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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57)화 (157/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용이 잠드는 곳(7)

이전과 같은 거창한 환송식이나 화려한 꽃마차는 없었다.

지름길로 내달리기 위해서는 험한 산길을 뚫고 가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후민과 팽연화가 정성껏 만든 옷과 장신구도 못 하게 되었다.

“잘 어울렸는데, 분홍색…….”

“옷 따뜻하게 입고, 밥 잘 챙겨 먹고.”

“허유, 들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짐도 많이 싸 줄 수 없으니.”

“시간 날 때 전서 하고.”

하후민과 팽연화가 떠나는 날까지 진화의 곁에 붙어서 아쉬움을 표했다.

독살 시도 사건으로 팽연화는 진화를 더욱더 떼어 놓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손으로 자식의 앞길을 막으며 정의무학관을 나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팽연화가 진화의 손을 주무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결국 할아버님은 뵙지 못하고 가네요.”

“허허, 원래 그분이 그러하다. 구름을 잡으러 간다 하시니, 막을 도리가 있나. 네가 보고 싶어 했다고 전해 드리마.”

“예. 백부님, 백모님, 아버지, 어머니,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게 계세요. 일 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무탈하게 다녀오너라.”

“네 가는 곳이 전쟁터다. 그것을 잊지 말거라.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어른들의 당부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인 진화가 마침내 말에 올랐다.

올해 남궁세가 출신의 관도생들 중 종남파로 가는 사람은 진화와 남궁구, 단둘뿐이라.

먼저 말에 올라 기다리는 남궁구를 보며, 진화도 말에 올라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전하고, 진화와 남궁구가 말을 달렸다.

어른들 모두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었다.

* * *

진화와 남궁구는 산길을 달려 신양으로 갔다.

중간중간 노숙을 해야 하는 첩첩산중 험한 산길이었지만, 진화는 조금 더 본가에 머물기 위해서 최단 거리를 택했다.

“신양의 달소항에서 전부 만나기로 했으니까 서둘러야겠어.”

“현오도 그리로 오는 건가? 숭산에서 달소항이면, 오히려 돌아오는 길이지 않나?”

“우리 땡중은 한시라도 소림을 벗어나고 싶은가 봐.”

“…….”

진화는 숙청관을 떠나는 날까지 고기만두를 품에 안고 있던 현오를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노숙을 해야 하는 밤.

달빛도 들지 않는 깜깜한 어둠에 말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며, 진화와 남궁구가 자리를 잡았다.

정의무학관 삼 년.

남궁구가 능숙하게 불을 피우고 노숙을 준비하고 진화가 육포와 곡물 가루를 풀어 저녁거리를 마련했다.

주변으로 풀벌레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서늘한 밤기운을 뜨끈한 국물로 달래는데, 진화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태상가주와 가주님을 독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푸-웃! 아뜨뜨뜨뜨!”

놀란 남궁구가 뜨거운 국물을 뱉어 냈다.

“아, 뜨거라. 혹시…… 내가 널 암풍단에 밀고해야 하는 상황이냐?”

“고혼암풍단에 네가 밀고하면 통하고? 단주 직통인가?”

“…….”

진화의 반격에 남궁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혼현마제가 나와 스승님을 노렸어. 그런데 그게 같은 목적으로 둘을 노린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의천검주를 노리는 건 남궁세가의 전력을 약화시킬 목적이고, 널 노리는 건 남궁세가의 약점을 건들려는 목적이니까. 성격이 다르지.”

“그런데 둘 다 단숨에 목숨을 끊어 놓는 극독은 아니었어. 왜일까? 게다가 태상가주님과 가주님, 우리 아버지에게는 어떤 시도도 없었어. 이상하지 않아?”

“오래오래 두고두고 아파라, 그거겠지. 성질 나쁜 독거노검이나 너나, 원한 사기 딱 좋잖아.”

“…….”

진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남궁구를 보았다.

혓바닥을 쓸며 성의 없이 대답하던 남궁구가 진화의 눈길을 느끼고 뜨끔했다.

“그, 그러니까 아무래도 가주님이나 네 아버지는 접근이 어렵지 않나? 너나 의천검주님에 비하면 말이야. 총관이나 부관이 내내 곁에 붙어 있고, 늘 사람과 함께하니까.”

“그렇긴 하지…….”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사람.

남궁구의 말처럼 제왕검이나 남궁가주 그리고 남궁경의 곁에는 늘 사람이 함께했다.

남궁세가의 모든 사람들이 남궁진휘나 진혜, 진화에게 쏟아 내는 애정은 사실 그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그들이야말로 남궁세가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그들 또한 남궁세가의 모든 사람들을 애정했다.

제왕검과 남궁가주, 남궁경에게 약점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진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면, 내가…….’

진화가 온갖 잔인한 생각들을 할 때.

남궁구가 한숨을 쉬며 진화를 불렀다.

“걱정 마라. 그분들이 네 생각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신 분들이 아니야.”

“…….”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약점도 된다만, 강점도 된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바꾸지 않는 한, 불순한 하나가 그분들을 건드릴 순 없으니까. 사람이 제일 큰 방패라고.”

“아……!”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크게 탄성을 뱉었다.

남궁구의 말처럼, 이전 생에선 남궁가주의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다.

남궁진휘가 죽고 남궁도가 권력을 잡으면서, 태상가주와 가주의 주변으로 사람을 교체하고 중요한 자리를 제 사람들로 채웠다.

게다가 남궁구.

남궁진휘와 함께 남궁구가 죽고, 남궁구의 아버지인 창서각주 남궁희가 세가를 떠났었다.

만약 남궁도가 제 사람들로 교체를 한 것이라면, 지금은 그럴 일이 사라졌다.

게다가 남궁구가 살아 있으니, 남궁희가 남궁가주의 곁을 떠날 일도 없을 터였다.

어찌 보면 진화로 인해 시작된 변화였다.

“다행이네, 네 아버지가 곁에 있어서.”

진화가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남궁구가 더 펄쩍 뛰었다.

“야, 너 대체 뭘 아는 거냐? 어디까지 아는 거냐고! 아니, 말하지 마라! 제발 우리 아버지한테 들키지만 마!”

“그걸 알아내는 게 네 아버지의 특기 아니신가?”

“아악! 그거!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남궁구의 말에 진화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 *

그 시각.

남궁구의 아버지이자, 창서각주 남궁희가 남궁가주를 찾았다.

남궁희가 남궁가주의 책상에 문서를 올려놓자, 문서를 본 남궁가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네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가는데, 나와 보지도 않나?”

“그놈은, 이공자 아니었으면 귀찮아서 집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허허, 구는 그렇게 안 봤는데, 무심한 아들이구먼.”

“진짜 안 오신 분들도 있는데요. 진혜 아가씨는 그래도 이공자가 계실 때는 좀 오시는가 싶더니.”

“…….”

그래, 내 주제에 누굴 비웃겠나.

남궁가주가 창서각주 남궁희의 말뜻을 알아채고, 그를 힐끗 째려보았다.

그러다 돌연 눈빛을 달리했다.

“……안상범이 접근했다고?”

“돌아오자마자 찾은 듯합니다.”

“남궁세가 도박장과 투기장을 뒤엎자마자 청랑(靑琅)이 돌아와. 돌아온 청랑이 남궁문의 여식과 만났다라……. 하하하하하! 참, 모르는 사이, 쥐새끼들이 많이 생겼군.”

남궁가주의 눈빛에 서슬 퍼런 살기가 번들거렸다.

“의천검주를 노린 놈들이 아버님과 내겐 접근도 안 해서 이상하다 싶더니…….”

“남궁문의 여식이라면 한 총관의 손녀이니, 그대로 자란다면 어렵지 않게 창천원에 들었을 겁니다.”

“남궁문도 좋게좋게 끝이 났고 말이지. 허허. ……이래서 너그럽기가 참 힘든 자리야.”

“죽일까요?”

남궁가주의 낯이 서늘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남궁희가 덤덤하게 물었다.

그에 조금 생각하는 듯하던 남궁가주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지켜만 보게. 한 총관의 손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안상범 그놈도, 숨은 쉬게 숨통만 열어 놓자고.”

“존명.”

남궁가주의 말에 간결하게 답한 창서각주 남궁희가, 천연덕스럽게 다음 문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내 숨통도 열어 줄 생각 없나?”

남궁가주가 떨떠름하게 물었지만, 남궁희의 표정엔 미동도 없었다.

“신양에서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패천 살각 출신 흉곡(匈哭) 흑사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는군요.”

“흑사 놈이 그곳에? 살각에서 나온 건가?”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생존자죠. 흑사문을 열고,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화에게 호위를 붙여야겠나?”

“은밀하게 호위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아닐세, 최대한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해. 경험을 쌓으러 나갔는데, 위험해 보인다고 전부 막아 버릴 순 없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남궁가주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창서각주 남궁희도 남궁가주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문서를 내놓았다.

원래 문서가 치워졌는지도 모를 만큼 쉴 틈 없는 손놀림이었다.

 “또?”

남궁가주의 원망스러운 눈길에도 남궁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남궁도에게 동조한 문파들 명단입니다.”

“……전부 색출한 것인가?”

남궁가주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만년설보다 차고 시린 눈이, 문서에 적힌 명단을 읽어 내렸다.

“장부에 표식으로만 남겨 두어서 증좌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곧 모두 밝힐 수 있을 듯합니다.”

“쥐 새끼들 번식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인간의 욕심만 할까. 음흉한 낯으로 웃으면서 손 내미는 그치들을 보자면 구역질이 끓어올라!”

남궁도의 손을 잡은 문파나 세가 중 몇몇은, 남궁도의 외가와 연계된 곳이라.

그들이 제왕검의 그늘에서 제 안위를 지키고, 이제 와서 남궁도의 손에 남궁세가를 넘기려 한 것이다.

남궁가주는 고작 이십 년도 되지 않아서 제왕검에게 등을 돌린 세력에 진심으로 분노했다.

“전부 죽인들 또 생길 걸세.”

“그렇다고 그냥 둘 순 없지요.”

“그래, 쥐 새끼만도 못한 인간들의 욕심이라면 티끌만큼도 채워 줄 수 없지. 더는 시간 끌 필요 없네. 증좌를 찾지 못한 곳은 그냥 죽여 버리게. 그들의 목이 증거가 되어, 남은 자들은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을지 지레 겁을 먹을 걸세.”

“충.”

남궁가주의 냉엄한 명령에, 창서각주 남궁희가 두말할 것 없이 명을 받들었다.

세가 회의에 참석한 자들에게 증좌와 함께 그들의 목을 보이면, 그것이야말로 발뺌하지 못한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때부턴 겁을 먹은 쥐새끼들이 누가 먼저 입을 열지 눈치를 보게 될 것이라.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다음 세가 회의는 볼만하겠군.”

남궁가주가 싸늘한 비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냉엄함과 비정함이야말로, 대전쟁에서도 남궁세가를 굳건하게 세워 올린 것이었다.

* * *

신양 달목항.

진화와 남궁구가 달목항 근처의 작은 객잔에 발을 들였다.

“여어--!”

진화와 남궁구가 객잔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일 층 식당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현오!”

“여어, 이 땡중!”

진화와 남궁구가 반갑게 현오에게 갔다가, 우뚝 섰다.

“……혹시 우리 것도 미리 시켜 놨나?”

“하하하하, 꿈도 꾸지 말게.”

남궁구의 물음에 현오가 웃으면서 단호하게 그릇을 제 앞으로 당겼다.

그릇들이라고 해야 할까.

고기 요리로만 무려 다섯 접시였다.

그것을 보며 진화와 남궁구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도 오랜 산중 노숙으로 배가 고팠기에, 얼른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어허! 이럴 거야? 겨우 이런 일로 생사 대전을 벌일 참인가!”

현오가 펄쩍 뛰며 버럭 했다.

그러자 남궁구가 남은 손으로 진화를 가리켰다.

“도녀님, 동 마나.”

우리 도련님은 돈이 많다.

남궁구의 말 한마디에 현오가 반색하며 손을 들었다.

“하하하! 여기요, 점소이-!”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말 한마디 없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늘었다.

“그거 내 거야, 팽수.”

“팽신이다.”

팽수와 팽신 형제도 합류해서, 말없이 음식부터 찾았다.

그 옆에는 남궁경옥을 보고 온 남궁교명도 자리해 있었다.

“아! 드러! 정말 돼지같이 이럴 건가?”

“앵 겅데! 애!”

“아무리 네 것이라도 그렇지!”

남궁교명은 뭉개진 발음으로 외치는 현오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서, 그의 앞에 흘린 음식을 닦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지도 않은 두 명의 인영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들어왔다.

“진화 공자--! 내 그대와 함께하기 위해, 정의맹의 어두운 뒷구멍으로 내가 가진 배경과 인맥, 미모와 재력을 전부 동원했다오!”

“아악! 이 웬수!”

나하연이 당당하게 불법적인 청탁이 있었음을 밝히며 진화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하연의 인력에 끌려간 당혜군도 버럭버럭하며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앉았다.

이로써 종남파로 가는 여정에 참가하는 모든 동기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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