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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70)화 (170/425)

남궁마제

권위를 떨칠 진(震) 따를 화(化) : 남궁이 없다는 건(3)

“죽어라-!”

휘-잉.

살이 피둥피둥 찐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양쪽에 가시가 박힌 철구를 사슬로 연결한 유성추를 힘차게 휘둘렀다.

하지만 현무단주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칼을 돌려 유성추를 쳐 냈다.

스스슷-!

현무단주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유성추를 휘두르던 상대의 왼팔이 피를 뿜으며 떨어져 나갔다.

현무단주 정도의 고수가 유성추 한쪽이 바닥에 처박힌 후 돌아오는 틈을 놓칠 리 없었으니.

어깨부터 붉은 피와 허연 뼈, 누런 지방이 깔끔하게 도려내졌다.

“끄아아아아악---!”

사내가 돼지 멱을 따는 듯 괴성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백열문주의 최측근으로, 백열사문(白悅四門)이라 불리며 사람을 사냥하고 다니던 공포의 대상도, 결국 고통과 죽음의 공포 앞에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내 팔! 내 팔이!”

사내가 이성을 잃고 떨어진 팔을 주우려는 듯 바닥을 기었다.

팔을 찾으려 목을 빼고 있는 위로, 순백의 검기가 지났다.

퉁. 퉁. 퉁.

현무단주는 입을 벌리고 혀끝을 내밀고 있던 사내의 머리를 그대로 땅에 떨어뜨렸다.

그때.

방금 떨어진 사내의 머리 위로, 웬 여인이 날아왔다.

퍼-억!

밑에서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진득한 핏물이 여인의 엉덩이 사이로 흘러나왔다.

“저런, 치질이라고 오해받겠군.”

현오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과연 저 여인이 치질이라 오해받은 걸 유감이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

얼굴과 몸통 군데군데, 뼈와 함께 완전히 함몰된 자국이 선명한 여인을 보며, 현무단주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악------!

“우아아악!”

“으악!”

한쪽에서 거대한 용트림이 지나며, 십수 명의 백열문도들을 한 번에 쓸고 지났다.

그 뒤로 곧장 나하연이 따라붙었다.

“하하하하! 덤비지 않겠다면 내가 가지! 아무리 적이라도 그 정도 친절은 베풀 수 있다네!”

다가오는 나하연을 보는 백열문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나하연이 그들 속에 뛰어들어 웃으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용수권이 작렬할 때마다 뼈와 살이 터져서 여기저기 뿌려졌다.

그 뒤에선 당혜군이 굳어 있는 상대의 관자놀이에 여섯 치가량 되는 대침을 천천히 돌려 넣고 있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상대는 눈알을 허옇게 뒤집은 채 거품을 뿜고 있었다.

현무단주는 이제 저들에 대해 뭔가를 말하거나 생각하느니, 차라리 백열문도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편이 쉽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무리 모르는 척하려 해도 그게 쉽지 않은 것이…….

“크아아아아아---!”

처음 들어 보는 고성의 비명에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진화의 검에 꽂힌 백열문주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 * *

비명을 질러라.

네가 남들에게 들었던 비명만큼.

누군가를 짓밟고 싶다면.

너 또한 짓밟힐 운명을 받아들여라.

내 삶, 희망, 사람과 사랑까지 모든 것을 앗아 갔으니.

나 또한 네놈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쉐에에에엑-!

“아악!”

까마귀 울음 같은 비명과 함께, 백열문주의 강철 손톱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붉게 물든 손가락과 함께였다.

하얗게 칠한 분은 이미 피와 땀에 절어 창백한 민낯을 드러냈고, 뻘건 입술보다 더 붉은 피가 턱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덜컹! 덜컹덜컹!

“으으…… 으아아아-!”

백열문주는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문을 긁으며, 도망치기 위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를 쫓아온 천벌이 그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헉!”

백열문주가 피를 토하는 것과 동시에, 진화가 그의 귓가에 물었다.

“이제 다 도망간 것인가?”

“으어어어…… 으아아아악-!”

덜컹! 덜컹덜컹덜컹-!

백열문주가 귀신을 본 듯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온몸을 퉁기며 제 몸과 문에 꽂힌 검을 빼서 도망쳤다.

진화는 일부러 검에서 빠져나가는 백열문주를 놓쳐 주었다.

“분칠을 하고 뱀처럼 기분 나쁜 기세를 풍기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나? 그래 봐야 귀천성이 흘린 부스러기 주제에. 바닥을 파닥거리는 꼴이 이제 좀 어울리는군.”

“으어어! 으어어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잔인하고 비참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진화는 거의 기다시피 도망가는 백열문주를 천천히 따라갈 뿐이었다.

퍼억-!

“컥!”

진화가 기어가는 백열문주의 등을 밟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돌려 제 얼굴을 보게 만든 후,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겨우 이 정도 비참한 것으론 내 분이 풀리지 않지. ……나는 너희 귀천성 놈들을 보면 간이 뒤집힐 것 같아. 그 썩어빠진 힘자랑에 죽어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갈기갈기 찢어서, 솜털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고 싶다고.”

“으으. 꺼어어어…….”

진화가 점점 꺼져 가는 백열문주의 눈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남궁세가 사람들과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이전 생에 이 장안에서의 패배가 남궁세가의 몰락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까.

진화는 제 속에 있는 증오와 악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전 생에 남궁세가 사람들의 죽음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광마제, 다른 하나는 전쟁.

결국은 모두 귀천성 때문이라!

화르르르!

진화의 눈 속에서 새파란 불이 타올랐다.

“말해. 지금 말하면 이대로 죽여 주지. 그 협정에 관한 증거와 제물을 거래한 장부, 어디 있지?”

“……크아아아악---!”

백열문주의 눈이 고민하는 듯 보이자, 진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허벅지에 꽂혀 있는 검에 뇌기를 흘려보냈다.

백열문주의 비명과 함께, 누릿하게 고기가 타는 냄새가 코를 스쳤다.

“이제 마지막이다. 어디 있어?”

“……바, 방…….”

반쯤 까맣게 탄 혀가 움직이는 듯하다, 결국 백열문주의 고개가 꺾였다.

진화가 소름 끼칠 정도로 덤덤하게 백열문주의 몸에서 검을 빼냈다.

근처에서 현무단주와 현오, 나하연이 진화를 보고 있었다.

특히 현무단주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화는 천천히 눈을 돌려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았다.

* * *

퍽-!

진화가 술통을 발로 찼다.

“으아아악!”

그 안에서 남은 술과 함께 백열문의 총관이 튀어나왔다.

술에 흠뻑 젖은 몸을 하고 숨까지 참고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애초에 밖으로 도망가지 않는 이상 진화의 기감을 속이고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히이익!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진화의 검이 총관의 코끝에 닿자, 지레 겁을 먹은 총관이 펄쩍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는 따로 할 일이 있다.”

“뭐든지요!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문주의 방으로 안내해라.”

“예! 예, 예!”

진화의 말에 총관이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며, 급하게 문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직 싸우고 있었지만, 진화는 그들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진화는 총관의 뒤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 다시 이 층 계단을 올랐다.

총관은 진화를 이 층 복도 제일 끝까지 안내했다.

“여, 여기입니다!”

“백열문주가 숨겨 놓은 장부를 찾아라.”

“예! 예!”

진화의 말에 총관은 거의 튀어 나가듯, 방문을 열고 달려갔다.

천천히 뒤따라 들어간 진화는, 제일 먼저 방주인의 취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색에 어지간히 집착한 것인지.

백열문주의 방은 벽부터 가구와 침구, 휘장, 바닥까지, 모조리 흰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덜컹! 쿵! 쿵!

갑작스러운 소리에 진화가 고개를 돌리자.

“그, 그것이, 중요한 것은 모두 이 안에 있사온데……!”

쿵! 쿵!

진화의 시선에 총관이 부랴부랴 주먹으로 자물쇠를 내리쳤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피가 나도록 주먹으로 때려 봤자, 쇠로 된 자물쇠가 열릴 리 없었다.

파-직!

“히엑!”

진화의 천뢰장이 절묘하게 자물쇠를 끊자, 총관이 놀라 두 걸음 물러섰다.

진화가 자연스럽게 총관이 비킨 자리로 가서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흑사문 때 보았던 것과 같은 검은 책자와 몇 가지 문서들이 있었다.

“…….”

진화가 그것들을 가지고 책상으로 왔다.

책상 위에도 치워 놓지 않은 전서들이 있었다.

진화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역시, 검은 책자였다.

‘경오년 을진월 계신일 해시. ……역시 흑사문의 것과는 다른 날짜다. 또 다른 마제의 것이로군.’

그런데 진화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또 있었다.

벌써 두 번째 검은 책자.

‘우연일까?’

흑사문과 백열문.

이름은 흑백으로 연결이 되지만, 전혀 상관없는 문파였다.

흑사문주는 사패천 살각 출신이고, 백열문은 귀천성 본성 출신이었다.

‘전혀 상관없는 두 문파가 같은 책자, 그것도 제물 거래에 대한 장부를 같은 것으로 들고 있다면. 역시…… 장부가 두 문파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귀천성에 제물 거래를 도맡아 하는 놈이 따로 있는 게로구나.’

진화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정의맹에 알린다면, 귀천성 마제 혹은 그들과 연결된 자를 찾는 데에 훨씬 수월할 터였다.

그 외에도 금고에 있는 문서들 중에는 곱게 접힌 협정서도 있었다.

거기엔 백열문과 거래를 하고 협정을 맺은 종남파 장로들의 인장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진화는 그것을 검은 책자와 함께 품에 넣었다.

그렇게 찾을 것을 다 찾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이건……?”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진화가 처음부터 책상에 있었던 전서를 가리키자, 총관이 펄쩍 뛰었다.

그것을 가리키자마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몰라도, 그게 무엇인지는 확실히 아는 눈치였다.

“똑바로 말해라.”

진화가 서늘한 칼날을 총관의 목 끝에 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총관이 술술 털어놓았다.

“조, 종남파 놈들과 주고받은 서신입니다! 공격 시기와 거, 거래 물품을 놈들과 의논하여 조율한 것으로 압니다!”

“허!”

총관의 말에 진화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헛웃음을 지었다.

“사전에 공격 시기와 장소, 물품까지 정해 놓으셨다? ……다음 물품은 누구지? 이번에도 면족인가?”

“히에엑! 저는, 저는 정말로 모릅니다!”

스윽!

진화가 다시 칼날을 들이밀었다.

“저는 정말로, 문주님이 불러 주는 대로 글을 썼을 뿐입니다! 절대! 절대 이 일에 관여한 바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나, 또 대답이 달라졌다.

글을 전달하고도 전혀 관여한 바는 없다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은 애초에 들어 줄 생각도 없었다.

진화는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허! 운이 좋으려니 한 번에 일이 끝나는구나.”

진화가 스르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칼날을 총관의 목에 슬쩍 찔러 넣었다.

“히, 히익!”

총관이 시퍼렇게 실린 얼굴로 기겁했다.

진화는 칼날에 힘을 실어, 총관을 책상 앞에 앉혔다.

“종남파 장로에게 답을 써라. 이틀 뒤, 신(申)시 반각, 성은곡을 친다고.”

“예?”

진화의 말에 놀란 총관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백열문을 피로 물들인 악마가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써라. 그때 백열문 전체가 대대적으로 공격해서 남궁진화를 죽일 테니, 대충 급을 맞춰 종남파에 있는 ‘우리 편’은 모두 데리고 나오라고.”

“……!”

진화가 ‘그’ 남궁진화인 것을 모르는 총관은 그저 섬뜩하고 불길했다.

바지가 뜨듯하게 젖어 오는 것을 느끼며, 총관은 정신없이 진화가 불러 주는 대로 답신을 썼다.

“보내는 방법이 있을 텐데?”

서슬 퍼런 진화의 물음에, 총관은 목에 걸린 피리를 힘껏 불었다.

잠시 후, 검갈색 독수리가 이 층 창가로 날아왔다.

“허! 독수리? 가지가지 했군.”

검갈색 독수리를 본 진화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모습에, 총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갈색 독수리의 다리에 전갈을 달아 보냈다.

독수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진화가 조용히 검을 집어넣었다.

이틀 뒤, 신(申)시.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높은 때, 그자들의 비명이 울리리라.

사문을 기만한 짐승들이 죽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커억! 왜, 왜……?”

진화의 옆으로, 총관이 피가 쏟아지는 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원망스러운 듯 진화를 보던 눈빛은 금방 꺼졌다.

진화는 덤덤한 표정으로 죽은 총관의 시체를 밟고 나갔다.

밖의 상황도 전부 끝이 나 있었다.

삼백 명이 넘는 백열문도들이 모조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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