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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31)화 (131/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꽃 화(花) : 쌍두사의 결말(6)

전쟁이 멈춘 지도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치열했던 시기, 위대한 영웅의 뒤를 따라 검을 들던 시대는 지나가고.

터전을 빼앗겼거나 몇몇 아직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파 특히나 지금 세대의 젊은 무인들은 귀천성과의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정도 무림을 지탱하는 최고의 권위라는 정의맹의 위세도 많이 약해졌고, 어쩌면 많은 이들의 비난처럼 곧 있을 전쟁 준비보다는 이권 다툼이나 하는 날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도 무림의 수뇌부엔 아직 그때 영웅들의 뒤를 따르던 이들이 남아 있었으니.

정의맹은 아직, 싸우는 법을 잊지 않고 있었다.

* * *

새까맣게 내려앉은 까마귀처럼, 교성흑오대가 사슬을 밟고 뜯겨 나온 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적호단이 복도에서 교성흑오대를 막고 나섰지만, 점점 수에 밀렸다.

그때.

“감히 뉘를 노리는가!”

푸른 무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이 검을 휘두르며 전투에 뛰어들었다.

파바바바-팟--!

천뢰제왕검법 천뢰우전이 사슬 위로 내리쳤다.

푸른 기운이 사슬을 태우듯 번뜩이고, 교성흑오대원 십여 명이 사슬에서 떨어졌다.

뇌선검 남궁조가 검을 들고 외쳤다.

“창궁무애단은 뭘 하는가! 공자님을 지켜라!”

“충!”

뇌선검 남궁조의 외침에 따라 창궁무애단의 검수들이 숙청관 앞을 빙 둘러쌌다.

그리고 주변부에서 사슬을 움직이던 교성흑오대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쉐에에엑---!

챙! 챙!

“모용은하단은 전장을 장악하라!”

“팽가혼원단은 귀천성의 더러운 주구들을 죽여라!”

“무당 현문단 검수들은 태극진을 펼쳐라--!”

“점창파 현천대는 분광진으로 놈들을 나누라!”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전장 안에서도 우렁찬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이제까지 귀천성의 숨겨 둔 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각 무단의 단주들이 무인들을 이끌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관도생들은 무얼 하는가! 이곳은 우리의 집이다! 침입자를 처단하라!”

정의무학관 관주 나무열의 명과 함께, 금의생부터 동의생까지 실전에 투입될 준비가 끝난 관도생들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비등비등한 듯 보이던 판세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벽을 뜯어내고 사슬을 타고 올랐던 교성흑오대는 창궁무애단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사슬을 빼앗겼다.

오히려 사슬을 타고 창궁무애단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전장 밖에서 사슬을 움직이던 이들은 모용은하단에게 모두 죽임을 당하고, 이제는 무당파와 점창파 무인들이 그들을 나눠서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 싸우도록 만들었다.

정의맹 소속 문파의 무단들과 함께 싸우는 경험은, 실전 경험이 적은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교육이었다.

* * *

혼란스러운 눈으로 교성흑오대를 보던 악수아가, 사슬을 타고 오르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시간을 벌었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진화가 입꼬리를 올리며 반문했다.

교성흑오대가 끼어들면서 오히려 시간을 번 쪽은 진화였다.

적호단원들이 교성흑오대와 얽혀 있는 동안, 진화는 악수아와 오원을 죽일 시간을 얻은 것이다.

‘아주 빨리. 하지만 광마전의 개를 죽이기엔 충분해!’

진화의 눈 속에서 푸른 번개가 쳤다.

쉐에에엑--!

순식간에 느껴진 살기에 악수아가 몸을 날리며, 진화의 검이 악수아가 있던 곳을 스쳤다.

하지만 진화의 손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악수아의 복부에 진화의 천뢰장이 박혔다.

“크윽!”

쿠-웅.

“부대주!”

한쪽 벽으로 날아가 부딪히는 악수아를 보며 오원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에게도 악수아를 걱정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퍼-억!

쿵! 쿵!

오원이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며 현오의 권을 피했다.

그런 오원을 쫓듯, 그가 있던 곳엔 현오의 주먹 자국이 새겨졌다.

“아미타불.”

낮은 목소리가 오원의 귓가에서 들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붉은 눈?’

퍼-억!

“크억!”

현오에게 따라잡힌 오원이 오형팔법권에 얻어맞고 날아갔다.

동시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쉐에에에엑----!

‘번……개!’

그것이 끝이었다.

오원이 현오의 오형팔법권에 맞아 잠시 균형을 잃은 사이, 진화의 검이 순식간에 그의 목을 갈랐다.

파-앗!

피가 튀어 오르고, 주인을 잃은 오원의 몸이 바닥에서 퍼덕거렸다.

아직 제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오원의 눈이 악수아에게 향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도망가려던 것인지, 틈을 찾아 공격하려던 것인지.

여하튼 몸을 날렸던 악수아가 공중에서 번개에 감싸인 채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악수아에게 떨어지던 오원의 피에, 진화의 천뢰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나는 도망 못 하게 잡아야지.”

현오의 주먹에서 금강붕산권의 금빛 기운이 어린 순간.

콰-앙!

악수아가 아랑쌍정으로 현오의 권을 막았다.

하지만 가슴을 꿰뚫는 진화의 검은 막지 못했다.

푸욱.

“……커헉!”

눈이 부시게 번뜩이는 푸른 빛이 진화의 검에서부터 악수아의 온몸을 감쌌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악-!”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꽂힌 것처럼, 악수아의 온몸을 관통하는 빛줄기에 전투 중이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빼앗았을 정도였다.

“천(天)……벌(罰)!”

일전에 남궁진휘를 공격하던 비영문도를 죽일 때처럼, 누군가가 마치 홀린 듯 말했다.

……툭!

악수아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의맹 무인들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교성흑오대와 싸우기 시작했고, 창궁무애단은 적호단과 함께 사슬을 타고 올라온 교성흑오대를 죽였다.

그러나 전장을 모두 정리하기까지, 기묘한 분위기가 여운처럼 남아 흘렀다.

* * *

개미의 발소리조차 들릴 듯 조용한 공간.

스르르.

미끄러지듯 장년의 문사가 죽간을 살폈다.

그리고 그것을 펼치는 순간.

티-잉!

아주 작게.

하지만 강렬하게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려드는 발소리가 우르르르 들렸다.

콰—앙!

문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적호단 단원들이 장년의 문사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밖에도 적호단이 빼곡하게 둘러싼 듯했다.

“허어.”

장년의 문사, 제갈무진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모두가 정의무학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의선문을 지키는 적호단원들의 감각을 완벽하게 속이고 들어왔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 직접 움직였건만, 설마 죽간을 펴자마자 작은 은사, 실 한 가닥이 그의 환술을 깨트릴 줄이야.

제갈무진의 눈빛이 요요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환술을 사용할 줄 알았나?”

제갈무진의 물음에, 창밖에 있던 적호단원들의 사이가 벌어지며 제갈가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비영문주의 시체를 빼돌리려면, 현홍사로 시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시신의 냄새와 눈에 보이는 부자연스러움을 환술로 속이지 않는 이상은.”

“제갈무진이 환술을 쓴다고 예상을 했다?”

제갈무진은 혼자 감탄하듯 물었다.

제갈가주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입매를 말아 올렸다.

“내가 아는 제갈무진이라면, 그런 무공을 쓰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고로 너는 내가 아는 제갈무진이 아니다.”

“허허!”

제갈가주의 말에 제갈무진이 감탄하는 듯 웃었다.

제갈무진과 제갈가주는, 세가 내에서 가장 가까운 또래이자 사촌 형제였다.

실제로도 형제처럼 가깝게 자랐다.

평범한 키와 마른 듯한 체격, 날카로운 눈매에 단정한 인상까지.

한때는 많이 닮은 외모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가진 형제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제갈무진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자, 두 사람은 분위기마저 비슷해졌다.

“예민한 제갈가주와 달리 허술하고 오직 글밖에 모르는 제갈무진. 생전 검 한번 들지 않은 백면서생. 사람의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게 참 무섭지. 한번 박힌 인식이란 게 끈질기고 두껍거든. 너도 그래서 수십 년간 속지 않았더냐. 하나, 한 가지는 인정하마. 참 깨끗하게 머릿속의 제갈무진을 버렸구나.”

죽간도 가짜였다.

세월의 흔적마저 교묘하게 복제한 가짜.

무림에 이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낼 이도 있었다.

‘신화투객 가좌룡. 역천비록을 방비하기 위한 진법을 만드는 데에 투입되었다 하더니…… 그때 예상했어야 했건만.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제갈무진이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군. 보아하니 정의무학관의 제물들도 대비를 해 놓은 모양이니, 이만 물러설 수밖에.”

제갈무진이 죽간을 던지며 손을 털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 움직이자, 문을 막고 있던 적호단원들이 검을 곧추세웠다.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제갈가주가 제 주변으로 빼곡하게 자리한 적호단을 보여 주며 말했다.

“자네의 그 까마귀들이 더 있을 거란 기대도 말게. 하마터면 속을 뻔했지. 매일 진법을 바꾸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숲에 있는 동굴도 지금쯤 정의맹 무인들이 정리에 나섰을 것이네.”

제갈가주가 냉담한 눈빛으로 어설픈 희망을 품지 말라 말했다.

숲의 정찰에 나선 주작단에서 희생자가 나온 자리가, 이미 이전에 한번 정찰을 했던 곳이었다.

“옥혼진을 뚫은 것인가? 허허허! 대단하군. 하긴 너는 어릴 적부터 그랬지. 한번 한 실수는 다시 하는 법이 없었어. 그게 참 마음에 들었는데.”

“나도 자네가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 자네가 이 제갈무진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 도통 싸울 줄 모르는 위인이었으니. 제갈세가 사람인 주제에, 이상하게 자네는 싸우는 데에 집착했단 말이야.”

제갈무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적진 한복판에서 적에게 둘러싸인 사람 같지 않았다.

제갈가주는 패배자답지 못한 제갈무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을 끄는 건가? 추하게 굴지 말고 순순히 잡히는 건 어떤가? 자네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지 않았나.”

제갈가주가 한 번 더 항복을 권유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갈무진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갈무진의 웃음에 제갈가주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제갈무진이 무슨 짓을 할까, 손을 들어 적호단에게 공격 준비 신호를 내렸다.

적호단주 팽치가 제갈가주의 옆으로 섰다.

그렇게 한참 웃어 대던 제갈무진이 웃음소리를 그치며, 창밖에 있는 제갈가주를 보았다.

그리고 싸늘하게 제갈가주를 비웃었다.

“그래. 제갈무진은 그랬지. 그런데 나는 네가 아는 제갈무진도, 그냥 제갈무진도 아니다.”

제갈무진의 눈빛이 까맣게 물들었다.

“피해라----!”

콰아----앙!

적호단주 팽치의 외침과 함께, 괴성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기운이 벽을 무너뜨리고, 제갈가주가 있는 곳을 휩쓸었다.

“크읏!”

적호단주 팽치가 기운을 일으켜 앞을 막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적호단원들은 태풍에 쓸려 나가듯 쓰러졌다.

쏴아아아아----!

철로 만들어진 회오리 태풍은 잔인하고 포악하게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잡아 뜯었다.

“크아아악-!”

“으-악!”

거친 회오리가 휩쓸고 지난 자리에, 피 흘리며 쓰러진 적호단원들과 땅을 할퀸 자국만이 남았다.

제갈무진의 무공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한 제갈가주였다.

제갈가주와 적호단주가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제갈무진을 찾았다.

아니, 그는 이제 제갈무진 자체도 아닌 듯했다.

곳곳에서 퍼지는 적호단원들의 신음을 들으며, 제갈가주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넌 대체 누구냐……?”

의선문 별채 한편의 나무 꼭대기 위.

밤하늘보다 까만 눈동자가 요요하게 빛나며 제갈가주와 적호단을 구경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경악하고 있는 얼굴들이 만족스러웠는지, 제갈가주를 향해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허허허허! 제갈의 아해야, 네 아비에 이어 앞으로 너를 상대하는 것도 재밌겠구나!”

“……!”

제갈가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던 제갈무진의 얼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곧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혼현마제 무뇌평…… 이 개자식! 살아 있었구나!”

제갈가주가 자신들을 농락하고 사라진 혼현마제의 이름을 짓씹듯 내뱉었다.

아니 그렇겠는가.

지금도 이곳 의선문 깊숙한 곳엔 자신의 아버지,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잠들어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혼현마제가 아직 살아 있었다니!

대반격의 가장 큰 성과는 혼현마제와 환희제, 광마제의 죽음과 역천마제의 부상이었건만…… 이제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눈앞에서 저를 농락하고 간 원수의 그림자를 쫓으며, 제갈가주가 밀려드는 분노와 모멸감에 주먹을 떨었다.

그때, 적호단주 팽치가 그를 불렀다.

“총군사.”

“음? 아, 그렇지. 정리를 해야지. 혼현마제라면, 지금 쫓아 봐야 소용없는 일이오. 의선문 의원들을 불러들이고, 사상자를 수습합시다.”

“예.”

제갈가주가 주변에 쓰러진 이들을 둘러보며, 힘없이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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