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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51)화 (151/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용이 잠드는 곳(1)

불과 일 년 반 전.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

혼현마제는 간악한 술수로 모두를 속이고 정도 무림에 숨어 있다 발각이 되었고, 정의맹은 제갈세가의 기지와 남궁세가의 도움으로 정도 무림에 숨어든 혼현마제의 세력을 축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숨어 있던 광마전의 잔당을 알아낸 정의맹은, 이들마저 토벌하기에 이른다.

두 마제를 상대하며 정의맹 무인들 수십 명이 죽었다.

특히 광룡귀면대를 몰살시킨 전투는 사흘에 걸친 싸움 끝에 강물을 피로 물들이고, 바위산을 무너뜨리고서야 끝이 났다.

남궁세가의 새로운 용이 나타나 광룡귀면대 대주 흑면마룡 무맥을 처단했고, 그 과정에서 혼현마제와 광마제가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달아났다.

……그것이 일 년 동안, 전 무림에 퍼진 소문이었다.

전투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세워진 곳.

그곳을 지키는 정의맹 비선당 무인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불평했다.

희생자들의 위패에 향을 피우는 이들이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라, 몇몇 위패에만 몰리는 사람들이 야속한 것이었다.

저들 모두가, 정도 무림을 위해 열심히 싸운 자들인데 말이다.

비선당 무인들은 쓸쓸한 위패를 보며 동변상련을 느끼는 듯했다.

“참 나, 선우도 황보견의 위패가 있는 곳엔 사람이 줄을 서는군.”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 옆에 남궁세가 소공자의 화첩 파는 건 못 봤나?”

“사람들도 참, 정도를 몰라!”

“뭐, 남궁세가의 어린 소공자는 목숨을 걸고 광마제를 탈출시키는 흑면마룡 무맥을 죽인 영웅이 되었으니까. 어린 영웅의 기를 받아서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비는 부모들까지 있다더군.”

“그러니까! 괜히 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첩값이 더 올랐다고!”

“…….”

비선당 무인은 그제야 대화의 맥락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망할 화공 놈들! 지들도 이 년 전 모습 말고는 보지도 못해 놓고, 희미하게 자태만 그려 놓은 걸로 엄청 받아 처먹는다니까! 그것도 남궁세가에서 엄히 단속해서, 이제 더 구할 수도 없다는구먼!”

“자네는…… 화첩을 못 사서 불만이었던 건가?”

아무래도 동병상련은 그 혼자만 느끼던 것이었나 보다.

“아아, 우리 공자님! 어째 그 이후로는 코빼기도 볼 수 없으니!”

“지랄도 염병!”

한탄까지 쏟는 동료의 모습에, 결국 비선당 무인은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 공자가 아무리 잘나 봤자 사내인 것을, 어찌 같은 사내에게 그 지랄인가?”

“어허! 같은 사내라니! 자네가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런 말 못 할 걸세. 하늘에서 사는 선인 같았다니까. 그리고 자네는 정의맹 무인들 사이에 도는 소문도 못 들었나? 남궁 공자님의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 전투에서 아무리 다쳐도 목숨은 부지하게 해 주는 효험이 있다는데!”

“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 공자가 진짜 선인이라도 된대?”

“아, 진짜라니까. 그게 아니면, 그 어린 공자가 어찌 흑면마룡 무맥을 죽였겠나? 다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그런 것이지!”

약관도 안 된 어린 공자가 화경의 경지를 밟았다는 것.

선인같이 생긴 공자가 하늘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

동료는 당당하게 좀 더 신빙성이 있는 ‘후자’를 믿는 것이라 말했다.

비선당 무인에겐 어느 쪽이든 기가 차긴 매한가지였다.

“허, 참! 소문만 무성하고 일 년이 넘도록 그 공자를 봤다는 사람이 없구먼. 자네도 정신 차리고 일이나 해!”

비선당 무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동료를 타박했다.

동료는 그런 정의맹 무인의 태도에 입을 삐죽거렸다.

양청현 저자의 한복판.

밝은 귀로 비선당 무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아직도 저 위패 모시는 곳에 사람이 붐비나 보군.”

“광룡귀면대의 협공 속에 장렬하게 전사한 선우도 황보견이, 사실은 부대주 한 놈의 손에 작살 난 것이라곤 아무도 모르니까.”

“본가에서 입을 다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정의맹의 결정이라 했다.”

“위패가 너무 많더군. 안타까운 일이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만두 봉지 들고 불경을 외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서, 선물일세!”

“……소림에 고기만두를?”

무명 천에 청색 무복.

남궁교명과 남궁구, 팽가 형제와 현오가 저자에 물건을 사러 나온 참이었다.

“진화의 화첩까지 팔리는군.”

“무병장수, 입신양명부터 태교로 걸어 두고 보면 아이의 인물이 좋아진다는 소문까지 났어. 창궁무애단까지 나서서 단속을 하는데도 아직도 남아 있네. 뭐, 조만간 남궁조 지부장님이 싹 훑어 낼 거라니까.”

“소문이 너무 과하군.”

“팽수, 팽신 말 못 들었어? 전투에 참가했던 이들에게 다 함구령 떨어졌어. 하나씩 주고받은 것이지. 광마제가 살아 있어서 정도 무림 체면에 똥칠하게 된 것을 덮어야 하니까. 제일 피해가 큰 곳이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인데, 둘 다 약점이 잡혔지. 제갈세가는 혼현마제에 농락당해 제갈후현이 개 털 된 것을 숨기고, 황보세가는 선우도 황보견이 광룡귀면대 부대주에게 처참하게 죽은 걸 퉁 쳐야 하니까. 결국 다른 문파들도 사이좋게 공로를 나눠 가지는 것으로 마무리! 대신 우리 남궁세가에는 꽃용이가 승천했고. 흐흐흐흐!”

남궁구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일 년 내내 그것으로 진화를 놀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교명이 혀를 찼다.

“조만간 공자님 손에 저놈이 승천하지 싶다.”

“하하하하!”

남궁교명의 말에 현오와 팽가 형제가 남궁구를 보며 웃었다.

팽수는 이쯤에서 남궁구의 목숨을 위협해야 할 진화가 보이지 않자, 진화에 대해 물었다.

“그나저나 진화는 이번에도 안 나왔나?”

“뭐, 공자님도 이렇게 되실 줄은 몰랐으니까.”

“하긴.”

모처럼 다 같이 외출하는데도, 진화는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행 모두 진화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끝이라니 다행이야. 양청현 밖으로는 그래도 소문이 덜하니까, 자유롭게 외출하고 다닐 수 있을 걸세.”

“아아. 그러길 바라야지.”

일 년 반 동안 외부에 두문불출했던 진화의 사정을 아는 일행은, 앞으로는 이런 불편이 없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모두의 표정이 그렇게 자신감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 * *

지난 일 년 반 동안, 정의맹에서 퍼진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돌고 돌아서 아직도 맴도는 중이었다.

혼현마제와 광마제가 양청현에서 물러난 것은 분명했지만, 세상은 더 흉흉해졌다.

몇 군데에서 벌어지던 전투는 몇십 군데로 늘어났고, 곳곳에서 귀천성의 소행으로 보이는 납치와 실종, 살인이 일어났다.

그때 이후, 귀천성 팔현마제들이 다시 등장한 것도 아니고,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에 또 무슨 일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만으로 정도 무림 전체의 분위기가 점점 삭막해졌다.

전운의 그림자가 짙어진 것을 모두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정의무학관 청의생들이 삼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른 때였다면 집에 가져갈 선물을 사는 관도생들로 저자가 시끌벅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전과 달리, 분주하면서도 미묘하게 조용했다.

그런 속에서, 남궁세가 장원 앞에도 평범한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짐은 다 실었다. 먹을 것과 백주, 운룡차도 챙겨 넣었다. 그런데 꼭 이렇게 빨리 갈 필요가 있느냐?”

남궁진휘가 마차의 창문 안으로 물었다.

남궁세가 소가주이자 정의맹 부군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도 무림의 신예 권력자인 남궁진휘가 마차에 매달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인지 창궁무애단 무사들이 주변을 꼼꼼하게 에워싸고 사람들의 눈길을 가리고 있었다.

“게다가 정말 이 마차로 되겠느냐?”

“그럼요, 형님. 전 이것으로 좋습니다.”

“전의 그 마차가 요란하긴 해도, 안은 훨씬 안락할 텐데…….”

“형님…….”

“하하하, 알았다.”

걱정을 늘어놓던 남궁진휘가 곤란한 듯 팔자 눈썹을 하는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조심, 또 조심하고.”

“예.”

“끼니 거르지 말고.”

“예.”

“누가 같이 가자고 하면 명치를 날려 버리고.”

“예.”

끈질기고 이상한 당부에도 창문 안의 인영은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궁조가 남궁진휘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그만해라! 해 떨어지고 출발시킬 셈이냐?”

“아쉬워서 그러죠. 이러고 바로 첫 임무지로 갈 텐데.”

“그래도 어서 출발해야 안전하게 가지.”

“하아, 진화야, 꼭 조심해서 가거라. 어른들께 안부 전하고.”

“예, 꼭 그리하겠습니다, 형님. 숙부님도 강건하게 계십시오.”

“그래. 이제 출발하거라.”

남궁조 덕에 진화와 일행은 겨우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마부석에 앉은 남궁구는 혹시 또 잡힐까 봐 얼른 말을 출발시켰다.

남궁진휘와 남궁조는 진화를 태운 마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호위가 적구나.”

“이번에 본가로 복귀하는 이들이 열다섯 명이고 남궁구와 남궁교명도 있으니, 그들로도 충분할 겁니다. 최대한 눈에 안 띄는 게 좋다 하니 어쩔 수 없지요.”

“하긴. 그렇게 회수를 하고 단속을 했는데, 아직도 양청현에 진화의 그림이 나돌고 있다 하니. 조만간 싹 거둬서 불에 태워야지. 원.”

“하루하루 몰라보게 쑥쑥 크기에 다 자라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설마 사내 녀석이 그렇게 곱게 클 줄 누가 알았느냐. 어째 어릴 때보다 더해! 쯧쯧쯧!”

남궁조의 말에 남궁진휘가 곤란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진화에 대한 찬양이 도를 넘으면서 진화가 저자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만 해도, 남궁진휘와 남궁조는 조금 시일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한창 성장기가 시작되었고, 목소리도 변해 갔으니까.

사내답게 자라고 나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크는 것을 보며, 적어도 ‘선녀처럼 고운 화동이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말은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키만 사내답게 자랐다.

삐걱.

마차 문이 열리고.

섬섬옥수 같은 하얀 손과 긴 다리에 사람들의 눈길이 모여들었다.

근방에서만 조금 유명할 뿐인 마을에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무인들이 나타났으니.

그 무인들이 호위하는 마차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건 당연지사였다.

시끄러운 객잔 안이 조용해진 가운데.

“조심해서 내리십시오.”

“예.”

무사의 말에 나지막하면서 순순한 목소리가 들리고, 안에 있던 사람이 마차에서 내렸다.

“와아.”

“헉!”

“……허!”

청백색 비단 무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객잔 안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매끄러운 옥처럼 하얗고 고운 얼굴에 까만 눈썹 사이에 깎은 듯 오뚝한 코.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두 뺨 아래로 새빨간 입술이 촉촉하게 빛났다.

무엇보다 꽃잎이 팔랑이는 듯 속눈썹이 여닫힐 때마다, 반달같이 크고 맑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니.

천상 선녀의 얼굴이 그러할까.

팔 척에 가까운 큰 키는 그저 하늘이 내려 준 선인을 우러러볼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공자님, 먼저 안으로 드시지요!”

“아아.”

사람들이 얼어붙은 듯 보고 있는 가운데, 날카롭게 생긴 귀공자가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객잔은 여남현에서도 제일 유명한 곳이라.

마침 이 층의 주루에서 풍류를 즐기던 사내들 또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으니.

“여어, 보시오! 보아하니 외지에서 오신 분 같은데, 이 금 모가 대접하겠소.”

여남현에서 가장 유명한 금풍상회의 대공자 금호강이 모두를 대표해서 신비로운 사내를 붙잡았다.

“…….”

삼 층으로 오르려던 사내가 자신을 붙잡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를 따르던 무사들이 매서운 눈으로 금호강을 노려보았다.

사내는 무심한 눈으로 스윽- 한번 쳐다보았을 뿐, 그대로 가던 걸음을 옮겼다.

금호강의 일행이 고개를 돌리고 킬킬대고, 금호강은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봐, 감히 이 금호강의 말을 무시하는 건가!”

금호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야! 거기 안 서?”

금호강이 씩씩거리며 걸어 나왔다.

“공자님…….”

“아니, 소란 피울 것 없습니다.”

무사들이 앞으로 나서려는데,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사내와 마주선 금호강은, 사내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곧 주변의 눈을 의식한 듯 얼굴을 구겼다.

“이 금호강이 여남현에 온 객에게 모처럼 호의를 베풀었건만, 어디서 온 뉘길래, 이리 예의가 없나!”

“……금호강이 대체 누군데?”

“나, 날 몰라? 여남현에 오면서?”

“알아야 하나?”

태연한 사내의 말에 곳곳에서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금호강의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허! 날 몰라? 이런 씨, 어디에 처박혀 있다 온 촌놈이야, 뭐야?”

“어디에 처박혀 있다 온 건 맞다. 정의무학관에서 삼 년 만에 여남현에 왔으니까.”

“저, 정의무학관?”

정의무학관이라는 말에 금호강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이 고운 사내의 입에서 정의무학관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당황하고 있는 건, 일행을 안내하던 점소이였다.

“나, 나리, 어찌합니까!”

저를 붙잡고 애원하는 점소이에게 남궁구가 느긋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후우, 얘야, 이 형이 일전에 알려 줬지 않느냐.”

“뭐, 뭘요?”

“천둥번개 치는 날 꽃 단 여자를 뭐라고 하지?”

“……미, 미친 여자요?”

“그럼, 천둥번개 치는 날에 꽃을 단 용은?”

“……미친 용?”

“응, 우리 도련님, 꽃용이 돼서 집에 가는 중이야.”

어리둥절한 점소이에게 남궁구가 씨익 웃었다.

그와 동시에, 어린 점소이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객잔 안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보았다.

금호강이 명치를 잡고 날아가고 있었다.

* * *

“이랴-! 이랴-! 거기 앞에 다 비켜라-!”

백주에 말을 타고 질주라.

웬 미친놈을 보듯 보던 사람들이 뒤를 따르는 무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무적단주님이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보구먼.”

“아, 자네 소문도 못 들었나?”

“무슨 소문?”

“제왕무적단주님의 하나뿐인 아들내미가 삼 년 만에 집에 온다지 않나.”

“아, 그…… 남궁진화, 도련님 말인가?”

남궁세가 직계 공자의 귀환 소식에, 남궁세가는 제왕무적단 전체를 호위로 보냈다.

“비켜-! 거기 다 비켜! 내 아들 온다고! 나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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