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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54)화 (154/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용이 잠드는 곳(4)

냄새가 없는 독이 있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독도 있다.

피부 접촉만으로 중독되는 독도 있고, 다른 무엇과 섞여야만 작용하는 독도 있다.

이전 생에 진화는 남궁호명과는 인연이 없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태상가주와 가주를 중독시킨 것은, 무형지독이라 들었다.

무형지독(無形之毒).

색, 향, 냄새, 맛, 형태마저 존재하지 않는 그것은, 경지를 넘어선 고수마저도 중독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독 중의 독이었다.

화경의 고수마저 알아채지 못하는 은밀함과 독기를 동시에 가진 그것.

하지만 진화는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기만 하면 자신이 알아챌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세상 만물에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진화는 기운의 부조화라면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가 알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독(毒) 또한 그 자체로는 조화로운 기운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화는 남궁호명이 중독당해서 기운이 혼탁해지고서야 독에 대해 알아차렸다.

“스승님, 절대 자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내가 왜 안 자고 널 기다려! 그 얼굴로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말랬지-!”

남궁호명이 뜬금없는 소리에 펄쩍 뛰는데, 진화는 이미 처소를 뛰쳐나가고 없었다.

“……미친놈.”

남궁호명이 훤히 열린 문을 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하도 놀라고 정신이 없어서 잠은 벌써 다 달아났다.

결국 남궁호명은 진화의 말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남궁호명이 몸을 돌린 그 순간, 남궁호명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검은 피……!”

남궁호명은 이부자리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제 목을 잡고 있던 손을 확인했다.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하지만 피가 묻은 이불은 까만 핏자국과 함께 반쯤 삭아 있었다.

남궁호명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남궁호명의 목을 베어 독기를 빼낸 진화는 그대로 창천정으로 달렸다.

직계들의 장원인 창천원 안에서도 창천정은 가주와 가모가 머무는 거처로, 가주의 개인 집무실도 그곳에 있었다.

‘스승님은 청림에 혼자 사시는 분이다. 청림은 광룡귀면대조차 꺼려 할 정도로 함정 그 자체이니, 누가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음식도 본인 손으로 해 드시고 곁에 두는 시종도 없으니, 음식이나 사람으로 중독시키기는 힘들지. 사람이 사는 데에 꼭 필요한 식과 주가 안전하다면 남은 것은 의(衣). 그중 가장 확실하게 목표만 중독시키는 것이라면, 하나뿐이지!’

창천정에 도착한 진화는 기별도 없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련님!”

탕-!

뒤에서 놀란 하인이 진화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화는 들은 척도 없이 창천정의 가주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안에서 놀란 얼굴을 한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진화를 보았다.

“베개입니다!”

“……진화야?”

뜬금없는 말에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놀란 눈만 꿈뻑거렸다.

* * *

창천정의 가주 집무실.

갑자기 그곳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에 모두가 놀랐다.

물론 남궁세가 가주전 문을 박차는 사람들은 자주 있는 터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람이 진화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진화야, 무슨 일이냐?”

“급합니다! 어제 스승님의 처소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는데, 중독 시도가 있었습니다!”

“뭐라!”

“너는! 아니, 의, 의원을……!”

진화의 말에 놀란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궁경은 순식간에 다가와 진화의 몸을 살폈다.

“아, 아니, 제가 아니라 스승님께서 중독되셨습니다. 독기를 빼긴 했는데…… 아, 의원은 스승님께 보내야 합니다.”

“네가 아니야?”

“……휴우.”

진화가 아니라는 말에,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남궁가주는 자리에 도로 앉기까지 했다.

“백부님?”

“아, 그래. 청림으로 의원을 보내마.”

진화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애정의 양도 비교 불가였지만, 그만큼 남궁호명을 믿고 있기에 보일 수 있는 태도였다.

“숙부님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대전쟁을 헤쳐 나오신 분이니, 중독 사실을 알아내었다면 스스로 잘 대처하고 계실 것이다.”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차례 독기를 빼내기까지 했으니, 남궁호명에게는 크게 위험한 일이 없으리라.

순식간에 차분해진 남궁가주의 태도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진화도 남궁가주의 생각에는 동의했다.

“한데, 독의 매개가 베개라고?”

여유를 찾은 남궁가주가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물었다.

남궁가주의 눈빛에 진화도 다급한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예! 베개 속에 독이 있었습니다. 소량이라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며칠 몸이 좀 이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정도겠지. 곽 총관에게 일러 당장 창천정과 천화정을 비롯해서 창천원에 있는 모든 침구를 조사해야겠구나.”

“아, 총관은……!”

남궁가주의 말에 진화가 다급하게 말을 꺼내려다 입을 닫았다.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앞에서, 차마 진화 자신보다 오랜 시간 곁을 지킨 총관들을 의심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빛이 흔들리는 진화를 보며 속내를 알아챈 남궁가주가 싱긋이 웃어 보였다.

“그들은 괜찮단다, 진화야. 그렇지 않은가?”

남궁가주가 진화를 달래다가, 갑자기 아무도 없는 곳에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의아한 진화가 고개를 돌린 그때.

“총관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

“……!”

세상 누구보다 기감이 예민하다고 자부하는 진화였다.

주의력을 놓고 있긴 했지만, 바로 옆에 올 때까지 기척을 놓치고 있었다니!

진화가 놀란 눈으로 제 옆으로 오는 곽 총관을 보았다.

진화에게 싱긋 웃어 준 곽 총관이 남궁가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청림으로 들어간 침구를 만든 침방 하인들부터 솜과 천, 물건을 사 온 포목점과 침구점, 운반책까지 모조리 조사하겠습니다.”

‘조사한다고?’

곽 총관의 말에 남궁가주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가주는 물론이고 남궁경까지, 그들은 곽 총관이 사람들을 조사하고 뒤를 캐는 것을 무척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지척에 오기 전까지 기운을 읽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고, 가주의 명을 받자마자 신속하게 사람들의 뒤를 캐낼 수 있는 사람이라…….’

진화는 이제 어렴풋이 곽 총관과 그가 말하는 총관부의 청체를 알 것 같았다.

‘가주의 은밀한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모으고, 직계들을 지척에서 지키는 자들. 창천원의 총관부가 천리호정단에 속해 있었구나! 그래서 창천원 하인들에 대한 믿음이 그토록 굳건했었던 거야!’

진화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곽 총관을 보자, 곽 총관이 진화에게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주름진 얼굴에서 오랜 세월과 여유가 느껴졌다.

‘설마, 우리 덕진 할매도……?’

진화는 남궁진혜와 남궁경의 등짝을 두드리던 덕진 할매의 손놀림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잠시 후.

반다경이나 되었을까.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진화의 몸을 살피고, 진화가 겨우 차 한 잔을 마신 시간이었다.

곽 총관이 다시 가주 집무실로 들었다.

“조사 결과 의천검주의 침구를 다룬 이들 중 행적이 수상한 자, 두 명을 잡아들였습니다. 심문을 한다면 연루된 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다행히 창천원의 다른 침구들은 이상이 없었습니다.”

“침방 하인 몇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네.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공모자들부터 독을 구해 온 경로,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철저하게 알아내게.”

“존명.”

곽 총관의 충성스럽게 인사를 마치고 나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남궁가주의 명에 곽 총관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평소 인자하게 웃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곽 총관이 나간 후,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여유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들도 내심 창천원에 다른 중독 시도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다.

가모인 하후민은 하후 대장군부 출신이나 무공을 알지 못했고, 팽연화 역시 여러 가지 일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는 중독 시도가 없었다니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하나, 청림에 은거하고 있는 의천검주를 노렸다면 필시 세가 내부 사정에 밝은 자가 끼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의천검주를 노릴 의도라면, 나와 아버지, 너도 안전하지 않겠지. 앞으로 주의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래 봐야 아버지는 천주산에 올라서 며칠째 연락도 없으니…… 쯧.”

남궁경이 일주일째 소식도 없는 제왕검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위험에 대해 알릴 만한 수단이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이 되는 동시에 답답했던 것이다.

진화의 굳은 표정도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앞으로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독살에 대한 것까지 조심하게 되었으니, 그건 분명 좋은 소식이었다. 적어도 허무하게 독살당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의천검주를 노리면서, 할아버님과 백부님에게는 어떤 시도가 없었다니…… 베개가 아닌 다른 매개도 있는 것인가?’

진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의천검주에 대한 독살 시도를 막아 냈으니 범인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였지만, 여전히 제왕검과 남궁가주에 대한 위험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계속 세가에 붙어 있어야 하나? 하지만 내부의 배신자가 눈치를 채고 몸을 사린다면 아예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진화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아버지.”

“응, 왜 그러냐?”

진화가 말을 걸자 남궁경이 반색하며 물었다.

“저번 공산 포구에 남궁세가의 전서값을 미리 계산했다는 배신자는 찾으셨습니까?”

“아, 그놈! 에이, 점원을 데려다 인물화까지 그렸는데, 세가 내에서 같은 인물을 찾지 못했다. 비슷한 놈조차 없더구나! 그 뺀질이 놈이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벌써 튄 건지…… 에이!”

남궁경은 뱃멀미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무 성과도 없이 끝난 일을 떠올리며 툴툴거렸다.

그 모습에 남궁경을 배에 두 번이나 올린 남궁가주가 모르는 척 고소를 참았다.

그리고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전쟁이 시작되긴 하나 보군. 슬슬 배신자와 첩자 들이 판을 치는 것을 보니…….”

평소와 같이 낮고 온화한 남궁가주의 말투.

하지만 그 속에 은근하게 날이 서 있었다.

“하는 짓이 늘 한결같아.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계속 모른다는 게 놀라울 뿐이지.”

남궁경도 누군가를 비꼬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진화는 조용히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듯 자신감 있는 모습.

그런데 왜 이전 생에는 제왕검과 남궁가주가 독에 당했던 것일까.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우리도 더 미룰 수 없겠어. 방계들을 불러들이고, 무사들을 늘려야겠구나.”

“우리가 미룰 수 없으면 뭘 해. 장로들과 원로들이 배 뒤집고 누운 걸! 심지어 귀천성 놈들이 여릉에서 물러섰어. 그게 뭐겠어?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거지! 원로들의 말대로 우린 이미 우리의 힘을 보여 주었고, 어쩌면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귀천성도 양주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

남궁경의 말에 진화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이때의 남궁세가에서 그런 말이 나오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귀천성이 고작 한 걸음 물러선 것을 두고 남궁세가를 내버려 둘 수 있다니! 

위험한 착각이었다.

다행히 어른들 또한 진화와 생각이 같았다.

“지금의 귀천성에게는 우리가 꺼려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귀천성이 지금보다 세력을 넓힌다면? 팔현마제 놈들이 부활한다면? 그때도 과연 우리를 내버려 둘까?”

“당연히 그럴 놈들이 아니지!”

귀천성이 갑자기 여릉현에서 물러나면서, 남궁세가 내에서는 그걸 휴전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의지는 단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로들을 설득해야지. 그게 아니라면 거수에서 이기든가.”

“내일 세가 회의에서 결판을 내자고.”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눈이 사나운 맹수의 그것처럼 시리게 빛났다.

진화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이런 모습을 가감 없이 보이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쭉 이어진 후계 교육의 일환이라.

다만 이번에는 진화의 시선이 왼손에 들고 온 의천검을 향했다.

* * *

다음 날.

남궁세가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오늘은 남궁가주가 직접 세가 회의를 소집한 날이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모든 대소사를 관장하는 천명관으로, 모든 가신과 장로, 원로 들까지 모두 모여들었다.

근래에 같은 안건을 두고 여러 회의에서 논의를 해 왔기에, 다들 오늘 회의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아는 얼굴들이었다.

“가주가 아예 작심을 한 모양이군.”

“원래 마음을 먹으면 오래 시간을 끌지 않는 성품이지 않습니까. 이번 회의에서 결판을 낼 모양입니다.”

“남궁경이 또 검을 들고 날뛰면…….”

“흥! 이번엔 우리도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하네! 자꾸 이런 선례를 남겨서 좋을 것이 없어!”

“그렇습니다. 우리 대에서 칼 들고 깽판 치는 못된 관습을 깨부숩시다!”

“옳거니! 오늘은 태상가주도 안 계시고, 다 같이 덤비면 해볼 만합니다!”

세가 회의에 들어가는 원로들과 장로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결연했다.

어떤 이들은 작심한 얼굴로 문방사우를 옆구리에 품고 자리에 들었다.

세가 회의에는 검이나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예외는 있었다.

세가 회의가 한창인 천명관 앞.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목소리들을 들으며, 진화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진화의 등장에 소란스러웠던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몇몇 장로들은 남궁가주와 남궁경을 노려보았으나, 그들도 놀란 얼굴로 진화를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허, 작은 공자께서 여기 웬일이시오?”

“아무리 소공자라 하나 세가 회의 중에 끼어들다니, 무례하오!”

원로 중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진화를 향해 호통을 쳤다.

하지만 진화는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방금 호통을 친 원로보다 더 앞에 있는 자리.

세가 회의에서 늘 비어 있던 자리였다.

탕!

진화가 옆구리에 찬 검을 앞으로 내보였다.

진화가 앞으로 내보인 검에, 몇몇 장로와 원로 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했다.

“의기의천! 남궁세가 검수가 의천검을 뵙습니다-!”

남궁세가 검수들이 의천검을 향해 존경을 표했다.

남궁세가의 검수들 중에는 남궁경도 있었다.

“오늘은 스승님을 대신하여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남궁세가 검수들을 향해 진화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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