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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42)화 (142/425)

남궁마제

꽂을 진(縉) 꽃 화(花) : 널 죽이는 이유(1)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의 이른 아침.

정의맹에서 출발한 지원대가 배를 타기 위해 강변에 도착했다.

“여어!”

적호단주 팽치를 비롯한 적호단 오십여 명.

마라승 각우와 선우도 황보견을 비롯한 정의맹 지원대가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간밤에 별일들…… 있었나?”

사람이 드나들지 않던 강변.

기암절벽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강물 위로도 햇빛이 들어오면서 강물이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위로 죽은 물고기와 검은 인영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거, 새끼들. 마라탕(痲辣燙) 같네.”

“……아미타불.”

팽치의 말에 마라승 각우조차 짧게 불호를 외었다.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악귀들과의 전투를 앞두고, 동굴을 지나오는 내내 무인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각오가 가득했다.

전 무림이 알아주는 고수인 적호단주부터 강호에 첫 출두한 이름 없는 무사까지.

어느 누구도 이번 전투에서 죽을지, 살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림인의 삶이 그러하였다.

누군들 제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 없었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어서,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명성을 가지고 싶어서 검을 든 이들이었다. 

스스로, 혹은 누군가의 결정으로 그들은 오늘도 백척간두 끝에서 생사를 걸었다.

“간밤에 습격이라도 당한 거야?”

“말도 마십시오. 조용하게 있는데 갑자기 남궁 공자가 일어서더니, 파지지직--! 불꽃이 막 튀고, 시커먼 놈들이 물에서 파닥거리다가 풍덩풍덩 빠지지.”

“뭐라는 거야? 설명 제대로 못 해? 삼 조장, 네가 다시 해 봐.”

“아이고, 난리였습니다. 남궁 공자는 완탕도 끓여 주고 순해 빠져 보이더니, 갑자기 저놈들 다 튀겨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지. 오 조장 말은 더 가관입니다. 바싹 튀긴 생선 같다나? 말이 됩니까, 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됐다. 집어치워라, 똑같은 놈들.”

팽치는 일 조장과 삼 조장의 설명을 듣고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일 조장과 삼 조장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하지만 저 광경을 보고 마라탕을 입에 올린 사람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한편, 각우는 소림의 무승들 외에도 챙겨야 할 사람들을 만났다.

“흠, 너희들도 이번에 참여한단 말이냐?”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소림에서는 경험 많은 무승들이 나왔다.

반면 저들은 이제 겨우 정의무학관의 홍의생들이었다.

“……남궁세가에서 네 출진을 허락했다고?”

각우의 눈이 팽가 형제와 남궁구를 거쳐서 진화에게 머물렀다.

홍의생 갑 조에서 현오와 남궁교명을 뺀 네 명이나 이 자리에 있었다.

팽가에서야 워낙 직계들을 강하게 키우기로 유명하니 그렇다 치지만, 남궁진화라니.

그가 약해서가 아니라, 남궁세가에서 남궁진화를 애지중지하는 것이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무학관에서완 다르다. 일전에도 겪어 보았겠지만, 죽고 사는 문제다. 첫째도, 둘째도 네놈들 목숨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각우의 말에 진화를 제외한 남궁구와 팽가 형제의 눈이 커졌다.

톡 치면 싸대기로 금강장을 올려붙일 것같이 엄한 스승에게서 나올 것이라 상상도 못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적이 휘두르는 검에 겁먹지 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잠식당하지 마라. 네 앞의 적에만 집중하지 마라. 사방에 적이 있고, 네 목숨이 상하지 않으면서 보이는 대로 망설이지 말고 죽여야 한다.”

각우가 한 사람씩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불제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스승으로서 혼이 빠질 것 같은 아비규환의 난전을 겪어 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진실한 충고였다.

남궁구와 팽가 형제가 다부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도 각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만, 눈빛이나 표정부터 남궁구와 팽가 형제의 그것과 달랐다.

“허,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긴장감이 없으니. 이놈, 또 전투 중에 얼을 빼놓으면 대가리를 날려 버릴 줄 알아라!”

“헤, 예.”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화에게 각우가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각우는 저번 광룡귀면대와의 전투에서 진화가 저를 보고 웃은 것을 두고 한 말이라. 그것을 아는 진화가 미안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각우가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웃기는. 하긴, 적어도 물에서는 죽지 않겠구나.”

각우도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들의 사연을 알았는지, 피식 웃으며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지원대의 책임자로 온 각우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번 임무 자체를 챙겨야 했다.

백매단주의 증언을 토대로 군사부에서 짠 전략을 각 문파의 대표들에게 전략에 대해 전달해야 했던 것이다.

귀천성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정도 무림은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노력으로 각기 다른 문파 출신들이 하나의 전략으로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문파에서 각자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진 무인들이 군대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결국엔 어떤 전략을 짜든, 몇몇 고수들이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개개인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방식일 뿐이라.

각우가 제자들에게 한 말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이번 임무 또한 적호단주 팽치와 각우, 황보견이 광룡귀면대주 무맥을 처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푸른 깃발을 휘날리며 남궁세가의 상선들이 도착했다.

배는 총 세 척으로, 한 척에 사람 백 명은 태울 수 있을 듯 컸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남궁진혜나 진화가 나서기도 전에, 누군가 뱃머리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진혜 아가씨, 진화 공자님!”

반갑게 배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남궁경옥이었다.

남궁경옥 일가가 서평원을 떠난 후로는 처음인지라.

남궁진혜와 진화는 한눈에 남궁경옥을 알아보지 못했다.

촤아아악!

촤아-!

남궁세가의 해상선에서 뗏목을 강으로 띄웠다.

뗏목은 바닥이 얕은 곳으로 짐을 싣고 나를 때 이용하는 것으로, 배가 있는 곳까지 무인들이 물에 젖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나눠서 타라! 선두는 적호단! 나머지는 마라승과 선우도를 따라 이동한다!”

적호단주의 명에 따라 각자 약속된 배로 이동했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단은 배를 지키는 임무를 맡아서 세 곳으로 나뉘었다.

진화는 진혜에 의해 적호단과 함께 선두에 있는 배에 올랐고, 호명기와 남궁구가 무인들을 이끌고 나머지 두 배에 나누어 탔다.

남궁진혜와 진화가 배에 오르자, 남궁경옥이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누구?”

“허허허허, 좀 많이 달라졌지요? 접니다, 남궁경옥.”

“뭐어?”

남궁진혜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고, 진화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일전에 남궁도의 일로 남궁경이 배를 탔고, 배웅을 하는 도중 그 배에서 언뜻 누군가 알은척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남궁교명의 아버지, 남궁경옥이었을 줄이야.

“진짜 그 뚱땡이 이장로라고?”

남궁진혜는 남궁경옥의 변모가 놀라운 듯 그를 위아래로 보았다.

“허허, 전 이장로지요. 작은 공자님 덕에 일이 해결되면서 다시 상단으로 복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궁경옥이 진화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진화였다.

“아니, 감사할 건 없는데……요.”

당황한 얼굴 덕에 어설픈 존대가 감춰졌다.

이전의 관계를 생각하면 서로 존대가 아니라 쌍욕이 오가야 하는 관계이나, 남궁교명을 생각하면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 수하?

어떤 말을 고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방을 쓰는 동기의 아버지가 아닌가.

게다가 다시 상단으로 복귀한 것을 보면, 가주님께서 지난 과오를 용서하신 것이라. 진화가 더 이상 그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눈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눈빛뿐 아니라 이렇게 위험한 임무에 직접 나온 것을 보면, 남궁경옥 자체도 많이 달라진 듯했다.

“가는 길이 좀 험합니다. 산맥도 높고 협곡도 깊고, 물살도 빠릅니다. 다만 설명해 주신 봉우리를 아는 선원이 있으니, 찾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남궁경옥이 책임자인 적호단주에게 경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봉우리를 아는 선원이 있다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이맘때는 물이 없어서, 절벽에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공산 포구와 하남을 잇는 강줄기 사이에는 단 한 군데뿐이지요.”

남궁경옥의 말에 적호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것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곁에서 창궁무애단이 지켜 줄 것이고, 선원들도 수적 정도는 상대해 본 경험이 많습니다.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남궁경옥과 적호단주가 인사를 나누고.

“노 내려라! 가자!”

남궁경옥이 배를 움직였다.

* * *

스으윽…….

녹색 귀면을 쓴 흑의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광룡귀면대로서, 그들이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귀면의 색만이 아니었다.

눈만 겨우 뚫려 있는 다른 귀면과 달리, 그들의 것은 입 위에서 귀면이 잘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푸른 강물 속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세찬 물길을 거슬러 아무렇지 않게 수영을 하고, 익숙한 듯 가져간 줄을 커다란 바위에 단단히 묶었다.

강 양쪽으로 작은 바위와 풀숲에 숨은 작은 배들이 세찬 물줄기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서였다.

“준비는 마쳤나?”

“예.”

“곧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보이는 즉시 배를 멈춰 세운다.”

“충.”

지시를 내린 사내의 귀면도 입이 뚫려 있었는데, 그 외에도 사내의 귀면은 녹색과 붉은색, 검은색이 요란하게 섞여 있었다.

“잘 배워 둬라. 배를 공격할 때는 제일 먼저 노를 노려야 한다. 배만 멈추면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들짐승이다. 순식간에 뛰어올라 모조리 강물에 처박으면 끝인 게야.”

“예, 사어 님.”

요란한 가면을 쓴 사내의 곁에 있던 부어 귀면을 쓴 목소리가, 사내를 향해 사어(沙魚)라 불렀다.

사어는 바다를 떠다니는 거대한 식인 고기를 말하는 것이라, 광룡귀면대의 물귀신들을 이끄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교활한 능교 새끼가 공을 나눠 먹으려고 멀리 못 나가게 했지만, 상관없다. 여기서 놈들을 전부 죽이면 그만이지.”

사어가 앞에 있는 절벽 너머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흐흐흐, 오랜만에 피 맛을 보겠구나.”

귀면 아래에 드러난 입술 사이로, 작고 날카로운 이가 하얗게 드러났다.

* * *

정의맹 무인들을 태운 배가 세찬 물길과 함께 빠르게 내려왔다.

뱃머리에 있던 선원이 남궁경옥에게 신호를 보내자, 남궁경옥이 목소리를 높였다.

“속도를 늦춘다!”

남궁경옥의 명과 함께 선두기에 노란 신호기가 하나 올라가고, 이어서 오던 배들도 노란 신호기를 올리며 속도를 늦추었다.

배들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적호단주가 남궁경옥에게 다가갔다.

“다 온 것입니까?”

“그런 듯합니다. 지금부터는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놈들이 있다는 봉우리를 찾아야 해서 속도를 늦췄습니다.”

“소리요?”

남궁경옥의 말에 적호단주 팽치가 미간을 구겼다.

멀리서 보기엔 잔잔해 보이지만, 막상 배를 타니 협곡 사이로 물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금도 귀가 먹먹할 정도라, 소리를 지르듯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가.

이런 가운데서 폭포 소리를 찾는다니, 선뜻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에 남궁경옥이 웃어 보였다.

“물소리도 다 다릅니다. 이렇게 흐르는 소리,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 옆으로 물끼리 부딪히는 소리. 뱃놈들은 늘 듣는 게 물소리라, 기가 막히게 구분하니 믿어도 됩니다.”

“그럼 수하들을 대기시켜도 되겠습니까?”

적호단주의 물음에 남궁경옥이 선원을 보았다.

선원이 남궁경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남궁경옥에게 묻지 않아도 적호단주가 알 만한 대답이었다.

“전원! 대기하라!”

“예!”

적호단주의 말에 적호단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난간 주변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정렬했다.

그때, 앞에 있던 선원의 손이 올라갔다.

그의 손가락이 어떤 봉우리를 가리키는 순간.

쉐에에엑!

“으아아악!”

어디선가 날아든 단검을 보고, 적호단주가 선원을 밀었다.

그와 동시에.

휘이이익-!

휙! 휙-! 휙-!

사방에서 갈고리가 달린 줄이 날아들었다.

“공격이다!”

“놈들의 공격이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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