
동시에 뭔가가 진화와 현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파파팟-!
퍼-엉!
현오가 옷자락을 펄럭-이더니, 날아든 표창을 전부 떨어뜨렸다.
“오! 팔면 만두 열흘 치는 살 수 있겠군.”
현오가 그 표창을 하나씩 주우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때, 부서진 천장에서 내려온 이들이 진화와 현오를 향해 살기를 뿜었다.
“이 애송이들이 웃어?”
키가 작은 사내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무서운 귀면을 쓴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붉은 귀면을 쓴 사내에게서는 짙은 혈향이 풍겼다.
“네가 주인의 물건이로군.”
사내의 말에, 진화가 환하게 웃었다.
“악수아.”
마치 반가운 친구를 본 듯, 진화가 이름을 부르며 악수아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