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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30)화 (130/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5)

귀신의 얼굴을 뒤집어쓴 광룡귀면대(狂龍鬼面隊).

귀천성 팔현마제 중 하나인 광마제의 친위대로, 귀천성 무단 중에서도 고통과 죽음을 모르는 귀신들의 부대로 악명이 자자한 놈들이었다.

귀천성의 전쟁과 상관없이 오로지 광마제만을 위해 움직였기에, 전쟁터에서 진화와 만난 적은 없었다.

진화가 광룡귀면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남궁세가 본가가 무너진 뒤였다.

귀천성의 공격 소식에 정신없이 미친 사람처럼 본가를 찾아왔는데, 그땐 이미 동평원, 서평원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검을 조롱하듯 담벼락 위, 나뭇가지 끝에 꽂혀 있는 사람들의 머리, 주렁주렁 걸린 피 묻은 내장, 시뻘겋게 핏물이 흐르는 개울, 마을 곳곳에 기괴하게 뒤틀린 채 널브러진 사체의 모습. 

마치 타락한 악마들의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떨어진 듯했다.

가족들의 죽음을 확인하기도 전에, 진화는 그때 이미 제가 지옥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반쯤은 미쳐서, 반쯤은 악마가 되어서 광마전 무인들을 죽이러 다녔다. 광마전 무인들 역시 진화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쫓는 기이한 술래잡기 속에서, 이상하게 부대주 중 하나인 악수아와 그의 수하들은 만나지 못했었다.

지옥의 수문장처럼 생긴 붉은 귀면을 쓰는 부대주 악수아.

원숭이 귀면. 동물 원귀들의 가면은 조장급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악수아와 수하들은 날 만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죽었었지. 어딘가에서 형체도 없이 곤죽이 되어 죽었다고 들어서 마음이 한결 나았는데…….’

진화의 눈이 현오에게 향했다.

사실 이전 삶에서는 현오와도 이렇게 재회하지 못했었다.

현오라는 소림승의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곤죽이 될 정도로 때려죽였다고? 흐음.’

고기를 먹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찼던 모양이라,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악수아가 밑에서 올라오는 정파 무인들의 기척을 느끼며 말했다.

“시간 없다.”

“응, 나도.”

시간이 없었다.

방해꾼들이 오기 전에, 어서 제 손으로 죽여야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진화의 검이 번개를 뿜었다.

* * *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인내관과 숙청관 건물에서 나온 무사들과 교성흑오대가 맞붙었다.

정의맹 소속 무단 중 적호단을 제외하면 모두가 외부 임무에 나가 있는 참이라, 대부분의 무인들은 양청현에 있는 각 문파의 무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문파의 무인들 사이에 상명하복의 체계가 있을 리 없었고, 몇몇 무단은 정의무학관에서 정확하게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듯 쳐들어오는 교성흑오대원들과의 전투에만 몰두했다.

“죽여라-!”

“이 더러운 역천의 주구들!”

챙! 챙!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불꽃이 튀었다.

촤르르르르----!

중구난방으로 싸우는 정파 무인들을 상대하는 동안, 몇몇 교성흑오대원들이 이리저리 사슬을 끌고 지났다.

차르르르- 창창!

바닥에 깔린 사슬을 끝에서 잡아당기는 순간, 그건 거미줄처럼 정파 무인들을 옭아맸다.

푹! 푹!

챙--!

한창 전투 중이라 사슬로 된 거미줄에 엮인 것은 정파 무인들뿐 아니라 교성흑오대원들도 있었다.

어떤 곳에는 교성흑오대원이 다수로, 어떤 곳에서는 교성흑오대원 하나가 많은 정파 무인들에게 둘러싸여서 함께 묶였다.

복잡하게 얽혀 싸우는 중에 운신까지 어려워진 상황.

그 속에서 서로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정신없이 칼과 무기를 휘둘렀다.

사슬로 만든 감옥은 같은 편을 불리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수적으로 불리한 교성흑오대가 정파 무인들에게 둘러싸여 몰살당하는 것만은 막아 냈다.

정파 무인들이 사슬을 끊기 위해 검을 내리치는 동안에도 사슬을 든 교성흑오대원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통일된 명령 체계라도 있었다면 달랐을까.

하지만 서로 다른 문파의 무단들 사이에 명령 체계를 하나로 합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서가 아니라, 명령은 상하 우열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걸 받아들이는 문파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갈가주는 각 문파의 무단을 상하관계로 체계를 잡을 수 없는 대신, 각 무단별로 조를 나눠서 귀천성 무사들을 상대하게 했다. 그리고 진화와 현오를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의선문을 지키고 있던 적호단 중 스무 명 정도를 숙청관에 배치했다.

남궁진혜가 바로 그 임무에 자원한 적호단 조장 중 하나였다.

* * *

“내려오는 놈들을 모두 죽여라.”

검은 호랑이를 닮은 귀면을 쓴 신호의 말에, 남아 있는 광룡귀면대원 여섯이 계단과 입구로 흩어졌다.

쉐에에엑--!

광룡귀면대원들이 쌍검을 들고 매섭게 휘둘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몇 배는 될 법한 정파 무인들의 돌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맞부딪혔다.

좁은 복도 가운데에 내려올 길이라곤 계단밖에 없었다.

장정 너덧 명은 한 번에 오르내릴 정도로 넓은 계단이었지만, 수십 명이 한 번에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지는 않았다.

결국 계단 앞에서 살벌한 기세로 쌍검을 휘두르는 광룡귀면대원들을 경계하느라, 정파 무인들은 계단을 다 내려오지도 못했다.

게다가 밖에서는 교성흑오대까지 밀고 들어왔다.

“아, 한 번에 다 기어 내려오면 어떡해! 쟤들 벽 타고 기어 올라갔어! 위층으로 가라고!”

남궁진혜의 외침에 계단 위쪽에 있던 무단들은 다시 위층을 향해 뛰어올랐다.

“아오, 씨! 멍청한 새끼들! 저 새끼들 어느 문파 놈들인지 알아놔!”

남궁진혜가 곁에 있는 수하들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하지만 제일 화를 내고 싶은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였으니.

‘누가 벽을 탈 줄 알았나! 그냥 우리 진화 옆에 딱 붙어 있을걸, 괜히 입구를 맡는다고 해서. 젠장!’

제일 먼저 적이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서, 진화의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적들이 외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으니.

남궁진혜는 지금 속에서 천불이 나는 중이었다.

“너희는 계단 뚫고 올라가, 위의 애들부터 챙겨.”

“조장은요?”

“난 여기 처리하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남궁진혜가 뒤쪽에 있는 조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계단 쪽을 힐끗거리며 틈을 찾는 조원들을 향해, 진지한 말투로 덧붙였다.

“만만치 않은 새끼들이야. 조원 중에 죽는 새끼들은 삼도천에서 내가 머리끄덩이 잡고 끌어낸다.”

“추웅! 흐흐, 그렇게라도 살면 좋죠.”

남궁진혜의 말에 조원들이 웃어 보이며, 검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쉐에에엑---!

채-앵!

조원들의 뒤를 향해 날아가는 표창을 남궁진혜가 검기를 날려 막았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앞에 있는 광룡귀면대가 움직였다.

채---앵!

퍼억!

“이 얌생이 새끼!”

남궁진혜가 신호의 검을 막고, 발을 들어 신호의 복부를 때렸다.

제대로 맞은 신호가 뒤로 주춤거린 틈에, 이번에는 남궁진혜의 검이 신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신호의 옆에서 남궁진혜를 노리려던 광룡귀면대원 둘에겐 남아 있던 적호단원 다섯이 달려들었다.

쉐에엑-!

툭. 툭.

신호가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젖혀 남궁진혜의 검을 피했지만, 그의 이마부터 귀면 반쪽이 잘려 나가며 그곳에 맨 얼굴이 드러났다.

“와, 더럽게 못생겼네.”

“푸하-!”

남궁진혜의 말에 신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과연 광룡귀면대의 맨 얼굴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도 흉측한 화상 자국이지만, 보통은 얼굴을 태운 광기에서 공포심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상처는, 광마제의 은혜를 입었다는 증거이자 광룡귀면대의 자부심이었다.

신호는 자신의 자부심을 모독한 남궁진혜를 향해,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래, 만만치 않은 계집이라는 건 알겠구나. 내 특별히 잔인하게 죽여 주지.”

“지랄하네. 이빨 까지 말고 빨리 덤벼.”

남궁진혜는 섬뜩한 살기를 뿜는 신호를 향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진혜가 동의생이 되어 처음 투입된 전장이, 현재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종남파의 영역이었다.

겨우 약관의 나이였지만, 이미 귀천성의 끝을 모를 악의와 살기는 느껴 볼 만큼 느껴 보았다.

다들 처음에는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크게 흔들린다 하는데, 심지어 남궁진혜는 첫 전투에서부터 서른이 넘는 귀천성도들을 도륙하다시피 했었다.

상대에게서 전해지는 기운에 신경 쓰지 않고, 쉽게 겁을 먹지도 않는다.

지금 남궁진혜의 머릿속엔, 어서 빨리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 진화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쓰불, 기다리다 할매 되겠네!”

쉐에에엑------!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남궁진혜를 보며 신호가 쌍검을 교차했다.

카—앙!

두 사람 사이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검은 무복에 싸여 있어도 우람한 근육이 눈에 띄는 신호와 부딪히면서도 남궁진혜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퍼억!

남궁진혜의 발 차기를, 신호가 정강이를 들어 막았다.

쉐에에엑!

신호의 쌍검이 남궁진혜의 급소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남궁진혜는 검을 휘두르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신호의 검을 막거나 피했을 뿐,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캉! 캉! 캉!

남궁진혜가 점점 빠르게, 점점 매섭게 검을 휘두르며 신호를 몰아붙였다.

남궁세가에는 보법이나 경신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박투술이라고 따로 있을 리 없었다.

남궁진혜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그저 상대의 급소를 향해 정확하게 검을 휘두르기 위함이었다.

캉! 캉!

검을 부딪칠수록 점점 검에 덧씌우고 있는 푸른 기운이 짙어졌다.

그리고.

쉐에에에엑---!

카앙-!

신호의 쌍검이 잘려 나가, 한쪽 바닥에 떨어졌다.

“커헉!”

신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해의 짙은 푸른색을 보았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도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남궁진혜는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신호의 주검을 지나쳤다.

쉐에에엑!

“뭐 하냐, 전부 죽여!”

남궁진혜가 교성흑오대의 거미줄같이 얽힌 사슬을 단번에 베어 내고, 사나운 눈으로 적과 동지가 뒤섞인 계단을 노려보았다.

* * *

단번에 죽여 버리겠다는 듯.

진화가 악수아의 머리를 향해 번개를 휘둘렀다.

쉐에에엑-!

“무슨!”

악수아가 황급히 피한 번개가 뒤에 있던 광룡귀면대원에게 꽂혔다.

파지지지직-!

“우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어떤 고통도 견디도록 훈련받은 광룡귀면대원의 입에서 비명이라니.

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진화와 현오를 우습게 보고 덤비려던 악수아와 오원, 남은 광룡귀면대원들 사이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 멈칫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진화의 검기가 다시 그들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 이상한 재주를 익혔구나!”

악수아가 아랑쌍정을 거꾸로 들고 달려들었다.

오원 역시 칼날이 밖으로 난 반월형의 건곤권을 쥐고 진화의 뒤를 노렸다.

카-앙!

챙챙!

눈으로 좇기도 바쁠 정도로 공격을 퍼붓는 둘 사이에서, 진화 또한 번개처럼 빠르고 난폭하게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검이 초근접전에 불리하다 하지만, 이전 생의 무수한 경험을 가진 진화에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파지지지직---!

악수아와 오원이 피한 검기는, 곧바로 다른 광룡귀면대원에게 꽂혔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는, 양손에 베개를 든 푸근한 체형의 스님도 있었다.

휘에에에엑--!

“나무아미, 타타-불!”

퍽퍽! 퍼-억!

현오가 베개로 광룡귀면대원의 표창을 막고, 표창이 박힌 베개를 그대로 광룡귀면대원을 향해 휘둘렀다.

소림 내공과 함께 피육이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콰---앙!

한 명은 그대로 문과 함께 복도로 처박혔다.

“진화, 온다!”

현오의 말에, 진화가 문밖을 슬쩍 보았다.

좁은 복도를 따라 시체를 넘어 정파 무인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시간이 없네.”

짧게 말한 진화의 검은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동시에.

퍼---억!

현오의 금강붕산권을 맞아 어깨가 터진 광룡귀면대원이 벽에 처박히며, 진화의 눈동자에도 핏방울이 잡혔다.

파지지지지직---!

파파파팟--!

“크악!”

“피해!”

공중에 흩뿌려진 핏방울을 연결하듯 번개가 번뜩이고, 번개를 머금은 핏방울이 닿은 광룡귀면대원들 역시 그것과 함께 천뢰기에 살이 터져 나갔다.

사방에 푸른 번개가 번뜩이는 사이로, 진화의 신형이 움직였다.

파팟----!

“부대주!”

광룡귀면대원 하나가 악수아의 앞으로 몸을 날리며, 섬뜩한 빛을 마주 보았다.

쉐에에엑---!

푸른 빛줄기가 광룡귀면대원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줄로 갈랐다.

“커헉!”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 쓰러진 수하의 시체 너머, 검은 눈동자가 그를 향하는 것을 보며.

오-싹.

오원은 태어나 처음으로 피가 식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하나둘, 순식간에 죽어 가더니 이제 악수아와 오원밖에 남지 않았다.

“남궁 공자! 현오 님-!”

어느새 정파 무인들이 그들을 부르며 달려왔다.

오원이 당황한 듯 복도 쪽과 악수아를 보았다.

그때.

파파바바밧팟-! 파팍! 팍!

“크억!”

“뭐야!”

거대한 갈고리가, 벽을 뚫고 들어왔다.

우지끈. 콰찍!

콰----앙!

중간에 죽은 정파 무인들은 의도한 희생이 아니었다.

갈고리는 애초에 벽을 뜯어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악수아와 오원도 이것까진 몰랐는지, 놀란 듯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파 무인들은 물론 현오도 놀란 눈으로 벽을 보았다.

단 한 사람, 진화만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뭐, 뭐지?”

“뭐긴, 한쪽 대가리의 뱀이 다른 쪽을 무는 순간이지.”

쌍두사의 한쪽 대가리가 마음에 안 드는 먹이를 쫓는 다른 쪽 대가리를 물어 버리면, 서서히 퍼진 독은 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이게 될 것이다.

“놈들이 전부 나타났다! 정의맹의 무인들은, 적을 섬멸하라!”

때를 기다렸다는 듯, 정의무학관주 나무열의 사자후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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