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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60)화 (160/425)

남궁마제

아름다운 돌 진(瑨) 칼날 번쩍거릴 화(錵) : 명문이란(3)

“나, 남궁금영?”

“뭐야? 그 절세미인이 아니야?”

“절세미인이 없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하지만 침상에 다가온 석도를 비롯한 사내들은 당황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남궁금영과 나하연, 당혜군이 동시에 눈을 떴다.

퍼-억!

“크억!”

석도는 눈앞이 번쩍하는 것을 느끼며 물러섰다.

매서운 주먹이 석도의 코를 때린 것이다.

“방금 말, 어쩐지 기분 나쁜데.”

남궁금영이 침의 차림으로 몸을 일으키며 검을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군.”

“뭐? 여자가 셋인데 절세미인이 없어? 너흰 눈도 없어?”

나하연과 당혜군이 무기를 챙기고 섰다.

석도는 코피를 흘리는 와중에, 나하연과 당혜군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팔아먹을 계집들이 가까이서 보니 훨씬 예뻤던 것이다.

그런데 훨씬 사납기도 했다.

“무, 무림인들이야?”

“어떡하지?”

“어쩌긴, 일이 이리된 거, 셋 다 데려가!”

당황하는 일행 사이로 석도가 소리 질렀다.

“무림인이라곤 하지만 계집만 겨우 셋이다. 이쪽은 무려 열 명이라고. 세 명씩 잡아!”

어차피 흑도문주의 수하들이 남궁금영을 납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석도를 비롯한 다른 흑도문도들은 남궁세가 무사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소란을 피울 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이 계집도 챙기고 남궁금영도 데려가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일은 석도의 예상과 한참 벗어났다.

“데려간다고?”

“잠자던 본인을 깨운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마!”

남궁금영과 나하연이 석도와 그 일행 사이로 뛰어들었다.

남궁금영의 검술이 예상보다 뛰어난 것도 그렇지만…….

퍼---억!

“크어어억!”

퍽! 퍽!

“우아아악!”

“고, 고수다!”

나하연은 겨우 힘 좀 쓰는 선원 나부랭이들로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라곤 여기 셋이 전부인데, 절세미인이 없어? 이 독심화 당혜군이 네놈들 껍데기를 벗겨 주마!”

“도, 독심화?”

석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진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복면인들이 일이 잘못되었다 느껴지는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그것으로 진화의 품에 있던 인질이 쓰러졌다.

그리고 진화의 눈길이 복면인들을 향했다.

“흑도인가? 무슨 의도로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차차 알아보면 될 일이고.”

“뭐라는 거야!”

쉐에에엑---!

흑사문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우대삼이나 석도와 같이 배를 이끌고 거래를 하는 상인과 왈패 집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흑사문주인 흑사가 살각에서 나올 때 데려온 수하들로 이루어진 사호위(蛇扈衛)들이었다.

진화에게 온 이들은 흑사문주가 부리는 사호위들이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할까.

챙-!

“크억!”

진화는 사호위가 휘두른 검을 막고, 자신의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검이 막힌 사호위는 손을 타고 흐르는 뇌기에 놀라 검을 놓쳤다.

퍼-억!

진화의 주먹이 검을 놓친 사호위의 턱을 때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움직여 남은 인원들을 공격했다.

퍽-! 퍽!

“끄아아아---!”

기혈을 짚어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진화는 차례로 명치를 때리고 경동맥을 내리쳤다.

두개골을 울려서 기절시키고, 검을 든 자는 손목을 꺾어 놓았다.

“사파의 부스러기 따위가 감히!”

진화가 냉정하게 쓰러진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남궁금영을 노리고 온 자들이라.

만약 오늘 자신이 이곳에 묵지 않았더라면 남궁금영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 아무리 신양이 사파의 영역이라 하나, 남궁세가의 청해상단 본부가 있는 곳이거늘. 사패천도 피해 가는 곳에 고작 사파 부스러기 따위가 남궁을 노려?’

진화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도 됩니다.”

진화의 허락이 있고, 남궁범과 남궁구 그리고 창궁무애단 소속 무사들이 들어왔다.

“도련님-! 괜찮으신…… 헉!”

남궁범이 침의를 입은 그대로 들어왔다.

“이자들이 여기도 들었습니까?”

남궁범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호위를 보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진화는 풀어헤친 머리칼에 흰 소복 같은 침의, 거기에 피까지 튀어 있는 남궁범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전부 끌어내라!”

“충!”

남궁범이 살벌한 얼굴로 쓰러진 사호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궁무애단 무사들이 순식간에 그들을 끌고 사라졌다.

“밖이 소란스럽던데, 피해는 없습니까?”

“다들 밤잠만 깬 게지요.”

남궁범의 대답에 진화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청해상단에 창궁무애단 소속 무사들만 있었다면 모를까.

표행을 나가고 장원에 남은 이들은 고작 열 명 남짓이니, 갑작스러운 기습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하필 장원에 진화 일행이 있었으니.

진화를 제외하고도 하나같이 중원에 내로라하는 명문 대파 출신으로, 무림에서도 손에 꼽히는 신진 고수들이었다.

소도시의 작은 사파로선 평생 감히 보기도 힘든 초절정의 고수들.

현오와 남궁교명, 팽가 형제의 활약으로 흑사문의 침입자들은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모조리 잡혔다.

남궁범의 말처럼 괜한 소란만 있었을 뿐,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하는 순간, 진화의 눈에 들것에 실려 나오는 이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퍼렇게 물든 얼굴로, 콩 벌레처럼 몸을 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 모두 상체와 하체 사이의 어떤 부분을 감싸고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아…….”

“왜요? 아…….”

“왜 그러지? 아! 우리가 타고 온 배의 선원들이다. 우리 뒤를 따라왔다가 공교롭게 시간이 겹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흑사문 소속이었는지. 어쨌든 여자들 방에 가서 절세미인을 찾았다더군.”

“아아.”

찾는 사람이 남궁금영과 나하연, 당혜군 중에 있었다면, 굳이 절세미인을 찾을 이유도 없었으니.

둔한 팽가 형제도 눈치챌 일을, 나하연과 당혜군이 모를 리 없었다.

“확- 씨, 시간만 있었으면 뼈를 발라 버렸을 텐데!”

투덜거리는 당혜군과 함께 나하연과 남궁금영이 밖으로 나왔다.

“안 죽은 게 용하네.”

남궁구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하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일행의 곁으로 온 당혜군이 진화를 째려보았다.

“이렇게 번듯한 여자들이 셋이나 있는데, 절세미인을 찾아? ……쳇.”

진화와 눈이 마주친 당혜군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솔직히 찾을 만한 미모였다.

성별을 떠나서 천상계에서나 볼 법한 인물이라.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기에 더 화가 나는 것이었다.

나하연은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진화에게 다른 쪽을 내세우기로 했다.

“진화 공자, 난 신체 건강하고 생식기능이 매우 양호한 여성이오. 하루 세 번 규칙적으로 싸고, 다달이 하는…….”

“꺄-악! 뭐라는 거야! 이 부끄러움도 없는 년아!”

당혜군이 비명을 지르며 나하연을 구석으로 밀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진화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곧 터질 것 같았다.

“흠, 흠! 장로님.”

진화가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남궁범을 찾았다.

“흑사문의 기습입니다. 이전에 그들과 부딪힌 일이 있습니까?”

“글쎄요. 놈들과 부딪히려면 한도 없겠지만, 사실 일하는 영역이 완전히 달라 마주칠 일도 잘 없습니다.”

“그렇다면 놈들이 노린 사람이, 따님이 맞는 듯합니다.”

“흐음.”

진화의 말에 남궁범이 얼굴을 굳혔다.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수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흑사문으로 가 보지요.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화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남궁범은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중요한 표행으로 지금 상단에 창궁무애단 무인들이 고작 열 명 남짓입니다. 놈들도 그것을 알고 일을 벌인 것일 겁니다.”

남궁범이 분한 듯 말했다.

그에 진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고작 흑사문을 상대하는 데 무사들이 필요합니까?”

“그것이…… 다른 놈들이면 모를까, 흑사문주 흉곡 흑사와 사호위의 대장인 조상호는 조금 다릅니다. 두 놈 모두 살각 출신으로, 특히 흑사는 살각의 시험을 통과하고 정식으로 퇴곡한 놈입니다.”

남궁범이 두 놈은 조심해야 한다며 말했다.

하지만 진화는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살각이라…… 그래 봐야 사파의 부스러기들입니다.”

진화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

자신감 있는 진화의 얼굴을 보자니, 남궁범은 그제야 제가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귀하디귀한 남궁세가의 소공자.

하지만 남궁범을 세가 회의에서 감동시킨 의천검주의 제자이자, 무림에서 위명이 자자한 창천의 용이라.

진화 일행 또한 면면이 강호 무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진 고수들이었다.

표행을 다니는 저와 달리 전장으로 향하는 이들이었다.

“뱀 잡으러 가지.”

“뱀?”

진화의 뒤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당연한 듯 따라붙었다.

작게 보면 남궁세가의 일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당혜군이 제일 먼저 따라나섰다.

“어떤 뱀 새끼 눈깔이 그렇게 높은지, 이 몸이 한번 봐야겠어요.”

나하연은 자연스럽게 진화의 곁으로 가 있었고, 호전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팽가 형제와 현오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 * *

그 시각.

흑사문에도 청해상단 장원에서의 일이 전해졌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대장님, 지금 남궁 놈들이 몰려오고 있답니다!”

“남궁 놈들이? 알았다. 사호위들 집결시키고, 나는 문주님께 전하지.”

사호위의 대장 조상호가 수하의 말을 듣고 상황을 정리했다.

‘지금 남궁 놈들이 우리를 치러 올 전력이 되던가?’

조상호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남궁이 괜한 자존심을 부린 것이라 생각하며 입꼬리를 말았다.

‘남궁세가 청해상단이라고 하지만, 남궁 무사들도 없이 뭘 어쩌려고. 흥.’

조상호는 남궁범이 딸의 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라 생각하며, 문주에게로 갔다.

“남궁범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조상호의 말에 흑사문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일이 실패했다는 건가?”

“그런 듯합니다.”

“쓰-읍. 쯧. 이런 일 하나 똑바로 못하나. 병신 같은 것들.”

흑사문주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조상호가 그런 흑사문주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일단 남궁범이 오고 있다 하니, 준비를 하시지요.”

“어쩔 수 없지. 놈을 죽이고 딸자식을 데리고 뜨는 수밖에. 오히려 잘되었어. 놈을 죽이면, 남궁세가 놈들의 추적도 좀 늦춰질…….”

그때.

콰----앙!

흑사문주의 바람과 달리,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삐그덕!

“뭐, 뭐야!”

“알아보겠습니다.”

건물까지 통째로 흔들리는 충격에 흑사문주와 조상호가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조상호가 먼저 급하게 방을 나갔다.

하지만 흑사문주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기운은 뭐지?”

흑사문주는 사패천 살각의 암살자 출신이었다.

암살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상대를 파악하는 일이라.

흑사는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을 살려서, 성공할 만한 의뢰만을 받으면서 성과를 높였다.

그런데 방금의 굉음과 함께 느껴지는 기운들에서, 흑사는 최소한 저보다 강한 기운만 셋을 느꼈다.

‘이 촌구석에 나보다 강한 고수가 셋이나 왔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흑사는 무기를 챙기고 사방의 불을 껐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암살자에게 어둠 속이라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소가 되지 않던가.

흑사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저보다 강한 상대라면, 제가 죽일 수 있도록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어 내면 될 일.

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다면…….

‘그거……!’

흑사가 급하게 침상 머리맡에 있던 나무를 뜯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품 안에 넣었다.

임무에 실패했다면, 살아남아서 다시 기회를 엿보면 될 일이었다.

품 안의 책자는 흑사의 구명줄이었다.

책자를 챙긴 흑사는 수하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한쪽에 난 창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파파파파팟----!

“크아아악!”

흑사가 창을 깨고 나가려는 순간, 창이 터져 나가면서 흑사를 안으로 밀었다.

그리고 쓰러진 흑사의 뒤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네 발로 기어 나와.”

‘어, 언제?’

흑사는 목덜미를 감싸는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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