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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52)화 (152/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용이 잠드는 곳(2)

지금의 세상을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과, 피와 칼이 지배하는 무림으로 나눈다면…….

제국은 이민족과 반란군이 날뛰고, 무림은 사악한 무리가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혼란한 세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양주가 동요 없이 평화로웠던 것은, 그 어느 곳보다 강성한 자들이 이 땅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라.

황제가 보낸 자사부와 오왕부가 힘을 합해 제국의 양주를 다스린다면, 양주 무림은 남궁세가가 오랫동안 군림하며 귀천성을 막아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궁세가는 요 근래 기쁜 소식까지 들리고 있었다.

바로 제왕검과 창천명웅이 지키는 남궁세가에, 새로 두 마리 용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창천신룡 남궁진휘.

창천화룡 남궁진화.

남궁가주의 장자이자 독자로, 어릴 적부터 남궁가주를 이을 훌륭한 재목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남궁진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꽃 같기로 유명했던 제왕무적단주의 아들이 중원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니. 후기지수들 중 인중룡으로 인정받고 귀환한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남궁세가가 강성하면 강성할수록 양주 무림이 안전해지는 것이니, 사람들은 남궁진화의 귀환 소식을 제 일처럼 반겼다.

“진화야--!”

“가주님!”

“어허!”

“백부님, 그간 무탈하셨지요?”

“허허허허! 이 녀석,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남궁가주가 기쁜 얼굴로 남궁진화를 안아 주었다.

가모 하후민이 ‘딸자식 왔을 때도 저렇게 안 웃던 양반이…….’라며 불평했지만, 그녀도 진화에겐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어머니…….”

진화의 맑고 큰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우리 아들!”

팽연화가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진화를 꼬옥 안아 주었다.

“우리 아들, 어여쁜 내 아들! 어미가 정말 보고 싶었단다. 한시도 네 생각을 놓치지 않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단다.”

“저도요. 저도요, 어머니.”

변함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품에, 진화는 온기 한 자락 흘리지 않겠다는 듯 힘껏 팽연화를 껴안았다.

“허허허허! 들어가자. 오랜만에 잔치를 준비했단다.”

“아, 그저 얼굴만 뵈어도 되는 걸요.”

“허허, 인석아. 집안에 용이 들었는데, 큰 잔치를 열어야지! 남궁세가가 쌍용을 가졌다고 온 무림에 소문이 났는데, 잔치를 열지 않으면 욕먹는다!”

“그래, 진화야! 어서 들어가자!”

제왕무적단주 남궁경과 팽연화가 양쪽으로 진화의 손을 잡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모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는 동생 부부의 모습에, 남궁가주와 가모도 만면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이 공자님의 귀환을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반가운 정경과 사람들이 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생과 달리, 가솔들은 물론 남궁세가의 가신들과 장로들도 모두 나와 고개를 숙여 진화를 맞았다.

진화는 모두에게 환영받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 감격이 차올랐다.

시간을 거슬러 운명을 바꾸면서도, 진화의 마음 한구석엔 ‘혹시 돌아갔을 때 또 피와 주검이 가득한 남궁세가가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장원과 밝고 건강한 사람들이 모두 진화를 반겨 주고 있으니.

진화는 이제야 비로소 꿈에 그려 왔던 남궁세가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다녀왔습니다.”

진화가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 * *

진화가 남궁세가에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편안한 잠자리와 조용한 아침.

진화가 조금 멍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풍스럽고 아늑한 제 처소가 맞았다.

“큰 잔치라곤 했지만 설마 사흘 내내 연회를 여실 줄이야.”

그동안 매일같이 웃고 인사하고, 사람에 지쳐서 잠이 들었던 사흘.

진화가 이제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든 연회가 끝이 나고 처음으로 맞이한 평범한 아침이라.

진화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창천전에 아침 식사를 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때.

“우리 아들, 일어났니?”

팽연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예, 어머니!”

“일찍부터 아들이 보고 싶어서…….”

“어머니…….”

웃으며 들어오는 팽연화를 보며 진화가 마주 웃었다.

“아버지도 왔다!”

“아버지!”

팽연화의 뒤로 남궁경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진화가 눈을 크게 떴다가 웃고 말았다.

남궁경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놀라웠지만, 또 그만큼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

진화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났다.

사흘간의 연회 이후, 진화는 이제야 조금씩 기다리고 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동의생이 되어 첫 외부 임무로 종남파 격전지로 가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또 종남이라니! 망할 제갈성질 자식!”

“형님과 누님도 갔던 곳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 두 녀석이니까 걱정을 안 했지! 진휘 놈이 그래 보여도 잡초처럼 무던하고 끈질겨! 진혜야 시궁창에서 굴러도 멀쩡할 녀석이고! 그런데 너는 아니지!”

진화의 괜찮다는 말에도,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제갈가주를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제갈성질 이 새끼, 제가 가서 이빨 한번 털고 올까요?”

“그럴래?” 

“제 자식들은 다 두고, 왜 남궁세가 직계들만 그 격전지에 보낸답니까? 이참에 제가 가서 앞니 몇 대 날리고 오겠습니다!”

진짜로 정의맹으로 남궁경을 보내고, 거길 또 쫓아갈 기세였다.

진화가 화들짝 놀라 남궁가주와 남궁경을 말렸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데 어딜 가십니까, 아버지. 게다가 형님의 말로는 이번 종남행이 오히려 다른 곳보다 안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종남행이?”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본가를 오는 중에도 노예 상단 사람을 하나 마주쳤는데, 근래에 부쩍 노예를 사고파는 상단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만큼 무인들의 납치, 실종도 늘었고요.”

“으음…….”

진화의 말에 남궁가주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정의맹에서는 뭐라 판단하더냐?”

“혼현마제가 만년독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만년독수?”

남궁가주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도 어렴풋이 들어 본 적 있는 말이었다.

“태어난 지 백일을 넘기지 않은 갓난아이의 정수, 이천 명의 동남동녀의 정기 그리고 억울한 주검에 담기 원기가 만 가지의 독물과 독초에 버무려진 것입니다.”

“설마!”

“혼현마제가 소림에서 보호 중인 현오가 역천마제의 최종 제물인 천살지체임을 알았습니다. 광마제는 저를 보았지요.”

“놈들이 역천대법을 준비하는구나!”

남궁가주는 그제야 진화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온몸의 살이 갈라지고 벌어진 채 독수에 잠겨 있던 중에 구해진 아이가 진화였다.

제왕검은 그런 진화를 가리켜, 광마제의 최종 제물로 역천대법 중에 구해졌다고 했다.

“정의맹에서 역천비록을 가지고 있는 곳들에 협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아니, 벌써 다른 마제들도 역천비록을 찾으러 나섰을 겁니다. 그들도 제물과 만년독수가 필요하겠지요.”

“수천, 아니 수만의 죽음을 필요로 하겠구나.”

“놈들이 역천대법으로 얻을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것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정의맹의 결정이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의무학관 금은동의생들과 정의맹 무인들의 임무도 거기에 중점을 둘 것이라 했습니다.”

“허! 차라리 전쟁이 쉽겠군. 적어도 눈앞에 적이 있으니까.”

남궁가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이 역천대법의 진행을 막는다는 것이지, 귀천성의 어디서 어떻게 사람들을 납치하고, 어디에서 만년독수를 만들며, 귀천성의 다른 마제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결국 아는 것이라곤 역천비록의 존재뿐, 실체도 없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형님이 절 종남으로 보낸다고 하셨죠. 걱정 마세요.”

심각한 남궁가주의 표정에, 진화가 사르르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 보려 애썼다.

조금 컸다고, 어색하게나마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는 모습.

그런 진화의 노력에, 남궁가주가 웃으며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진휘 녀석이 널 위험하게 둘 리 없지.”

“아구구구, 내 새끼!”

남궁경이 진화를 끌어안으며, 벅차오르는 대견함을 격하게 표현했다.

제 두 배는 될 법한 남궁경의 우람한 덩치에 끼어 있는 진화를, 다행히 남궁가주가 구해 주었다.

“그래서 언제 출발해야 하느냐?”

“중간에 일행과 만나서 종남까지 가야 하니, 앞으로 한 달 뒤에 가야 할 듯합니다.”

“그래? 본가에 얼마 있지 못하겠구나. 네 어머니가 많이 아쉬워하겠어.”

“예.”

사실 진화도 한 달은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광마제를 저리 두고는 남궁세가가 결코 안전해질 수 없었으니.

진화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지금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동안 많이 먹고 살이라도 좀 찌워야지. 아이고, 내 새끼, 이렇게 비쩍 말라서 어찌하누.”

“그래, 몸에 좋다는 약재며 식재를 잔뜩 준비해 두었다. 덕진 할멈이 매끼 자기 손으로 널 먹일 거라며 벼르고 있었단다.”

“덕진 할멈이요?”

남궁경과 남궁가주의 말에 진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덕진 할멈은 천화정의 총관으로, 진화가 아주 어릴 적에도 덕진 할멈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어린 진화를 남궁진혜와 남궁경이 과하게 만질 때 그들의 등짝을 내리치던 유일한 사람이라.

그때 남궁진혜와 남궁경이 덕진 할멈을 부르던 말이 바로 ‘요괴 할멈’이었다.

‘덕진 할멈이 아직도 요리를 한다고? 나이가…….’

진화의 얼굴에서 생각이 드러났는지, 남궁가주가 껄껄껄 웃었다.

“내가 소가주가 되기 전부터 덕진 할멈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요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단다.”

“…….”

남궁가주의 말에 진화는 더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가주전을 나온 진화는, 청림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보고까지 마쳤으니, 이제는 이번 생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남궁호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요 며칠 그 많은 음식을 전부 다 하다니. 덕진 할멈도 참 못 말린다니까. 나 같은 것이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진화는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매일 배가 꽉 차도록 먹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덕진 할멈을 비롯해서 창천원의 식솔들 모두가 충성스럽기 짝이 없으니. 그들의 지극정성이라면 환골탈태한 몸도 살을 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잠시, 진화가 제자리에 우뚝 섰다.

“……창천원의 식솔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태상가주님과 가주님을 중독시킨 것일까?”

진화의 눈이 창천원을 향했다.

남궁세가 본가에서도 직계들이 머무는 창천원은 제국의 황궁보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곳이었다.

창천원의 방비를 논하자면 천하의 요새가 따로 없어서, 광마제와 광룡귀면대가 남궁세가 본가를 쳤을 때도, 제왕무적단과 창궁무애단이 없는 때를 골라 노렸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안에 있는 가솔들은 삼대에 걸쳐 남궁세가의 녹을 먹은 자들이라.

그만큼 신분이 확실하고 남궁세가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한 이들밖에 없었다.

실제로 광마제의 습격이 있던 때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음식을 먹기 전엔 덕진 할멈을 비롯한 총관들이 은으로 된 시침으로 확인까지 한다. 그들이 독을 놓칠 리가…… 있나? 만약, 은으로 된 시침이 가짜라면? 총관들이 속이고자 했다면?’

진화보다 더 오래도록 남궁세가에 있었던 이들.

과연 그들을 의심해야 하는 것인가?

‘공산 포구 소실로 보내는 전서, 그것의 값을 치렀다는 배신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

진화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남궁세가를 떠나야 하는 날까지 한 달.

그 안에 진화는 감히 제왕검과 남궁가주를 독살하려 한 배신자를 찾아야 했다.

* * *

오가는 사람들 많은 저자 한복판.

상점의 물건을 구경하는 사내에게 가게의 주인이 다가왔다.

“하하하, 뭐 찾으시는 것 있습니까?”

“용이 새겨진 것을 찾고 있습니다.”

사내가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용요? 높은 댁에서 쓰시는 건가 봅니다?”

“예. 귀한 용이 편히 쉬러 왔거든요.”

사내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그에 주인이 반색하며 말했다.

“허허허, 그리 귀한 용이라면, 특별 주문을 넣으시지요. 편히 잡을 수 있도록 좋은 물건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그리하지요.”

사내가 주인에게 은자 주머니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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