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48)화 (148/425)

남궁마제

다할 진(盡) 불 화(火) : 원수와 적(2)

흔히 사람의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 하지 않던가.

진화는 복수에도 경중이 없다고 생각했다.

“막아라!”

콰----앙!

진화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광룡귀면대원에게 탁자를 날렸다.

그리고 탁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푸른 검강이 탁자와 함께 그 앞에 있던 광룡귀면대원들까지 베었다.

찰박. 찰박.

탁자가 피가 튀는 것은 막아 주었지만, 이미 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사실 진화는 이미 하얀 얼굴이 피로 젖어 있었다.

호귀면을 쓴 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진화의 눈동자 안으로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죽어!”

이전 생에서 본 적이 있는 자였다.

저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중요하진 않았다.

진화의 머릿속엔, 광룡귀면대를 모조리 죽일 생각뿐이었다.

이전 생에 누군가 진화에게 말했다.

[“저들은 그저 시키는 것을 한 것뿐이오!”]

그때 진화가 되물었다.

“그래서 저들의 손에 묻은 것은 남궁의 피가 아닙니까?”

광마제의 명을 충실하게 받들어서, 남궁세가 무인들의 살을 자르고 뼈를 부러뜨린 이들이었다.

무슨 일을 했는지, 복잡하게 죄 하나하나 따져 물을 생각도 없었다.

어째서 피해자가 그것을 따져야 한단 말인가.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벌을 내릴 순 없소이다.”]

벌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같은 죄를 지으면 그만이다.

광마제가 남궁세가를 노린 건 모두 자신 때문이었다.

진화는 제가 남궁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저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궁진화로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어떤 죄라도 지을 수 있었다.

[“부대주, 함정입니다! 피하십시오!”

“안 돼! 나만 빠져나갈 순 없다!”

“이대로 부대주가 죽는다면 이제까지의 일이 모두 허사가 됩니다!”

“같이 살 수 있어!”

“무슨 희망적인 개소리입니까? 그냥 살아서 복수를 해요. 부대주라면 우리 모두의 복수를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꼭 살아 나가십시오!”]

“컥-!”

쉐에에엑!

호귀면을 쓴 자의 목을 날리고,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핏방울에 뇌전의 힘을 담았다.

파지지지직----!

“으아아아악--!”

“크아악!”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이 이전 생에 진화의 뒤에서 울리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지 물어보고 싶으나, 이제 그럴 수 없을 것이었다.

이전 생에 그들은 이미 죽었고, 이번 생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진화의 기운이 짙어지며, 번개를 번뜩이는 악마가 광룡귀면대를 향했다.

“괴, 괴물…… 컥!”

퍼—엉!

진화가 왼손으로 상대의 가슴을 때렸다.

손끝에서부터 심장이 터지는 소리가 전해졌다.

‘괴물이라…….’

죽어 가는 이들의 눈에 가득한 절망과 공포조차, 진화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습관처럼 목각인형을 때리던 때처럼, 상대의 급소를 향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내가 괴물이라면, 그 또한 네놈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진화의 귀에서 광룡귀면대원들이 내뱉는 비명과 고함이 점점 멀어졌다.

‘이들을 전부 죽이고, 광마제도 죽일 수 있을까.’

복수에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일초지적에 죽어 가는 이들보다 광마제와 무맥에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이라.

“하아…….”

진화가 숨을 몰아쉬며 멈추었다.

이제 진화에게 달려드는 광룡귀면대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가 시선을 돌리자, 한쪽에서 주춤주춤 물러나는 광룡귀면대가 보였다.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겁에 질린 눈으로 진화를 보면서도, 어쩐지 등 뒤를 더욱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진화의 눈이 그들이 가리고 선 벽 너머로 향했다.

“거기로구나.”

진화의 눈이 새파란 살기를 드러냈다.

파지지지직---!

다시 진화의 검에 뇌전이 실렸다.

쉐에에엑---!

파지지지직! 퍼-엉! 펑!

“으아아악!”

“아악!”

천뢰제왕검법 낙엽(落曄)이 광룡귀면대원들과 함께 벽을 날려 버렸다.

콰----앙!

벽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있던 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쥐 새끼처럼 여기 숨어 있었군.”

무맥과 제갈무진, 아니 혼현마제가 굳은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그때, 진화의 시야에 침상에 누운 노인이 들어왔다.

“광……마제……!”

진화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진화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 * *

“광마제---!”

쉐—엑!

푸른 빛의 검기가 광마제에게 곧장 날아갔다.

무맥이 급하게 마룡아를 들어 검기를 막았다.

팟! 팟! 팟!

혼현마제가 여러 갈래의 현홍사를 쏘았다.

하지만 진화는 왼손을 뻗어 현홍사를 잡아 뜯었다.

파지지직---!

푸른 강기에 싸인 진화의 왼손은, 손에 잡힌 현홍사를 그대로 태워 버렸다.

퍼-엉!

“이런!”

자신에게 날아드는 천뢰장을 보며 혼현마제가 급히 침상을 뛰어넘어 뒤로 몸을 뺐다.

그사이, 진화는 무맥의 마룡아를 향해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캉! 캉! 캉!

“큿!”

무맥의 마룡아가 진화의 검과 부딪힐 때마다 검은 기운이 흐트러졌다.

날카롭게 부딪히는 쇳소리와 함께, 마룡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맥은 실제로도 부딪힐 때마다 뼛속까지 시린 음기에 손목이 부서질 듯 아렸지만, 결코 비키거나 물러설 수 없었다.

‘벌써 오다니……!’

무맥은 진화에게서 느껴지는 짙은 혈향에 미간을 구겼다.

흑면 밖으로 표정이 보일 리 없었지만, 무맥은 진화가 제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어쩐지 그렇게 보였다.

“영감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군.”

“닥쳐라!”

차라라라---캉!

채—앙!

무맥이 마룡미로 진화를 찌르려는 듯 위협하고, 마룡아로 진화와 검을 부딪치며 진화를 뒤로 밀었다.

어떻게든 광마제로부터 진화를 떼어 놓겠다는 의도였다.

진화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하!”

무맥에게서 밀려난 진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아직 깨어나지 못했어. 그렇다면 역시…… 혼현마제 당신이, 광마제를 깨우기 위해 여기 와 있는 건가?”

“……!”

진화의 눈길을 받은 혼현마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하지 못한 것이었다.

진화의 눈길을 받는 순간, 혼현마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슨…… 어린놈의 눈이 어째서 저렇게 지독하단 말인가!’

이미 진화와 손 속을 나눈 경험이 있는 혼현마제였다.

어린 외모 뒤에 있는 화경을 밟은 경지나 천뢰제왕신공의 매서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광마제와 무맥을 향한 진화의 눈빛을 보자니.

‘증오와 분노가 닳고 닳았구나.’

증오나 분노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는 노인의 슬픔을 두고, 펄펄 끓는 비탄보다 부족하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세월에 마모된 듯 매끄럽게 닳아서 쉽게 비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인이 박인 듯 쉽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진화 역시 냉정한 눈으로 무맥과 광마제를 살피고 있었다.

‘가만, 내가 광마제를 깨울 것이라니…… 혹, 뭔가 알고 있는 것인가?’

혼현마제가 가늘게 눈매를 좁히고 진화를 보았다.

‘내가 혼현마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맥에게 집중한다?’

무맥과 혼현마제.

둘을 놓고 보자면, 누가 봐도 노려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혼현마제의 공격을 막는 것 이상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챙-! 챙챙챙---!

진화가 푸른 불꽃을 티며 무맥을 몰아붙였다.

무맥도 밀리고만 있지 않았다.

무맥의 마룡아가 날을 걸듯 검을 끌어당기고, 마룡미가 진화의 급소를 노렸다.

검은 기운이 일렁이면서 진화의 기세를 내리눌렀다.

‘아주 어릴 때 제왕검에게 구해졌다고 했는데, 어째서 무맥을 상대하는 게 익숙해 보이는 거지?’

혼현마제의 생각처럼, 진화는 무맥의 마룡미가 움직이는 궤도를 예측한 듯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일부러 유인한 듯.

퍼—억!

진화가 결정적인 순간 마룡미의 송곳을 잡고 벽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무맥의 품으로 파고들듯 빠르게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창처럼 길이가 긴 마룡아로 대처하기 힘든 짧은 거리.

무맥이 마룡아를 끌어당겨 급하게 진화의 검을 막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춤한 사이에, 진화의 왼손이 침상에 누운 광마제에게 향했다.

퍼—엉!

혼현마제가 나서서 진화의 천뢰장을 막았다.

진화의 시선은 슬쩍 혼현마제를 훑었을까.

혼현마제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 순간.

촤라라라라라락---!

퍼—억!

진화가 벽에 박힌 마룡미를 뽑아 혼현마제를 향해 던졌으나, 혼현마제는 그것을 피했다.

다만 그의 뒤에 곧바로 광마제가 있었으니.

무맥이 급하게 손으로 마룡미를 잡은 것이다.

“크아아아악!”

무맥이 비명을 질렀다.

채---앵

비명을 지르던 무맥이 결국 마룡미를 바닥에 놓쳤다.

퍽!

촤라라라라- 촤라라라라!

아직도 푸른 뇌전이 번뜩이느라, 마룡미가 바닥에서 뱀처럼 꿈틀거렸다.

무맥이 마룡미를 회수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내가 무맥과 달리 목숨을 걸고 광마제를 지키지 않을 것을 알고 던진 게야. 효율적이구나.’

이런 난전을 한두 번 경험해 보고선 나올 수 없는 판단력이었다.

하지만 남궁진화는 이제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

‘상식으로 이해 불가한 천재라는 것인가.’

혼현마제가 진화를 보았다.

진화는 혼현마제와 무맥을 보고 있었고, 무맥 또한 고통을 참고 진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에서 마룡미가 퍼득거렸다.

파지직--!

마지막 뇌전을 번뜩이고, 마룡미에 있던 뇌전의 기운이 모두 흩어졌다.

기운이라는 것이 본디 조화를 찾아 흘러가기 마련이라, 마룡미에서 뇌전이 사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마룡미에서 사라진 뇌전의 번뜩임이 광마제의 옷깃에 닿았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광마제의 눈꺼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잠깐의 숨 고르기.

그리고 혼현마제가 먼저 움직였다.

“너를 인정하마. 유희 그 이상이라, 너는 앞으로 대계에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으리라-!”

혼현마제의 현홍사가 수십, 수백 줄기로 진화에게 날아들었다.

“타아앗-!”

무맥이 마룡아를 휘둘러 진화의 왼쪽을 막았다.

동시에 혼현마제가 날린 현홍사 수십 가닥이 진화의 검을 감고, 남은 것이 진화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진화는 뇌기를 일으켜 현홍사를 태우고, 날아드는 것을 피하는 척 무맥의 마룡아에 과감하게 목을 들이댔다.

“헛!”

무맥이 놀라서 마룡아를 거뒀다.

그사이, 진화가 무맥의 손을 발로 찼다.

퍼—억!

“이런!”

진화는 마룡아를 놓치게 할 속셈으로 찬 것이나, 무맥은 그저 뒤로 몇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역시,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는 건가?’

진화가 혀를 차며 두 사람 사이에서 벗어났다.

“무슨 짓인가!”

혼현마제가 중요한 기회를 놓친 무맥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무맥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군의 최종 제물이다! 절대 다치게 해선 안 된다!”

“허어!”

무맥의 말에 혼현마제 또한 잠시 잊었던 것을 깨달은 듯 허탈한 신음을 뱉었다.

‘저런 위험한 종자를 살려 둬야 한단 말인가!’

혼현마제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아쉬움 가득한 눈을 보며 진화가 한쪽 입꼬리를 짙게 말아 올렸다.

“이제 알겠어? 그게, 당신들 둘로도 부족한 이유야.”

진화의 검에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간다-!”

진화의 검이 마룡아의 날을 향해 떨어졌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고, 번뜩이는 뇌전이 마룡아의 칼날을 베어 들어갔다.

검은 강기를 끊어내려는 듯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죽어라--!”

진화의 외침과 함께, 진화의 눈동자 속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혼현마제가 진화를 다치게 할 수 없어 망설이는 사이.

진화의 눈동자 속에서 천지가 개벽하듯 번뜩이고, 온몸에서 들끓는 뇌전의 힘이 내공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크읏!”

“저런!”

놀란 혼현마제가 현홍사를 날리려 했지만, 진화와 무맥은 이미 혼돈에 잡아먹혔다.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화의 검이 무맥의 검은 어둠을 잘라 내었다.

무맥의 눈에 커졌다.

그때.

크아아아아아악----!

광룡이 태풍을 뚫고 포효했다.

콰광광------쾅!

바위산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거대한 폭발.

파사사삭-쿵!

쿵! 콰-앙!

위태롭던 돌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곧 내려앉을 듯 금이 갔다.

뿌연 먼지가 앞을 가렸다.

그리고 희미한 시야에 붉게 빛나는 광룡의 눈동자가 진화에게 향했다.

“허허허허, 욘석. 오랜만이구나.”

“주군!”

무맥이 감격에 가득한 목소리로 광마제를 불렀다.

그 순간.

푸-욱!

바닥에서 흔들리던 마룡미가 무맥의 가슴을 뚫었다.

“……광마제!”

진화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 광룡을 향해 눈을 빛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