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칼날 번쩍거릴 화(錵) : 사문을 기만한 자(4)
휘이이이----!
푸른빛이 도는 재색 매가 저를 향해 달려드는 검갈색 독수리를 보았다.
저의 뒤를 쫓아오는 검갈색 독수리와 아슬아슬할 정도의 거리에서.
삐이이익---!
매가 팍- 하고, 물을 차고 오르는 고기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매라고 생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한 바퀴를 돌아, 검갈색 독수리의 위로 올라탔다.
파닥다다닥-!
검갈색 독수리가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매는 날개를 빳빳하게 펴고 발톱에 힘을 주었다.
꽈아악!
순식간에 독수리의 목줄기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매의 동공이 좁아졌다.
짙은 혈향이 매의 본능을 자극하는 동시에, 매는 정확하게 부리로 검갈색 독수리의 눈을 찍었다.
까아아아악---!
검갈색 독수리가 비명과 함께 땅으로 추락을 시작했다.
공중에서 피가 뿌려졌다.
하지만 매는 떨어지는 검갈색 독수리를 박차고 다시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매응(魅鷹).
남궁세가의 전서를 전달하는 매 중 하나로, 매응의 매(魅)는 도깨비라는 의미였다.
매응은 천리호정단에서 오랜 시간 특별한 먹이와 훈련으로 키워 낸 새였다.
매응의 가장 큰 특징은 중원 전역을 이틀 밤낮이면 돌 수 있는 비행 능력과 하늘의 그 어떤 것도 죽일 수 있는 공격 능력이라.
상공을 나는 매응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독수리에 비해 체구도 작아, 매응은 순식간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어느 장원의 나무로 들어갔다.
“옳지. 부리에 피가 있구나. 하늘에 적이 있었구나. 수고했다. 풍족하게 먹고 푹 쉬거라.”
사내가 매응의 부리를 닦고, 다리에서 전서를 뺐다.
그리고 특별한 약재를 넣은 먹이를 앞에 놓아두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 * *
탕-!
진화가 현무단주의 책상을 내리치듯 전서를 내려놓았다.
“이건 뭔가?”
“뭐겠습니까.”
진화의 날카로운 눈빛에, 현무단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그렇군.”
“정의맹에 계신 진휘 형님의 전서입니다. 종남파에서 올라온 보고 중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양상이나 성안에서 일어나는 실종에 대해 적은 것은 없었다더군요. 게다가 저희가 오기 며칠 전에 이미, 귀천성의 납치에 대해 경고를 내려보냈다 하고요. 자세한 조사를 위해 무인들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갔어야 할 보고도 가지 않았고, 왔어야 할 명령도 오지 않았다.
“……종남파 장문인밖에 없겠군.”
현무단주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이전에 종남파 장문인과 함께 싸운 적이 있었지. 날 위해 한쪽 팔을 잃을 뻔하셨네.”
“그래서 지금도 그가 배신할 리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믿기 힘들어서…… 아니, 그래. 여전히 믿기가 힘들군.”
현무단주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정에 무르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깊은 사람.
그런 현무단주를 보며 진화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사람의 타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릇된 신념과 자기합리화보다 무서운 배신은 없었다.
겉으로 보이엔 너무 정당해 보여서, 선뜻 의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전 삶의 무수히 많은 배신이 그러했었다.
진화의 말에 현무단주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책상 한쪽에 있던 문서를 보여 주었다.
“실종자는 물론 전사자들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다시 조사했네. 적어도 현무단에 남아 있는 기록과 명단에 대해서는 말일세.”
현무단주의 말에, 진화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눈 밑이 거뭇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그때 이후 한잠도 자지 않고 뭔가를 조사한 모양이었다.
“귀천성 제물이라는 것이 걸리더군. 그래서 자네가 말한 것을 기준으로 달리 조사를 해 보았네.”
“달리 조사라면……?”
“보통 전사자는 상대와 날짜, 소속 사문에 따라 나누었는데, 그것을 다시 보았지. 동남동녀 혹은 같은 사주를 가진 자.”
“뭔가 있었습니까?”
“실종된 이들 중 신미년 기미월 계신일을 가진 자가 일곱이었네.”
“……!”
남궁금영과는 또 다른 조건.
하지만 같은 사주를 가진 이들이 무려 일곱이나 실종된 것이 적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른 마제로군!’
진화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이것으로 혼현마제와 광마제, 사패천이 쫓는 권마제 외에 새로운 제물을 원하는 마제가 또 나타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이 있었네.”
“그게 뭡니까?”
“십 년 전부터, 전체 전사자는 줄었는데 약관도 되지 않은 전사자들은 오히려 늘었더군. 이상하지 않은가? 전사자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가장 보호를 받았을 어린 무인들의 죽음은 더 늘어난 것이. 특히 남녀에 상관없이 혼전 순결을 중시한 면족 전사자들은 대부분 시체를 찾지 못했네.”
“누군가 전쟁을 이용해서 제물을 빼돌렸군요.”
진화는 가만히 현무단주를 보았다.
현무단주는 본인이 알아낸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설명하는 내내 입꼬리가 떨리고, 눈빛에는 살기가 맴돌았으니까.
“허! 그냥 봤을 때는 면족의 원한 관계를 의심할 뻔했네. 지독한 놈들! 순박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이용했어!”
현무단주가 귀천성과 그에 협조한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다.
하지만 진화는 덤덤하게 그런 현무단주를 볼 뿐이었다.
사실 진화는 누가 죽든, 누가 제물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진화에게 중요한 것은 남궁세가의 안위뿐.
진화에게 종남파 영역의 전쟁이 중요한 것은, 이곳의 패배가 곧 정의맹의 패배로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종남산으로 가시겠습니까?”
진화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결심이 섰느냐 묻는 것이었다.
현무단주가 대답 대신, 검을 쥐고 일어섰다.
“단원들을 많이 뺄 수는 없네. 몇몇 이들만 데리고 조용히 처리하지.”
“종남파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종남파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옳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전쟁 중에 종남파가 혼란스럽도록 둘 순 없네.”
다른 누구도 아닌 종남파 장문인이었다.
종남파의 내규를 살피고, 회의를 열어 징계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과정과 시간을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현무단주의 말처럼 도문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종남파가 그렇게 오래 혼란스럽도록 둘 수는 없었다.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네.”
사람이 좋긴 하지만 우유부단한 것은 아닌지, 결심을 한 현무단주는 종남파의 반발을 힘으로 누를 생각까지 한 듯했다.
“자네가 초절정을 넘었다지? 같이 가겠나?”
현무단주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직 화사하게 단풍이 만개한 종남산.
첫날과 달리, 오늘은 이 아름다운 정취를 즐길 수 없었다.
진화는 현무단주와 현무단원 다섯 명, 그리고 현오와 함께 종남산을 오르고 있었다.
“당혜군과 나하연 속에 나만 두고 갈 셈이었나? 차라리 산으로 갈 것이네!”
현오는 숭산을 제외한 산은 제 발로 오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산보다 싫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현무단주는 든든한 전력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을 반겼다.
종남파 문 앞에는 전과 같은 무인이 지키고 있었다.
“현무단주님, 오셨습니까?”
“아아, 일문인가?”
종남파 무인, 일문의 인사에 현무단주가 어색한 표정으로 알은척을 했다.
“오늘은 오시는 날도 아닌데, 어인 일이십니까?”
“아, 그게…… 정의무학관에서 오신 손님들이 보낼 것이 있다 하셔서…….”
“아…….”
현무단주의 말에 일문이 진화와 현오를 살폈다.
남궁진혜가 혼자 적진을 헤쳐 놓는 사고를 치고 간 이후로 오랜만에 받는 손님이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중원에 명성이 자자한 남궁세가의 직계와 소림의 제자라.
일문의 눈초리가 조심스러웠다.
“안으로 드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아니네,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함께 갈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아, 그렇지요? 하하하.”
“그럼, 가 보겠네. 수고하게.”
“예!”
일상적인 대화를 끝으로, 진화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전 장문인의 집무실.
현무단원들은 문 앞에 대기하고, 안으로는 현무단주와 진화, 현오가 들어갔다.
종남파 장문인 산수일권 견원이 놀란 듯 진화 일행을 맞았다.
“아니, 운해. 오늘은 오는 날이 아니지 않나?”
“긴히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음?”
종남파 장문인은 평소와 달리 딱딱한 현무단주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는 겐가? 왜 이리 심각한가?”
“전쟁 중이니, 심각하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
“아, 그거야 그렇기만…….”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공격적인 반문에, 종남파 장문인이 말꼬리를 흐리며 현무단주와 일행의 눈치를 살폈다.
“음, 그래. 무슨 일인지 들어 보지.”
종남파 장문인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현무단주와 진화, 현오에게도 자리를 권했지만, 현무단주는 선뜻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지난번 보고드려 달라 부탁한 것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 그거? 안 그래도 답신이 왔네.”
“……답신이 왔어요?”
당당한 종남파 장문인의 대답에 현무단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먼저 답신부터 보겠나?”
“그리하지요.”
현무단주가 종남파 장문인이 건네는 전서를 받아 읽었다.
그리고 잠시 뒤.
“후우.”
한숨을 쉰 현무단주가 갑자기 검을 빼 들었다.
챙-!
“운해!”
종남파 장문인이 깜짝 놀라 현무단주를 보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듯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현무단주의 모습에 더 놀랐다.
“왜 이러는 것인가!”
“왜? 지금 왜라 물었소? 나는 분명 보고서에 성안에서 일어난 실종과 귀천성 제물의 관련성에 대해 썼소. 그리고 조사단에 요청했지. 그런데 지금 이 쓰레기는 뭐지?”
“무, 무슨…… 실종? 귀천성의 제물이라니?”
현무단주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모르는 척 마시오! 보고서를 보지 않았소!”
“아, 아니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대가 정의맹에 급비로 보내는 보고서는 손도 대지 않았네!”
“그럼 이건 뭡니까!”
현무단주가 종남파 장문인이 보여 준 정의맹 전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종남파 장문인이 당황스럽고 놀란 채로 급하게 전서를 들어 읽었다.
“‘맹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조사단은 불허한다.’ ……이게 왜 문제인가?”
“왜 문제냐고? 군사부에 있는 남궁진휘는 벌써 조사단을 파견했다고 했으니까!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가짜 전서로 날 농락한 것이오! 이제까지 쭉 그래 왔던 게요?”
현무단주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종남파 장문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서 그가 느낌 배신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종남파 장문인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가, 가짜라니! 이게 가짜라고?”
“아직도 모르는 척이오? 이것 보시오! 남궁진휘가 직접 보내온 것이오!”
현무단주가 이번에는 남궁진휘가 보내온 전서를 보여 주었다.
필체부터 인장까지,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이, 이게……!”
이 자리에 남궁진화가 있었다.
그러니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굳이 의심하지 않아도 될 터.
종남파 장문인이 전서를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결단코 현무단주의 급비 보고서를 본 일이 없소.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받은 모든 정의맹 전서는 저것과 동일한 것이었소. 대체 내가 왜 현무단주를 속인단 말이오!”
“당신이 속이지 않았다고?”
“저길 보시오! 다른 정의맹 전서들이오!”
종남파 장문인 또한 흥분한 기색으로 자신의 책상을 가리켰다.
수북이 쌓인 전서와 장계.
진화와 현오가 먼저 움직여, 그가 정의맹의 것이라 한 전서들을 보았다.
“진짜잖아? 전부 같은 필체, 인장도 같은 것입니다!”
“진휘 형님의 필체와 인장이 아닙니다. 전부, 가짜입니다.”
“뭐라? 전부…… 저것이 전부 가짜라고?”
진화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현무단주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장문인과 책상에 있는 문서들을 번갈아 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손에 든 검에 힘이 빠지고, 현무단주마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전부 부군사 남궁진휘의 것이 아닌가?”
종남파 장문인이 기력을 다한 듯 힘없이 물었다.
“평생을 보아 온 필체입니다. 게다가 인장은 남궁세가 고유의 것으로, 흉내 내려 해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화가 인장이 찍혀 있는 작은 부분을 가리켰다.
“안력을 키워 보십시오.”
진화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이 진화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안력을 집중해서 보자 붉은 인주가 찍힌 부분에 매우 정교한 수준으로 남궁(南宮)이 새겨져 있었다.
“남궁세가 직계들이 인장을 만들 때 각자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입니다.”
“……허! 그럼 저 많은 것은 정의맹이 아니라면 다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종남파 장문인이 허탈한 동시에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책상 위에 있는 문서들을 가리켰다.
현무단주도 혼란스러운 눈으로 답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보던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면 되겠군요.”
진화의 말에 놀란 종남파 장문인과 현무단주, 현오가 기감에 집중했다.
그러자 태평전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종남파 장문인이 모두를 속이신 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장문인을 속인 것이겠지요.”
종남파 무인들이 태평전으로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