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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62)화 (162/425)

남궁마제

아름다운 돌 진(瑨) 칼날 번쩍거릴 화(錵) : 명문이란(5)

사패천은 여러 문파들이 동등하게 혈맹을 맺은 정의맹과 달랐다.

그들은 하나의 문파이자, 무림 사파 그 자체라.

귀천성이 발호하기 전, 낭아왕 한구혈이 사파 일통을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파에도 오래전부터 큰 세력을 이루던 문파나 세가 들이 있었으니.

산양초가, 살각, 구살문, 홍렬문, 흑수파. 그리고 녹림과 수로채가 그들이었다.

갑작스러운 홍랑대부 초산하의 등장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패천 홍랑대부 살인술사(殺人術士) 초산하.

그는 사패천을 지배하는 다섯 가문 중 산양초가의 대장로로, 정사연합을 이뤄 낸 사패천의 머리 중 하나였다. 아직 어린 가주를 대신해서 산양초가의 실권을 가졌다고 알려진 자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홍랑대부 초산하의 등장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남궁범은 산양에 있으면서도 초산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싫다면?”

‘히엑?’

남궁범의 두 눈이 쏟아져 나올 듯 커졌다.

이 자리에서 진화의 대답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초산하도 아닌 남궁범일 것이다.

“싫다? ……오호호호호호호!”

진화의 말을 곱씹으며, 홍랑대부 초산하가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것을 보며, 남궁범이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다.

정의맹과 사패천을 동등한 위치에 두기는 하나, 그것은 정의맹의 양보일 뿐.

양주 전체를 지배하는 남궁세가의 영향력이 사패천보다 작다 할 수 없었다.

남궁범은 그런 남궁세가의 이장로로서, 그가 가진 권력 또한 초산하보다 작지 않았다.

실제로 남궁범이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한 달 내에 산양초가를 말려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그 전에 남궁범 자신은 틀림없이 암살당하리라.

상단을 운영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 하나로 장로에 오르는 남궁범과 달리, 초산하는 중원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사파의 절세 고수였기 때문이다.

‘죽을 거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거다! 도, 도련님은 어쩌지?’

하필이면 낙양까지 가는 중요한 거래가 있어서 상단을 보호하는 창궁무애단 부단주와 무사들이 대거 자리를 비운 시점이었다.

남궁범이 걱정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양초가의 홍랑대가 빠짐없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왜 저 미친 도련님과 그 친구들은 저렇게 느긋하단 말인가!

남궁범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 * *

“호호호호호!”

웃음소리.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 웃어 대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뚝.

웃음소리가 끊기자, 눌러 두었던 긴장감이 폭발했다.

홍랑대부 초산하가 대번에 표정을 달리했다.

“남궁의 어린 공자가, 참으로 겁도 없으시군요.”

척. 척.

홍랑대가 진화와 남궁세가 일행을 향해 검을 겨눴다.

초산하의 하얀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자, 냉막한 눈빛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검은 책자는 저희들의 것입니다.”

당당한 선언.

마치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 하나를 앞에 두고 윽박을 지르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진화는 겉만 보송보송할 뿐이었다.

“산양초가의 것이라는 흔적은 없던데?”

초산하의 주장에 진화가 태연하게 반문했다.

처음부터 지금껏 반말이었다.

진화의 무례한 태도에 초산하의 옆에 있던 사내가 진화를 향해 살기를 뿜었다.

하지만 초산하는 진화의 말투보다 그의 말에 더 놀라고 있었다.

“그 안을 보신 겁니까?”

초산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화는 초산하의 곁에 있던 사내를 보며,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봤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이게 당신들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이 책자대로 일어난 납치에 대해서도 정의맹에 설명해야 할 거야.”

진화가 눈을 매섭게 빛내며 초산하와 사패천 무인들을 보았다.

아니, 위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순식간에 섬뜩한 살기가 초산하는 물론 사패천 무인들의 목덜미를 훑고 지났기 때문이다.

“네놈-!”

챙-!

결국 초산하의 옆에 있던 사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았다.

그에.

챙! 챙!

남궁교명과 남궁구가 검을 빼 들고 사내를 가리켰다.

“사파 쓰레기가 감히 뉘에게 검을 드느냐!”

“그렇다네?”

남궁교명과 남궁구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뿜자, 사내의 눈빛에도 불꽃이 튀었다.

“쓰레기? 네놈들의 입부터 찢어 죽여 주마!”

“어이쿠, 그거 겁나네.”

살벌한 사내의 경고에, 남궁구가 코웃음으로 답했다.

남궁교명과 남궁구의 눈빛에는 정파인들이 사파인들에게 가지는 경멸과 무시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파인들에게 사패천은 자신들이 어려운 때를 기회 삼아서 집 안에 들어온 도둑과 같은 존재였다.

귀천성 때문에 손을 잡긴 잡았으나, 그 이전에 사파야말로 정파의 오랜 숙적이 아니던가.

실제로 사패천이 서주와 연주 일부에 자리를 잡으면서, 정파의 많은 중소 문파를 멸문시키거나 흡수한 전적이 있었다.

현오와 나하연을 비롯한 다른 일행도, 냉정한 눈으로 홍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투까지 불사할 생각인가? 호호호, 정파 후기지수들이 듣던 것보다 훨씬 용감하군. 이를 어쩐다?’

“오랜만에 아찔하군요.”

초산하가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둘러보았다.

남궁교명과 남궁구도 그렇지만, 그들의 뒤에 있는 소림승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홍랑대를 물릴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남궁진화였다.

듣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생긴 남자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공의 수준도 예측할 수 없었다.

‘흑사가 아무리 살각의 낙오자라 하지만, 실력은 괜찮은 암살자였다. 그런 흑사를 힘도 들이지 않고 제압하다니. 어쩌면 초절정 이상이라는 소문이 사실일까?’

초산하의 시선이 진화를 파고들듯 집요하게 살폈다.

진화는 처음과 변함없는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젊은 정파 무인.

초산하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들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저 온기 하나 없는 검은 눈동자는 자신들을 죽이는 데에 망설이지 않으리라는 것.

‘으음, 너무 아무 준비 없이 왔구나. 내가 안일했어.’

일촉즉발의 상황.

“호호호호, 초명, 물러서십시오.”

초산하가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며 사내, 초명에게 명을 내렸다.

“하지만 대부님!”

초명이 반발했다.

하지만 그가 채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물러서.”

초산하가 단호하게 초명의 말을 끊어 냈다.

초명이 입술을 깨물고 뒤로 물러섰다.

눈빛은 계속해서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노려보았다.

초산하가 나서서 방금 전보다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그 검은 책자의 주인은, 오래도록 사패천이 쫓고 있는 귀천성의 인물입니다. ‘각자의 영역에 있는 귀천성 첩자는 각자가 처리한다.’ 우리와 정의맹 사이의 협약과도 무관하지 않은 바. 남궁세가의 작은 공자께서 그걸 지금 주지 않는대도, 어차피 제 손에 들어올 물건입니다.”

초산하의 말에 진화가 눈썹을 들썩였다.

그에 제 말이 먹히는 것이라 생각한 초산하가 진화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서로 괜한 힘 빼지 말고, 제게 주시지요. 대신 흑사를 넘기는 건 물론이고, 흑사문의 일도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이만큼 양보했으면 적당히 남궁세가 직계의 체면은 살려 준 것이라.

정사연합에 더 목을 매는 쪽은 정의맹이니.

초산하는 이만하면 진화가 제 손을 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또한 초산하의 착각이었다.

“잘됐군. 정의맹에 정식으로 요청하면 되겠네.”

진화는 초산하가 내민 손을 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오히려 초산하의 말이 우습다는 듯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초산하의 말은 진화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진화는 그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실 난 괜한 힘 빼는 것도 싫어하지 않거든. 그 상대가 사파라면 더욱더.”

진화는 정의맹의 입장에도 관심이 없었다.

진화의 도발에, 사색이 된 건 남궁범이었다.

‘대체 어쩌시려고!’

남궁범이 당황하며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진화의 친우라는 사람들은 이미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초산하가 매서운 눈길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분이시군요.”

사아아악----!

분노한 듯한 초산하의 기운이 진화에게 뻗어 왔다.

초산하의 기운에 진화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기세로 위협하는 거라면, 진화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진화가 땅의 음기로 뇌전을 흘렸다.

쩌-엉!

뼛속까지 시린 기운에, 초산하가 흘린 기운이 깨지듯 흩어졌다.

초산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신음은 초산하의 옆에서 터졌다.

“큿!”

진화의 한기를 견디지 못한 초명이 다리를 비틀거린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운의 조화를 깨트려 고통을 주는 건, 진화가 상대를 고문할 때에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초산하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는 어느새 초산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귀는 그쪽이 못 알아듣는 것 같군. 아니, 눈치가 없는 건가? 나는 사파와 협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흑사문? 허!”

진화가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파의 부스러기도 못 되는 뱀 새끼가 남궁세가의 담장을 넘은 순간부터, 놈의 목숨은 남궁세가의 것이다. 만약 흑사문이 사패천 소속이라고 주장하는 거라면, 사패천 또한 남궁세가의 담장을 넘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진화가 초산하를 위협하듯 조용히 살기를 풀어 내며 말했다.

아름다운 얼굴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눈동자.

하지만 초산하는 그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향기 없는 모란이 독을 뿜는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그러했다.

진화는 사패천을 향해 모골이 송연한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들은 이전 생에도 남궁세가를 방패삼아 숨어 있다가, 남궁세가의 몰락 이후 보란 듯이 그걸 이용하지 않았던가.

초산하는 이리저리 재고 계산했지만, 진화는 그러지 않았다.

진화는 처음부터 초산하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도, 그와 협상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러날 것인가, 죽을 것인가.

진화가 초산하에게 내준 선택지는 단둘이었다.

“광오하군요, 공자!”

“너희 쓰레기들은 우리에게 늘 그렇게 말하더군. 본인들이 비루한 것은 생각도 않고.”

“갈! 말을 삼가, 공자. 내가 참는 건, 그대 이름 앞에 붙은 성 때문이니까.”

“그건 나와 같군. 나도 내 이름 앞에 붙은 성 때문에 참고 있어.”

“…….”

초산하의 가는 눈에서 살기가 흐르고, 진화는 그걸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마냥 집안의 권력을 등에 업은 애송이는 아니란 말이지. 오만하지만 그 이상, 뭔가가 있어. ……느껴지는 불쾌감은 소천주와 비슷할 정도구나.’

생각보다 긴 침묵과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다 결국, 물러난 쪽은 초산하였다.

“후우, 오랜만에 참으로 아찔한 공자로군요. 호호호호호.”

초산하는 어쩐지 시원하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차갑게 내려앉은 눈빛은, 여유가 사라졌다.

홍랑대부 초산하가 진화를 동등한 거래 상대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요. 그대, 정파 명문들은 어떤 것도 내주지 않는 욕심쟁이들이니까. 호호호호! 거래를 하지요. 나는 내가 쫓고 있는 자를 알려 줄 테니, 공자는 그 책장에 적인 내용을 알려 주시죠. 흑사는 우리가 데려가 심문하고, 내용은 공유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다시 서로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제가 먼저 말해야 하나요? 허, 참, 빈틈이 없는 공자군요.”

초산하가 허탈한 듯 웃었다.

-우리가 쫓는 것은 권마제 태금호입니다. 얼마 전, 일대에서 목격되었다는 말이 있었답니다.

초산하의 전음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혼현마제, 광마제에 이어 다른 마제가 나타난 것인가.

-책자에 적힌 것은 어떤 때와 시, 거기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 자세한 것은 필사본을 가져가도록.

진화의 전음에 이번에는 초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사본은 청해루로 가지러 가겠습니다.”

“그러지.”

진화와 초산하 사이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양측의 대치도 끝이 났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흑사문의 사내들을 줄로 묶어 청해상단으로 보내고, 흑사는 마비혈을 짚은 채로 초명에게 던져 주었다.

볼일이 끝난 초산하와 사패천 무인들이 먼저 물러났다.

모든 상황이 끝이 난 것이다.

한쪽에서 남궁범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때.

-호호호,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분이니 하나 더 알려 드리죠. 그 검은 책자처럼, 각 마제들마다 제물을, 납치 대상을 거래한 장부가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제물들을 본래 어디서 데려왔는지 알 수 있지요.

등 뒤에서 들린 초산하의 전음에, 진화의 눈이 커졌다.

‘……본래 어디서 데려왔는지 알 수 있다고?’

자신이 ‘광마제의 제물 출신’임을 알고 일부러 흘리는 걸까.

의심이 솟는 동시에 그만큼 진화의 눈빛도 흔들렸다.

진화의 시선이 어느새 시장 만두에 한눈을 팔고 있는 현오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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