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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39)화 (139/425)

남궁마제

성낼 진(瞋) 불 화(火) : 과거와의 조우(3)

연락이 두절된 백매단주 맹규와 단원 오경원의 귀환으로 정의맹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의 귀환은 크게 반길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들이 알아 온 정보라.

“광마전이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겨우 이틀 길이 아닙니까?”

“어쩌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광마전이 있는 것은 아니오?”

“광마전 악귀들이 가까이 있다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저마다 한마디씩 놀라거나 탄식하니, 정의맹 회의장이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한마디씩 던지는 것 외에, 뚜렷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무당파 장로 천옥검 운허진인이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기로 했습니까?”

운허진인의 물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총군사인 제갈가주에게 향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갈가주를 보는 것은, 책임의 소재를 떠넘기고 싶은 것뿐이었다.

부군사인 남궁진휘의 눈엔, 숨이 막힐 듯한 중압감이 제갈가주의 어깨 위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제갈가주는 여느 때처럼 덤덤한 얼굴이었다.

“현재 백매단의 모든 첩보 활동은 공산 포구 인근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국한했습니다. 더 이상의 접근은, 남아 있는 모든 백매단원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갈가주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매단원들의 탈출로, 광마전 놈들이 이제는 백매단원들을 포로로 잡기보다 죽이려 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지금도 혈안이 되어 첩자들을 찾아내고 있을 것이었다.

“의선문에 도착한 후 정신을 잃은 백매단주와 단원 오경원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백매단주는 가장 심각한 손과 어깨를 치료 중이고, 오경원은 승매환의 효력이 다한 후 중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광룡귀면대가 따라온 경로도 아직 조사 중이고, 백매단주의 증언도 확실치 않으니. 그들이 의식을 찾는 대로 다시 회의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제갈가주의 말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경로를 파악하고 광마전 놈들을 어찌할지 결정하려는 것입니까?”

“아, 그거야, 고민할 것이 뭐 있습니까! 광마전 끄나풀 조금 남은 거, 무인들을 보내 쓸어버리면 될 일 아닙니까! 우리 황보세가도 힘을 보태지요!”

“어허, 좀 신중하게 발언하시오.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면, 군사께서 다시 회의를 열겠다고 하겠소!”

“아, 간단하지 않을 것은 뭐란 말이오?”

남궁진휘는 당장이라도 광마전에 쳐들어갈 듯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부터 한마디씩 보태는 이들을 살폈다.

‘한심한 인간들! 정의맹 무인의 목숨을 마치 제 것인 양 참 쉽게 떠드는군.’

남궁진휘는 당장 쳐들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황보세가와 단천문, 청성파 장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단천문은 지난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공적이 필요했고, 황보세가와 청성파는 제갈세가가 주춤한 자리를 치고 들어가기 위해 안달이었다.

곤륜파와 공동파도 그 옆에서 동조하고 있었다.

‘곤륜파와 공동파도 양청현과 북성현, 낙양에서 문도들을 많이 모았다고 했지? 서북 벽촌의 거지 도사 시절에서 벗어나 호시절을 누린다고 했던가.’

명문 정파의 명성을 이용해서 문도들을 모으고 새로운 성세기를 맞이한 문파들이었다.

더욱더 명성을 드높일 기회를 찾고 있는 저들에겐, 이번 일이 그런 기회처럼 보이는 듯했다.

“광마제도 없는 광마전이오. 두려울 것이 뭐란 말입니까! 경로 조사가 끝나는 즉시, 우리가 먼저 놈들을 쳐야 합니다!”

“광마전 놈들이 정의맹의 턱밑에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될 일입니까? 우릴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가만히 둬선 안 됩니다. 사패천이 우릴 비웃을 겁니다!”

남궁진휘는 기세 좋게 나서는 이들의 면면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저래 놓고 적호단이나 주작단을 앞에 세우려 하겠지! 자신들은 지원이랍시고 제자 몇 내놓고! 누가 계속 그렇게 둘 줄 알고!’

남궁진휘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났다.

하지만 그 전에, 제갈가주가 먼저 나섰다.

“좀 더 신중해져야 합니다.”

“허어, 괜히 신중해졌다가 놈들을 놓칠까 봐 그러오! 기껏해야 광마제도 없이 살아남은 잔당일 뿐이지 않소?”

“죽은 줄 알았던 혼현마제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광마제도, 시체를 확인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번엔 혼현마제와 광룡귀면대가 같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귀천성의 팔현마제가 서로 손을 잡고 움직이는 건, 역천마제의 명이 있을 때뿐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황보가주가 크게 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역천마제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의 이름 한 번 언급한 것에 바로 꼬리를 마는 꼴이라니.

제갈가주가 슬쩍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황보가주만은 아니었다.

“혹, 제갈 군사는 귀천성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 그럴 리 없소! 역천마제가 칩거하고 귀천성이 잠잠해진 지도 벌써 십수 년째가 아니오!”

소리친 사람은 곤륜파 장문인 진풍진인이었다.

그는 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사실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은 듯했다.

아니면 전쟁의 재개는 기정사실이라 해도, 자신이 있는 동안만은 안전하고 싶었던 것이든지.

어느 쪽이든 근거 없는 바람일 뿐이었다.

“모든 사안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전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놈들이 우리 턱밑에 자리한 것이 그 시작일 수 있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내게 유리한 것만 본다면, 다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갈가주가 냉정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 덤덤한 말에, 진풍진인의 말문이 막혔다.

진풍진인뿐 아니라, 회의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제갈가주는 기다렸다는 듯,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놈들의 침입 경로를 파악하고 백매단주의 증언이 확보되는 대로, 광마전을 어찌할 것인지 다시 회의를 열 것입니다. 도망친 잔당에 불과하다면 다행한 일이나, 만약 거기에 혼현마제나 광마제라도 있다면……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쪼록 각 문파와 세가에서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의견을 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전히 침묵이 흘렀다.

회의를 마치고도, 무거운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허어, 참.”

이제까지 호전적으로 토벌을 외치던 청성파와 황보세가, 곤륜파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귀천성의 부활이라니.

괜히 공적을 탐하다가 전쟁에 앞장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얼굴들이었다.

반면 당문, 점창파, 아미파는 조금 달랐다.

터전을 잃었음에도 새 삶에 만족하는 이들과 달리, 그들은 언제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길 원하는 이들이었다.

전쟁은 그들에게 다른 의미로 기회가 될 수 있었으니.

점창파 장로 사일별검 강자린의 눈빛이 전에 없이 떨리고 있었다.

남방 외지에서 시작된 광마전의 공격에 누구보다 먼저 본문을 잃고 도망 왔던 점창파였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 일을 잘 알지 못하지만, 강자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은 사제와 함께 사부님을 모시고, 삼 대 제자들의 무림행을 인솔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광마전의 공격이 시작된 것을, 막내 사제를 안고 도망을 나온 대사형에게 들었다.

그길로 사부님과 강자린은 사제들과 제자들을 데리고 남창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무사히 도망칠 시간이라도 벌어 주기 위해 대사형은 싸움터로 돌아갔다.

이후, 점창파에 있던 모든 문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시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죽이고, 본문은 놈들의 연회장으로 만들었다고 했던가.’

강자린은 울컥 차오르는 비탄을 감추며 마른침을 삼켰다.

외롭고 서러운 외지 생활이 힘들 때마다 추억을 떠올렸다.

안개가 깔린 아름다운 본산의 광경.

풍요로운 녹음과 싱그러운 냄새.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비췻빛 신비로운 푸른 물.

하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은, 이제 악몽이 되어 그를 괴롭혔다.

말라비틀어진 들판.

피가 흐르는 계곡.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스산한 검은 숲.

백골조차 되지 못한 대사형이 손짓하면,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옥을 그리는 악몽(惡夢).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악몽은 아닐까.

‘광마전 놈들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고…….’

강자린이 탁자 밑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돌아가리라.

돌아갈 수 없다면 복수라도 하리라.

강자린의 눈빛에서 살기가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건, 그의 오른편에 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거기에 쓰러져 누운 광마제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시체라도 확인하게.”

“하하, 그리만 된다면 바랄 것도 없지요.”

아미파 장문이자 비선당주인 복호구검 금정신니가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싸늘하게 말하자, 당문의 장로 고독권 당성문이 스산하게 웃으며 답했다.

* * *

주작단과 관도생들이 힘을 합해 달려드는 광룡귀면대 잔당들과 싸웠다. 

겨우 스무 명 남짓.

관도생도 아닌 주작단의 힘만으로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제압된 숫자는 없었다.

광룡귀면대원들 모두 정말 지옥의 아귀처럼 죽을 때까지 맹렬하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광룡귀면대를 처음 접한 관도생들은 그 잔인하고 치열한 모습에 학을 뗐다.

하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관도생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적의 본모습이라.

무사부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한 것이라 말했다.

주작단과 정의무학관은 광룡귀면대의 시체를 수습한 후, 모두 숲에서 철수했다.

광룡귀면대가 어떤 경로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그 곳에 백, 청, 홍의생들을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작단이 놈들의 흔적을 쫓고, 적호단과 각 문파의 지원대가 돌아가며 그곳을 지킬 것이다.”

“의선문에서 적호단을 뺀단 말입니까?”

“숫자를 조정해야지. 현무단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곧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이제 경로를 알아내는 대로 광마전으로 쳐들어가는 겁니까?”

“글쎄, 그 전에 백매단주가 깨어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다려야겠지.”

“하지만 놈들이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문제는 이게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놈들이 도망가거나 혹은 먼저 쳐들어온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그것 또한 생각하고 있단다. 하지만 백매단주의 말에 의하면 광마전에서 무맥을 보았다고 한다.”

“무맥!”

진화의 눈이 번뜩였다.

“광룡귀면대주 무맥은 광마제의 오른팔로, 항상 그림자처럼 그를 수행한다고 알려진 자다. 제갈가주께선 광마제가 살아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계시더군.”

“허!”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뱉고 말았다.

‘혼현마제의 출현으로 광마제의 생존까지 의심해 보는 건가?’

제갈가주는 단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진화는 실제로 광마제가 생존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의심 많고 신중한 성격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군. 하지만 광마제의 생존을 의심하고 있다면, 더욱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 않을 거다. 승리에 대한 확신 없이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자니까.’

이전 생에서도 제갈가주는 자신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전력이 모이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을 땐, 매번 희생양을 내세워 함정을 만들거나 발을 뺐었다.

‘하지만 이번엔, 충분한 전력을 모으는 게 나쁠 것도 없지. 광마제가 그곳에 있다면!’

진화는 긴장과 흥분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남궁진휘에게 말했다.

“결국은 광마전을 쳐야 할 겁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놈들을 얼마나 죽이고, 우리가 얼마나 죽는가를 생각할 때가 아니니까요. 양청현의 모든 문파가 피난할 것이 아니라면, 정의맹 코앞에 있는 놈들을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의맹은 귀천성과 공존하면 안 되는 곳이니까요.”

“……!”

진화의 말에 남궁진휘가 눈을 크게 떴다.

진화의 말처럼, 안타깝지만 정의맹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명분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

진화가 말꼬리를 늘리며 남궁진휘를 불렀다.

수줍게 저를 부르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진휘는 어쩐지 느낌이 쎄-했다.

“그 경로 말인데요. 백매단주의 탈출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이 움직인 길의 입구는 찾은 듯합니다.”

“뭐?”

역시.

남궁진휘는 진화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어찌 보면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랄까.

“어, 어떻게?”

“그 와중에 도망치는 놈이 있기에, 구를 보내 멀찍이서 쫓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입구는 확실하게 보았답니다.”

“……어떻게?”

“눈으로요?”

이상한 질문에 진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각우 사부의 눈은 어찌 피한 것이냐!”

“아! 히이, 이렇게 웃어서요.”

“그게 통했다고?”

진화가 아이처럼 방긋 웃어 보이자, 남궁진휘는 다시 그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일까.

“아주 멀찍이서 쫓았습니다. 구의 경신술이라면 세가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지 않습니까.”

“대체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한 것이냐? 백매단주의 증언을 듣고 차분히 조사하면 될 일을…….”

“그리하면 너무 늦어지지 않습니까?”

“진화야!”

“그러니까 형님, 남궁세가 지원대에 저도 포함시켜 주세요.”

역시!

보통 쎄-한 느낌이 아니다 싶었다.

“그냥 입구만 알려 줄 생각은 없고?”

“글쎄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우리 진화가 지금 우형을 협박하는 것은 아니지?”

“에이, 설마요!”

진화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형님, 지원대에 넣어 주실 거지요?”

팔자 눈썹을 하고 묻는 진화를 보며, 남궁진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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