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58)화 (158/425)

남궁마제

아름다운 돌 진(瑨) 칼날 번쩍거릴 화(錵) : 명문이란(1)

신양 끄트머리의 작은 항구, 달목항.

객잔도 하나밖에 없는 이곳에, 어제 걸신이 들었다는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들은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도, 다른 걸신과 접신 중이었다.

“쩝쩝. ……이거 개안네! 마이썽!”

“제발 입에 있던 건 삼키고 말하라고! 대체 소림은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이야?”

“꿀-꺽. 후, 자네도 오백 명 넘는 사형제들과 함께 커 봐야 내 마음을 아네. 백팔 명으로 줄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나?”

현오가 아찔한 추억을 떠올렸다.

형이 한 명 있지만 자기 중심으로 컸던 남궁교명은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건 그렇다. 형제가 다섯만 되어도 치고받고 싸운다.”

“가끔 형님이 귀찮다.”

팽수와 팽신이 격하게 공감을 표하다가, 서로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당혜군이 심드렁한 얼굴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배 속에서 죽여 버리지 그랬어요.”

일순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왜요? 쌍둥이들은 종종 배 속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잡아먹기도 해요. 그때 처리하지 못하면, 세상에 나와서 고생이잖아요?”

“…….”

당혜군의 말에 일행 모두 입을 다물었다.

사천당문의 치열한 후계 경쟁에 대해서는 모두 들은 바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당혜군이 오빠인 당혜평을 해치우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거나 독살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듣기엔 너무 의미심장한 말이군.”

남궁구가 찜찜한 얼굴로 들고 있던 만두를 보았다.

당혜군이 현오를 처리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독살 시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행의 식사 속도가 현격하게 느려졌다.

“그런데 우리, 달소항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

“노숙하다 겨우 쉬러 왔는데, 다들 만난 거지.”

“근처에 객잔이 여기뿐이라.”

“모두 쥐꼬리만 한 인내심이 꼭 닮았군.”

남궁구의 질문에 남궁교명과 팽수, 팽신이 차례로 대답했다.

사람이라는 게, 개개인이 꼭 같은 사람은 없지만 가끔 놀랍도록 비슷할 때가 있었다.

가령, 힘들 땐 밥과 잠을 찾는 것 말이다.

그때, 진화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현오는 달소항보다 달목항이 더 멀지 않나?”

“하하하하, 마음의 부처는 가까울수록 좋고, 소림은 멀수록 좋은 법이지.”

“……땡중.”

결국 약속보다 일찍 만난 일행은 배를 타고 달소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 * *

작은 나루터나 다름없은 달목항.

열 명 남짓 태울 만한 작은 배들이 몇 대 묶여 있었다.

“달소항 가는 배 있소?”

“한 사람당 닷 푼이오. 저쪽 배를 타면 되오.”

남궁구의 물음에 입구에 있던 사내가 손을 내밀며 제일 바깥쪽 배를 가리켰다.

껄렁껄렁한 태도와 말투. 

남궁구가 일행의 수대로 돈을 꺼내며 물었다.

“배 주인이 한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고, 이 근방의 뱃삯 관리만 흑사문에서 하고 있소.”

남궁구의 질문에 점원인 줄 알았던 사내가 대충 답했다.

그 모습에 남궁구가 슬쩍 사내를 살폈다.

거칠게 잘려 나간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

항구에서 흔히 보이는 짐을 나르는 거친 선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풀어 헤친 앞섬 사이로, 단단한 근육과 칼자국으로 보이는 상처가 눈에 띄었다.

“왜요?”

“아, 아닙니다. 여기 돈 있습니다.”

시비조로 묻는 사내에게, 남궁구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돈을 주었다.

“이상하군.”

“짐꾼들보다 험상궂은 관리자들이 왜 필요한 거지?”

“흑사문은 어디지? 들어 봤나?”

“이 근방에 새로 생긴 작은 문파예요. 사파 영역이니 사패천 소속일 수도 있어요. 조금 이상해도 괜한 소란은 피하도록 하죠.”

뒤에서 일행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정의맹과 협력 관계인 사패천 소속이라면, 분란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었다.

당혜군의 말에 동의한 일행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배로 향했다.

“달소항으로 가는 배요?”

“아아. 타.”

이번엔 아예 반말이었다.

예의 없는 선원의 고갯짓에, 일행이 발끈하려는 남궁교명을 붙잡고 우르르 배에 올랐다.

“왜 말리는 건가! 당장 저 무례한 놈을 입버릇을 고쳐 놓을 수 있는데!”

“그러다 여기 선원들이 다 덤비면, 배는 누가 몰아? 참아.”

“……쳇.”

남궁구의 말에 남궁교명이 혀를 차며 화를 참았다.

남궁구의 충고를 듣는 남궁교명이라니.

삼 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눈깔을 뽑아도 배는 몰 수 있지 않을까?”

“후우, 미친년아, 그냥 앉아.”

살벌한 눈으로 묻는 나하연을 당혜군이 억지로 끌어 앉혔다.

하지만 당혜군도 지금의 상황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항구에 나타난 순간부터 배에 오른 뒤까지, 내내 불쾌한 시선들이 일행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저기 봐라.”

남궁구가 가리킨 곳을 본 진화가 구석에 구겨지듯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이들을 보았다.

젊은 여자와 남자 들은 양 손목과 발목이 줄에 묶여 있었다.

“……팔려 가는 건가 보군.”

안타까운 광경이었지만, 인신매매는 물론 공공연하게 노예시장까지 열리는 세상이었다.

노예는 다른 이의 재산이라, 함부로 끼어들 일도 아니었다.

“기분 나쁜 배에 탔군.”

진화가 줄에 묶인 이들에게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에도 선원들이 진화 일행을 힐끗거리며 저들끼리 킬킬대고 있었다.

* * *

뱃길로 고작 한 시진 거리.

달소항은 달목항과 분위기가 달랐다.

“여기! 여기로 실어!”

“울목! 울목으로 가는 사람들 다 타시오! 곧 출발이오!”

수십 명은 거뜬히 태우고도 짐을 실어 갈 만큼 큰 배가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아아아, 시끄럽네.”

“원래 항구는 이런 거지.”

“이렇게 보니, 달목항은 점점 더 이상한데? 배도 이상했고.”

남궁교명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큰 소리와 바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달목항의 삭막한 모습과 음산했던 배의 분위기가 얼마나 이상한 것이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조사를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관도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현오의 말에 당혜군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영 찜찜하지 않아? 저 새끼들, 아직도 우릴 보고 있다고.”

남궁교명이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한쪽을 힐끗거렸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선원들이 젊은 남녀를 옮기면서도, 진화 일행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달소항에서 만난 선원들의 일행인 듯 보이는 자는, 노골적으로 진화 일행을 살피고 있었다.

“흑사문이라고 했던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면 뭔들 못해.”

남궁구가 냉소하며, 선원을 비롯한 흑사문도들을 비웃었다.

“남궁세가 지부로 가자고. 시간이 있으니까 좀 쉬다가 사흘 후에 출발하지.”

“아아.”

진화 일행이 항구를 떠날 때까지도, 흑사문 소속 선원들의 눈길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항구를 벗어나는 진화 일행을 보며, 그들이 타고 왔던 배의 관리자인 석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어디로 가는지 밑에 놈을 보낼까요?”

석도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하지만 맞은편에 있던 중년 사내는 생각이 좀 달랐다.

“그래서, 어쩌게?”

“아, 부장님도 봤잖아요! 사내놈들도 튼튼하지만 계집들이 어찌나 깔쌈한지. 낙양에 팔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그놈…… 봤죠?”

석도가 눈빛을 번뜩였다.

마지막 사람을 떠올리자, 중년 사내도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네놈이 하닥거릴 인물이긴 하더군. 오랫동안 이 짓을 하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었어.”

중년 사내, 우대삼은 달소항에서 노예 장사만 이십 년이었다.

지금도 이 근방 미녀란 미녀는 다 긁어서 낙양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런 우대삼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인물이라.

“사화 제일미라는 홍련 초서비에 비견할 만한 외모였어.”

너무 귀해 보이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귀한 것일수록 주인이 있기 마련이니.

괜히 주인 있는 것을 건들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물론 주인이 없어도 문제였다.

귀해 보이는 것이 주인도 없다면, 스스로를 지킬 재간이 있다는 말이니까.

“왜요? 무림인들일까 봐요? 정파 제일 미녀라는 천상화는 면산에 있지 않습니까? 청명화나 독심화는 정의맹에 있을 거고! 사내놈들도 그렇고 계집들도 그렇고. 딱 행색이 고급진 게, 어디 부잣집에서 외유 나온 것들입니다. 분명해요! 아까 그놈…… 그놈 하나만 팔아도, 계집들 열 배, 아니 백 배는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석도가 흥분해서 역설했다.

눈빛은 벌써 탐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대삼은 끝까지 신중했다.

“문주님께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무, 문주님께요?”

석도가 얼굴을 구겼다.

말투에서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우대삼은 그런 석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귀한 것일수록 벌레도 많이 끓는 법이다. 우리끼리 해 먹었다가 탈이라도 나면? 그땐, 벌레가 아니라 문주님 손에 죽을 걸 걱정해야 할걸.”

“하, 하긴 그렇죠.”

문주라는 말에 석도도 잠시 주춤거렸다.

중간에 돈을 삥땅 치다 걸린 놈들이 문주의 손에 사지가 잘리고 목이 돌아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던 터였다.

문주는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는, 그리고 돈에 환장한 괴물이었다.

“일단 저는 저놈들이 어디 들어가는지 봐 놓을게요. 부장이 가서 문주님께 보고하세요.”

“알았다.”

“저놈을 팔면, 문주님이 반을 가져가도 남는 게 서너 배는 될 겁니다!”

“아, 알았다니까 넌 어서 저놈들 뒤나 쫓아 봐.”

“예.”

결국 우대삼 또한 석도의 설득에 넘어갔다.

아니, 애초에 넘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 또한 탐욕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우대삼이 석도보다 나았다면 노예시장에서 이십 년이나 발이 묶일 이유가 없었다.

그가 석도보다 나은 점은, 목숨이 위험한 일에서는 한 발 뺄 줄 안다는 것뿐이었다.

“미친놈. 문주님 몰래 뭘 팔아? 저놈이 크게 데여 봐야 인생 뜨거운 걸 알지.”

우대삼은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석도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오랜만에 큰돈을 만질 생각에, 우대삼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

* * *

달소항은 황하의 큰 지류에 있는 큰 포구였다.

본래는 달소 포구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바다에 인접해서 큰 상단의 배까지 오가는 곳이라 사람들이 항(港)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크고 작은 해상 상단의 본부가 있는 곳인 만큼, 중원에서 손꼽히는 해상 상단을 가진 남궁세가 또한 이곳에 지부가 있었다.

“도련님--! 어이쿠,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청해상단을 맡고 있는 금판수호 남궁범이 활짝 웃으며 일행을 마중 나왔다.

남궁경옥을 대신해서 이장로가 된 남궁범은 남궁교명 또한 크게 환대했다. 

그는 여전히 상단 일을 하는 남궁교명의 형이나 가족들에게도 후한 대우를 해 주는 호인이었다.

게다가 한 달 전 세가 회의에서의 일로 큰 감명을 받은 남궁범은, 진화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진화 일행은 남궁범의 환대를 받으며, 남궁세가가 운영하는 객잔을 통과해 지부 장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화 일행의 행선지를 확인한 석도는 기쁜 얼굴로 흑사문으로 달려갔다.

* * *

그사이, 우대삼은 흑사문주에게 석도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천하제일미?”

흑사문주이자 흉곡 흑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눈썹 옆에 있는 흑사 문신의 혓바닥이 같이 꿈틀거렸다.

“예. 같이 있는 계집들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사내들은 그렇다 쳐도, 그 셋만 잡아다 팔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계집들이라…….”

“예, 예! 기녀 팔이만 이십 년입니다. 계집들은 낙양기루에 최고급으로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놈은, 꿀꺽, 따로 경매에 붙이면 못해도 금관은 만질 것입니다.”

“금관? 허!”

흑사가 우대삼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우대삼이 바보같이 따라 웃으려는 찰나.

“허어어억!”

흑사가 우대삼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헙!”

흑사와 눈을 마주친 우대삼은 숨을 들이켰다.

흑사의 살벌한 눈빛에, 우대삼은 온몸의 힘이 풀려 바지에 지려 버릴 것만 같았다.

“야, 내 말이 우습냐?”

뱀이 기는 듯 조용하고 까칠한 목소리.

순식간에 우대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커, 커헙!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시키지도 않은 일에 한눈을 팔지?”

“소, 송구…… 컵…… 추, 충심에서…… 제발…… 사, 살려…… 헉!”

우대삼의 애원에, 흑사가 우대삼의 멱살을 던지듯 놓았다.

우대삼은 그보다 빠를 수 없는 속도로 바짝 엎드렸다.

“내가 당분간 조건에 맞는 놈만 고르라고 했잖아.”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장사는 본래 제일 큰 물주를 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몇 번을 말해!”

“으에엑! 그, 그렇습니다! 우둔한 이놈이 잊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흑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우대삼이 땅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납작 엎드린 우대삼의 모습에 조금 화가 풀린 듯, 흑사가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것보다 제물은 어찌 되었어?”

“그, 그게 아무래도 이번 제물은 청해상단 남궁범의 여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궁범의 여식?”

“요번 초하루에 남궁범의 여식이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흐음. ……그래?”

우대삼의 보고에, 흑사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남궁, 남궁이라…….”

위험한 이름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흑사가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위험한 건, 돈을 많이 받아야지. ……금관, 금관이 좋겠어. 흐흐흐.”

얼굴에 새겨져 있는 흑사가 기분 좋은 듯 꿀렁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