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꽂을 진(縉) 꽃 화(花) : 널 죽이는 이유(4)
휘익-!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화가 능교의 얼굴을 향해 수리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수리검이 눈앞에서 머리칼을 자르고 지나는 것에 안도하기 무섭게, 능교의 왼팔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악!”
능교가 피가 베인 왼팔을 잡고 물러섰다.
그 앞으로 진화가 태연하게 양쪽 검지에 끼운 수리검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엄살은. 살짝 스치기만 했잖아. 그러게 왜 한눈을 팔아.”
야릇하게 웃는 진화의 얼굴을 보며 능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은 오감 중 시각에 크게 좌우되는 동물이라.
왼손에 든 수리검으로 얼굴을 벨 듯 자극을 주고, 근육이 경직된 사이에 왼팔을 긁었다.
하지만 그도 다 상대의 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문제라.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냉정하게 자신을 살피고 있는 눈빛이 거슬렸다.
“이런 씨발. 남궁에서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괴물이, 진짜 괴물이 되었다.
여유를 부리고 있는 듯하지만, 단 한순간도 자신의 움직임을 놓치고 있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젠장할!”
능교는 진화가 절대 저를 놓칠 리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경합으로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명백해졌다.
능교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은, 방심을 유도하거나 도망가거나.
혹은, 다른 강한 자를 끌어들이는 수뿐이라.
능교의 엄지발가락이 바위 쪽을 향했다.
그 순간.
쉬—익, 퍽!
진화가 날린 수리검이 능교의 발등을 찍었다.
“끄으으!”
수리검이 발등을 찍는 건 한순간이었고, 고통은 발가락에 힘을 싣는 순간부터 찾아왔다.
그러나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능교는 머리가 하얘지는 고통을 이겨 내고 발을 뽑았다.
“제-엔장-!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파파파팟---!
능교가 날린 표창이 나무에 가서 박히는 소리가 났다.
애초에 진화를 맞힐 수 있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진화가 제 목을 노리는 순간을 늦추기 위해서였다.
진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표창을 피하며 능교를 쫓았다.
챙-! 챙!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고 발등에는 여전히 수리검이 박혀 있는데도, 능교는 멈추지 않았다.
‘뭘 노리는 거지? 도망을 갈 거라면 수리검을 뽑았을 거다. 그런데 내 손에 들어올까 봐 수리검도 뽑지 못하고 달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진화의 눈이 능교를 쫓았다.
그리고 잠시 속도를 늦추고, 나무에 박힌 표창을 뽑았다.
‘도망이든, 유인이든. 넌 절대 내게서 못 벗어난다!’
진화가 능교의 등을 향해 표창을 날렸다.
쉐---엑!
파파팍!
“헉!”
능교의 등에 표창이 박히고, 능교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넘어질 듯, 네발로 기다시피 하면서도 능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필사적인 모습.
아주 어린 시절, 그 구덩이에서도 그러했다.
진화에게 숟가락질을 가르쳐 준 소녀가, 다음 날 공포에 질린 얼굴로 깊고 검은 구덩이에 떨어져 손톱이 빠져라 벽을 긁어 댔다.
그때 능교 저놈이 구덩이를 기어오르려는 소녀의 얼굴을 짓밟아 떨어뜨렸다.
[“안 돼--!”]
악착같이 살고자 했던 소녀의 비명이 이따금 진화의 귀에 울렸다.
진화의 눈이 버둥거리는 능교의 등을 향했다.
쉐에에엑---!
진화가 들고 있던 수리검을 능교의 목을 향해 던졌다.
샤아아악-!
“큿!”
수리검이 스치는 동시에 풀숲으로 몸을 던지는 능교.
그의 입에서 작지만 신음이 흘렀다.
‘저곳에 통로가?’
두꺼운 풀에 가려 바람도, 기운도 당연한 듯 비켜 흐르고 있었다.
진화도 가까이에 다가가서야 겨우 미미한 기운이 통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능교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탁.
진화가 바닥에 발을 딛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진화가 주변을 둘러보기 무겁게,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읏, 끈질긴 놈. 하지만 너도 이제 끝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능교가 목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고 있었다.
진화가 던진 수리검이 기어이 능교의 목을 벤 듯.
능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는 피가 계속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진화가 그런 능교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끝인지 모르겠네. 여긴…… 또 네가 쥐 새끼처럼 파 놓은 통로의 안인가?”
진화의 말에 능교가 눈을 크게 떴다.
“네놈들, 제물실 간수들은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쳤지. 죽이기도 하고, 죽이게도 하고…… 몇몇은 빼돌려서 팔아먹기도 했잖아. 안 그래?”
“너! 그걸 어떻게……?”
능교는 진화가 마지막 사실을 알고 있다는 데에 크게 놀랐다.
“간수장인 네가 쓸모없는 애들을 팔아먹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하하하! 네가 궁금해야 할 건, 그게 아닐 텐데. 내가 아는 걸, 광마 그 노친네가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
진화의 말에 능교는 피가 식는 듯 심장이 서늘해졌다.
‘과, 광마제 님이 알고 계셨다고?’
능교의 눈동자가 바쁘게 흔들렸다.
진화는 그런 능교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그래서 더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광마를 걱정하나? 왜? 설마, 살아서 다시 광마 늙은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진화의 비웃음에, 능교가 발끈했다.
“닥쳐! 너야말로 잘도 따라 들어왔군.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아니라면 그 통로는 아무도 못 찾아! 네 잘난 정의맹 놈들은 밖에 있는 것들과 싸우다가 끝장이 날 거다. 그리고 넌 아무도 모르게, 이 안에서 죽는 거라고!”
방금까지 공포에 질려 있던 능교가 진화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거대한 바위로 막아 놓은 유일한 입구.
웅호를 죽이기 전에는 그것의 가까이에도 갈 수 없을 것이었다.
능교는 이제 와 지주비와 웅호에게 공로를 넘기는 건 아까웠지만, 그들이 정의맹을 막아 낼 것이라 확신했다.
‘대신 나는 주군의 제물을 잡아간다면……!’
능교의 눈이 간교하게 빛났다.
능교의 눈빛을 보고 있던 진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둘 몰려오던 흑의인들이, 벽을 타고 큰 방을 에워싸듯 진화를 노리고 있었다.
“개미굴 같네, 시꺼멓게 몰려오는 꼴이.”
진화가 짧게 혀를 찼다.
그런 진화를 보며 능교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흐흐흐! 주군께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면 무척 기뻐하시겠구나.”
그런 능교를 보며 진화가 덤덤하게 말했다.
“광마가 없는 너흰, 그냥 노련한 살인자들일 뿐이지. 정의맹의 무인들을 막지 못할 거다.”
팽치와 각우, 거기에 남궁진혜까지.
모두 경지를 바라보는 무인들이었다.
게다가 대규모 전투에서 수하들을 어찌 움직여야 할지 아는 경험 많은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능교에겐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다.
“상관없어. 그때가 되면 대주가 나설 테니까.”
“아, 무맥이 이 안에 있나 봐?”
“대주님이 나서기 전에 네 걱정이나 해. 널 도와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테니까.”
덤덤하게 이어진 진화의 물음.
진화의 말끝이 조금 흔들렸지만, 자신만만한 능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해? 여기가 안 들킬 거라고?”
“당연하지! 입구는 단 한 곳뿐이야. 거기가 열리면 대주님이 나가게 되어 있다고!”
능교가 흥분한 듯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너희는 처음부터 다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게 말하려 했었다.
하지만 능교는 그 말 대신, 두 눈을 크게 떴다.
앞에서 진화가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문답이 이어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능교는 진화가 진심으로 기쁜 듯 웃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런 거! 대체 그게 무슨……?”
저건 남궁의 것도 뭣도 아니다.
저건……!
능교의 얼굴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처음엔 푸른 기운이 번뜩이는가 싶었다.
하지만 꽁꽁 묶여 있던 기운을 한 번에 풀려나듯, 진화의 몸속 깊은 곳에 있던 기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파파팟!
푸르게 빛나던 기운이 점점 더 짙어졌다.
눈부시게 번뜩이던 기운은 진해지다 못해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작은 불꽃이 튀는 정도의 소리는.
파아아아아-----!
시커멓게 물든 검은 기운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웃고 있었다.
능교 자신을 향해.
“아무도 못 온다니 다행이네. 이런 거, 아무한테나 보여 줄 수 없잖아. 명색이 정파인데.”
정파라고……?
말도 안 돼!
인간을 현혹하기 위해 마귀가 택한 얼굴이 저러할까.
정말로 안심한 듯 순순하게 웃어 보이는 진화의 얼굴을 보며, 능교는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 * *
이전 생에서 뇌왕 남궁진화는 많은 전투에 나갔다.
저 때문에 열 명이 죽으면, 그게 미안해서 적은 스무 명, 백 명을 죽였다.
그렇게 적을 죽이고 나면 꼭,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괴물!”
“저 마귀 같은 놈!”
“불길한 놈이야! 남궁세가는 왜 저런 놈을 거둬서는…… 쯧쯧쯧.”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남궁세가를 향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또 전투에 가는 거니?”
“……예.”
“이번엔 좀 쉬는 게 어떠니?”
“절 지키다가 창궁대연단 무사들 여섯이 죽었어요. 빠질 수 없습니다.”
“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 세가의 직계를 지키는 건 그들의 의무야.”
“…….”
진짜 직계도 아닌데…….
어머니가 슬퍼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직계도 아닌 저를 위해 사람들이 죽었으니, 제가 그들의 몫까지 해내야 했다.
진화는 입을 꾹 다물고 전투에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지키고자 했던 모두가 죽었다.
“저 악마 같은 인간! 전가장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며?”
“이봐, 들린다고!”
“들으면 뭐 어때? 사람들이 뇌왕, 뇌왕 불러 주니까 진짜 왕인 줄 알아? 저 양자가 남궁세가 개새끼인 걸 모두가 다 아는데! 다른 왕들이 기분 나빠 할 일이라고!”
“말조심해! 뇌왕의 손 속이 잔인하다지만, 귀천성 놈들을 제일 많이 죽이는 것도 사실이잖아!”
“뭐, 누가 알아? 그냥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건지! 저놈의 손 속을 보게. 거기 어디에 정도가 있고, 정의가 있냐고! 사파도 그렇게는 안 죽여! 저런 놈이 명문 정파인 남궁세가를 이끈다니……. 쯧쯧쯧, 말세야, 말세!”
정의맹의 다른 문파에서 수군거리는 말들.
상관없었다.
그걸 듣고 슬퍼할 사람은 이제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야! 이 개쌍놈의 자식아! 다시 말해 봐! 우리 진화가 뭐? 애가 피 터지게 싸워서 연명한 주제에 뭐라고 지껄였냐고!”
“아, 아니, 이거 놔요!”
“이제까지 실컷 뒤에서 숨어 있다가, 이제 살 만하니까 비열한 혓바닥을 놀려? 그 혓바닥을 뽑아서 주리를 틀어 주마!”
“남궁 대협, 참으십시오!”
“이거 놔! 씨불, 손 속이 뭐? 손 속에 정의가 어디 있어! 칼로 베면 정의고, 철퇴에 처맞으면 정의가 아니야? 정파의 의기와 정의는 손 속이 아니라 가슴에서 찾아야지! 등 뒤에 짊어진 것을 봐야지!”
아버지…….
진화의 손 속을 험담하던 어떤 문파 장로의 멱살을 잡고, 남궁경이 당장이라도 집어 던질 듯 흔들고 있었다.
아버지를 말리는 척, 제왕무적단 부단주님이 슬쩍슬쩍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아직 제게, 저런 말을 듣고 슬퍼해 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화는 더 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죽기 전까지.
* * *
쉐에에엑--!
진화의 검이 그들이 있던 방의 음기와 양기의 결함을 자르고, 기운을 어그러뜨렸다.
기운의 부조화가 연쇄적으로 번개를 일으키며 광룡귀면대원들을 벽에서 떨어뜨렸다.
파지지지지직--!
쿵. 쿵. 쿵!
벽과 천장에서 떨어진 광룡귀면대원들은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서진 돌처럼, 어떤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 괴물!”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죽어 버린 수하들의 주검에, 능교는 완전히 질려 버린 얼굴이었다.
“이젠 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거든. 그래서 잘 참고 있었는데…….”
파파파파파팟-----!
진화의 검에서 나온 기운이 그대로 사방을 할퀴며, 달려드는 광룡귀면대원들의 몸을 꿰뚫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에서 순식간에 생명력이 사라졌다.
“으아아아아---!”
능교가 비명을 지르며, 진화의 등 뒤로 나 있는 통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쿵.
마지막 광룡귀면대원이 바닥에 떨어지고.
진화가 고개를 돌려 능교의 뒤를 따라 나갔다.
“으아아악! 마귀다! 마귀라고!”
통로 밖에는, 식당으로 보이는 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거기엔 더 많은 광룡귀면대원들이 있었다.
“저리 꺼져! 꺼지라고!”
능교가 이성을 잃고 광룡귀면대원들 속을 파고들려 했다.
마치 숨을 곳을 찾는 쥐처럼, 정신없이 헤맸다.
하지만 잘 훈련된 이들은 적을 두고 도망치려는 능교에게 틈을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슈---욱. 푹-!
검은 번개가 창처럼 날아와 능교의 등을 꿰뚫었다.
파지지직--!
“크어어어어어억----!”
고통에 찬 비명.
검은 번개가 능교의 전신을 태우는 듯.
검은 불꽃이 사라지자, 검게 탄 능교의 시체만이 남았다.
그 뒤로, 진화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식당을 가득 채운 광룡귀면대원들을 보며 진화가 짧게 웃었다.
“허, 많네.”
파아아아아아----!
진화의 뒤로 보이는 검은 악마의 형상이 광룡귀면대원들을 향해 웃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참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진화는 속에 있던 진득한 악의와 분노를 마음껏 풀어내며, 검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스스스슷-.
지독한 살기.
광룡귀면대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물러났다.
그때.
“……누구냐?”
묵직한 음성이 광룡귀면대원들을 가르고 나타났다.
꿈에라도 잊을까 봐 두려웠는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하하하하!”
진화와 악마가 함께 웃었다.
그리고 그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검기를 날렸다.
누군가 대신 맞아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전부 죽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